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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Jul 25. 2021

함부르크

스마트폰으로 쓴 독일 기행기 5 , 여행후기



2014.06.01

새벽 6시 30분 민박집을 나와 베를린 역으로 가서 7시 12분 출발 이체(ICE)를 타고 함부르크로 향한다. 이체는 독일 내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고속열차로 최대 속도가 300km에 달한다. 지난 2004년도 독일 방문 때 쾰른에서 암스테르담으로 갈 때 이용했었다. 인근 국가인 벨기에, 네덜란드, 프랑스, 스위스 및 오스트리아까지도 운행되고 있다. 유럽 대부분이 그렇지만, 독일도 기차가 발달해서 어디든 기차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몇 년 만에 타보는 이체인가. 차창밖으로 드넓은 평원에 호밀밭이 펼쳐지고 드문드문 자유롭게 이른 아침 휴식을 누리고 있는 젖소들이 보인다. 그래도 독일인지라 함부르크 가는 길도 역시 흐리다. 


독일의 저력은 "실용"이고, 스스로에 대한 "신용"이 아닐까 싶다. 나아진, "다른 사람과 함께"라는 개념이 있었고, 하나를 할 때도 나중을 위해 투자하고 시간을 쓴다.  사람들은 "한꺼번에" "후다닥"이 없다. "한 번에 하나씩"이다. 방문했던 공장에서 구석진 곳의 바닥을 수리하는 것을 봤는데, 엎드려서 타일을 하나하나 두드리며 맞춰간다. 종전 후 파괴된 베를린 도로에 박은 수없는 돌들도 찾아서 하나씩 그렇게 박았다고 했다.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화장실도 산업이 될 수 있다는 것, 50센트 혹은 1유로를 받는 것이 부자나라에서 꼭 해야 할 일일까 싶지만 이 시스템으로 청결한 공공시설관리의 인식을 사람들에게 깨우쳐주고, 누군가에게는 고용의 기회도 준다. 어쩌면 우리나라에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두 가지, 물과 화장실이 이들에겐 돈을 써야만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자연스럽게  아이 때부터 세상엔 공짜가 없다는 것을 교육시켜준다. 가장 흔한 것이 소중할 수 있다는 사상을 어릴 때부터 자연스레 터득시켜 주는 것이다.


함부르크는 처음이라, 지인을 통해서 함부르크에 거주하시는 한인 분께 이틀 일정의 안내를 부탁드렸었다.  

우리는 함부르크 역에 내려 선생님과 만나기로 한 역까지 지하철을 타고 왔다.  M선생님은 현지인과 결혼하신 분이시고 파독 간호사 출신으로 병원에 근무하시다 은퇴하신 분이다.  연세가 꽤 드셨지만, 정정하시고 얼마나 잘 걸으시는지 우리가 뛰면서 쫓아갈 정도였다. 그 부지런함이 먼 이국땅에서 힘들고 바쁘 외롭게 사신 흔적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아팠다.


하룻밤 민박하기로 한 곳이 틀어져  M선생님 댁에 짐을 놓고 시내 관광을 한 후 역 근처의 호텔에서 묵기로 했는데, 선생님께서  좀 좁긴 하지만 본인 집에서 하룻밤 지내면 어떠냐고 하신다. 우리는 독일 가정에서 민박도 괜찮을 것 같아 배려해 주신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먼 이국 땅에 사는 동포를 방문하는 것도 의미 있지 않겠는가. 현지 사는 분이 안내를 해주시니 짧은 시간이지만 함부르크의 속까지 볼 수 있어 좋았다.


함부르크는 엘베강에 연계된 발트해를 공유하고 있는, 독일 북부의 항구도시로 독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다. 독일이 통일되기 전에는 서독에서 가장 크고 부유한 도시였다. 정식 명칭은 함부르크 자유 한자 시( Freie und Hansestadt Hamburg)로 불린다. 기원전부터 로마 지배하에 켈트족과 색슨족이 살았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한자동맹 시대 중요한 도시로 중세부터 지금까지 금융과 경제적으로 번성하는 주요한 도시다. 오래된 역사를 가진 도시답게 곳곳에 아름다운 유적이 산재해 있다. 길이 1154km로 독일과 체코 유역을 흐르던 엘베강이 마침내 북해로 흘러가던 곳으로  예부터 교역항으로 부와 명성을 쌓았다는 함부르크의 위상은 대단하였으리라.


함부르크 하면 햄버거 얘기도 빼놓을 수 없다.  몽고제국 시절 기마민족이 유럽까지 진출하면서 전해졌다는 설있다. 몽고의 타타르족이 소의 다진 고기를 말안장 밑에 넣고 보관하면서 달리다가 필요시 소금과 후추를 넣고 식사로 먹었던 것이 발전해 햄버거로 되었다는 이야기다. 함부르크가 영어로 Hamberg로 불리니 햄버거와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19세기 말 함부르크에서 미국으로 이민 간 사람들이 으깬 고기를 요리해 미국 빵속에 넣어먹으며 "함부르크 인들의 요리"라 햄버거라고 불렀다는 얘기도 있다.


어떤 얘기가 사실이든 햄버거가 함부르크와 떼어놓을 수 없으며 행버거의 역사가 의외로 오래된 것도 사실일 것 같다. 아무튼  함부르크에는 유명한 햄버거집이 있지만, 아쉽게도 부두에서 피시 앤 칩스로 대신했다. 함부르크의 햄버거 맛은 못 봤지만, 함부르크의 피시 앤 포테이토도 싱싱한 생선을 튀겨 바싹하고 고소한 맛이 인상에 남을 만큼 괜찮았다.


함부르크 시내를 지하철과 도보로 선생님이 가이드하는 대로 가기로 했다. 먼저 시청사가 있는 시내 중앙으로 나왔다. 함부르크 시청사는 네오르네상스 양식으로 1892년 준공된, 유럽에서도 매우 아름답고 화려한 건물에 속한다. 112미터의 높이를 자랑하는 중앙탑은 함부르크의 랜드마크 중 하나다. 시청은 비교적 최근에 세워졌는데, 1842년도에 완전히 전소되어 새롭게 지었기 때문이다. 시청 로비에는 함부르크를 빛낸 사람들의 부조와 후원자들의 기록이 있으며  일정 금액을 내면 한 달에 한 번이지만, 결혼식도 할 수 있는 시민과 함께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알스터호는 도시의 중앙에 위치해 있어 시민들의 휴식처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알스터호는 중세시대에 원래 엘베강의 지류인 알스터 강에 댐을 만들다가 측량의 실수로 물이 너무 많이 모이게 되어 호수가 되었다는 오래된 얘기를 가지고 있다. 그때는 실수였을지 몰라도, 오늘날 함부르크가 청정도시로써 이름을 높일 수 있는 기반을 아주 오래전에 닦아 놓은 것이다. 시청 근처에서 출발하는 알스터호 유람선을 타고 알스터호를 둘러보기로 했다. 강 주변에는 대부분 호화스러운 주택과 식당 등 아름다운 건물과 사유지가 많았다. 유람선은 물론 보트와 요트를 타고 여가를 즐기는 행복한 시민들이 많았다.


함부르크 시청사가 흐린 하늘을 받치고 있다.

성 베드로 교회가 보이는 함부르크 시내

알스터 홀 유람선과 유람선을 타고 보는 주택들

알스터호 주변 카페들


시내를 둘러본 후 지하철을 타고 하펜시티 쪽으로 간다. 하펜시티는 도시재생 프로그램 지역으로 한창 공사 중인 곳이었다. 함부르크항은 엘베강이 북해로 흘러들어 가는 지역적인  특성으해수면이 높아지는 만조 때만 대형 선박이 들어올 수 있어 초대형 컨테이너가 상시 들어오기 어려운 단점이 있었다. 19 세기 들어 활발했던 함부르크항이, 인근 나라 항구의 활성화로 침체되기 시작한다. 독일이 통일되고 난 후, 함부르크에서도시경제의 팽창을 예측하고 구도심 항구 주변의 오래된 창고와 민간건물과 시설들을 사들여 엘베강 건너편으로 이전하고 택지 조성을 준비했다. 1990년 후반부터  지역을 개발시킬 계획을 시민들과 함께 세워 이 지역을 하펜시티(Hafen city)로 이름 짓고 대규모 재정비 작업에 돌입한다. 1997년부터 계획하고 공모하여 2004년부터 시작된 하펜시티 재정비작업은 유럽에서 가장 큰 도시재생사업이며, 2030년을 목표로 차근차근 시행해 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하펜시티 주변지역은 함부르크항이 융성했던 때부터 사용되던 오래된 곳이라곳곳에 많은 오래된 건물들이 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세워진 세계적인 규모의 화물창고 단지였던 슈파이셔슈타트(Speicherstadt)는 표현주의 건축양식의 콘도어 하우스 건물양식이 밀집해 있는 곳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곳이다. 오래된 창고나 커피하우스 등 여러 용도도 사용하기도 하지만, 도시재생 프로그램에 따라 주변지역의 개발과 이곳도 사무실이나 호텔, 문화공간, 쇼핑센터 등으로도 개발 중이었다.


함부르크는 하펜시티 완공에 맞춰 경제뿐만 아니라 문화, 예술적인 측면에서도 커다란 발전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하펜시티 안쪽 끝으로는 함부르크 엘베 필하모닉 홀 공사가 한참 진행 중이다. 하펜시티에 문화적인 숨결을 넣어줄 심장과도 같은 건물로 새로운 정체성을 보여줄 수 있는 야심 찬 건물로 짓고 있다. 글을 쓰고 있는  2021년 지금 "엘피 하모니"라는 애칭으로도 불리는 "베 필하모니홀 (Elbphilharmonie)"은 성공적으로 완공되어 이미  함부르크의 랜드마크로 그 명성을 자랑하고 있다.


엘베강항 주변에는 유람선 선착장과 선창을 중심으로 길게 이어진 넓은 산책로가 있어 사람들이 많이 다니고 볼거리들도 많이 있었다. 함부르크 바닷가는 공원처럼 꾸며지고, 부두를 따라 음식점도 많고 유람선도 운행되는, 관광객들은 물론 시민들이 가족들과 많이 찾는 휴식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유람선을 타고 둘러보는 강항은, 약간 짭조름하게 느껴져도 비리지는 않은 바다 냄새와 반겨주며 노래하는 갈매기들이 있어 외롭지 않았다.


슈파이셔슈타트 창고지역

열심히 공사 중인 하펜시티

새로운 건물들이 조성되는 하펜시티

엘베강항 유람선에서 바라본 란둥스브뤼켄 선착장

강항 주변 산책로

 맛있게 먹었던 피시 앤 포테이토


오늘 일정을 마치고, M선생님 집으로 왔다. 선생님이 사시는 집은 3~4층으로 된 대단지 빌라촌인데, 아주 넓은 대지에 커다란 단지로 지어졌다. 60년대에 지은 것이라는데, 대부분 회사에서 관리하고 월세(300~3,000유로로 다양함)를 내고 산다고 한다. 독일에는 큰 회사에서 건물을 짓고 세를 주고 관리하는 아파트 회사가 많다. 선생님 댁은 600유로를 내는데 거실 포함 방 셋의 30평 정도 되는 크기다. 빌라 뒤편에는 제법 넓은 정원이 집마다 딸려있어, 빌라에 살지만 전원생활을 즐길 수 있게 돼있었다. 여기는 부유촌이 아니라 서민들이 사는 곳이고 아파트나 빌라에 사는 것이 단독주택에서 사는 것보단 집값이 싼 편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아파트 선호도가 높지만 미국이나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아파트보다는 단독을 선호하는 편이다. 자연 속에서 원하는 정원 생활을 하면서 살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래도 이렇게 정원까지 딸린 빌라는 굳이 단독 주택이 아니더라도 삶의 질은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아파트 외부 전경 정원이 주어져 한결 여유롭다.

아파트에서 내려다본 정원 풍경

독일 가정집의 소박한 식탁

동네 마켓과 너무도 맛있었던 납작 복숭아


선생님은 피곤한 기색도 없이 저녁 준비를 하신다. 독일 소 가정의 풍경을 그대로 보는 듯하다. 특히 선생님의 남편분은 책을 좋아하시며 말없고 전형적인 독일 남자 스타일이다. 우리가 식사한 작은 거실 사방엔 온통 책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선생님이 준비한 식사는 독일인의 식탁에서 빠지지 않는 감자와 야채샐러드와 통보리 빵과 소시지 구이다. 대화하면서 맛있게 먹고, 집 근처 공원으로 산책을 나간다. 여긴 부유한 동네가 아니라는데도 멋지고 큰 큰 공원이 있다. 공원에서 그네도 타고 산책하며 사람들을 만나며 독일인들의 실제적인 삶을 본다. 이름 모를 새도 많고 신기하게 토끼가 정말 많았다. 독일 아파트는 정원도 넓어 아쉬움이 없었으나 한 가지 아쉬웠다면  물이 뻑뻑하고 거칠었다. 하기사 세계 어디를 다녀봐도 우리나라 물처럼 맛있고 좋은 물은 없다. 금수강산 아닌가. 그런데도 정수기가 판을 치고 생수가 날개 돋친 듯이 판매되는 것을 보면 참 안타깝다. 독일 물은 석회질이 너무 많아 그냥 마시기 힘들다. 물을 사 먹을 수밖에 없고 맥주가 발달한 이유도 그래서다.


2014.06.02

공항까지 늦을세라 일행을 재촉해 서둘러 아침 9시에 나서는데, 선생님이 역까지 질러가는 길이 있다고 걱정 말라고 하신다. 오히려 그 길로 가는 바람에 좋은 구경 많이 했다. 공원의 자연과 풀숲인데도 넘치는 허브향의 싱그러움, 자전거로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 자그만 강 한쪽 저편에 아기오리까지 나선 오리가족들의 부지런한 산보가 아침햇살을 받으며 하루 시작을 알린다. 토끼는 어젯밤에 많이 뛰어서인지 한 마리만 봤다. 공원이 끝날 즈음 시장이 펼쳐지고, 부지런한 상인들이 벌써 문을 연다. 8시면 가게문을 연다니 독일 사람들의 근면성은 알아줘야 한다.


특히 5~6월은 해가 늦게 지고 일찍 뜨니 시간이 더 많은 거다. 일도 열심히 하고 놀기도 잘 논다. 제시간들을 충분히 가지고 삶을 즐기는 여유가 있다. 소비자 생활물가만 비싸지 않다면 살기에는 좋은 곳이다. 함부르크도 그렇지만,  베를린에는 터키 등 중동지방에서 온 이민자가 많고, 주택 렌트비가 더 비싸 생활비가 많이 든다고 한다. 친절한 안내로 활기 넘치는 아침 풍경을 즐기면서 지하철을 타고 풀스뷔텔 공항으로 향한다. 이틀 동안 친절하게 가이드해주신 M선생님을 홀로 두고 가는 것 같은 미안한 마음으로 비행기를 탄다.




독일 기행기를 마치며 2021.07.25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명언에서, 나는 항상 "로마"보다, 로마를 이루게 한 "길"을 먼저 생각한다. 물론 그 길은 "아피아 가도"를 의미했을지 모르겠다만, "길"은 역사의 시작이었다. 여행의 시작도 길이다. 이번 여행에선 "땅의 길" 못지않게 "물의 길" "강"을 다시 보게 되었다. 예전에는 길을 닦아야 가능한 육로 수송 못지않게 수로 수송도 중요했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발달한 도시는 항상 강을 끼고 있었다. 여행기간 내내 아름답게 보며 즐겼던 강의 추억... 탕게르문데 성 입구에 엘베강의 수위를 확인하기 위한 잣대가 있었던 것처럼 엘베강이나 라인강이 독일의 번영을 위해 기여한 바도 크지만, 역사 속에는 강의 범람으로 큰 피해를 입은 때도 많다. 기행기를 쓰고 있는 중에 남부 독일과 벨기에 쪽으로 폭우가 쏟아져  10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는 뉴스를 접한다. 여행 중에 본 독일은 다져진 단단한 토대 위에 올렸다는 느낌이었는데, 때로 인간을 깨우치려는 자연의 괴력 앞에선 종잇장처럼 허물어지는 모습에 인간의 무력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무너지면 또 세우고, 다시 허물어지면 더 강하게 보수해 살아온 흔적을 본다. 많은 역경 속에서도 일어선 저력이 있는 나라들이니 속히 아픔을 딛고 새롭게 터전을 일굴 것이라 믿는다. 혹 사라져 간 유적들도 다음 세대를 위해 정밀히 보수하는 것도 잊지 않을 것이다.


파독 교포들의 오랜 외로움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이들은 그것을 인내로써 다지고 또 다져서 그들 나름의 삶을 구측해 갔고,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을까 싶었지만 얼굴에선 웃음이 떠나지 않는 것을 보면서 삶의 시련도 사람의 마음까지는 피폐시키지는 못한다는 배움도 얻었다. 어쩌면 한편으론 더 일찍 깨우친 코즈모폴리턴으로써 잘 살아온 사람들일 수도 있다.


움켜쥐고 있는 부가 아니라 삶의  순간순간 자연과 더불어 누릴 수 있는 소박한 기쁨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곳이 선진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눈만 뜨면 하늘로 치솟는 부동산 가격에, 먼저 쥐지 못한 미련함을 속상해하지 말고 더불어 살 수 있는 자연을 가까이할 작은 여유를 가지고 산다면, 올라도 쓰지 못할 숫자에 불과한 부(富)가 아니라, 마음을 감싸주며 곁에서 누리게 해주는 평온한 즐거움(樂)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p.s.  2014년 6월 독일 여행 시, 갤럭시 노트 1로 기록했던 기행기를 2021년 7월 수정하며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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