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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Jul 18. 2021

베를린 (페르가몬 박물관 외)

스마트폰으로 쓴 독일 기행기 4



2014.05.30

아침 7시 조금 넘어 베를린 반호프 도착, 이제부터는 우리끼리 움직이니 인솔자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야 한다. 지하철을 타고 한국에서 예약한 민박집을 찾아간다. 셋의 짐이 많아 지하철을 이용해 오느라 힘들었지만 한인 민박집은 훌륭했다. IT산업의 최강국인 우리나라답게, 인터넷으로 모든 것을 미리 준비할 수 있었고 여행객들의 정보공유로 세계 어디라도 어렵지 않게 갈 수 있다는 말을 체험하고 있다. 정보를 찾아볼 때와 같이 민박집은 괜찮았고, 이틀밖에 묶진 않았지만 베를린의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민박 주인 분과 인사하고 숙소에 짐을 푼 후 며칠 만에 풍성한 한식을 맛있게 먹고 일정을 위해 시내로 나온다. 뮌헨으로 가기 전 베를린을 한나절 관광했기에 오늘은 박물관 섬을 둘러본 후 걸어서 인근 지역을 다닐 예정이다.

 

박물관 섬은 베를린 동쪽을 흐르는 슈프레 강 중앙에 위치한 섬이다. 작은 섬에 넓은 공원과, 네 개의 박물관과 한 개의 미술관 그리고 대성당(Berliner Dom)이 있어 베를린 시민들의 휴식과 문화공간이기도 하다. 이름답게 가장 오래된 베를린 구 박물관(Altes Museum)과 신박물관 (Neues Museum), 보데 박물관(Bode Museum)과 구 국립미술관(Alte Nationalgalerie), 그리고 가장 나중에 지은 페르가몬박물관(Pergamon museum)이 있다. 


구 국립미술관(Alte Nationalgalerie) 

구 박물관 (Altes Museum) 앞 공원에서 여유를 즐기는 시민들

현재의 페르가몬박물관 모습 (위키백과)


페르가몬 박물관은 이번 여행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방문하고 싶었던 곳이었다. 티켓 예약은 못해 긴 줄을 기다려 겨우 표를 샀지만, 입장 대기자가 많아 한 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오늘은 주말도 아닌 평일인데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 대부분 현지 사람들이다. 페르가몬 박물관 자체가 박물관 섬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곳이기도 했지만, 문화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기에 박물관 섬은 항상 붐빈다. 


2014년 9월 중순부터 페르가몬 박물관은 보수를 하기 위해 5년간 열지 않는다고 했다. 새로운 유리 천장과 실내 온도 조절 시스템의 건설 및 박물관 전체를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한다고 한다. 이번 여행길에 페르가몬 박물관을 만나게 된 것은 행운으로, 적잖은 흥분과 기쁨을 주었다. 2021년 현재 다시 확인해 보니 재개장은 했으나, 페르가몬 제단은 2024년 이후에야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당장은 다시 가볼 순 없지만 곧 코로나가 종식되면 새롭게 단장된 페르가몬 박물관을 만날 기대도 해본다.


페르가몬 박물관은 터키의 고대 페르가몬 왕국의 이름을 따온 고대 근동 지방의 역사박물관이다. 알프레트 메셀과 루드비히 호프만이 설계하고 1910년부터 20여 년간에 걸쳐 지어진 건물로 근동지역의 그리스, 로마의 유적과 이슬람 지역 그리고 이름답게 고대 근동지역의 유물이 많다. 내부는 고대 유물전시관과 중동 전시관, 이슬람 전시관으로 크게 구분되어 있다. 고대 유물전시관의 대표적인 전시품은 기원전 2세기경 제우스의 대제단(페르가몬 제단)과 밀레토스의 시장 문 등 기념비적 건축물들이 실제 크기로 재건되어 전시되어 있다. 페르가몬 제단은 거대한 중앙제단 옆 벽으로 신들과 거인의 싸움을 묘사한 부조로도 유명하다.


이슬람 미술관은 스페인과 인도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전시되고 있다. 중동 전시관(Vorderasiatisches Museum)에는 19세기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수메르, 앗시리아, 바빌로니아 유적 등 근동 지역에서 발굴한 유물들과 발굴 당시의 사진 등을 전시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고대 근동 메소포타미아 지역 역사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페르가몬 박물관에 꼭 오고 싶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 유물이 이렇게 많은 곳은 이곳과 시카고 대학의 오리엔탈 박물관 일 것이다.  


중동 전시관의 유물들은 19세기 말 발굴작업 때 발견된 수많은 벽돌 조각들과 개인 소유로 흩어져 있던 조각들까지 박물관에서 일일이 수집해 맞춘 것이라 한다. 강대국으로써 고고학적 유물을 마구잡이로 발굴해 옮겨온 것이 아니라, 고대 역사와 문화를 복원하고자 애쓴 학자들의 땀과 노력이 깃들어 있는 유물이라 생각하니 더 마음에 와닿는다. 페르가몬 박물관의 대표적인 전시물인 "이슈타르 문(Ishtar Gate)"은 기원전 6세기 때 건축된 것으로 "바빌론의 문"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성경에도 나오는 느부갓네살(네부카드네자르) 왕의 바빌론 내 성의 8번째 문이었다. 일일이 구워 만들어낸 쪽빛의 푸르고 매끄러운 벽돌로 아름답게 지어진 성문이었다. 세계 7대 불가사의라는 바빌론의 공중정원을 만들 정도로 뛰어난 건축기술을 가졌던 바빌로니아의 최전성기에 지어진 화려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물론, 지금 재건되어 있는 전시물은 학자들이 수천, 수만 개의 벽돌 파편들을 염분을 제거하고 유약처리를 다시 하고 파라핀 등으로 강화하고 모티브와 색상에 따라 재배열하여 당시를 재현한 유물들이다. 


이슈타르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가장 중요한 여신으로 알려져 있으며, 고대 수메르족의 여신 "이난나"의 성격과 셈족의 "남성성"이 결합된 "이면성을 가진 신"으로 표현된다. 이슈타르 문을 지나면 양쪽 벽으로 이어진 "행렬의 길(Professional Way of Babylon)"은 이슈타르 신의 상징동물인 사자와 오록스(옛 소), 꽃으로 새겨져 있었다.


메소포타미아 유적을 발굴할 당시의 사진과 전시된 그림들이, 우리가 편하게 관람하고 있는 유물들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겪었을 고충과 헌신을 생각게 만든다. 짧은 시간 스쳐가듯 보는 인류의 위대한 유산, 메모하거나 사진을 찍어도 다시 공부해야 알 수 있는 내용들이지만 잠시나마라도 현장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큰 축복이며 역사의 한 장을 피부로 느껴보고 감동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모든 위대한 헌신의 결과는 하룻밤 새 자랄 수 없는 나무와 같다. 나무를 심는 마음으로, 보이지 않는 미래를 위해 희생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마음이 먼저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제우스의 대제단(페르가몬 제단)

이슈타르 문 (위키백과)

행렬의 길에 묘사된 사자상

이슈타르 문의 벽돌 조각들을 분류하고 재건하는 작업 (페르가몬박물관 사진)



베를린 대성당(베를리너 돔)은 독일에서 가장 큰 개신교 교회인데도, 웅장한 모습이 중세 대성당 같아 보이는 이유는 1451년 최초 건립 때 교황의 명으로 가톨릭식으로 지었기 때문이다. 한때 루터교에서 사용하기도 한  건축물로 성당에서 사용하는 제물 등 개신교회임에도 불구하고 가톨릭과 루터교 양식의 모든 기물들과 유적들을 보존하고 있어 역사적인 가치가 크다고 한다.  베를린 돔 앞 잔디밭에선 많은 사람들이 파란 하늘 아래서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우리는 입장료를 내고 베를린 성당 내부를 관람하면서 꼭대기 전망대로 향했다. 높이가 100미터가 넘는 거대한 건물이라 좁은 계단을 오르기도 힘들었다. 전망대는 돔을 360도로 돌아가며 베를린 시내를 전망할 수 있게 되어있었으나, 한두 사람이 지날 정도로 좁은 길이었다. 한 바퀴 돌면서 넓게 펼쳐진 베를린의 아름다운 정경을 마음에 담는다.


베를린 대성당

베를린 대성당 전망대에서 바라본 공원 모습 / 전망대에서 바라본 베를린 방송탑



카데베(KADEWE) 백화점은 카우프하우스 데스 베스텐스( Kaufhaus des Westens)로 줄여서 카데베 백화점으로 부르며, 영국의 해러즈 백화점에 이어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백화점이라고 한다.  분단 시절 서독에서 자본주의의 번영을 보여줄 상징으로 화려하고 웅장하게 지은 오래된 백화점이다. 전층을 대충 둘러보는데, 전자제품 매장에서 우리나라 제품도 많이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니 반가웠다. 강아지를 위한 용품도 명품으로 판매되고 있는 화려한 백화점이다. 백화점 구경을 마친 후 간단히 식사하기로 해 꼭대기층으로 갔다. 셋이서 먹고 싶은 음식들을 뷔페식으로 담아 계산하니 102유로가 나왔다. 독일 물가가 싸지는 않았으나, 간단한 요리와 과일, 독일식 디저트 등 다양한 음식을 먹을 수 있어 좋았다.  


고풍스러운 외관의 카데베 백화점

독일식 요리를 담아보다 / 강아지 식기와 장식품들


2014.05 31 

민박 숙소에서 한국음식과 이웃으로 즐겁게 아침을 보낸 후 상수시(상수이) 궁전에 가기 위해 포츠담으로 가는 기차를 탄다. 브란덴부르크 주에 위치한 포츠담은 베를린에서 기차로 30분 정도 걸리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곳이다. 2차 대전 말 연합국이 모여서 일본에 대해 무조건적인 항복을 요구한 포츠담 선언을 한 곳이다. 


상수시 궁전(Schloss Sanssouci)은 포츠담시 북부에 있으며, 프로이센 왕국의 호엔촐레른 왕가의 여름궁전으로 프리드리히 2세 때 1747년에 지어진 건물이다. 상수시는 프랑스어로 "근심 없는 궁전" (Palais de Sanssouci)이란 뜻을 가진, 베르사유 궁전을 모방한 로코코 양식의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여행초에는 내내 날이 궂고 비가 내렸는데, 오늘은 날씨가 너무 좋아 아름다운 상수시 궁전을 더욱 잘 볼 수 있었다. 


궁은 넓은 포도밭을 포함해 주변이 아름다운 조각물과 화려한 건물로 이루어져 있었고, 궁에서 공원 쪽으로 내려오는 넓은 계단이 인상적이었다. 공원 한쪽으로 커다란 연못과 분수가 있고 초목이 우거져, 여가를 가족들과 즐기려는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쉼을 즐기는 휴식처로써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상수시 궁전과 공원은 1990년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공원 북쪽 끝에 영국식 별장을 모방하여 만든 체칠리엔호프(Cecilienhof) 궁이 있는데, 이곳에서 포츠담 회담 조약 체결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버스정류장에서 바라본 포츠담 중앙역 /  상수이 궁전

프리드리히 2세의 무덤과 아끼던 개들의 무덤.

양쪽으로 포도밭이 인상적인 웅장한 계단

상수이 궁내의 시원한 분수


궁의 동쪽 테라스 아래쪽에 프리드리히 2세의 무덤이 있는데 그 옆으로 감자가 놓인 네모난 돌무덤이 있었다. 평생 개를 사랑했던 프리드리히 황제의 유언에 따라 아끼던 개들을 왕의 곁에 묻어주고 그위에는, 백성들의 굶주림 해결하고자 자신도 감자를 먹으며 생활에서 실천했던 왕의 진심을 기리기 위해서 지금도 감자를 놓아둔다고 한다. 개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죽어서도 개와 함께 묻히기를 갈망했던 왕을 잠시나마 묵념해 본다.


민박집 동네는 약간 외곽이지만, 동네 사람들의 개 산책은 변함없다. 개를 데리고 시내 백화점은 물론 어디든 다니지 않는 데가 없었고, 개 출입을 제한하는 곳도 별로 없었다. 그 점이 참 부러웠다. 돌아가면 우리 강아지들에게도 더 많은 볼거리와 산책의 기쁨을 안겨주도록 해야겠다. 내일 새벽 6시 30분 이체를 타고 베를린을 떠나 함부르크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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