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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Aug 22. 2021

두브로브니크, 폴리체비트

스마트폰으로 쓴 동유럽 기행기 4


2016.12.13

여행이야 자주 다녔지만, 이번 여행은 새로운 룸메이트를 만나, 다른 사람의 직업에 대한 이해와 공감도 하게 된다. 일행을 이끌고 꽉 짜인 일정을 소화시키느라 바쁜 일정 속에 대화할 시간도 없었는데, 어제저녁엔 좀 늦도록 얘기를 들었다. 대화를 해야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고 또 어떻게 사는지를 알 수 있는 법, 누구라도 열심히 살아서 지금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이다. 그 직업의 불안정성 때문에 장래를 염려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또한 여행업계의 열악한 현실을 듣고 보니 가끔 패키지여행도 하는 터라, 미안함과 고마움이 교차된다.  직업상 여러 류의 사람들을 겪으 때로 다양한 요구들을 군소리 없이 참아내며 받아들여야 해, 어쩌면 인내가 필수적인 인간관계를 잘 아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부디 원하는 일을 즐겁게 해내면서, 건강한 삶을 잘 꾸려가길 응원했다.


지금 이 글을 쓰다 보니 작년부터 시작된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누구보다 큰 타격을 받았을 여행업 종사분들에게 진심 어린 위로를 보내고 싶다. 작년 코로나 처음 유행할 때는 이렇게 오래갈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앞으로 회복된다 해도 이전같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앞선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사람들인가. 수천 년, 수없이 많은 사건과 생각도 못한 역경의 흐름 속에서도 인간은 향상하고 성장하는 면모를 지니고 살아왔다. 포스트 코로나에는 어떤 성장이 있을지 한마디로 예측하긴 어렵지만, 분명 좋아질 때가 오리라 믿는다. 다만 언제나 그렇듯이 지나가고야 말 이 시절만 견뎌 내면 된다.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사는지는 모르지만 좋은 여행을 이끌어준 s선생도 힘내고 지금을 견뎌내기를 빌어본다.


어젯밤 스플리트의 감흥을 안고 두 시간 넘게 달려와서 피곤해 열(?) 받을 즈음 도착한 네움(Neum)!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 유일하게 해안에 닿아 있는 곳이라는데, 칠흑같이 검은 밤에 검푸른 색의 바닷가가 너무나 아름다웠다. 우리가 묵은 호텔은 성수기에는 무척 비싸고 예약하기도 어려운 곳이라고 한다. 겨울이라 여유가 있어 예약할 수 있었다고.  호텔이 바닷가와 접해있어 아드리아해를 바로 옆에서 고스란히 느낀다. 수천 년 전에도 누군가가 바라보고 살았을 그 해안을 잠시라도 걸으니 하루 피곤함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듯했다.


붉게 물든 야자수가 서있고 끝없는 황금빛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는 곳이 아니었다. 어젯밤은 보름이기도 했지만 바닷속에 돌까지 훤히 들여다 보일 정도로 검푸르게 깨끗한 물, 호텔 뒷마당 길가 바로 아래가 바다였다. 우리나라 해안가처럼 경사진 해변이 아니라 어떤 배든 마을 앞에 닻을 내리기에도 문제없다. 네움은 보스니아의 유일한 접안지역이기도 하지만, 네움 때문에 두브로브니크는 크로아티아 본토에서 끓어져 있는 곳이 되기도 한다. 한 가지가 더하면 한 가지는 빠지는 법이다. 그렇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인생이 공평한 것이기도 하고....


휴양도시겠지만 번잡한 밤문화가 없다는 점에 바다가 더 빛났다. 하늘의 별과 달, 밤구름이 너무도 조화롭게 펼쳐져 있는 밤하늘, 그리고 더 깨끗하게 들여다 보이는 밤바다, 미동의 파도도 없다. 마치 앞도 보이지 않는 커다란 역사의 물구덩이가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 같다. 전혀 근대적인 바다가 아니다. 고스란히 품고 있는 역사를 오늘에 재현하는 것처럼 시공을 초월한 바다다. 긴 역사를 통해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겠는가. 얼마나 많은 삶의 색깔이 담겼었고, 내일 아침엔 또 어떤 색깔을 품고 나타날까. 아니 오늘 밤 잠들면서 바다는 또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 이번 여행이 전혀 아깝지 않은 감동의 아드리아 해와의 첫 만남에 잠시 상념에 젖어본다.


2016.12.14

동녘 해가 떠오르는 아드리아해, 가슴으로 눈으로 담고 오늘 길을 간다. 네움에서 두브로브니크로 가는 해안길이 세계적으로 아름다운 길이라니 눈 정화 마음 정화를 기대하며...


차창으로 본 아드리아해 / 네움에서 묶었던 호텔 입구

해안 도시


아름다운 풍광으로 눈이 즐겁고 이루마 피아노곡으로 마음은 평화롭게, 해변가를 달리며 두브로브니크(Dubrovnik)에 도착한다.  두브로브니크는 중세 이탈리아에서 융성했던 베네치아 공국의 주요 거점 중 하나로 13세기 지중해 무역의 중심도시기도 했다. 15세기 대지진으로 도시가 많이 파괴되었지만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의 오래된 건물들과 수도원 등이 잘 보존되어 있는 구도시는 도시 전체가 중세를 옮겨놓은 듯한 인상을 준다. 필레 게이트를 통해 들어서는 순간 마치 중세로 들어온 듯한 인상을 받았다. 구도시의 중심가 플라차 거리는 온 바닥이 대리석으로 깔려있다. 중세 번성했던 두브로브니크의 영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는 오래된 장소와 기념 건물들이 이어져 있는 플라차 거리는 그리 길진 않아 짧은 시간 안에 돌아볼 수 있다. 공중화장실이 다른 유럽지역보다 비싸게(7쿠나/ 1400원) 운영되고 있었다. 담당 직원이 있고 화장실이 특이하고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스테인리스로 지어진 화장실은 중세 속의 현대였다.


두브로브니크의 대표적인 유산, 성벽(Stari Grad)은 그시대 베네치아 사람들이 쌓은 것으로 197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성벽 돌기는 두브로브니크에서 꼭 봐야 할 코스다. 구시가지 올드하우스의 모습이 한눈에 보이고 석양에 붉은 지붕이 어우러져 보석같이 아름다운 도시 풍경을 보며 걷는다. 폐허가 된 집이 보인다. 1991년 유고슬라비아 내전으로 파괴된 집들이라는데 잡초 허브가 무성하다. "인간사의 애환이 무엇 때문일까"를 보여주듯 붉은 벽돌담에 뚫어져있는 구멍들이 가슴 아픈 역사의 흔적들을 보여주지만 폐허가 된 집에서도 자라난 꽃나무들은 색색의 희망을 터트리고 있다. 내전 당시 두브로브니크를 아끼던 유럽의 학자들이 인간방패의 역할을 해주지 않았다면 두브로브니크엔 폐허만 남았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실감한다. 개인적으로 표를 끊어 가는 분도 있었는데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걷는 것이 옵션비 이상으로 얻는 것이 많다.


아름다운 성안 동네를 내 집처럼 활보하는 흰색 레트리버와 길고양이들, 떠돌이 개와 길고양이 많은 것 같은데 주민 모두가 주인인 듯 건강하고 살쪄있다. 누구도 누구를 차별하지 않 내세우지도 뭉개지도 않는다. 다양함이 존재하고 서로를 인정해 주는... 그래서 오래된 것들과 다르게 생긴 것들과도 자연스레 함께 살 수 있다. 크로아티아에서도 유명 관광지라 그런지 두브로브니크 물가가 비싼 편이다. 크로아티아 GNP는 15000불 정도며 대도시 평균 월급이 800유로로 낮은 편이라 투잡을 많이 한다고 한다. 소도시는 이보다 낮아 400유로 정도이고 고소득 평균직 월급도 낮은 편으로 자그레브 대학 정교수 월급 1000유로 정도라 한다. 물론 의사 월급도 비슷하다고 했다. 이곳에선 돈이 행복의 절대조건은 아닌 듯 여겨진다. 열심히 일한다는 사실로 서로 비슷하게 벌고, 필요하면 더 일해서 벌어 보태는 삶! 가진 것이 때때로 모든 것의 잣대가 되는 우리네 삶과 다른 의미를 준다. 우리들에게 여러 얘기를 해주며 성벽 투어를 안내한 두브로브니크 로컬가이드 "폴라"씨도 초등학교 교사인데 가이드로 투잡을 하고 있다.


아름다운 두브로브니크의 풍광을 한눈에 보기 위해 스르지 산 전망대로 케이블카를 타고 오른다. 붉은 지붕의 올드 시티에, 찬란한 햇빛이 반사된 푸르른 바다 위에 펼쳐져 있는 두브로브니크는 살아있는 한 폭의 그림처럼 출렁이고 있다. 천년을 넘게 지켜온 역사와 더불어 사람도 개도 고양이도 함께 산다. 회색빛 아파트로 펼쳐진 풍광에 길들여진 나의 눈이, 붉고 푸른 색감의 조화로 새로운 기운을 받는 듯하다. 두브로브니크 해변가 저택의 월세가 40~50만 원 정도라는데 시간이 허락한다면 언젠가 꼭 한 달이라도 살아보리라 결심해 본다. 글을 쓰는 요즈음 코로나로 마음대로 여행도 못 다니는 이럴 때 두브로브니크에 살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보지만, 우리나라처럼 방역과 관리가 철저히 되는 곳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괜스런 생각도 해본다.


성벽에서 내려다본 플라차 거리

성벽 뮤지엄과 어느 집에서 베푼 유기묘 식사시간

좁은 골목들 / 성벽 돌기에서 본 구시가지 집들

폐허가 된 집도 품고 있는 구시가지 전경

유람선을 기다리는 선착장과 추억하며 그린 유화


점심에는 해안 식당에서 스파게티를 먹었다. 이탈리아에서 먹던 스파게티와는 다르지만, 유람선을 기다리며 맛있게 먹는다. 예전 pda로 기록하던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날아다니는 것 같다. 스마트폰 하나면 모든 것이 오케이다. 글을 쓰면서 작년(2015) 시카고 다녀온 여행기를 보니 새롭다. 기록이 없었다면 아마 상세하게 기억나지 않을 얘기들이다. 개인적으로 스마트폰의 훌륭함을 문서작성을 통해서 더 느낀다. 그때의 일상을 기록했기에 가능한 기행기를 이제 쓰면서, 기억에 남아있는 스티브 잡스와 삼성 갤럭시 노트 (특히 1)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두브로브니크를 떠나 자다르로 가는 버스 안, 아직 완전히 밤이 되지 않았는데 커다란 보름달이 산 위에 걸려있다. 우리나라에서 보는 보름달보다 훨씬 큰 것 같다. 이제 석양의 아드리아 해를 뒤로 하고 북쪽으로 올라간다.


2016.12.15

폴리트비체는  인간의 "덧댐"을 최대로 억제한 태곳적 자연 그대로 보존된, 크로아티아의 국립공원으로 면적이 워낙 넓어 다 둘러보려면 사나흘이 걸리고 코스도 아주 많다고 한다.  크고 작은 16개의 폭포가 연결되어 신비로운 색감과 더불어 삼나무와 전나무 등 다듬어지지 않은 온갖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선 원시림 같은 곳이라는데, 지금은 겨울이다 보니 옷을 벗어버린 나무들이 많고 스산하다. 하지만 초목의 푸르름을 물이 대신하는 듯, 폭포와 호수는 초록 물감을 풀어놓은 듯 바닥까지 투명하고 깨끗하다. 오늘 일정은 짧은 시간에 주로 알려진 코스로 산책을 겸해 다닌다.


일행 중 한 분이 "구채구"보다 못하단다. 못할 수도 있겠지. 구채구는 가보지 않았지만 중국이야 워낙 땅덩이가 크니 자연의 거대한 작품들도 많다. 여행 다니다 보면 본인이 다녀온 곳에 대한 자부심에 자랑과 더불어 늘 다른 것과 비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곳에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아쉽다. 인공적인 것이 최대한 배제된 이곳이 나는 참 좋았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고 또다시 그들의 길을 터벅거리며 걸어갔을지 모르는, 낡은 나무의자에 앉아 배낭을 내려놓고 조금 남겨두었던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단체 여행 중에 짬을 내어 개인 시간을 즐긴다는 것이 어렵지만 최대한 여유를 즐기려 애쓰고 있다.


그림 소재가 될 만한 풍경 사진도 찍는다. 흔들리는 갈대숲과 물은 에메랄드를 뿌려놓은 것처럼 맑고 투명하다. P3선착장으로 부지런히 걸어왔다. 플리트비체를 닮은 개 한 마리가 역시 나를 반긴다. 제대로 못 먹었는지 배가 훌쭉하다. 마침 아침에 삶은 달걀 하나 챙겨 온 것이 생각나 까서 주니, 너무 잘 먹는다. 챙겨 오길 참 잘했다. 멀리서 우리를 태울 배가 들어온다. “참 느리게 온다. 왜 이리 느려...” 어른 남자들의 얘기 소리. 분명히, 쉬고 자연과 문화를 즐기려고 온 여행길인데도 참 변하기 힘들다. "바쁘다 바빠!" 몸에 밴 부지런함이 오늘날의 성장을 만들었는지도 모르지만, 결국엔 여유를 가지고 편안한 삶을 살기 위한 과정이었다는 것을 늙기 전에 미리 조금씩 알아간다면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만끽할 것도 같은데... 플리트비체의 가꾸지 않은 자연은 물속에 쌓여있는 낙엽 퇴적물까지도 깨끗하게 만드나 보다. 물속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는 오리발이 작은 음파를 일으켜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물의 켜"가, "물의 속살"이 살랑거린다.


어디든지 물이 있어야 아름다운 법이다. 이번 여행에서도 바다와 호수가 있었기에 더 아름다운 풍광을 체험할 수 있었다. 겨울 아닌 다른 계절엔 얼마나 더 풍성하고 넘치는 초록으로 꽉 차있었을까 생각해본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다 비우고 어떤 곳은 벗김을 당했을지도 모르지만, 눈조차 덮혀지지 않은 알몸으로 서있어도 청량하게 아름다운 플리트비체는 다시 찾아오고야 말 봄을 겸손히 기다리며 온몸으로 준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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