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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Aug 27. 2021

자그레브, 부다페스트

스마트폰으로 쓴 동유럽 기행기 5


2016.12.15

그래 맞다. 그냥 하염없이 앉아 있고 싶게끔 만드는 곳이 두브로브니크와 플리체비트였다. 두브로브니크에서는 드러나지 않은 민초의 온갖 역사가 바다 위로 펼쳐질 것이고, 플리체비트에서는 "자연 속의 작은 자연"으로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두드러지지 않을 것이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자그레브로 향한다. 자그레브(Zagreb)는 인구가 90만 인 크로아티아 수도이자 문화 경제 예술과 사회 전반의 중심지이다. 자그레브란 도시명은 중세 이곳을 지나던 영주가 기사들의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해 우물을 팠다는 "자그라비티 (움푹 파내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자그레브는 중부 유럽과 아드리아를 남북으로 이어주며 서유럽과 발칸반도를 잇는 지리적으로 중요한 곳이다.


자그레브의 역사는 로마시대부터 있어왔지만, 아드리아해에 접한 두브로브니크나 스플리트처럼 해안 교역과 활동이 빈번하지 않아 비교적 낙후되어 있었다고 한다. 중세 크로아티아 왕국이 몰락하고 헝가리의 지배를 받으면서 유럽의 대표적인 가톨릭 국가였던 헝가리의 영향으로 발칸반도 가톨릭 중심도시로 성장하며 오늘날 자그레브의 상징인 성스테판 대성당도 건축한다. 자그레브의 역사와 함께인 대성당은 13세기 타타르족의 침입으로 완전히 파괴된 후 재건되고 1880년 대지진으로 또 파괴되어 1890년 복원된 것이라 한다. 자그레브는 오스만의 지배를 받기도 하고 가톨릭 국가면서도 그리스 정교와 적잖은 이슬람 문화와 접해있어 발칸반도의 다른 국가들과 달리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글을 쓰는 오늘 (20210827) 미군이 떠나가자마자 예상시간보다 훨씬 짧게 아프가니스탄을 정복한 탈레반의 기반은 무엇인가. 이슬람이고, 수니파와 시아파를 떠나서 결국은 종교 아닌가. 인류의 역사는 종교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발전해 왔다. 아니, 고대로 갈수록 "종교"라는 표현보다는 "삶의 원천이고 생명의 근원"이었다. 종교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침략하고 정복당하고 피의 순환으로 이어져 오다가 중세 암흑기에는 로마 가톨릭으로 안정화되는 듯했고, 가톨릭은 종교 이전에 정치로써 중세 유럽의 여러 나라들을 다스리고 합병하며 정치, 종교적으로 지배해 왔다. 결국 고대부터 종교의 근간은 정치와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동유럽도 물론이지만, 유럽여행에서 종교를 배제한 유적이나 역사의 흔적은 보기 어렵다.


세계적인 박물관에 걸려있는 그림들이나 조각들도 신에 대한 찬양과 인간의 부족함을 묘사한 흔적들이다. 고대인들의 삶에서 그들을 움직였던 원동력이, 잘 먹고 잘 사는 것 즉 "육신적인 행복"보다 "영적인 추구"가 더 컸기 때문이었을까? 그렇다고 고대인들이 현대인들보다 더 철학적인 삶을 산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중세의 역사 특히 민중들에게 너무 열악하고 거칠었던 역사 속에선, 삶을 잇기 위해 신앙에 의지 할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신심으로 수백 년이 걸리더라도 대를 이어 보수하고 지어 올린 성당들, 다른 종교에 의해 파괴되고 다시 탈환하여 재건한 교회들, 단순한 건축물이었으면 차라리 부수고 새로 지었을 것이다. 어느 지역에서든 대성당은 건축물 이전에 그들의 신앙과 삶을 잇게 하고 디딤돌로 밝혀준 '등대' 같은 존재였다. 오늘날에도 세계 유수의 도시들에서 예술적인 건축물들이 지어지고 있다. 새로 지어진 위대한 건물들이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천년도 넘는 이 건축물처럼, 사람이나 자연에 의해서 파괴되고 무너진다고 한들 보수해가며 몇백 년을 이어갈 수 있을까는 의구심이 든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이 건축물들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트렌드나 예술이 아닌 인간을 지탱하고 있는 신을 향한 믿음의 더위에 지어진 건물, 역사이기에.


돌의 문을 통과해 구시가지 쪽으로 들어왔다. 자그레브에서 가장 오래된 그라데츠 구역에 있는 13세기에 지어진 아름다운 성 마르코 성당도 수십 년에 걸쳐 재건된 문화재라 한다. 오늘 쪽에는 자그레브 시 문장, 왼쪽에는 크로아티아 문장이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유럽의 여느 오래된 성당과는 다른 독특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성당 내부는 들어가지 않고 주변에서 사진 찍고 올드시티를 구경한 후 잠깐의 자유시간을 가지게 해 준다.


성스테판 대성당(위키백과)과 성 마르코 교회

여행객 안내센터

석양의 자그레브 시

반 옐라치치 광장



2016.12.16

8시 날이 흐리다. 부다페스트엔 눈이 온단다. 기사님이 혹 눈이나 비 오면 자기 우산 빌려준다고 해, 배낭에 넣고 다니던 우산을 큰 가방으로 옮겼다. 부다페스트로 향하는 오늘, 이번 여행 중에 제일 흐린 날이다. 가이드 선생이 열심히 발칸반도의 역사, 사라예보의 총성이 울린 날부터 얘기하고 있는데 아침임에도 대부분 눈감고 자고 있다. 바쁜 일정 소화하느라 피곤할 것이다. 여행 오면 잠도 아까운 나는 열심히 설명을 듣고 메모한다. 조금 있다 가이드 선생이 다들 피곤하신 것 같으니 쉬시라면서 얘기를 끝낸다. 나는 아쉽지만 고객만족의 시대 아닌가...


차 안에서 소설가 은희경 씨가 내레이션(narration)한 EBS 여행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예쁘게 조근조근 말하는데 무엇보다 표현이 너무 적절하고 예뻤다. "역시 훌륭한 작가구나"는 감탄을 한다. 단어 하나도 한 번의 붓터치다. 얼마나 정성을 쏟느냐에 따라 색감과 원근감이 어울려 전체의 조화를 나타내는 그림처럼, 글과 그림의 차이는 한 장에 표현하는 것과 여러 표현이 하나하나씩 나열된 여러 장이라는 것의 차이인데, 다듬어지지 않고 단순하고 비슷한 표현의 일색인 내가 어떻게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는 염려도 된다. 여행은 홀로 하는 시간이라 이런 생각도 편하게 든다.


헝가리 입국심사를 비교적 빨리 마치고 가던 중, 호사다마라 했던가 버스가 고장이 났는지 멈춰 선다. 큰 고장이면 어쩌냐... 이 버스는 우리가 올 때부터 떠날 때까지 함께 할 이동 친구인데 기사분이 이리저리 보다 AS센터에 전화를 건다. 걱정하는 빛이 역력하다. 대부분 유럽에서는 AS(After Service)라는 말을 겁낸다. 가전제품이나 차 고장이나, 너무 늦게 와 수리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처럼 AS에 철저하고 빠른 나라는 아마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늘 누리고 살다 보니 고마운 줄을 모르는 작은 일들이 참 많다. 차 고장이 크지 않길, 건너편 좌석에 앉아있던 아이와 함께 기도하자고 했다. 그런데 정말 5분 정도 지나서 다시 시동소리가 났다. "봐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이루어지잖니... 살면서도 힘들 때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최선을 다하면 이루어진단다" 아이는 작은 경험을 잊지 못할 큰 기쁨으로 받아들인다. 다시 출발하면서 영화 "아마데우스"를 틀어준다. 살리에르처럼 이인자의 자질조차 없는 사람이지만 들을 수 있는 귀와 감동할 수 있는 마음이 주어졌음에 감사한다.


드디어 부다페스트(Budapest)에 들어온다. 회색빛 하늘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도시, 오후 두 시라 식당으로 가서 식사를 한 후, 사자 두상이  장엄한 세체니 다리를 건너 부다 지역으로 향한다. 겔레르트 언덕에서 바라보는 부다페스트의 정경이 흐리게 가려져 보인다. "동유럽의 파리"라고 불릴 만큼 아름답고 파란 하늘의 "부다페스트"는 아니었으나 희뿌연 겨울 안갯속의 부다페스트도 고즈넉한 품위를 뽐내는 듯하다. 부다페스트는 유럽에서도 사진이 가장 잘 찍히는 곳이라고 한다던데, 겨울인 데다 안개에 풍광이 많이 흐려져 있고 사진을 목적으로 제대로 찍지도 못해서 내세울만한 사진이 별로 없다.


부다페스트는 헝가리의 수도로 "다뉴브강의 진주"라고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도시다. 다뉴브강 서편의 "부다"와 동편의 "페스트" 지역이 합쳐져 부다페스트로 되었으며 헝가리의 경제, 문화, 예술의 중심지다. 마치 서울이 강북, 강남지역으로 크게 나눠진 것처럼 나눠져 있다. 부다는 고급 거주지역 많은 오래된 지역이고 페스트는 상업지역으로 신시가지라 할 수 있다. 사실 짧은 기간에 여러 나라를 다니니 그 나라에 대해 보고서 제대로 알 수 있는 사실은 너무 적다. 기본적인 상식에다 와보니, 공부하게 되고  앞으로의 여행을 위해서도 알아보게 되는 것이다. 우선은 훑어보고 다니는 것이라고나 할까.


유럽이, 이어진 땅이라 그런지 몰라도 어느 나라던 로마 역사와 분리하기는 어렵다. 로마가 세계를 지배했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시대의 세계는 유럽이었고, 정복과 속주든 속국이든 간에 로마의 발길이 닿으면서 문명과 역사가 혼재되었기 때문이다. 고대 전쟁은 파괴만 가져온 것은 아니었다. 정체된 세계에서 다른 문명이나 종족이 섞이게 되며 새로운 문명을 만들고 성장시키기도 했다. 물론 자국의 영혼들로 구축해 나가긴 했어도 같이 이어진 부분이 많았다. 헝가리는 광대한 헝가리 평원에서 판노니아족이 거주했는데, 기원전 1세기경 로마에 정복당해 일리리쿰 속주에 편입된 후 판노니아로 분리되었다. 중세에는 오스만 터키족의 지배를 받다가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조의 지배를 받는다. 계속 독립을 추구하다가 2차 대전 후 공산당이 되었다가 1989년도에 헝가리공화국이 된다.


부다페스트에는 중세 건물도 많이 있고 세계 1,2차 대전의 흔적도 여러 곳에 잔재해있다. 인간의 파괴성을 보여주는 쓰린 흔적을 부다 지역의 대통령궁 옆에서도 볼 수 있다. 복원 중이라고는 하지만, 수십 년도 훌쩍 넘은 세월이, 오래된 유적물의 흔적 인양, 부다페스트를 대표하는 관광지에도 공존할 정도로 "옛것과 지금 것" 이 함께 하는 시간을 볼 수 있었다. 새것을 좋아하고 지을 줄만 아는 우리에게 적잖은 교훈을 준다. 부다 언덕에서 19세기 헝가리 전쟁 때 어부들로 이루어진 민간 군들이 요새를 방어했다는 어부의 요새와 겔레르트 언덕을 걸으며 잠시나마 헝가리안이 되어본다.


부다페스트 대통령궁의 국기 게양식 / 세체니 다리를 건너며

시민들의 항쟁이 돋보였던 어부의 요새

겔레르트 언덕에서 바라본 페스트 광경

어느 식당에서 헝가리 고추를 말리고 있다


다뉴브강(Danube, 도나우강 Donau) 유람선을 탄다. 세계 3대 야경 중의 하나라는 부다페스트의 야경은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아름답다.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이 없어 참 좋다. 백열등이다. 유럽은 백열등이다. 돌아가면 백열등을 좀 더 사랑해야겠다. 너무 환하게 살지 않아도 좋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부다페스트 국회의사당은 유람선에서 지나치는 모습만으로는 황금으로 지은 성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검은 밤하늘에 은은한 금빛 광채를 뽐낸다. 강가의 야경은 잠시라도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게 만든다.


다녀온 후에 쓰는 여행기라 여행 후에 생긴 일들도 기억이 된다. 무엇보다 2019년 5월의 부다페스트 유람선 사고가 생각난다. 뉴스를 접하면서도 너무 마음 아팠지만, 동유럽 여행기를 쓰다 보니 다시 생각이 난다. 가족들과 함께 희망과 즐거움을 가지고 떠난 여행이 마지막이 될 줄을 누군들 예측이나 했을까. 누구에게 보낼 수도 없는 위로와 안타까움을 가져본다. 인간이란 "가능성이 무궁한 위대한 존재"(인간의 입장에선)라도, 앞에 있는 것에 대해선, 한치도 모르기에 누구도 삶에 대해 여유를 부리면 안 됨에도 불구하고 살다 보면 많은 것들이 기다려줄 것처럼 생각된다. 늘 새기려 애쓰는 "카르페 디엠" ("현재를 잡아라, 가급적 내일이란 말은 최소한만 믿어라 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 / 호라티우스의 라틴어 시 , 위키백과)이 더 마음에 와닿는다. 여행은 정리하고 비우기 위해 떠나는 것임에도, 어쩌면 돌아와 욕심을 재정비하는 계기로 되는 건 아닌지 쌓여가는 잔재물들이 말하는 것 같다.


밤바람을 맞으며 유유히 흐르는 다뉴브강은, 휘황찬란한 불빛과 셀 수도 없이 많은 크고 작은 유람선들이 교묘하게 서로를 비켜가면서 짧은 이 밤의 야경을 한 점이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여행객들의 셔터 소리와 함께 2900여 km의 장정을 오늘 밤도 묵묵히 이어가고 있다.


밤 유람선에서 바라본 국회의사당


헝가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 부다페스트 (Hungarian Symphony Orchestra Budapest)가 연주한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5번을 들으며 부다페스트에서의 짧은 일정을 마무리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Nzo3atXtm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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