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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Sep 05. 2021

프라하

스마트폰으로 쓴 동유럽 기행기 6, 여행후기



2016.12.16

흐린 아침, 부다페스트를 떠나고 있다. 오늘은 슬로베니아의 브라티슬라바를 거쳐서 프라하로 간다. 어느 곳보다 마음으로 오고 싶었던 곳, "밀란 쿤데라"의 프라하로 간다. 깨끗하여 깃털보다 가벼운 영혼을 원하지만, 이것저것 채워진 마음은 그야말로 가벼운 존재에 불과하다. 이런 망중한을 언제 또 즐길 수 있을까. 멍하니 차창밖을 쳐다보고 가는 것도 좋다.  낯선이 와 커피를 한잔 같이 하다면 더 좋을 것 같다. 동유럽 와서 처음으로 어제저녁 부다페스트 성당 앞에서 스타벅스를 봤는데 마시지는 못했다. 자유경제의 상징 이기라도 한 듯 스타벅스는 어디서나 활기차 있다. 이래서 브랜드를 키우려고 애를 쓴다. 특히 각인의 문화를 쉽게 못 벗어던지기에 더더욱.


체코슬로바키아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부터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합병(체코슬로바키아)되어 독립하고, 제2차 세계대전 후 국내 총선으로 공산당이 승리하여 소련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되었다. 슬로바키아는, 체코슬로바키아의 틀에서 독립을 1969년부터 주장하다 1992년 주민투표로 결정, 1993년에 국제법에 의해 즉각적으로 실행되었다. 이 해체는 때때로 "벨벳 이혼"이라고도 부르며, "벨벳혁명"으로 인해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이 붕괴한 이후 일어났기 때문에 이렇게 부르기도 한다(위키백과). 슬로바키아는 체코보다 경제상황이 여의치 않음이 가는 내내 보인다.


버스는 브라티슬로바의 국립극장 옆 관광지에 잠시 내려주었다. 여기서도 크리스 마켓이 열렸다. 서유럽만큼 화려하진 않아도 동유럽에서도 크리스마트는 일 년 중 가장 큰 명절이다. 우리네 추석, 구정 대목처럼 여기서도 마켓이 열려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  여행객이 많다 보니, 토속적인 장식품이나 기념될 만한 것들도 많이 파는데, 자세히 봐야 한다. 오르골을 하나 사고 싶어서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는 곳에선 자세히 보고 다녔는데, 나무로 만든 오르골이 눈에 띄어 밑면을 보니 made in china 라벨이 붙어있다. 세계가 하나 되다 보니, 어디서 만든 물건이든 유통되지 않는 곳이 드물긴 하다만 중국제는 아주 작은 분야에까지 온통 점령하고 있다.


체코의 첫 번째 휴게소에서 화장실 자동 출입구 고장으로 제어대 밑으로 들어갔다. 그것도 천 원씩 주고. 체코 사람들은 너무도 당연하게 출입하지만, 우리로썬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세상 어디에도 우리나라처럼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에게 다정하고 후한 공용시설 제공도 드물 것이다. 내손에 돈만 있으면 우리나라가 세상에서 제일 살기 좋은 나라라고 돈 있는 사람들은 말한다. 돈 없는 내가 생각해도 그렇다.


프라하에 도착한 시간이 저녁이라, 카를교와 시청사 앞 광장을 가기로 한다. 블타바 강(몰다우강)에 지어진 카를교는 낮에 봐야 더 아름답다고 하는데 일정상 저녁에 볼 수밖에 없었다. 카를교는 카를 4세가 1402년에 완공한 석조 다리로 1841년까지 프라하 구시가지와 프라하성을 잇는 유일한 다리였다고 한다. 3개의 교탑이 카를교를 지키고 있는데, 이 중 2개는 말라스트리나에 있고, 1개는 스타레메스토(구시가지)에 있다. 사람들은 카를교 위의 강아지(배우자가 자신에게 충성하길 바라는 소원), 요안나 왕비(프라하로 돌아오겠다는 소원), 네포무츠키 신부 등을 만지며 소원을 빈다.(위키백과) 다리 상판은 17세기 바로크 양식으로 조각된 30개의 아름다운 조각상으로  장식되어있다. 현재 조각품들은 모조품이라고 한다. 밤이라도 다리 주변엔 각국에서 온 여행객으로 북적인다. 우리 일행도 다리를 걸어 다니면서 600년도 넘은 세월이 간직한 역사의 흔적을 잠시나마 느껴본다.


시계탑 광장에선 크리스마스 마켓 야시장이 열리고 있다. 내이면 떠나니 일행들도 쇼핑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체코의 국민간식이라는 "뜨레들로(돌돌이)"를 직접 만들어 파는 곳도 있다. 돌아가는 긴 쇠막대기에 밀가루 반죽을 묻혀 구운 다음, 시나몬이나 초콜릿 등을 묻친 설탕가루를 뿌려준다. 달달한 도넛 같은 맛이다. 시청사 앞 광장의 시계탑은 내일 제대로 본다고 한다. 작아 보여도 이런 역사유적 하나하나가 오늘날 관광대국으로 후손들을  먹여 살리는 것 같다. 상들을 잘 만난 덕일까, 버리지 않고 지켜가는 후손들의 너그러움 때문일까.


프라하성 비투스 대성당 / 프라하 성

프라하 성내 짚으로 장식한 크리스마스 풍경과 시청 앞 시계탑

성 비투스 대성당과 대통령궁 / 대통령궁 정문 조각상



2016.12.17

리스트의 "광시곡"이 어울렸던 헝가리처럼, 아침 체코 역시 흐리고 우울하다. 그래도 가라앉은 기분이 싫진 않다. 출국하는 날이라 일정이 바쁘다. 아침에 블타바 강의 서쪽 언덕에 있는 프라하성을 먼저 들르고 시간이 되면 가이드 선생이 특별 선물로 프라하에서 현지인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곳으로 간다고 한다. 일찍 움직인 탓이라 그런지 프라하성 입구에는 사람이 없었다. 겨울이라 약간 한산하기도 했지만, 관광하기 좋은 계절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아예 구경하지 못하는 때도 있다고 한다. 좀 추운 날씨긴 해도 12월에 온 것도 탁월한 선택이었네... 내심 뿌듯하다. 프라하성은 체코의 상징이기도 하고 체코 왕뿐 아니라 신성로마제국 시절 황제가 통치하기도 했으며 현재 체코 대통령의 관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고성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성이비투스 대성당, 대통령 궁 등 여러 건물로 이루어진 마을 같은 곳이다. 후문 쪽으로 들어가 대통령궁과 비투스 대성당을 보고 프라하성 정문 쪽으로 나왔다. 정문 위 오래된 듯한 거대한 싸움의 동상이 있다. 거인이 몽둥이를 들고 약자를 밟고 있는 조형물인데, 오스트리아 제국에 합병되어 살던 시절 오스트리아인에게 학대받는 체코인을 상징한 조각물이라 한다. 어찌 보면 치욕의 역사이기도 한데, 과거를 잊지 않고 후손들에게 기억하게 하되 비굴하지도 격분하지도 않지만, 공존하면서 새겨가는 역사의식이 돋보였다.


프라하성을 떠나 가이드님의 "특별 선물" "비셰흐라드"로 간다. 여행객들에게 자주 써먹는 멘트인지는 몰라도 지금 생각하니 참 좋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단체여행에서는 가기 힘들었던 곳이었다. "비셰흐라드"는 시내 중심가에서 30분 정도 걸리는 언덕에 있다. 스메타나의 교향시 "나의 조국" 1악장에 나왔을 정도로 체코 사람들에겐 특히 의미가 있는 곳인데 870년부터 1306년까지 체코 최초의 왕국인 포르셰 미셀 왕조가 있던 곳이다. 체코의 건국신화에 나오는 곳이기도 하며, 로마네스크, 고딕, 바로크 양식이 혼합된 건축양식을 띄고 있는 성 베드로 바울 대성당 등 여러 오래된 건축물이 있다. 이 터에서 아이가 태어나고 교회의 일원이 되고 성장하고 결혼해서 자녀를 낳고 무덤에 까지 가는 인생의 여정을 다 거칠 수 있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던 곳이다.


성 베드로 바울 대성당 옆에  체코 국민들이 사랑하는 많은 위인들이 잠들어있는 공원묘지가 있다. 재밌는 사실은 우리는 밀집된 아파트 군락에서 살면서 묘지는 대체로 넓게. 특히 부자들이나 권력 있는 분들의 묘지는 넓고 크다. 물론 유교사상의 영향이기도 하고 후손들의 효심(?)을 보여주는 의미도 있어서겠지만, 여긴 반대다. 사람이 사는 집은 넓게(물론 집 크기라기보다 주위 마당, 공원이지만), 묘지는 대부분 좁다. 마치 이웃들이 정답게 모여 있는 "사후 마을"인양 각양각색의 비석들이 어우러진 좁은 공간에 사이좋게 잠들어있다. 여기 공원묘지는 체코에서는 거의 국립묘지 정도 아닐까 싶은데, 위화감이 전혀 안 들게 누구라도 방문하고 꽃을 두고 더러는 포도주도 두면서 자신들이 아끼고 존경했던 위인들을 추모한다. 좋아하는 드볼작의 묘지를 방문하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아름다운 음악을 오늘날까지 듣게 해 준 그에게 고마운 마음을 올린다. 체코의 국민음악가 스메타나의 묘도 볼 수 있었다.


시청사 시계탑을 보러 가기 전에 "프라하의 봄"으로 유명한 바츌라프 광장에 내려준다. "바츨라프 광장"은 체코의 역사적인 많은 사건들이 발생한 의미 있는 장소이며 지금도 동상으로 서 있는 보헤미아의 바츨라프 공작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19세기 들어 자유를 위한 여러 투쟁과 무혈혁명으로 불리는 벨벳혁명 등 오늘날 체코공화국을 있게 한 상징처럼 여겨져 관광객뿐만이 아니라 많은 체코인들이 사랑하는 장소기도 하다.


프라하 시청사 앞으로 오니 12시 53분, 시계탑의 12시 정시 알림을 보려고 기다리고 있다. 1410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아직까지 정확히 움직이는 시계이기에 유명하단다. "이 시계가 체코를 먹여 살리는구나"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다. 시계탑 앞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한다는데, 자리만 잡아놓고 다들 밖으로 나온다. 잘 찍히고 잘 보이는 장소로 가려고 난리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아 움직이기도 힘들다. 4분 남았다. 약 40 초에 불과한 짧은 인생 사이클을 보기 위해서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 드디어 "땡" 하고 열두 사도가 움직이는 순간, 시계탑을 제 집 삼아 앉아 있던 비둘기 한 마리가 우리 머리 위로 날아간다. 시공을 초월하고 사는 비둘기보다 때론 가여운 게 인생이다.


 11세기에 지어진 로툰다 (체코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와 비셰흐라드 입구

찾는 사람들이 늘 있는 드볼작의 묘와 스메타나의 묘

비셰흐라드 언덕에서 찍은 프라하 정경과 성 베드로 바울 성당의 첨탑이 보이는 공원


공항으로 가는 버스에서 차창밖의 프라하, 아픔도 음악으로 흘려보냈던 몰다우(블타바) 강을 마음에 담는다. 프라하 가이드의 말대로 이들은 얼룩진 역사도 역사 그대로 보관한다. 다시는 이런 치욕을 당하지 않으리라는 결의의 표현으로 남겨둔 것이 오늘날 후손들에게 커다란 유산이 된 것도 많다. 유럽의 그런 점이 좋다. 우리나라를 이만큼 성장시킨 원동력이 "빨리빨리"와 "더 새롭게"의 "부지런함"이기도 하지만, 가끔은 오래된 것들과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과도 함께하며 역사를 보존하고, 다음 세대의 평가를 우리가 하진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현재는 미래를 빌려 사는 것"이기에... 이제 도착시간까지 30여분 남은 오전 10시 반 체코 시간으로는 새벽 2시 반, 비행기는 하강하고 있고 아파트 군락이 보이기 시작한다.



동유럽 기행기를 마치며 2021.09.05


크로아티아 외엔 거의 흐렸던 날의 동유럽 여행에서 "동유럽이 서유럽과 다른 점이 뭐냐"라고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당한 자의 아픔을 딛고 선 나라가 아닐까요"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아직은 힘들게 서가고 있지만, 문화와 역사를 아끼며 힘들었던 세월을 잊지 않고 현재 위에 함께 세워가려고 애쓰는 현실을 본다고 하고 싶었다.


온전한 하루 일정도 배정되지 않은 부다페스트 여행은 화려하고 강렬했던 아름다운 야경이 아직도 선하다. 저녁에 부다페스트 구시가지 걸으며 강아지 보니를 데리고 산책하던 보니 엄마를 만났었고, 길에서 강아지와 함께 버스를 기다리던 할아버지가 인상적이었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함께 살고 있는 강아지들과 즐기려 나온 사람들도 많았고, 개를 데리고 시내 중심가의 트램과 버스를 아무 제약 없이  이용할 수 있는 것도 보기 좋았다. 사람도 강아지도 가족이고, 자연과 역사도 가족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어디를 다녀봐도 한강처럼 멋지고 큰 강은 드물다. 부다페스트와 프라하를 관통하는 아름다운 도나우강과 블타바 강의 폭도 한강보다 크진 않았던 것 같다. 현세대만 생각하지 말고 미래의 후손들을 생각한다면 더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지금도 아름답지만 한강의 자태를 온전히 살리기 위한 여러 노력은 꾸준히 이어질 거라는 개인적인 소망도 가져본다. 특히 강변을 역사적인 건물, 문화 건축물, 예술 조형물과 더불어 아름다운 조경으로 꾸민 곳이 대부분인 유럽의 여러 나라들을 보면 부럽다. 물려받은 역사와 대대로 이어온 자연 유산을 후세들도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지켜내는 것이 그들의 본분이라 믿는 사람들이다.


여행은 자신을 더 돌아보게 한다. 자신이 원하고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게 한다. 그리고 걷어내야 하는 삶을 알려준다. 획일화된 문화, 하나같이 똑같아야 하고, 인정받아야 사는 것 같은 기분, 이젠 충분히 먹고 살 정도임에도 끓임 없는 경쟁과 충돌 속에서 심지어 매일 자신과도 경쟁해야 하는 피곤한 삶에 작은 여유로 채운 "여정"이 필요한 이유다. 함께 다녔던 분들이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5년밖에 안된 시간, 열흘도 못 되는 기간 동안이었지만, 오래된 인연처럼 그립고 궁금하다. 대학입시에 합격해 기념으로 여행 왔던 두 아이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겠지...  엄마 아빠와 함께 왔던 중학생 y도 이젠 대학생이 되었겠다. 무엇보다 s가이드님이 어려운 이 시기에 잘 극복하고 지냈으면 좋겠다.


누군가 유럽 쪽으로 단기간 여행하고 싶다면 개인적으로는 패키지여행을 권해주고 싶다. 특히 처음 여행하는 사람에겐 여러 면에서 더 좋은 점이 많다. 결코 이 비용으로 이렇게 여행할 수 없다. 물론 패키지여행의 애환도 있고 낯선 분들과 일정을 공유해야 한다는 불편한 점은 있어도 그조차 여행의 묘미기도 하고, 새로운 만남의 일환 아닐까. 그리고 조금  더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웬만한 옵션은 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이번 여행을 통해서 알게 된 최소한의 "너그러움의 표시"라고나 할까(물론 나는 여행사와 개인적으로 아무 관계도, 1%도 없다).


체코는 드볼작의 고향이다. 그의 많은 명곡 중에 특히 로스트로포비치가 연주한 마지막 첼로 협주곡 b단조 op.104를 좋아한다. 빼앗긴 조국을 그리워하는 드볼작의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놓은, 삶에 서글픈 현대인의 마음을 위로하는 선율이다. 클래식 음악에 대한 전문적인 평을 할 수준은 못돼, 제대로 표현하진 못해도 마음을 두드렸다가 가라앉혔다가 위로해주는 이 곡은 힘든 시절 내게 많은 용기와 위안을 주었다. 전악장이 모두 심금을 울리는 곡이긴 하지만, 특히 2악장의 평화로움은 코로나로 힘든 일상에 작은 위로를 준다. 요즘 유튜브로도 들을 수 있는 고티에 카퓌송(Gautier Capucon)의 연주도 좋다. 오늘 그가 연주한 첼로 협주곡 2악장 (Adagio ma non troppo 빠르게, 그러나 너무 빠르지 않게, 또한 결연하게)을 올리며 동유럽 기행기를 마무리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UkfjeXZ7teA




p.s.

이 글은 2016.12.09 ~ 2016.12.17까지 동유럽 여행한 것을 갤럭시노트1으로 기록한 개인 기행기입니다.

여기까지 읽으신 분은 카퓌송의 연주도 꼭 들어 보시길 권합니다. 지친 일상에 따뜻한 위로와 용기를 얻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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