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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Oct 06. 2021

스마트폰으로 쓴 일본 기행기 3

도쿄, 시즈오카, 여행후기


2014.10.15

사흘이 지나니, 힘들 법도 하건만 아버지 컨디션은 괜찮으신 듯 해 다행이다. 오늘은 황궁을 본 후 도청사 전망대를 거쳐 점심 후 하코네의 활화산을 보고 시즈오카로 넘어가는 일정이다. 황거는 일본 천황의 실질적 거주지로 관광지로써 개방되어 있다. 현재의 황궁은 에도시대의 궁터에 만들어졌다. 성 주위가 분수공원으로 조성되예전엔 해자를 통해 궁에 들어갈 수 있었으니, 외부 공격으로부터 안전하게 지어진 것이다. 버드나무가 유난히 늘어진 정원은 아름답게 조성되어 있고  특히 나가사끼의 안경다리가 생각나는 메가네바시(안경다리)가 인상적이었다. 황궁 건너에는 고층건물이 즐비하다. 일본의 과거와 현대를 한곳에서 볼 수 있었다. 황거 바깥쪽의 정원(고쿄가이엔)은 넓은 잔디밭에 곰솔나무가 잘 조경되어 있어 시민들의 휴식처로 자리 잡고 있다.


일본 천황의 삶에 대해 가이드님이 여러 가지로 설명하신다. 여러 번 일본에 왔어도 들어본 적 없던 터라  재밌게 들었다. 천황은 보통 5시에 기상, 오후 10시에 취침하며 주요 업무로는 하루에 보통 각국에 15통의 편지를 쓴다고 한다. 황제가 사는 황거 안에 경작지가 있어 직접 농사를 짓고 모내기를 하고 음식재료로 직접 재배해 먹는다고 한다. 과일나무를 키우고 소를 키우며 죽을 쑤서 사료로 먹인다고 하는데, 모든 생활의 과정에 직접 참여한다고 한다. 아마도 상징적인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글의 내용은 가이드님이 얘기한 것을 메모한 것이라 검증해 보진 않았다.


현재 천황은 아키히토 천황은 125대 천황인데 은퇴하고 지금은(2021.10) 그의 아들인 나루히토 천황이다. 일본 황실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황실 중의 하나라고 한다. 일본 천황은 일본 황실을 대표하며 일본의 상징적인 국가원수다. 세계 2차 대전 후 천황은 정치에 관여하지 않게 되며 종전 후 천황 재산은 하나도 없다고 한다. 영국의 왕실도 존재 유무에 대한 말이 많고 유럽의 여러 국가 역시 상징적인 의미로써의 왕실을 인정하고  있지만, 일본은 여러모로 인정해 주는 분위기인 듯하다. 아직까지도 천황의 존재는 일본에선 거의 신적인 존재라 성(姓)도 없고 차번호도 없이 하얀 판만 달려있다고 한다.


메이지 천황 때부터 프랑스식으로 아침에 빵을 먹기 시작했고, 평생 복어요리 못 먹고 외식은 하지 않는다고 한다. 개인적인 자유는 없다고 한다.  "나도 라면 먹고 싶다~" "아니되옵니다" 황족은 직업선택을 할 수 없다,

남자 황족에게는 3,000만 엔 여자는 1,525만 엔을 일 년에 사용할 수 있으며 황실 밖의 가족들은 일 년에 2번 만날 수 있다고 한다. 공주가 서민과 결혼하면 그날로 서민이 된다고 하는데, 마침 요즈음 마코 공주의 결혼이 일본에선 적잖은 이슈가 되고 있는 듯하다. 현재 천황 비인 마사코 황비는 왕세자와 결혼하고 12년을 우울증을 앓았다고 한다. 원래부터 개방적이고 활달했던 마사코 황비가 폐쇄적인 황궁 생활에 적응하기 힘들어 고통을 겪은 것이다. 황실로 들어가는 여자 자신을 살리는 삶을 살기에 불행한 것은 동서양을 통해 같은 가 보다. 가이드님은 결론적으로 "여러분이 천황보다 훨씬 행복합니다"라는 말을 하며 황실 얘기를 마무리한다.


황거 앞 정원에 노숙자들이 많다. 이 노숙자들은 정원이 딸린 집(?)을 가진 노숙자다. 일본에도 노숙자들이 참 많다. 가이드님의 말로는 가난한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잘 나가는 사람들도 어느 날 갑자기 사는 게 재미없다고 생각되어 노숙자가 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월급은 꼬박 와이프 통장으로 입금되고 자식들은 출퇴근 때도 인사 한번 안 하고, 뼈 빠지게 일해도 사는 보람이나 재미도 느끼지 못하고  삶에 의미 없고 무상해질 때, 집 나와 노숙자가 된다고 한다. 자유로운 삶이 무엇인진 몰라도 자유를 찾아,  "내,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그냥 되는대로 살아가는 삶을 택한다는 것이다.


도쿄도청사 건물 지하 1층에도 노숙자가 많다. 동경시내에 20만 명 정도라고 한다. 우산으로 바치고 누워서.... 특이한 점은 그렇게 드러누워서도 책을 읽는다. 여러 해 전 서울역 지하도로에서 노숙자들이 모여 사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혼자서도 소주 마시고 대부분 여럿이 모여서 떠들면서 술 마셨던 것 같았다. 이곳은 둘도 모여있지 않다. 다 따로따로 있다. 그리고 대부분 드러누워 책을 보고 있다. 내가 오버하는지는 몰라도 이들은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도 나폴리 해변가에서 선텐 하면서 책 보는 기분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무리를 따라서 하나라도 더 소유하고 보자는 사람들을 오히려 안쓰럽게 볼지도 모르겠다만, 한편으론 그런 생각조차 담담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도쿄에서의 마지막 일정으로 한국 면세점에 잠깐 들른다.  아버지께서는  탁구 친구분들에게 주신다고 손거울 다섯 개를 고르셨다. 이제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는 하코네를 지나 야이즈로 간다고 한다. 가이드님은 차 안에서 계속 얘기를 한다. 일본에서는 모든 만물을 신으로 받드는 토테미즘(Totemism)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신중의 제일은 "당신"이라고 했다. 참 의미가 되는 말이다. 일본 스님은 딱히 부처를 섬기는 것도 아니다. 스님은 자격시험을 거쳐야 하고 결혼도 하고 재산도 축적할 수 있다고 한다. 세금을 내지 않아도 돼서 스님 부자가 많다고 하며 세습도 가능하다고 해 신랑감으로도 인기가 높이고 한다.


하코네 산 중턱에 있는 하코네 삼나무길에는 팔을 벌려도 안기 힘든 거대한 삼나무가 많았다. 삼나무는 30년에 1cm 자라고 편백나무는 60년에 1cm 자란다고 한다. 이곳에는 400여 년의 수령을 가진 삼나무가 400그루 정도가 있다고 한다. 하코네 삼나무 숲길에서 오랜만에 좋은 공기를 마시면서 잠시나마 산책을 즐겼다. 비 오는 신사 풍광이 고즈넉하니 깨끗하고 아름답다. 맑은 날엔 얻기 어려운 청량감으로 몸과 마음이 힐링됨을 느끼며 잠시 걸었다.


하코네 대용곡(오와쿠다니) 활화산 휴게소에 들른다. 비가 뿌려서 화산 쪽까지 올라가기 길이 험했으나, 아버지께선 지치지도 않고 잘 올라가셨고, 화산 온천수로 삶은 검은 계란을 사서 먹었다. 달걀 단백질과 황화수소가 결합하여 까맣게 변한 달걀이다. 한 개 먹으면 수명이 7년 연장, 두 개는 14년이니 달걀 파는 상술도 기분 나쁘진 않다. 아버지 많이 드시라고 한 봉지를 더 산다. 여기서도 후지산이 보인다는데, 오늘 비 오는 날이라 보이지도 않았지만, 후지산은 남성산이라 미인이 나타나면 안 보인다고 농담들을 한다. 버스로 가는 하코네 산길이 아름답다. 하코네에선 비가 쏟아졌는데 내려가는 길(나고야 쪽)엔 비가 그쳤다. 어둠이 깔려오는 바닷길을 거슬러온다. 오늘 저녁은 시즈오카의 야이즈에서 묶는다고 한다. 야이즈는 인구 13만 명의 조용하고 작은 어업도시다.

 

하코네의 고즈넉한 산마을과 대용곡 활화산


2014.10.16

이번 여행의 끝날, 해외만 나오면 몸도 가뿐하고 일찍 일어나게 되니 천상 여행 체질인가 보다. 씻고 잠시 호텔 주위를 산책한다. 동네가 조용하고 깨끗하게 가꾸어져 있다. 사람은 추구하는 바에 따라 보는 관점이 달라진다는 말. 겪어보니 참 맞는 말이다. 요샌 정원 가꾸는 것이 눈에 많이 들어온다. 여기 보니 시골집 마당은 운동장이다. 일본 사람들은 아무리 조그만 땅이라도 정원을 가꾼다는 말이 맞다. 집이 좁아도, 마당 면적이 아무리 작아도 만드는 사람에 따라 멋진 조형 공간이 될 수 있는 거다. 나무를 많이 심어야겠다. 해가 갈수록 푸른빛을 더하고 마디마디 굵어지는 나무를 많이 심으련다. 함께 나이 들어갈 수 있는 소나무 향나무 참 좋다.


호텔 프런트에서 에스프레소 한잔을 뽑아 올라온다. 아버지께 전화드리니 이제 일어나신 목소리다. 나이 드신 것은 맞다. 나이 드셔도 열정 잊지 않고 활달하게 사시는 것도 좋지만, 자신을 잘 조절할 수 있는 것을 배워가는 것도 중요할 것 같다. 사람이 모든 것을 다 맞춰 가질 수는 없다. 근면 성실하게 평생 열심히 일하시며, 무엇이든 배우기를 게을리 않고 살아오신 모습은 자식들에게 물려주시는 큰 재산이다. 내게도 쉼 없는 그런 피가 흐르고 있다. 정진과 욕심의 피다. 아버지를 모시고 여행하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감사하고 행복한 여행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아침이다.

 

호텔 주변 마을 아침 풍경과 산책 나온 강아지가 쳐다보며 웃는다

오차노사토 차 박물관에서 사진 찍으시는 아버지


시즈오카현은 태평양의 스루가 만을 따라 늘어져 있는 지방으로 서쪽은 일본 알프스 지역, 동쪽은 후지산 북쪽과 이어져 있다. 남쪽으로는 이즈 반도까지 연결된다. 시즈오카는 흙 자체가 화산재여서 물이 정화가 잘되어 깨끗하다고 한다. 시즈오카를 대표하는 하천인 대정천(오이가와)은 시즈오카 현민들의 식수와 용수공급원으로 아주 중요하다. 멜론을 많이 재배하는데 맛이 일본에서 제일 좋다고 한다. 일본 녹차의 50%를 생산하는 대표적인 녹차 산지로 알려져 있으며, 후지산을 바라볼 수 있는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다. 시즈오카 공항에서는 운이 좋으면 이륙하는 비행기의 뒷배경으로 후지산을 볼 수도 있다.


오늘 날씨는 이상적인 가을 날씨다. 들에는 곡식이 익어가고 하늘은 푸르고 청정하다. 야이즈 역을 지나 어시장 구경을 간다. 아침 야이즈 역에는 자전거를 세워두고 가차 타는 학생들과 직장인들이 많다. 초중고 학생들은 세일러복을 입고 등에는 가방을 메고 있다. 몇십 년 동안 변하지 않는 교복과 가방,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세대가 공유하는 것이 한 가지라도 있으니, 소통되는 면도 있지 않을까 싶다. 단절된 시대의 그리운 면모다. 야이즈는 남아있는 항구 중 큰 편에 속한다고 한다.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생선인 참치가 여기서도 많이 잡히는데 참치를 두 달 말리면 가다랑어 포가 된다고 한다. 야이즈 어시장엔 활어도 가공 생선도 많이 팔고 있다. 아침 마수는 깎아준다며 사라고 상인들이 부추긴다. 여행의 마지막 일정으로 오차노사토(귀족 정원 ) 차(茶) 박물관에 들러 차 한잔 시음한 후 차정원을 감상하고 공항으로 이동한다.


시즈오카 공항은 해발 138m에 위치해 있다. 날이 좋으면 후지산을 보며, 날아오를 수 있어 나름 인기가 있는 공항이라 한다. 일본을 상징하는 후지산은 해발 3776m로 오래전부터 산악 신앙의 대상이자 많은 예술가들이 사랑한 신비로운 산으로 알려져 있다. "올라가는 산이 아니라 바라보는 산"이라는데 일본에서는 눈 덮인 후지산을 그린 그림이나 사진을 많이 볼 수 있다. 시즈오카 공항에서 후지산을 볼 수 있으면 운이 좋다고 한다. 날씨 탓이었는진 몰라도 공항에서 멀리 구름 사이로 살짝 보이는 후지산을 보며 아버지와 함께 한 일본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후지산이 잘 보인다는 곳에 내려서 시즈오카 전경과 구름 위의 후지산을 찍다

시즈오카 공항과 후지산을 뒤로한 시즈오카 전경




아버지를 모시고 다녀온 일본 기행기를 마치며 (2021.10.06)


어릴 때는 고집이나 강한 주장을 펼쳐도 생동감과 열정으로 보였을지 몰라도 나이 마흔이 넘어까지 자아가 너무 강하면 고지식하고 너그럽지 못하게 살아온 삶이 엿보이게 되니, 마음 실타래도 여유있게 한 올 한 올 아름답게 짜야한다는 것을 여행을 통해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팔십이 넘은 아버지의 궁금증과 무엇이든 배우고자 하는 열심은 나도 따라가기 힘들 정도다. 이러한 열정이야말로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물려주시는 가장 큰 유산이 아닐까 싶다.  

 

부모에게 효도를 충분히 한다고 여기는 자식은 별로 없을 것이다. 마음으로는 항상 잘해드리고 싶지만, 사는 것이 힘든지라 생각만큼 따뜻하게 잘 해 드리지를 못한다. 다행히 좋은 기회가 있어 아버지를 모시고 다녀올 수 있어 큰 축복이었다. 3박 4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아버지께서는 별 탈 없이 즐겁게 일정을 잘 마치셨다. 함께 했던 일행분들도 아버지 나이를 아시고는 대단하시다고들 했는데, 이후로도 아버지 모시고 몇 곳을 더 다녀왔다. 내년에는 코로나가 종식되어 아버지 모시고 가족들과 함께 여행 할 수 있을 것을 기대해 본다.


아버지 지금처럼 건강하고 즐겁게 오래 사시다가 여행 가시듯 떠나시면 좋겠다. 인천공항에서 집에 모셔다 드리는 중, 자꾸 버스 택시 얘기를 하시길래 "그러시면 여기 내려드릴 테니 타고 가시라" 했더니 가만 계신다. 운전하고 지방으로 내려가야 할 자식 힘들까 봐 그러시는 거다. 자식은 부모의 마음을 넘지 못하니 부모 모시고 다니는 여행이 그래서 더 마음 아프고 애틋한 것이다.



p.s.

이 글은 2014.10.13~10.16까지 일본 시즈오카, 도쿄, 요코하마, 하코네를 아버지를 모시고 다녀온 여행기록을 갤럭시 노트 1로 기록한 여행 수필입니다.

 

푸치니의 "잔니 스키키" 중의 아름다운 아리아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 (O Mio Babbino)"를 조수미 님의 노래로 올립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9DXbnwttz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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