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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Sep 24. 2021

스마트폰으로 쓴 일본 기행기 2.
도쿄

아버지와 함께 한 도쿄여행


2014.10.14

어젯밤에 그렇게 쏟아지던 비는 그치고 하늘이 너무 깨끗하고 푸르다. 뉴스에서는 태풍 피해에 대해 연일 방송을 하고 있는데 어쨌든 동경은 비켜갔다. 모처럼 여행 오신 아버지를 위한 축복의 날씨 같다. 아침 식전에 호텔 주위를 산책하시며 사진 찍은 것을 즐기신다. 이번 여행에는 원대로 찍으시라 해야지. 이렇게 모시고 나올 기회가 얼마나 더 있을까 싶지만, 아직 건장하시니 앞으로도 기회 만들어서 모시고 나와야겠다. 호텔 TV에서 무슨 프로인진 몰라도 (아마 기모노 장인에 관한 것 같다.) 예전 흑백 필름을 보여준다. 외국인들이 배우고 입는 모습들도 나오는 프로다. 일본에서는 오래된 것들도 쓰임이 있다는 느낌이 있다. 워낙 아끼고 사는 민족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신구가 적절하게 공존할 수 있는 곳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쓸모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말하는 건지, 하루가 다르게 갈아엎고 새로운 것으로 채우는 "" 아니면 ""로 일관하는 특성과는 다른 듯하다.


가아드 님의 말대로(아니, 그전부터 듣고 보고 느낀 점들이다) 대부분의 일본 사람들은 정치에 관심 없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그저 즐기며 소박하게 그리고 무엇보다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사는 것을 먼저 배운다고 한다. 신호등 앞에서 아이의 손을 잡고 서있는 엄마가 아이에게 "네가 함부로 건너다가 사고가 나면 너를 친 기사님은 어떻게 되겠니?"를 먼저 교육시킨다는 얘기를 오래전에 들은 적이 있다. 이것이 남의 눈치 보며 사는 것으로 비화될 수도 있으나, 어쨌든 타인들의 삶에 피해는 주지 않아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저 자신의 삶을 사는데 충실한 사람들 인 것 같다. 호텔 와이파이가 잘되어 n.d 등에 접속한다. 나 역시 한국사람이고, 하루라도 인터넷 확인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중독자인가 보다. 별 내용도 없을 텐데... 아니나 다를까 특별 뉴스가 없으면 죄다 연예인 뉴스다. 연예인 밥 먹는 것까지 관심을 가지는 신세가 돼버렸다. 나 살기도 힘든 세상에 언제부터 남의 일거수일투족까지 관심사가 되어버린 건지, 아니 내 사는 것이 재미없어서 잘 사는(?) 사람들의 생활을 보며 간접 즐거움(위안?)을 얻으려는 심리 인지도 모르겠다.


오늘 도쿄에서의 일정은, 옛일 본 느낌이 아직 많이 남아있는 아사쿠사 지역을 먼저 들르고, 시간 되는 대로 시내를 둘러보고 오후에 온천을 하는 일정으로 움직이기로 했다. 도쿄는 1869년 메이지 신왕이 당시 11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교토에서 수도를 옮기면서 "도쿄"로 부르기 시작한 일본의 수도다. 개항과 신문명을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일본을 세운다는 의미에서 이전한 것으로 여겨진다. 동에 있는 "교토(수도)"라서 "도쿄"라 명명했다는데, 그전에는 "에도"라는 이름의 작은 항구였다.


가이드님이 오늘 도쿄 시내 자유여행에 앞서 우리가 머문 호텔에서 가까운 곳에 야스쿠니 신사가 있다고 알려주었다. 야스쿠니 신사는 황궁 북쪽에 있는 일본의 국립묘지 같은 곳이다. 일본에는 신사가 많이 있는데 야스쿠니 신사가 가장 크다. 애국지사들을 기억하며 뜻을 받드는 우리와 달리, 전쟁에서 싸우다 전사한 사람들을 신으로 받들고 제사도 지내는 곳이다. 메이지 천황과 도쿠가와의 묘소도 있으며 사무라이의 전쟁 때 죽은 자들도 묻은 곳이다.  세계 2차 대전에서 전사한 일본군들은 독일의 나치와 같이 전범임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위해 전사했다고 애국자로서 야스쿠니 신사에 묻혀있다. 이슈가 되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의 근본에는 일본이 전범으로써의 용서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입장에선 전사자들이 애국자이기에 현재 나라의 지도자들이 제를 올리고 참배를 하기 때문이다. 우리 호텔 오른쪽으로 나와 일직선 30분 걸으면 나오는 곳에 있다고 했지만, 아무도 구경을 원치 않았다.


아사쿠사는 도쿄도 다이토구에 있는 지역으로 센소지를 중심으로 이어진 에도시대의 번화가였다. 2차 대전전까지 번영을 이어왔지만, 전후에는 그저 예전 역사의 중심지로 자리 잡아 에도시대 문화 느낌을 아직도 많이 볼 수 있다. 아사쿠사 지역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628년에 세운 도쿄에서 가장 큰 절인 센소지의 카미나리문이 유명하다. 아사쿠사 지역에는 전통식당과 여러 종류의 상점이 많이 있다. 아버지께서는 처음 오신 곳이라 화려한 일본 옛 모습에 여기저기 사진을 찍으시며 즐겁게 보셨다. 거리를 걷는데 기모노를 입은 여성분들도 더러 볼 수 있었다. 전통복장인 기모노를 파는 곳들도 많았고, 인사동처럼 옛시대의 향수를 그리는 물건들과 사람들이 어울리는 오래된 관광지였다.


아사쿠사 지역에서 사진 찍으시는 아버지


오하요 고자이마스! 안녕하세요! 일본인들의 아침인사, 자세히 들어보면 도레미파솔라시도 음계에 맞춘 것처럼 말에 리듬(운율?)이 있다. 우리말은 리듬이 없는데, 내가 듣기에만 그런지 모르지만 일본말은 리듬이 있는 듯하다.  일본 사람들은 속을 내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말에 기분을 나타내지 않고 항상 리듬 있게 말하니, 화가 난 건지 좋은 건지 알 수 없다. 색깔로 치면 회색이라고나 할까. 무채색으로 살아가는 삶, 웬만한 것은 속으로 삭히려 한다니 스트레스도 무척 받으며 살 것 같은데 세계적인 장수국가이기도 하다. 아마도 "속으로 삭힌다"는 표현보다는 나한테 덕이 안된다면 그냥 버려버리는 것이 아닐까 싶다. 너무 좋은 것도, 아주 싫은 것도 없다. 가이드님이 일본에 오래 산 분이라 그런지 세세한 얘기까지 해주니, 재미도 있고 새로운 것도 많이 알게 된다. 춤을 출 때도 똑같이 같은 춤만 춘다고 한다. 우리는 가슴에 손을 대고 "저"(나)라고 표현하지만, 일본인들은 입에다 대고 "나"라고 한단다. 절데 속을 내비치지 않는다는 뜻이란다.


일본에서는 옛날엔 귀족들에게만 성(姓)이 있었다고 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처음에는 원숭이 이름이었다고 한다(가이드님이 재밌게 알려준 얘기다). 메이지 천황이 성을 가지라고 허용해 약 62% 가 황거 본적으로 두고 각각의 성을 붙여 성씨가 약 30만 개 정도라고 했다. (통계에 따르면 일본에는 291,129 가지의 성씨가 있다 <철자 혹은 로마식 표기가 비슷한 것들이 많지만 각각 별개로 본다;위키백과>). 일본 성씨는 "속지주의", 우리나라는 "속인주의"에 속한다. 속인주의에 속하는 우리나라 성씨는 혈연과 씨족을 대표하는 전통으로 이어져 왔으나 속지주의인 일본은 지형, 조상들이 살던 동네, 사물 등을 기반으로 한다. 그러니 성의 종류가 많고 평균 420명에 성씨가 하나라고 한다. 우리 귀에도 익숙한 "사또" 상 성은 일본에서 제일 많은 성씨인데 1.2%에 불과하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성씨가 있는지 짐작케 한다.  일본은 800만 엔 내면 성씨를 새로 만들 수 있다고도 한다. 그래서인지 한집에 사는 아버지와 아들의 성씨가 다른 경우도 다고 한다.


일본에는 우리처럼 주민등록번호가 없다. 고유의 이름이 있는데 "왜 주민번호 하냐"는 반론 때문이었는지, 주민등록번호는 없고 성은 많아 서류가 필요할 때, 법적으로 문제가 발생할 때는 혼란스러운 부분이 많다고 했다. 글을 쓰는 지금 다시 확인해보니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2016년부터는 개인 번호제(마이넘버)를 실시하고 있다는데, 사람마다 각각의 번호를 부여받았다고 생각되니 기분이 묘하다. 이에 비하니 태어난 날로 자신을 증명하는 우리나라의 주민등록번호 시스템은 인권과 평등을 높인 월등히 훌륭한 제도가 아닐까 생각된다. 또한 296개의 우리나라 성씨는 자신의 뿌리를 제대로 알려주고 있는 물려받은 소중한 선물이다.


차 안에서 도시 풍광을 보시는 아버지


우에노 시장에 들렀다. 일본에 출장 올 때마다 우에노 시장은 매번 들르는 것 같다. 우에노역에서 내리면 가까이에 시장이고,  조금 가면 우에노 공원이 있다. 우에노 공원은 다이도쿠의 우에노 지역에 있으며 예전 황궁 영지였으나, 도쿄시에 기증하여 공원으로 조성된 곳이다. 오래된 벚나무가 많아 봄이면 벚꽃으로 유명한 곳이다.  벚꽃이 만발할 때는 많은 사람들이 와서 쉬고 즐기며, 주변 직장인들까지 점심 도시락을 싸와 벚나무 아래에서 짧은 봄꽃의 정취를 느끼고 한 계절을 보낸다. 공원 안에는 유명한 개 조각상도 있어 예전에 출장 왔을 때 벚꽃 구경을 잠시 한 적이 있다. 벚꽃 하면 일본이 연상될 정도로 유명한데, 의외로 일본은 공식적인 국화는 없다고 한다. 황실을 상징하는 꽃이 있는데, 벚꽃이 아니라 "국화"라고 한다. 잎이 16개인 국화가 아마 일본의 국화를 대신하는 모양이다. 황실의 상징(권위?)이라 국화문양을 상업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아직도 금기시된다고 한다는데 이해하기 어려운 일본 문화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우에노 공원엔 들르지 않고, 아버지를 모시고 시장 구경을 하고 필요한 것이 있으시면 사시라고 했더니 우리나라 물건이 더 좋으시다면서 구경만 하신다.


도쿄 시내 번화가 긴자 거리와 신주쿠로 옮긴다. 긴자는 도쿄에서도 대표적인 번화가로 우리나라 명동 같은 분위기의, 땅값도 비싼 대표적인 상권지역이다. 원래 이곳도 바다였는데 16세기 에도시대 때 매립해 땅으로 만들었고, 후에 은화를 만드는 제조소가 생겨, 이 지역 "은화를 만드는 거리"라는 긴자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오래된 거리의 느낌, 명품샵과 유명 백화점 및 고급 식당과 일본풍이 흠씬 풍기는 곳이 많았지만 한편으론 화려한 장식에 유행에 민감하게 조성된 듯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골동품 점도 있어 다니면서 구경하는 맛도 괜찮았다. 명품이나 고가품에 대한 안목이 부족해서 인지는 몰라도 우리나라 백화점이나 청담동, 압구정동에서 볼 수 있는 디스플레이가 더 고급스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도쿄 시내에 있는 오오에도 온천으로 간다. 오오에도 온천은 도심에서 보기 힘든 테마형 온천으로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온천수는 약 45도로 해수탕도 있고, 신경통, 위장병 관절염 등에 좋다고 하며, 도쿄 시내에 있어 일본 사람들은 물론 여행 중인 여행자들의 피곤한 몸을 풀어주는 고마운 곳이기도 했다. 우리 일행도 시내를 다니면서 지쳤던 몸을 온천에서 회복시키고 호텔로 돌아왔다. 계약기간이 2021년까지인데, 도쿄 여행기를 쓰고 있는 지금 도쿄 도와계약 연장이 무산되어 2021년 9월 5일 자로 아쉽게도 폐장이 결정되었다고 한다. 일본은 화산지대가 많은 지역적인 특성이 있는 곳이라 개인 집에서도 온천 보증금 60만 엔만 들이면 집안에 온천수를 끌어다 쓸 수 있다고 했다. 내 집에서 온천수를 쓸 수 있다니... 솔직히 이점은 부럽긴 했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 한다는데, 나는 아버지께 어떤 모습의 거울일까. 부모 자식의 연(緣)은 어떤 연일까. 모처럼 모시고 해외에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니 여러 생각이 든다. 감사한 것은 아직 건강하셔서 이렇게 잘 다닐 수 있으니 더 바랄 것이 없다.



글을 쓰다 보니, 오래전 친구들과 함께 했던 아사쿠사, 우에노 공원의 벚꽃이 생각납니다. 지금은 소식을 알 수 없는 한 친구를 생각하며 틀어봅니다.


마리아 칼라스가 부르는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 중 "어떤 개인 날"

https://www.youtube.com/watch?v=syuZ__RRXJ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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