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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초

바쁠수록 돌아보고 함께 가는 삶...

by opera




난초가 고맙다.

진딧물이 올라 잎은 누렇게 뜨고 있고, 물은 주지만 사는 것에 바빠 무관심 속에 팽개쳐져 있는 듯했다. 그래도 살아 있기에 버리지도 못하고 있던 난초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쁜 인간이다. 천연계의 구성원으로 볼 때는 더 나쁜 인간이다. 오로지 인간에게 둘러싸여 인간으로 인한 문제 때문에, 함께하는 자연, 우주 속의 다른 일원들에겐 관심과 보살핌을 나누지 못하는 지극히 나쁜 인간이었다.


어찌 된 까닭인지 잎이 누렇게 떠 거실에 들여놓지도 않고 베란다에 놓아뒀는데 진딧물 탓인지 진액이 나와 끈적끈적한 상태였다. "죽으려면 빨리 죽으려무나"는 심정으로 베란다로 유배했었다. 그런데 오늘 서울서 내려와 보니, 누런 이파리 두쪽 사이로 꽃대를 올렸다. 꽃대가 올라왔다. 세상에 어디서 이런 힘이 났을까. 왈칵 눈물이 나왔다. 최소한의 대우도 못 받았지만 상관없다는 듯 자기의 할 일을 개의치 않고 해내고 만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제 몫을 해내려는 난초를 보고 너무 미안했다. 사람만 쳐다보고 산 내가 부끄럽기도 했다.


난초를 꽤 오랫동안 키워왔다. 마당이 없는 집에서 살 때는 특히 더 곁에 두고 살았다. 그래도 매년 꽃을 제대로 피워보진 못한듯하다. 화분수는 많았어도 하나같이 시들 거리며 제대로 성장하진 못했던 것 같다. 분갈이도 제때에 못해주고, 여느 화초를 키우는 것도 마찬가지겠지만 의외로 손이 갈 것 같지 않은 난초는 게으른 사람이 키우기엔 힘들다.


그저 때맞춰 물 주고, 영양제 하나 꼽아놓고 푸르른 잎만 버텨주면 고맙게 생각하고 지내왔는데, 한 두 녀석이 누렇게 잎이 뜨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다 어느 날 달랑 남아 누런 잎마저 떨어지면 난초는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난초를 보면서 인생을 배운다던 옛 선비들의 말씀은 결코 틀리지 않았던 것을 여러 번 경험했다.


난초는 물이 적어서 죽기보단 대부분 썩어서 죽는다. 말라죽기보단 썩어 죽는다는 말이다. 넘침보다는 조금 모자란 듯이 살아야 되는 천성을 부여받았는지도 모른다. 아니, 나 말고 우리 인간 말고, 생명가진 모든 것들이 충만하게 넘친 삶을 누리는 건 못 본듯하다. 살라가기에 적당할 만큼의 필요를 안고 살뿐이다. 누렇게 떠 가는 아이들을 분갈이해보면 대부분 뿌리가 뭉그러지고 썩어있었다. 그저 물만 주면 되려니 해, 물을 너무 많이 줘서 썩어 죽는 것이다. "과유불급 (過猶不及)"이라는 말을 제대로 배운 것이 난을 키우면서 였던 것 같다.


난을 키울 때는 물 빠짐이 제일 중요하다. 한 번에 흘러내리는 물로, 뿌리는 갈증을 해소하고 적셔진 난석으로 다음 물 올 때까지 말라가는 삶을 견뎌내는 것이다. 딱 필요한 만큼만 주는 것이 난초를 잘 키우는 방법이었다. 아니면 약간 모자란 듯이 키우던지. 그런데도 나는 나의 욕심처럼 쟁여두는 저축성 때문에? 생각날 때마다 많은 물을 주고, 어떤 때는 타들어가는 갈증도 못 알아본 채 굶기기도 했던 것이다.


흔히들 난초를 선비에 많이 비유한다. 고고한 자태나 일 년 열두 달 푸르른 잎을 자랑하는 담백하고 변하지 않는 기품 때문이다. 꽃을 자주 피우지 않으나, 힘들게 핀 꽃은 고고한 꽃대를 세우고, 진하지 않고 은은한 향은 널리 퍼지기 때문이다. 고인물은 썩는 것처럼, 난초처럼 살고자 했던 선비는 쟁여 둘 수가 없었다. 마치 "그날의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다"는 말씀처럼 필요한 것을 한 번에 가질 수 있는 만큼만 가지고 살아가는 삶, 하루의 필요한 만큼만 겸손히 채우면서 무릎 꿇고 경건하게 자신을 돌아보는 수양의 길을 걸으며 청빈 자족하는 삶이었다.


본디 그 마음은 깨끗함을 즐겨하여

정(淨)한 모래틈에 뿌리를 서려 두고

미진(微塵)도 가까이 않고 우로(雨露) 받아 사느니라. (가람 이병기 님의 난초 4에서)


난초처럼 산다면 어떨까.

쉽지 않은 관계가 될 것은 분명하다. 혼자 고고한 척하면 자기 PR시대에 누가 알아주고 가까이하려 하겠는가.

하지만 받아들이는 만큼 비우고 흘려보내는 삶, 난초의 비우고 내려놓는 삶은 타인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더 필요하다는 것을 분명히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현대인들의 힘든 대인관계에서도 어쩌면 난초처럼 받는 것에 상관없이 제 몫을 다한다면 푸르른 잎과 향기로운 꽃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난초는 말한다. 가졌다고, 더 가졌다고 생각될 때가 내려놓아야 할 신호라고. 세상은 공평한 곳이니 함께 나누고 서로 보듬어 줄 때 아름다운 꽃대를 세울 수 있다고.

나의 난초는 이름 모를 갈대와도 다름없다는 듯 마당 있는 집에서 분을 떠났다.




석파 이하응(흥선대원군) "묵란"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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