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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Jan 10. 2022

스마트폰으로 쓴 이탈리아 기행기 2. 볼로냐

볼로냐에서 이어진 하루


2019.09.21

시차 때문인지 세 시경에 반짝 눈이 뜨였다.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며 이런저런 꿈으로 비몽사몽이었는데 아마도 정리되지 않은 일에 대한 염려 때문이 아닐까 싶다. 미리 생각하지 말자. 뒹굴거리다 이른 아침을 맞는다.  떠나기 전 모데나에서 아쉬운 아침을 산책하다 길 건너 아트 뮤지엄에서 "스티브 맥쿼리 사진전"을 하고 있어 잠시 관람, 아이 주려 사진책 하나 들척이가격을 보고 손을 놓았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면 되지 뭐 하며... 나중에 찾아보니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세계적인 작가 중의 한 분이란다;;;


볼로냐로 출발한다. 오늘은 하루 종일 볼로냐 시내 구경을 하고 모데나에서 마지막 밤을 보낸 후 내일 오전 로마로 가는 비행기를 탈 예정이다. 모데나에서 볼로냐까지는 약 40분 정도 걸린다. 볼로냐에서는 미리 이탈리아 가이드(레시 씨)를 한분 부탁해 두었던 터라 편하게 설명을 들으며 구경할 수 있어 좋았다. 가이드를 만나보니 전형적인 이탈리아 여성분으로 활달하고 잘 웃는 재미있는 분이었다. 천천히 영어로 설명해 줘 큰 무리 없이 다닐 수 있었다. 하루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레시 씨는 볼로냐에 대해 생소했던 우리를 친절하게 안내하여 볼로냐의 진면목을 볼 수 있도록 해줘 지금도 고마운 마음이다. 다음에 볼로냐를 방문할 기회가 오면 꼭 다시 만나고 싶은 친구였다.


볼로냐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도시고 이탈리아에서도 꽤 유명한 곳이란 것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볼로냐는 "붉은 도시"라는 의미처럼 대리석이 아닌 테라코타 벽돌을 사용해서 지은 건물이 많았다. 이탈리아 북부 에밀리아 주의 주도이자 가장 큰 도시며 경제적으로도 부유한 대도시다. 기원전 에트루리아 인들이 세운 오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하고 있으며 중세 강력한 힘을 가졌던 영주가 다스리던 도시 국가로 발전해 왔다. 1970년대 이후 복원 사업도 이루어져 잘 보존되어 있는 역사적인 유적지가 많다. 오늘날에도 볼로냐는 자동차 마니아들이 좋아하는 세계적인 명차 마세라티, 페라리, 람보르기니 거기에 듀카티, 공장이 있는 곳으로 또한 교황을 넷이나 배출(그레고리력을 만든 그레고리 교황, 메디치가의 피오 4세 등)한 곳으로도 자부심이 높다.


볼로냐가 주도인 에밀리아로마나(Emilia-Romagna)주는 이탈리아에서도 맛있는 먹거리의 고장으로 유명하다. 아드리아해를 접해 있어 풍부한 해산물은 물론 포강 유역에 위치해 풍요로운 초목으로 가축들도 많고 땅이 기름져 여러 종류의 농산물이 잘 재배된다. 원재료가 좋으니 맛있는 식품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모데나의 발사믹 식초, 이탈리아 햄 프로슈토, 파르메산 치즈로 잘 알려진 파르마의 파르미자노 레지노 치즈,  그리고 볼로냐의 미트소스 스파게티와 볼로냐소시지로 유명하다. 고기를 갈아 만들어 숙성 시시키는 소시지는 물론 스파게티, 치즈도 고열량의 맛있는 음식이다. 그래서 볼로냐에는 유독 살찐 사람 많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을 정도로, 이탈리아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유명한 미식도시로 알려져 있다. 미각과 시각을 만족시키는 볼로냐는 관광객은 물론 지역민들에게도 사랑받는 도시지만 먹는 것을 주의하지 않으면 며칠 내라도 살이 오를 것 같은 행복한 염려를 하게 만드는 즐거운 여행지였다.


볼로냐 캐널 / 볼로냐소시지


볼로냐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볼로냐 대학이 있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되는 구 대학의 오래된 건물에는 아름다운 조각과 역사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세계 최초의 대학답게 유럽에서도 유명했던 볼로냐대학은 중세시대부터 유럽 각지의 명문가에서 자제들을 유학시킨 곳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공부했던 명문가의 자제들은 자신의 가문을 알리는 독특한 문장을 대학 곳곳에 빼곡히 남겼다. 천장과 벽 곳곳 각양각색의 문장만도 수천 개에 이른다고 한다. 볼로냐 대학에서 공부한 유명인사로는 신곡의 저자인 단테, 교황 니콜라오 5세, 페트라르카, 에라스무스와 지동설을 주장했던 코페르니쿠스 등 많은 걸출한 인물들이 많다.


오늘날 볼로냐 대학 문장에도 "Alma Mater Studiorum Universita di Bologna"가 쓰여있는데, Alma Mater Studiorum은 라틴어로 "학문이 퍼져 나가는 곳"이라는 뜻이니, 세계 최초로 대학을 세웠다는 자부심을 엿볼 수 있다. 특히  해부학 강의실면으로 조각되어 있는 목조 인체상들은  금방이라도 움직일듯한 근육질로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예전에는 이곳에서 인체 해부도 이루어졌다는데, 당시 기독교의 정서상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지만 교육의 목적으로  허용되었다고 한다. 또한 볼로냐 대학은 음악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요람으로써의 역할도 했다. 어린 시절의 모차르트가 음악공부를 하기 위해 볼로냐를 방문하기도 했다고 한다.


볼로냐 정경 속의 볼로냐 대학교 (나무 위키)

볼로냐 대학의 천장으로 벽으로 이어진 수없이 많은 문장들

실제로 인체를 해부했다는 해부학 강의실


도보로 구 시가지를 걸어 다니면서 설명을 듣는다. 기둥 사이를 걷는 중 레시 씨가 길 밖으로 나와 보라고 한다. 길에 서서 보니 천장을 받치는 나무 기둥 위에 집이 있다. 목조 "포르티코"라고 부르는 아케이드 같은 것이다. 볼로냐는 "포르티코의 도시"라 할 정도로 포르티코가 많았다고 한다. 석조 포르티코도 많지만 특이하게 목조로 된 포르티코도 많았다. 볼로냐대학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한 방을 만들 목적으로 밑에는 사람들이 다닐 수 있는 길로, 위로는 집을 꾸민 것이다. 도로 옆 건물에는 상가를 지어 사람들이 이용하도록 했는데, 오래된 목조 포르티코가 아직도 건재한다는 사실에 놀라울 따름이다. 먼 옛날 그곳에서 공부했던 가난한 대학생들의 꿈과 희망을 아직도 서려 있는 듯한 건축물을 본다.


볼로냐에는 유독 탑이 많았는데 탑은 적들을 방어하기 위한 군사적 역할뿐 아니라 귀족들의 경제적 정치적 소유력을 널리 알리는 수단으로써도 인기가 높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 때 100여 개가 훌쩍 넘는 탑이 있었지만 지금은 많이 남아있진 않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가리잰다의 탑(48m)과 아지넬리의 탑(97m)이 유명한데 부유했던 두 세력가에서 경쟁하듯이 올려간 탑의 모습을 보니, 높아지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인간 고유의 유산인 듯싶다.


목조 포르티코와 석조 포르티코

탑을 호텔로 개조한 곳도 있었다.


시청사와 산 페트로니오 성당이 있는  볼로냐의 중심 마지오레(Maggiore) 광장에는 볼로냐 시민보다 각지에서 온 관광객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우리도 즐겁게 다니면서 광장의 중심에 있는 넵튠 분수대 옆에서 사진을 찍는다. 광장의 남쪽 끝은 산 페트로니오 대성당, 대성당 맞은편에는 포데스타 궁전이 있고, 서쪽은 현재 시청사인 코뮤날레 궁전이며 광장 중앙에는 16세기에 만들어진, 삼지창을 들고 위풍당당하게 서있는 해신 넵튠의 분수대가 있다. 분수대는 사이렌과 바다의 요정들에 둘러싸인 선정적인 모습이다. 아름다운 광장은 시민들의 휴식처요, 약속 장소로도 사랑받으며 또한 볼로냐 여행의 기점으로도 많이 이용된다.


산 페트로니오 대성당(Basilica di San Petronio)은 볼로냐 사람들의 신앙의 중심지로서 13세기 지을 당시는 로마 베드로 대성당보다 큰 바실리카로 지을 계획이었으나, 교황의 반대로 규모도 작게, 파사드(건물의 출입구로 사용되는 정면)의 윗부분 장식도 하지 못하고 하부만 시공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볼로냐 대성당은 성당의 정면 모습이 위아래가 다른 모습으로 남게 되었다. 비록 원하는 모습의 파사드를 짓지는 못했지만, 볼로냐 인들은 당당하게 "바실리카"라고 말하고 있어, 볼로냐 대성당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자부심은 대단한 것 같았다. 성당 내부에는 유명한 회화작품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파이프오르간 등 많은 종교적 보물이 보관되어 있다.


코뮤날레 궁의 정문에는 그레고리력을 만든 그레고리 교황상이 조각되어 있다. 코뮤날레 궁 위쪽으로는 살라보르사 공공도서관(Bablioteca Salaborsa)이 있다. 한 때 볼로냐 증권 거래소로 사용되기도 해, 넓고 내부는 아주 넓고 환하게 되어있다. 바닥이 유리로 되어 있는데 자세히 보면 지하에서 발굴 중인 유적을 볼 수 있다. 원래 볼로냐에 살고 있었던 에트루리아 인들의 유적과 고대 로마의 포럼 흔적들이다. 지금 내가 밟고 서 있는 이곳이 오래전에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고도 혹은 치열하게 삶을 개척했던 곳이라니 숙연한 마음이 든다.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할 때가 몇 번이나 있었던가. 더 나은, 더 좋은 것을 원하는 인간의 교만한 속성 때문에 가지고 있는 작은 행복을 제대로 깨닫지도 못하고 살았던 어리석음에 이국 먼 하늘 아래서 다시 한번 부끄러움을 느낀다.


산 페트로니오 대성당 파사드

마지오레 중앙광장의 넵튠 분수대

코뮤날레 궁

살라보르사 공공도서관


광장을 빠져나와 오래된 건물들이 즐비한 골목으로 걸어오는데, 이어진 광장에 벼룩시장이 선 것을 본다. 레시 씨는 오늘은 벼룩시장이 열리는 날이 아닌데도 열린 것은 행운이라고 했다. 온갖 물건이 가득했고 그 규모도 상당했다. 해외여행 때마다 시간 날 때 벼룩시장을 즐겨 찾는 나와 P는 여기저기 다니면서 혹 눈에 띄는, 취미에 맞는 괜찮은 물건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P는 오래된 카메라를 수집하는 중이라 맘에 드는 것을 골랐고 나는 은 티스푼과, 유리공예로 유명한 라노에서 만든 퍼그 유리인형을 샀다. 예전보다 확실히 물가가 많이 올랐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티스푼 하나도 5유로 이하는 없다. 생각지도 않았던 앤티크를 사게 되어 기분이 좋았다. 이런 게 여행의 우연한 맛이기도 하다. 다만 골동을 좋아하지 않는 J와 N에게 잠시 미안했으나 둘은 한구석에서 쪼그리고 앉아 젤라토를 먹으며 즐기고 있었다.


문득 날아온 문자로 마음이 잠시 무거웠으나, 담대 키 위한 훈련 삼아 잊고 지금 이 순간을 즐기기로 한다. 어릴 때부터 들여진 습관, 걱정하고 염려하면 닥칠 일이 좀 가벼워지지 않을까 했던 잠재성 염려증(?)을 이제는 던져 버려야 한다. 어차피 닥칠 일이면 지금 미리 근심하고 염려한다고 해서 덜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일어나지 않은 일은 닥치기 전엔 어느 방향으로 틀지도 모른다. 저축성 강한 우리 민족 근성에 염려까지 저축하고 있는 나의 코리아니즘은 이제 볼로냐에 두고, 도약하고 창조하는 유니버설 코리안(Universal korean)이 돼야겠다는 다짐을 즐겁게 해 본다.


유명한 젤라토 가게에서 줄 서가며 망고 레몬 젤라토를 먹으며 먹는다. 볼로냐에서도 개를 참 많이 키우는 것 같다. 여느 도시보다 많은 것 같고, 재미있는 점은 젊은 친구들이 쫙 빼입고 개를 끌고 다닌다. 오늘 하루에만도 셀 수 없이 본 듯하다. 그래도 길거리에 개똥은 한 번도 못 봤다. 파리보다는 낫다. 레시 씨에게 물어보니 개 키우는 것도 하나의 트렌드란다. 몇 해 전만 해도 이 정도로 많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젊은 친구들이 더 많이 데리고 다니나 보다.


레시 씨는 하루 종일 함께 하면서 그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해줬다. 볼로냐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공부하게 되어 즐거운 하루였다. 볼로냐 인들도 여느 유럽인들처럼, 자신들의 삶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즐기며 산다고 한다. 아침에 일을 시작해서 오후 서너 시경 일찍 마치고 저녁에는 카페로 나가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모여 식사를 즐긴다고 하는데, 보통 저녁 식사를 두 시간 이상 한다고 했다. 전채요리에 해당하는 첫 번째 요리를 먹고 이어  차례에 걸친 요리를 먹는데 양은 많지는 않지만 빨리 먹지 않고 천천히 얘기하면서 먹다 보니 배가 불러서 포만감을 느낀다고 한다. 결국 두세 시간 동안 먹는다기보다는 두세 시간 동안 식당에서 대화하며 즐긴다는 얘기다. 다이어트를 하려면 음식을 천천히 먹어야 한다는 말이 이해가 갔다.


식당에선 식사, 얘기는 따로 카페 등에서의 우리 문화와 다르게 여긴 카페가 식당이고 대화장 소다. 하기야 요즘 우리 트렌드도  많이 비슷해지긴 한 것 같다. 레시 씨가 미리 예약한 식당도 사람들이 많아 북적거린다. 우리도 여러 가지 시켜 먹으면서 현지인들처럼 두세 시간 넘게 떠들면서 같은 문화를 즐겼다. 이 식당은 2시부터 새벽 2시까지 운영하고, 늦은 시간에도 술 위주가 아니라 음식을 판다고 했다.


레시 씨가 한 말 중에 마음에 와닿은 말이 있다. 유럽에서의 "광장과 정원은 집안의 거실"이라는... 맞는 말이었다. 공감을 느끼게 한 말이었다. 그동안 다녀본 유럽 여러 나라의 모든 곳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정원과 광장을 가지고 있었고 광장에서 사람들은 모여서 얘기하고 행사를 하면서 서로를 알아가고 토론하는 문화를 가졌다. 대규모의 정원에서든, 집마다 가꾸는 작은 정원에서든 더불어 생활하고 정성껏 가꾸면서 그들의 삶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물론 유럽의 광장문화는 오랜 역사를 가진, 어쩌면 민주주의의 산실이자 오늘날의 유럽을 키워온 터전이기도 하다. 그들은 광장과 함께 성장하고 광장을 통해서 역사를 키워갔다. 그에 비해 우리의 옛 역사는 소수에 의한 사랑방 역사라고나 할까 폐쇄적이고 은밀하게 관계를 이어 간 역사인 듯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우리만의 여건도 있었을 것이고, 물론 장단점도 있으니 뭐가 옳다 그르다는 할 수 없겠다. 레시 씨와 동료들과 다리 아프도록 누비면서 보고 다녔던 볼로냐에서의 하루는 몸도 마음도 단단하게 이어준 보람찬 하루였다.


우연히 만난 볼로냐에서의 벼룩시장

벼룩시장 옆의 오래된 교회 /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무라노 유리 퍼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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