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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Jan 05. 2022

스마트폰으로 쓴 이탈리아 기행기 1 모데나

기내, 모데나


2019.09.19 ~ 09.25까지 이탈리아에 출장을 겸한 여행을 한 것을 스마트폰(갤럭시 노트1)으로 기록한 여행 수필입니다.


2019.09.19

어제저녁 서울로 올라와 잠을 편히 자지 못한 것 같다. 그래도 오랜만에 이탈리아를 간다는 즐거움에 마음이 푸근하다. 2008년도에 다녀온 후 처음인 것 같다. 이번엔 회사 업무가 있어 모더나와 볼로나에서 일을 보고, 나머지 휴가시간으로 로마와 폼페이를 방문할 일정을 가지고 있다. 함께 가는 동료가 이탈리아는 처음이라 로마와 폼페이 일정을 넣었다.  


우리 멤버는 나와 J, N, P 모두 넷이다. 오후 한 시 반에 만나 수속한 후 한식당에서 냉면으로 식사를 했다. 국제 가격에 맞춘 음식값이라 비싼 편이지만 모양보다 맛은 약간 떨어졌다. 우리야 더 맛있는 냉면집을 알고 있어 그리 느낄진 몰라도 외국인들에겐 한국의 새로운 맛일 것이다. 일주일 동안 먹지 못할 터한가닥도 안 남기고 열심히 맛있게 먹었다. 관련 업무를 잘 진행한 후 자유롭고 추억에 남을 소중한 시간을 즐겁게 보내보자고 우리는 결의를 다져본다.


인천 공항 제2청사에서 탑승한다. 이탈리아와는 7시간 시차가 있고, 11시간 40분 걸린다는 기내방송이 나온다. 불과 3년 전에 다녀온 곳인데, 글을 정리하고 있는 요즘의 상황을 보면 아득히 먼 옛날 같다. 로마는 가보았어도 언제나 또 가고픈, 정겹게 느껴지는 곳 아니던가. 코로나 때문에 찾지 못한 여행지 중 어느 곳보다 가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물론 그곳에서 살아본 적은 없지만 어쩌면 지형적으로 반도인 이탈리아는 우리나라와 닮았고, 급하고 열정적이고 정도 많은 사람들의 특성도 우리 민족과 여러모로 닮은 점이 많다. 이번 여행기를 쓰면서 이탈리아의 추억을 다시 느끼고 채워 보고픈 마음 가져 본다.


마의 7분을 지나 비행기는 무사히 이륙했다. 떠날 때마다 하는 생각, 일 생각은 접어두고 낯선 곳에서의 자유로움 속에 새롭게 보고 배우고 느끼는 다른 나를 경험하는 일이다. 돌아가면 다시 반복되는 일상 속에 맞춰 가는 삶을 살아야 하지만, 떠나 있는 동안은 자유가 아닌가. 누구도 누구를 변화시킬 수 없다. 내게 주어진 삶을 최대한 행복하게 살면 되는 거다. 창조주께서 인간을 만드신 이유는 단 하나, 행복하기를 바라셨기 때문이라는데 우리의 삶은 왜 그리 고달픈지 모르겠다. 오히려 믿음이 있는 사람이 더 고뇌스럽게 힘들게 살아가는 모습을 자주 본다. 아마도 잘못 이해된 사랑 때문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아니 내가 행복하기를 바라시는 분의 뜻을 깨달았다면 행복하고 긍정적으로 삶을 꾸려가야 한다. 흐르는 세월을 찰나도 잡아 둘 수 없는 연약한 인간뭘 그리 연연하는가. 남 생각은 그만하고 앞으로의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시간이다. 살다 보면 냉정하리만큼 자신을 먼저 생각해야 할 때가 많다. 그럼에도 이런저런 핑계 때문에 결단 내리지 못하고 질질 끌고 가는, 끌려가는 순간이 얼마나 많은가? 특히 직장인의 경우에는 말할 것도 없다.

할 수 있을 때 정리해야 하고,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아야 부담 없이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여행은 한 번이라도 더 깨어져야,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우쳐 준다. 기름이 떨어지기 전에는 결코 회차할 수 없는 비행기처럼 말이다. 여행을 사랑하는 이유다. 여행을 떠날 때마다 철학자가 되는 이유다.


기내의 무료함을 달래는 나만의 취미는 스케치다. 스케치로 지치면 영화를 본다. 오랜만에 오래된 명화, "앤서니 퀸" 주연의 "희랍인 조르바"를 본다. 니코스 카잔차스키의 두꺼운 책을, 오래전 밑줄까지 그어가며 읽었지만, 각색된 대사를 통해 기억을 떠올린다. 선명치 않은 장면 하나하나도 오래된 흑백 사진 작품 같다. "앤서니 퀸" 특유의 무뚝뚝한 표정으로 내뱉는 대사들은 굳어진 된 마음을 울리는 메아리다.


"시종일관 미소를 지으며 상대를 찢어 놓을 줄 알잖아요. 우리를 뒤쳐지게 하는 사람과 일하고 싶지는 않아요"

"기대치를 바닥으로 두면 실망하지 않는 법이지요"

"선택은 두 가지가 있죠, 도망치거나, 도전하거나... 오늘부터 달라질 거예요"

"사람이 하는 일에 꼭 이유가 있어야겠소?  일할 땐 당신 부하지만 나머지는 내 마음대로요. 춤추고 놀 때도…"

"가슴에 뭐가 꽉 차면 어떡합니까 터트려야지… 난 춤으로 터트려요.. 난 이래요."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열정이 식는다는데, 나로 말하자면 아직도 펄펄 끓는다구요 그래서 도전하는 거예요."


니코스 카잔 차스키는 그리스 민족 작가로 글을 쓰지만, 나중에는 한계에 도전하는 투쟁적 인간상을 그린다. 조르바는 마케도니아인 답게, 눌려 살기보다는 새로운 정복과 도전을 원하는 인간이다.

생전에 미리 써 놓았다는 그의 묘비명을 다시 한번 기억해 본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직장인인 내가 늘 꿈꾸는 자유를 그는 조르바를 통해서 표현했다.


발밑 구름 아래로 이탈리아가 보인다. 흐리고 지친 어스름한 저녁나절의 이탈리아다. 점점 더 가까이 보이는 너무도 오래된 건물들... 로마가 보인다. 드디어 로마 파우미치노 공항(레오나르도 다 빈치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여기서 볼로냐로 가는 국내선으로 갈아타야 한다. 한국시간 오전 2시 24분, 이탈리아 시간 확인하니 오후 7시 25분이다.  30분 연착되어 9시 50분, 비행기는 이륙한다.


11시 35분, 목적지 볼로냐(Vologna) 공항에 도착했다. 마중 나온 차를 타고 모데나까지 40여분을 달려왔다. 밤 12시를 막 넘긴 후에 모데나 호텔에 도착한다. 유럽 호텔치고는 넓은 깨끗한 방이다. 다행히 저녁도 준비해 놓았는데 역시 이탈리아라 신선한 치즈와 과일 등이 깔끔하게 준비되어 있다. 잘 밤이지만, 큼직하고 맛있는 모차렐라 치즈와 과일 두 개를 먹는다. 한국시간으론 활기찬 오전이니 잠이 잘 올진 모르겠다. 근 하루 만에 등 대고 눕는다.


2019.09.20

그래도 서너 시간은 잔듯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호텔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고 일행들과 커피 한잔에 토스트와 과일과 치즈를 먹었다. 오늘 일정은 모데나 근교에 위치한 협력업체 공장을 방문해 미팅한 후 남은 시간은 모데나 시내 구경을 할 계획이다. 짧은 시간이긴 하지만, 마침 우리 호텔이 모네나 박물관 옆이라 구도심을 구경하기에 좋았다.


이탈리아를 몇 번 다녀왔지만, 이번에 방문하게 되는 모데나와 볼로냐는 처음이다. 자료조사를 해보니, 두 도시 모두 역사적으로도 유명하고 특히 볼로냐는 1088년 세계에서 가장 먼저 "대학"이라는 형태의 학술기관(대학의 근간)이 세워진 전통 있는 학술도시이며 북부 이탈리아 문화의 중심지다. 모데나(Modena)는 우리나라에서도 잘 알려진 모데나 발사믹 식초로도 유명한 곳이지만, 기원전부터 건설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작은 도시다.


이탈리아 북부 에밀리아 로마나주에 있는 포 강 유역 평원의 남쪽에 위치한 도시다. 중세시대부터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1175년에는 모데나 대학교가 설립되어 중세 문화의 한 중심지로 번영하였다. 옛 건물이 많으며, 11세기의 대성당은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모데나 위키백과 ).

모데나 발사믹 식초에 대해서는 이전에 쓴 글이 있어 참고로 올려본다. 발사믹 식초에 관심 있는 분들은 한번 읽어 보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https://brunch.co.kr/@okspet/67


모데나에서 조금 떨어진 협력업체를 방문하고 미팅을 잘 마친 후 시내로 돌아와 자유시간을 가졌다. 우리가 있는 호텔 주변에 오래된 건물들이 많아서 걸어서 걸어 다니면서 보기로 했다. 모데나와 볼로냐는 농산물의 집산지인 동시에 식료품 공업과 기계 공업이 발달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모데나 발사믹 식초도 그렇지만, 람보르기니, 페라리, 마세라티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유명한 자동차 브랜드가 생겨난 곳도 이 주변이다.


모데나 대성당(Duomo di Modena)은 유럽에서 가장 훌륭한 로마네스크 양식 건축물의 하나로 고딕 양식과 르네상스 양식이 혼재되어있다. 유명 건축가였던 빌리 겔 무스가 건축에 참여하고 1322년 완공되었다. 몇 차례 보수 공사도 거쳤지만, 성당 내외부의 다양한 부조들도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 오래된 성당이다. 2007년 파바로티의 장례식이 거행되어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도 했다(네이버 지식백과).


그란데 광장(Piazza Grande)은 모데나의 역사적 중심지에 위치한 광장이다. 모데나 대성당과 시민탑이 있고 광장의 동쪽으로는 시청과 코뮤날레 궁전이 있으며, 1997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그란데 광장으로 이어진 여러 길을 다녀보니 상점들과 특색 있는 건물들로 연결된 시가지가 아름답다.

모데나에서의 일정은 오늘뿐이라 시간이 부족해 모데나 엔초 페라리 자동차 박물관을 들러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시내 산책 중에 개들을 데리고 산책하는 주민들을 많이 본다. 젤라토 가게에 함께 출입하는 개들도 있다. 어쩌면 주인과 함께 달콤한 젤라토라도 조금 먹을 수 있으려나 기대할지도 모르겠다. 온갖 종류의 개들이 고색창연한 고도시를 주인과 다정하게 걷는 것을 보니, 두고 온 강아지들이 생각났다. 부럽기도 하지만 행복해하는 강아지들과 인사 나눠 보는 여유도 가져본다. 동네 가게마다 모데나 발사믹 식초를 판다. 생산연도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우리나라 드레싱 가격보다 비싸지 않은 작은 것으로 세병을 샀다. 모데나에서 산 것이니 모데나 발사믹 식초 아닌가.


구시가지에 미리 예약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모데나는 맛있는 음식으로도 유명한 도시라 큰 기대를 했지만, 이탈리아 정식요리에 대해 잘 몰라 그냥 유명한 요리를 시켰는데, 입에 썩 맞지는 않았다. 그래도 100년 이상 오래된 유명 식당이라 그런지 분위기 고풍스럽고 좋았다. 주로 가족단위로 많이 왔는데, 이탈리아는 끈끈한 가족애가 우리만큼 강한 나라라 그런지 오는 사람들 마다 얼굴을 비비면서 반가워하고 대화하며 시간을 즐긴다. 음식을 먹고 나면 할 얘기 별로 없는 우리와 달리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도 계속 웃으면서 이야기하고 먹으면서도 대화를 즐긴다. 먹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먹는 과정 자체가 중요한 듯 여겨진다. "식문화"가 "식이"보다 중요한 문화 자체가 함께하는 "음식 문화"였다.


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오면서 젤라또콘을 하나씩 시켜 먹었다. 유명한 아이스크림집에서 파는 것이 아니더라도 이탈리아 젤라토는 정말로 맛있다.

이탈리아 모데나 어느 골목에서 총총 별을 바라보며 가판대에 앉아 나이 든 아이들은 떠들어대며 젤라토를 먹는다. 옆에 앉아있던 정겨운 연인들도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함께 웃어준다. 어디서 왔던 어디로 가던 상관없이 "젤라토"는 말도 통하지 않는 우리들을 어느새, 교감하며 정을 쌓아가는 인간으로 만들어 준다.

 



모데나 대성당 후문

대성당 내부, 마침 미사를 드리러 신도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볼로냐 시청과 그란데 광장

모데나 대성당과 개들과 산책하는 아주머니

모데나 팔라죠(Palazzo) 아트 박물관




p.s.

모데나 대성당에서 장례식을 했던 루치아노 파바로티를 그리며, 그의 대표곡인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중, 네순 도르마(Nessun dorma 공주는 잠 못 이루고)를 들어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cWc7vYjg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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