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pera Jun 22. 2021

이탈리아를 빛내는 사소한 몇 가지...

모데나 발사믹 식초와 일리 커피



재작년에 이탈리아로 출장 가면서 볼로냐(Bologna)와 모데나를 다녀왔다. 이탈리아를 몇 번 다녀왔지만, 모데나와 볼로냐를 다녀온 것은 처음이었다. 잘 알려진 밀라노, 피렌체, 베네치아와 더불어 볼로냐는 이탈리아 북쪽의 오래된 도시였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볼로냐 대학이 있는 곳이며 중세부터 학술과 음식이 유명했던 유서 깊은 곳이다. 볼로냐는 이탈리아 기행기를 쓸 때 상세히 하고자 한다.


볼로냐 근처에 있는 모데나는 (Modena)는 이탈리아의 북부 에밀리아 로마냐 주에 있는 작은 도시다. 볼로냐와 가깝게 있어 여행하기에 좋았다. 오랜 역사를 가진 도시로 중세시대 문화의  유적이 곳곳에 남아 있으며, 페라리, 마세라티 등 세계적인 고급 자동차 제조업체가 있다. 모데나 대성당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11세기에 지어진 건축물이다. 우리에게 알려진 모데나는 발사믹 식초로 유명한 것 같다. 모데나 지역의 발사믹 식초는 왜 유명해졌을까?



발사식 식초는 우리 식탁에서도 인기가 높은 드레싱 소스로 자리 잡았다. 샐러드를 많이 먹는 여름 철이라 더 찾게 되는 것 같다. 발사믹은 이탈리아 말로 "향이 진한"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발사믹 식초(Balsamic Vinegar), 아체토 발사미코(aceto  Balsamico)는 포도를 발효시켜 적절한 조건에서 숙성시켜 만든 발효식초의 일종이지만, 이름이 가진 의미대로 좀 더 강한 향과 깊은 맛을 가지고 있다.


보통 트레비아노 청포도(white Trebbiano grape)를 사용한다. 청포도를 으깨어 즙을 만들어 졸인 다음, 나무로 된 통에 넣어 숙성시켜 만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숙성되는 과정은 몇 년씩 오래 걸린다고 한다. 숙성되면서 수분이 증발되어 점차 작은 통으로 옮길 때, 밤나무, 떡갈나무, 아카시아 나무, 벚나무 등의 다양한 나무로 만든 통에서 숙성되어, 나무 고유의 향과 맛이, 발효과정을 통해 식초의 풍미를 다양하고 독특하게 만든다고 한다. 정통 발사믹 식초는 포도즙만으로 만들며, 발효 년수에 따라 인증이 다르게 된다.


발사믹 식초가 세계적으로 알려진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모데나 지역에서 생산되던 발향 식초를 1958년 모데나에 부임한 에스테 공작이 즐겨 마시며, 1960년대부터 상업화가 되어 1980년대에 영국·미국 등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1979년, 모데나 지방의 발사믹 식초 제조업자들이 전통 발사믹 식초의 홍보와  함께 무분별한 유통을 막고, 공식적으로 정통성을 보호해 줄 근거를 제정하기 위해 노력을 한다. 지역조합(Consorzio di Aceto Balsamico Tradizionale di Modena)을 결성하고 꾸준한 노력을 통해 유럽연합에서도 모데나 전통 발사믹 식초에 대한 보호 명칭을 사용하도록 허가받았다.


이탈리아 정부에서도 2010년부터 발사믹 식초를 정책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인증제를 하고 있다. 대량생산을 위해 상업적으로 제조한 발사믹 식초에는  I.G.P( Indicazione Geografica ProtettaI)라는 인증마크를 붙이고, 전통적인 양조방법으로 제조한 모데나 산은 D.O.P (Denominazione di Origine Protetta) 인증을 붙일 수 있다. D.O.P제품은 최소 12년부터 라벨을 붙일 수 있는데, 12년은 Red, 18년은 Silver, 25년은 Gold 라벨을 붙일 수 있다. 이렇게 어렵게 만들어지기 때문에  가격이 아주 비싸지만 맛과 품질은 따라올 수 없다고 한다.


상업적으로 제조되어 많이 판매되는 발사믹 식초는 대부분 포도식초(wine vigenar)로 원재료명(ingredient)을 확인하면 알 수 있다. 발효된 포도즙(wine venegar)에 캐러멜과 식용색소 등을 넣어 맛과 색을 맞추고, 전분 등을 첨가해 농도를 맞춘다. 이렇게 첨가물이 들어간 발사믹 식초는 비교적 싼 가격에 다양하게 판매되고 있다. 최고급품질의 발사믹 식초나, 흔한 발사믹 식초나 미각적으로 뛰어난 전문가를 제외하곤, 맛에서 아주 큰 차이는 못 느낀다고 한다.


모데나 출장 시에 관계사에서 자그만 발사믹 식초를 한병 받았다. 100ml도 안될 정도의 수제 발사믹 식초로 촛농으로 봉인까지 한 것이다. 그리 비싸진 않은 것인지 몰라도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은 순수한 발사믹 식초라 기념으로 아직 개봉도 하지 않았다. 모데나에선 동네 가게마다 발사믹 식초를 판다. 물론 이름이 발사믹 식초다. 아주 싸게 파는 발사믹 식초를 두병 사 가지고 와서, 맛있게 잘 먹었다. 알고 보니 인터넷으로도 모데나 발사믹 식초를 많이 판매하고 있었다. 발사믹 식초는 누구나 만들 수 있는 향이 있는 식초지만, "모데나 발사믹 식초"라는 브랜드를 구축해 세계적인 명품이 되도록 만든 이탈리아 사람들의 애정과 노력은 높이 살만했다.


우리 집에는 몇 해 전에 산 일리 커피머신이 있다. 독특한 모양이 예뻐서 샀는데, 캡슐 거피를 마셔보니 연하고 부드러워 내 입맛에는 딱 맞다.  어차피 다른 캡슐과 호환도 안되기 때문에, 조금 비싸도 일리캡슐을 사서 추출해 먹는다. 여름에는 속칭 "얼죽아"를 만들어 이웃들과 가제보 아래 앉아 한잔 마시면 웬만한 야외 카페에서 마시는 것보다 기분을 돋운다.


일리는 이탈리아의 커피 전문 브랜드다. 세계 여러 나라로 수출되어 우리나라에서도 익숙하지만, 로마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국제공항에서 귀국하기 전 면세점에 들르면 다양한 일리 커피를 볼 수 있다. 일리는 독특한 디자인과 주석 합금 케이스로 만든 알루미늄 진공 캔 포장으로도, 오랜 기간 명성을 구축해 왔다. 일리 커피 캔은 사용 후에도 모으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고급스럽고 독특한 맛이 있다. 세계적 기호식품인 커피는 다양한 품종과 나라마다 특색 있는 원두로 풍미와 이미지를 구축해가고 있지만, 일리 커피는 디자인으로도 몫한 것 같다.  자국에서 생산하지도 않는 원재료를 수입해서 가공하며 제조한 것으로 브랜드를 쌓아가고 있는 점이 이탈리아답다고나 할까.


일리 커피는 세계 제1차 대전 당시 헝가리에서 이탈리아 트리에스테로 이주한 "프란체스코 일리"(Francesco Illy)에 의해 1933년에 설립되었다. 그는 "일레따"라고 하는 증기를 압축공기로 만들어 추출하는 방식의 혁신적인 커피 추출 기계를 개발하였다. 일리 커피 덕분에 이탈리아의 트리에스테 지방은 좋은 커피를 세계적으로 유통시키는 유명한 곳이 되었다. 이탈리아 여행 중에 방문하는 사람들도 많고, 패키지여행에 필수 코스가 될 정도로 일리 커피는 유명해졌다. 물론 지금은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 네스까페의 네스프레소에 점유율 면에서 많이 밀리고 있긴 하지만.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 개개인의 취향이 다르겠지만, 일리 커피는 향이 좋고 비교적 연한 편이다. 에스프레소 추출한 것에 뜨거운 물을 부어, 아메리카노로 만들어 마시는 비전문가지만, 다른 커피에 비해 마시면 속이 편하다. 한번 브랜드 인식이 뜨면, 쉽게 바뀌어지지 않는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커피메이커들이 많고, 좋은 커피도 많다. 일리 커피가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 인지 잘 모른다. 다만 이탈리아를 대표할 만큼 인정 받고, 사랑 받는 기업이 된 것에는, 제품 고유의 특성에 디자인과 기술이 접목된 노력과 자신들의 것을 소중히 여기는 전통이 함께 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탈리아를 "명품과 브랜드의 나라"라 하지 않아도 지역민들과 기업들이 자신들의 것을 지키려는 자부심과 더불어, 지속 가능한 생산과 공급을 위한 노력을 이어오는 것을 보면 때론 부럽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에도 세계적으로 내세울 명품들이 많이 있다. 굳이 "한류"를 지칭하지 않아도 "김치, 고추장, 불고기" 같은 한국의 것으로 인정되어 온 식품들도 많다. 우리 것이 이미 세계적인 명품이기에, 어떤 나라에서는 전혀 엉뚱하게 우리 전통식품들을 도용하는 마음 아픈 일도 발생할 정도다.  사소한 기호식품 하나에도 꾸준한 네트워킹과 협업으로 세계적인 명품으로 키워내는 예술적 기질이, 우리에게도 이미 충분하다는 생각이 마음을 채운다.

 

 



p.s. 일리 커피와 모데나 발사믹 식초는, 필자 개인적으로는 아무 관계도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책임지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