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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Jul 18. 2021

먹고 놀던 어느 게으른 휴일의 단상

오래전 어느 게으른 휴일의 기록...


이렇게 부른 배를 안고 있으면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차라리 배가 고플 때가 먹을 수 있다는 즐거움도 주기에 행복감이 더 들 때가 많다.  물론 내가 지나친 비만은 아니다.

인간의 먹거리에 대한 만족감은 심리적인 요인에 기인한다, 지금 적잖게 배가 부르다, 그러면서도 저녁엔 시원한 냉면을 먹을 요량이다. 한가로이 휴일의 평화를 누리고 있어, 내 몸엔 엔도르핀이 넘쳐났을 것이다.


아침에 이른 산행을 하고 시원한 황태해장국을 먹었다. 진부령 황태해장국처럼 맛있지는 않아도, 분식집에서 하는 해장국으론 아주 괜찮은 맛이다. 콩나물과 무를 넣고 황태와 같이 끓이다가, 청양고추도 몇 점 넣어, 땀에 젖은 몸과 지친 마음을 녹여주기엔 아주 그만이다. 우리는 밥 반공기와 황태는 강아지들을 주기 위해 물로 씻어내고, 가져왔다, 거기에 김밥 두 줄도 부탁했다.


오늘 김밥은 맛이 약간 떨어졌다. 이 집은 24시간 분식센터이지만, 맛이 괜찮아 인근에선 알려진 집이다. 김밥에는 생오이와 계란지단, 우엉, 당근, 단무지 등이 들어간다. 집에 도착해서 김밥 한 줄은 단무지를 빼고 앞집 멍멍이들에게 줬다. 어제 로리랑 산책 후, 문이 열려 있기에 닭장에 있는 녀석들을 오랜만에 쓰다듬어주려고 철장 문을 열고 오라고 불렀더니,  아들놈은 와서 몇 번 핥아주고, 에미 방울이는 짖진 않지만, 내민 손을 거부하진 않았다. 꽤 사나웠던 녀석인데, 이제 제법 친해진 것이다.


로리를 의식해서일까? 꼬리는 연신 흔들어 대면서도 무조건 다가오지는 않았다. 아침에 바깥 담장 우리 사이로 먹을 것을 주니, 좋아 난리다. 세 마리가 사이좋게 물론 서로 먹겠다고 아우성이지만 짖거나 물거나 뺏기 위해 난리 치진 않는다. 오며 가며 항상 조금씩이라도 먹을 것을 준 덕에 나눠먹는다는 것에 대한 습관이 생긴 것일까. 어제도 지금처럼 좋아라 했으면 얼마나 더 많은 스킨십을 해주지 않았을까마는 역시 개는 영국 속담에도 있듯이 경계하는 습성을 버리긴 힘이 든 종자다. "늙은 개를 길들이려 하지 말라"


집에 와 씻고 커피 한 잔을 내려 책상에 앉았다. 창문이란 창문은 다 열어놓고, 환기를 시킨다. 400ml짜리 등산용 물병에 알칼리수를 담았다. 기분이 날아갈 듯이 상쾌했다. 몇 주 만에 맛보는 여유에 밀린 독서를 하고 싶었다, 말콤 글래드웰의 “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 읽어보니, 마침 이 제목에 나오는 시저 밀란은 내가 즐겨보는 도그 위스퍼러의 주인공인 개 심리 치료사였다.


그가 쓴 책도 읽은 적이 있다. 멕시코의 가난한 난민 출신이지만, 이제는 할리우드 명사들의 개를 치료해주는 아주 유명한 인물이다. 개 심리사이기 이전에 "사람의 마음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 인상 깊었다. 00 제과에서 나온 고구마 스낵 한 봉지를 먹었다. 와 240kcal!


로리는 쉬는 날에 계속 먹는다는 것을 아는지, 움직일 때마다 따라다니다가 소파에서 드르렁거리며 자고 있다. 약간 출출한 느낌이 들어 아몬드와 호두, 잣을 섞어 한수저 정도 먹었다. 견과류가 두뇌건강에 좋다고 해서 먹기 시작했다. 느끼한 음식을 본래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지방질이 부족할 것 같은데도, 작년 신체검사 시엔 복부지방이 약간 있다는 진단을 받기도 했다. 불포화 지방질이 높은 견과류를 이달부터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


기분과 마음으로 먹는 편이 많아 가끔 과식과 폭식을 하는 것 같다. 내 경우를 보면 먹는데도, "의미"를 많이 두나보다. 이유 없이도 단지 자신에게 충실한 사람, 엄격히 절제하는 사람, 칸트나 간디 같은 사람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아니 그들은 목표가 있었겠지 라고 생각해본다. 스스로를 관리해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면 훨씬 더 절제할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만 우리 가족들은 잘 먹고 때깔이 고운 것이 훨씬 낫다는 주의라, 먹는 것에 잔소리를 않는 편이다. 가끔씩 이런 의미로 먹고 저런 의미로 먹어 준다.


보고 싶은 로리


하여간 오늘 행보를 다시 적어보자면 미국에서 온 친구에게 보내줄 책을 찾기 위해 인터넷서점을 한 시간 정도 탐색하고, 이것도 상당한 재미다. 가끔 한국에 인터넷이 이렇게 잘 보급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 해보면 아찔하다.(너무 과격한 표현인가?) 법정스님의 "일기일회"와 "향기롭고 조화롭게" 두 권과 어제 조선일보 책 소개에 나온 “터키 그 일만년의 역사” 터키를 13번 여행 후에 조금 알게 되었다는 어느 교수가 쓴 책을 섞어 가며 읽었다.  


모처럼 라면이 당겨, 점심은 라면으로 했다. 김 두장과 계란 하나씩 넣고, 김치와 먹었다. 라면은 건강에 예민한 사람들은 잘 먹지 않으려는 식품이다. 튀긴 면에 나트륨 함량도 높기 때문이다. 라면 끓일 때는 수프를 덜어내고 가급적 라면 국물도 많이 마시지는 않지만, 역시나 1900mg의 나트륨 함량(일 권장량의 90%)은 높았다. 아침에 시원하게 먹은 황태해장국의 나트륨 함량도 만만찮았을 것이다. 김치 몇 조각을 곁들였으니, 오늘의 나트륨 섭취는 이미  권장량을 훨씬 초과했다.


오후 한 시 반에 라면을 먹고, 작년에 냉동시켜두었던 마지막 남은 옥수수 하나를 찐다. 그동안 출출할 때 간식으로 삶아 먹었었는데 쪄서 먹으니 훨씬 더 맛있었다. 아무것도 넣지 않고, 그대로 찐다. 작년 충북 대학에서 따온 옥수수 50개 든 것, 한 자루 만원 주고 사, 껍질 벗겨 지퍼팩에 넣고 그대로 냉동시켜 보관한 것이다. 보통 옥수수 보관할 때 삶아서 냉동시켜 다시 쪄 먹는다고 하는데, 나는 생옥수수를 바로 까서 신문지에 싼 다음 지퍼팩에 넣어 그대로 냉동시킨다. 장담컨대 누구라도 옥수수를 보관하시려면 생옥수수를 바로 따서 냉동시켜, 먹을 때는 냉동된 채로 찜기에 넣어 찌면 정말 맛있다. 물론 옥수수가 갓 딴, 신선하고 맛있는 옥수수라면 더할 나위 없이 맛있다.


옥수수를 한 알 한 알 음미하면서 오도독 씹어먹었다, 물론 로리에게도 한 톨씩 떼 주었다. 그러나 옥수수는 전분이 많아 소화는 잘 안 된다. 그래서 꼭꼭 씹어 먹어야 한다. 로리에게나 내게나 몸에 부담을 주는데도 입에서 당기는 것을 절제하지 못하는 먹는 순간 느끼는 스트레스 해소의 작은 즐거움, 이것이 음식, 폭식이 가진 마력이 아닐까?. 결코 좋은 의미의 마력은 아니지만, 한 번쯤은 골고루 먹고 게으르게 뒹굴거리는 휴일의 여유로움을 맛보는 것도 찌든 삶에서 숨통을 틔어주는 작은 여유가 아닐까 싶어 사치롭게 누려본다.

2010.08. 어느 휴일.


로리를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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