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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Jan 16. 2022

스마트폰으로 쓴 기행기 3. 로마 1

콜로세움과 포로 로마노


2019.09.22

어제 볼로냐에서 맛있는 저녁을 맘껏 즐긴 후 레시 씨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 모데나로 돌아와 늦은 잠을 청했다. 짧은 일정을 보냈지만 어느 여행에서보다 마음에 남는 시간을 가졌던 것 같다. 여유가 생기면 꼭 다시 오리라 생각하며 간밤을 보냈다. 작별을 아쉬워하며 11시 40분 로마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볼로냐도 우리가 떠나는 게 아쉬운지 공항으로 오는 길 내내 비가 내렸다. 12시 11분 이륙, 올 때도 연착이더니 갈 때도 연착이다. 남부 이탈리아나 스페인의 뜨거운 햇볕 아래 사는 것도 좋겠지만, 산과 바다를 끼고 있는 북부 이탈리아에서 조금 살아보는 것도 행복하겠다는 꿈을 꿔본다. 산과 바다 하니, 살고 있는 내 고향처럼 다 갖춰진 곳도 없는데 괜한 욕심이지. 한편으론 그래도 꿈은 꿔야지. 집 떠나면 어디서든 드는 작은 소망, 이런저런 즐거운 생각에 벌써 로마에 도착한다.


마중 나온 가이드님과 로마 시내로 들어온다. 차창밖의 높다란 소나무와 오래된 유적지를 적시는 로마의 빗물은 또 다른 감흥을 준다. 미리 예약한 한국인 가이드  조**가이드님은 오래전에 성악공부를 하려고 이탈리아에 왔다가 가이드가 되신 분이다. 단체 여행객을 많이 받았지만, 지금은 자신이 운영하는 여행사에서 개인 관광객들을 주로 안내하신다고 했다. 이탈리아에 잘 정착하신 분 같았다. 코로나가 극성인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계실지 그의 사업은 어떻게 되었을까 며칠 함께 한 분이지만, 분명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좋지 않다. 코로나가 하루속히 종식되어 그곳에서의 터전이 무너지지 않고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기를 빌어본다.


점심을 제대로 먹지 않은 터라 가이드 님이 로마에 왔으니 피자를 먹어보자고 하신다. 그가 안내하는 피자집을 찾아가니 벌써 가족단위의 많은 손님들로 꽉 차 있는 맛집이었다. 시내 중심가에 있었지만, 분위기도 깔끔하고 좋았다. 풍기(버섯) 피자와 몇 가지를 시켰다. 맛은 상상외로 좋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이탈리아 화덕피자를 먹어봤지만, 비교하기 힘들게 맛있었다. 얇은 도우에 풍기 외에 다른 토핑도 별로 없고 단순한 맛이었는데 비 오는 분위기와 화덕피자가 잘 어울렸는지, 처음엔 많다 싶었지만 우리는 한판씩 먹었을 정도로 로마에서의 첫 식사를 맛있게 즐겼다.


로마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이 있듯이 오늘날 유럽이라는 거대한 문명 공동체를 있게 한 근간일 뿐 아니라, 북아메리카의 미국과 캐나다, 남반구의 호주와 뉴질랜드 어쩌면 세계 역사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이천 년에 가까운 긴 역사를 다양한 모습의 도전과 응전으로 버티어 온 로마의 생존은 오늘날까지도 바티칸 시국으로 모습을 바꿔 남아있다고 하면 틀린 말일까. 역사 속의 로마야 고전과 여러 자료를 통해 익히 듣고 알았으나, 오늘날까지 로마가 인구에 회자되는 것은 옛 로마의 많은 흔적이 우리 눈앞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볼 수 있으니 믿고, 믿는 것을 토대로 추정할 수도 있는 단순한 논리다. 그래서 역사는 눈에 보이는 유적의 정확한 해석과 끝까지 찾아내는 고고학이 어울려서 다져가는 모습이다.


로마는 연인들이 가고 싶어 하는 도시로도 알려져 있다. 연인들의 도시 이야기를 하면 "로마의 휴일"에 대해 쓰지 않을 수없다. 영화 장면들 사진 시내 곳곳의 기념품 상점에서도 판매될 정도로 로마의 정경을 헤치지 않고 아름답게 살려주는 풍경들이다. 로마 곳곳을 다니는 청초한 오드리 헵번의 모습과 그레고리 펙의 짧은 데이트를 통해 로마에 무엇이 있는지 로마의 모습은 어떻게 생겼는지를 온 세상에 알린 계기가 되었다고나 한다. 실제 영화 상영 후 로마를 찾는 관광객 수는 엄청나게 늘었다고 한다.



점심 식사 후 콜로세움과 포로 로마노( Forum Romanum )를 보기로 하고 먼저 콜로세움을 향해 간다.  콜로세움(Colosseum)은 고대 로마의 대표적인 건축물의 하나로 로마제국시대에 만들어진 원형경기장이다. 원래 이름은 "플라비우스 원형 경기장"이었는데, 콜로세움 경기장 근처에 거대한 네로의 동상(콜로서스 colossus, 거인)이 있어 콜로세움이라 불려졌다고 한다. 서기 72년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착공해 8년 뒤 아들인 티투스 황제가 완공했다.(위키백과)


네로 황제의 암살 후 일 년 반 동안에 황제가 세명이나 바뀔 정도로 혼란스러웠던 정국을 장악한 이는 평민 출신으로는 최초의 황제에 오른, 플라비우스 왕가를 연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였다. 당시 혼란스러웠던 로마제국에서 최초의 평민 출신으로 황제가 된 베스파시아누스는 전쟁과 혼란에 지친 나라를 재정립하기 위해 국책사업이 필요했다. 로마 시민들을 위한 일거리를 제공하고, 경제 상황도 개선시키며 국민들의 의식을 다른 데로 집중시킬 수 있는 오락거리도 필요했다. 오만 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고, 운동장 두 개가 들어갈 정도의 크기며 층층 설계를 통해 경기장 내부에 물을 대어 배를 띄워 해전도 할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일 년에 이백 여 일 정도의 경기가 있어 시민들에게 볼거리, 나라일에 신경 쓰지 않고 즐길 오락거리를 제공했으며 특히 검투 경기가 많아 자극적인 볼거리를 제공했다. 검투사들은 정복지의 노예들이나 직업 검투사로 콜로세움 인근의 카푸아 경기장에서 일차 시합을 거친 후 가려진 검투사들을 대상으로 콜로세움 경기장에서 검투 시합을 했다고 하니, 콜로세움은 오늘날의 주경기장인 셈이었다. 검투사의 삶과 처참함은 유명한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잘 볼 수 있었다. 로마를 다니다 보면 "글래디에이터"나 로마 역사를 다룬 여러 고전영화에서 표현된 로마가 충분한 고증을 거치기도 했겠지만, 그 시절과 별반 다르지 않게 잘 묘사되었음을 알게 된다. 특별히 역사 전문가가 아니라면 영화를 통한 로마의 분위기를 느껴보는 것도 로마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콜로세움에서의 경기를 통해 황제는 민심을 읽을 수도 있었다. 모여든 군중의 심리를 읽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간파하며, 때로는 경기를 통해 그들의 기분을 맞춰주며 국정에 도움을 얻기도 한다. "백성들에게야 배불리 먹고 즐길거리만 주어진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가 황제들의 계산된 생각은 아니었을까 싶다.


여러 해 전 왔을 때는 기다리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비 오는 날이지만 엄청난 사람들 덕에 한참을 기다려 낡은 돌계단을 올라간다. 오랜 세월 동안 어떤 일들을 겪었을까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성한데 한  없는 구멍 난 기둥들은 온몸으로 역사를 말해주는 듯하다. 떨어져 나간 벽들, 곳곳의 상처가 있지만 어마어마하게 넓고 큰 공간은 언제까지라도 갈듯이 당당하게 버티고 있다. 고층으로 올라가 내려다보니 거대한 인간 제국의 역사를 한 장의 파노라마로 보여주는 것 같다. 세월에 파손되어 허물어지긴 했어도 곳곳에서 복원이 이루어지고 있는 모습도 마음을 무겁게 한다. 운동장 바닥이 파손되어 아래 지하 부분이 드러나니, 새삼 오래전 사람들이 이다지도 지혜롭게 구상하고, 거대한 구조물을 세우고 완벽하게 운영을 했다는 사실에 경외감까지 든다. 거대한 콜로세움은 굴복하지 않는 인간들의 역사와 끝까지 싸우는 투지의 결합체로 남아는 의지의 산물이었지만 한편으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원치 않는 고통 속에서 자유를 그리며 사라져 갔을까 싶다.

멀리서 찾아온 이방인에게 보여지는 오늘 콜로세움은 "지금까지도 건재하는 위대한 건축물"이라는 경이로움에 앞서 많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세워진, 그리고 그 속에서 "정치와 종교"라는 인류의 버팀목에 의해 사라져 간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라도 하듯 흐르는 빗줄기를 온 몸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콜로세움을 떠나 포로 로마노(라틴어:Forum Romanum) 쪽으로 걸어간다. 걷다 보니, 비 오는 로마 길도 나쁘지 않다. 포룸 로마노 지역은 당시 로마의 행정기관이 모여있던 곳이다. 요즘으로 치면 세종시와 같다고나 할까. 관공서와 공공건물들이 즐비했던 곳이지만, 오늘 방문한 사람들은 그들의 흔적만을 볼뿐이다.


포로 로마노는 기원전 6세기부터 기원후 3세기까지 로마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국가적인 모든 행사와 공공 연설 및 영화에서 봤던 개선식 등 중요한 일을 거행했던 공공장소였다. 로마 왕정시대의 베스타 신전을 비롯한 여러 신전과 공화정, 제정을 거치면서 의회당과 바실리카 및 의회당 등 많은 유적물들이 통해 제정 로마시대까지 로마 정치, 경제, 문화의 중요한 장소였다. 이후 동 서로마로 분리된 후, 수도 기능이 약화되면서 외세의 침입에 파괴되고,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면서 그대로 방치되다가 토사 아래 묻히게 된다. 18세기부터 발굴되기 시작한다. 주로 제정 로마시대의 유적이 많으며, 팔라치노 언덕에서 바라보면 포로 로마노가 한눈에 들어온다.


포로 로마나는 특정 건축물을 본다기보다 걸어 다니며 외부에서 전체를 조망할 수 있어 더 마음에 들었다. 한 건축물이나 박물관을 보는 것이 아니고, 한 가지 만이 아닌 모든 것이 엉겨져 있는 묻혀있던 마을을 보는 것이라 다양하고 전혀 인위적이 아니다. 허물어진 건물의 잔재 속에서 피어난 꽃들과 유적물에서 지저귀는 새들의 모습 속에서 역사는 오래 지도 짧지도  않은 것으로 다만 인간의 삶 속에 있을 때 함께 존재하는 것이란 걸 다시 한번 보게 된다. 좀 더 건방지게 말한다면 내가 와서 보기에 이 역사가 존재하는 것 아닌가 말이다. 팔라치노언덕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부서진 건축물 돌틈사이로도 생명이 움터 온다. 한 장소에서 다 볼 수 있는 인간의 흥망성쇠를 보는 듯하다. 곳곳에서 발굴을 하고 있고, 너무 많아 한번에 하지 못하니 표식으로 구분해 놓은 곳도 보인다. 로마는 아직도 파는 곳곳에 유물이 나온다고 해서 주민들도 맘대로 땅을 파헤치지도 못한다고 한다. 로마에 진입할 수 있는 차량 역시 한정되어있고 얼마 있지 않으면 아예 차량을 전면 통제할 수도 있다고 한다. 역사를 지켜내고 보존하기 위해서 현생에서 겪어야 하는 불편을 기꺼이 감수하고 있는 것이다. 로마나 파리나 유명한 관광지는 볼 것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고, 볼 것을 위해서 불편을 감수하고라도 지켜내기에 유지도 되는 것이다. 뭐든 고통 없이 얻어지는 건 없다.





p.s

"오드리 헵번"이 주연한 영화 "티파니에서의 아침을"의 ost "문 리버(Moon River)"를 들어 봅니다.

그녀도 로마도 오래된 역사지만 우리 모두에게 낯설지 않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IfSOEuvJ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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