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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Feb 02. 2022

스마트폰으로 쓴 이탈리아 기행기 5. 티볼리, 로마 2

티볼리, 로마 2. 여행후기




2019.09.24

아침, 친구에게 카톡이 욌는데 지인이 넘어져 발목이 부러지는 불상사를 당했다고 한다. 수술 후 병문안을  다녀왔다는데, 멀리 있으니 안부를 전해온 것이다.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는 말처럼 그분은 넘어지며 엉덩방아를 찧었는데 발목이 부러졌다고 한다. 어찌 생각하면 엉치뼈가 나갈 수도 있었던 일인데 천만다행으로 엉덩이뼈는 아무 이상 없다니 불행 중 다행이다. 너무 열심히 일하시는 분이라 늘 무리하지 말라고 했을 정도인데, 갑자기 발목 수술을 하게 되어 원치 않았지만 당분간 쉴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사람 일이 마음먹은 대로 잘 풀려야겠지만, 마음먹는다고 되지 않는 것이 또 사람일이기도 하다. 어떤 일들이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 살아볼 만한 것이 인생일지도 모른다.


오늘은 티볼리로 간다. 우리에게는 쌍용차의 회생에 기여했던 대표적인 소형차 브랜드로 익숙해진 티볼리는 로마의 오래된 휴양도시 이름이다. 티볼리는 라치오주 로마 현에 위치한 코무네로, 코무네는 12~13세기 이탈리아 중부와 북부에서 영주권 없이 주변의 농촌 지역까지 지배했던 도시 공화국의 성격을 가진 지역 공동체를 말한다.    


작은 마을이지만 오래된 건축물들이 뜨거운 햇빛과 초록의 전원 어울려 무한한 쉼을 줄 듯한 조용한 곳이었다. 티볼리휴양 도시답게 예전부터 황제와 귀족들의 별장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유명한 곳은 로마 오현제 중의 한 명인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별장이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유능한 정치가였을 뿐 아니라, 경제적 안정기에 접어든 로마의 문화와 건축을 속주에도 널리 파급시킨 인물이기도 하다. 터키 안탈리아의 "하드리아누스의 문"은 지금도 위풍당당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티볼리에 있는 황제의 별장은 많이 파손되어 관광객들의 발길이 뜸하기는 하지만, 엄청난 규모의 시설과 남아있는 유물만으로도 이미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곳이다. 우리는 일정상 그곳은 방문하지 못하고 대신 빌라 테스테를 방문하기로 했다.


빌라 테스테는 보르지아(Borgia) 가문의 교황 알렉산데르 6세(Alexander VI)의 손자인 이폴리토 데스테 2세(Ippolito II d'Este, 1509~1572) 추기경을 위해 만든 저택이다. 영지 전체가 르네상스 양식의 걸작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특히 수많은 분수와 동굴을 갖춘 널따란 정원이 인상적이다. (출처 : https://somgle.tistory.com/375 [솜 글])


바로크 예술의 거장 "잔 로렌초 베르니니"가 설계한 빌라 데스테는 아름답고 잘 계획된 정원 조경과 다양한 작품의 환상적인 분수로 둘러 쌓인 멋진 곳이었다. 2000년 세계 문화유산 지정 후, 2007년에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으로 뽑히기도 했다. 예술미가 흠신한 분수 잘 가꿔진 정원 곳곳에서 선율처럼 다양한 물줄기를 뿜어어 어울리는 오케스트라 같다. 초록이 무성한 정원도 아름답지만, 흐르는 물소리는 정원의 푸르름에 빛을 더한다. 온갖 소음에 힘들었던 귀를 아름다운 분수에서 뿜어내는 물소리로 닦휴식을 주는 물소리로 채워 본다. 분수의 물은 티볼리의 하수물을 받아서 쓰게 되어있다고 한다. 오래전에도 물을 잘 활용한 방식에 놀라웠다. 그래서 아무리 목이 말라도 분수 물은 마시면 안 된다고 한다. 추기경이 기거했던 별장이라 그런지 성물과 성화도 많이 보존되어 있었다. 잘 가꾸어진 정원과 별장 내부의 오랜 유물을 감상하며 여유로운 오전을 보낸다.





점심을 한 후 로마로 가던 중, 성 칼리스토 카타콤 Cata Combe San Callisto)을 방문한다. 카타콤은 고대 로마의 지하묘지로, 기독교 박해 당시 초기 기독교인들의 피신처이기도 했고 죽은 후에 묻힌 곳이며 또한 그들의 신앙을 지켜낸 곳이기도 하다. 특히 이곳은 2세기에서 4세기까지 재위한 교황의 무덤이 있었으나 지금은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카타콤 내부는 벽을 깎아 사람이 누울만한 공간을 만든 납골당이 아직도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죽어 한 평도 안 되는 곳을 차지할 수 밖엔 없는 인간"이라고 하지만, 이곳에선 한 평도 넓은 땅이었다. 어쩌면 감당키 힘든 고통 속에서 빨리 영생을 위한 준비라도 하고 싶었던 초기 기독교도들의 간절한 신앙심이, 차갑고 좁았던 이 공간을 뜨거운 바람으로 영면하게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카타콤이 있는 지상 위의 칼리스토는 아름다운 조경으로 이국적인 신비감마저 들었다. 성지라 더 아름답게 조성되었겠으나 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속언처럼 차가운 땅속의 엄숙함보다 햇살이 퍼진 푸른 전원의 창조물이 훨씬 더 믿음으로 다가오는 건 혼자서는 설 수 없는 인간이기 때문일까.



이른 저녁을 먹은 후, 호텔 근처를 도보로 산책한다. 젤라토를 먹고 차 한잔을 마시면서 아이들처럼 재미없어도 그저 좋아 웃음이 절로 나오는 경험을 하며 로마에서의 마지막 날 저녁을 즐겁게 보낸다.


2019.09.25

아침에 짐을 정리한 후 호텔에 맡기고 시내로 출발한다. 카메라는 챙겼으면서 여분의 배터리 챙기지 못했던 것을 꼭 찍어야 할 사진을 놓친 후 알게 되었다. 준비를 철저히 해도 빠지는 건 있게 마련이다. "거기까지다"라고 부드럽게 받아들이는 여유를 여행을 통해 배운다. 저녁 비행기라 낮에 바티칸 성당과 트레비 분수 등 로마 시내 관광을 한 후 공항으로 갈 계획이라 했다. 가이드님의 차를 타고 출발한다. 로마에는 인구 400만에 오토바이가 200만대라고 하니, 얼마나 오토바이가 많은지 알겠다. 고속도로까지 탈 수 있으니 오토바이나 차나 운송 목적으 이미 동일하다. 오히려 로마 시내의 주차는 너무 어렵고 앞으로 시내엔 차가 들어올 수 없도록 할 예정이라니 로마에 살려면 오토바이는 선택 아닌 필수인듯하다. 로마를 알린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도 오드리 헵번을 태우고 달리던 베스파 스쿠터가 아직도 판매되고 있다니, 오래된 것을 개선시켜 보존하는 마음은 본받을만하다. 자기 것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비교적 이른 아침에도 불구하고 바티칸엔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다. 조금 기다린 후 입장해, 솔방울 정원(?) 앞에 모여 가이드님의 설명을 듣는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세계 각국에서 모여드는 곳이고, 특히 가톨릭 신자들의 성지순례지인 곳이기도 한지라 솔방울 정원 앞 곳곳에는 바티칸 박물관의 위대한 작품들 사진을 미리 보여주며 먼저 설명을 한다. 사람들이 워낙 많아 작품 앞에서 일일이 설명할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성 베드로 대성전(라틴어: Basilica Sancti Petri)은 바티칸 시국 남동쪽에 있는 대성전을 말한다. 바티칸 대성전(Basilica Vaticana)이라고도 부른다. 가톨릭 성지 가운데 하나이자 가톨릭의 모든 성당 가운데 가장 큰 곳이다. 전승에 따르면 서기 67년에 순교한 베드로의 무덤 위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옛날부터 교황이 선종하면 그 시신을 제대 아래에 안치해오고 있다. 대성전은 4세기 이래 이 장소에 있었다. 대성전의 건설은 1506년 4월에 시작하여 1626년에 완공되었다. (성 베드로 대성전, 위키백과) 베드로 대성당은 그 종교적, 역사적 의미 때문에 천주교에서는 순례지로 가장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오늘 우리도 많은 순례자들을 보았는데 특히 점심식사 때 우리들 앞에 앉았던 남미에서 온 수녀님들이 인상적이었다. 그들은 베드로 대성당 앞에 있는 여러 성물 판매 상점에 다니면서 필요한 성물들도 많이 샀다고 한다. 베드로 대성당 방문을 위해 여러 해 동안 저축을 해왔다고 웃으며 말하시는 모습에 믿음의 향기를 본다.


베드로 대성당의 건축과 관련된 많은 자료들은 인터넷상으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https://ko.wikipedia.org/wiki/%EC%84%B1%EB%B2%A0%EB%93%9C%EB%A1%9C_%EB%8C%80%EC%84%B1%EC%A0%84


베드로 대성당에서 가장 감동적인 작품을 추천한다면 단연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꼽고 싶다. "피에타"는 "연민, 동정"을 뜻하는 이태리어다. 피에타를 몇 번 봤지만 아무래도 오래전에 처음 봤던 때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 피에타는 미켈란젤로의 천재성을 엿볼 수 있는 위대한 작품으로 그의 나이 24세에 완성한 작품이다. 얼마 전 어느 강좌에서 미켈란젤로에 대한 새로운 얘기를 들었다. 피에타에서 예수를 쳐다보는 마리아가 너무 젊게 묘사되었고, 또한 죽은 아들을 안고 있는 어머니면서도 정작 아들을 쳐다보지 않는 듯한 모습의 사연에 대한 것이었다.


미켈란젤로는 6세에 어머니를 잃었기에 피에타의 마리아는 그의 기억 속에 있었던 젊었던 어머니의 모습과  혼재되어 젊게 표현되지 않았을까 하는 설이 있다고 한다. 아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던 것도 같은 연유로... 어머니에 대한 평생의 그리움과 애잔함까지 녹여 조각한 피에타는,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신앙의 생명을 얻게 된 이들에게 수백 년이 흐른 지금도 경외감이 들게 하는 위대한 작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피에타"뿐만 아니라 미켈란젤로는 바티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시스티나 성당의 위대한 천장화,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명화 "천지창조"도 그의 작품이다. 시스티나 성당에 들어가면 장엄한  압도감 때문에 숨을 멈칫하는 경험을 한다. 고개 들어 쳐다 보기도 쉽지 않은 천정에서 거꾸로 매달리지 않고 사다리 위에서 고개를 젖혀가며 온갖 고통을 당하면서도 4년 동안 그렸던 "천지창조"에 대한 유명한 일화는 많다. "천지창조"와 더불어 시스티나 성당 정면에는 "최후의 심판"이 있다. 미켈란젤로에 대한 얘기는 많지만, 감동적인 것은 누구의 간섭도 거부하며 자신만의 주관적인 작품세계에서 고지식하리만큼 강하게 이어간 그의 인생인 듯하다. 미켈란젤로는 자신과의 투쟁에서 꺽여지지 않았다.





한정된 지면과 짧은 지식 탓에 미켈란젤로의 작품 몇을 소개하는 데에 그쳐버렸지만, 세계 3대 미술관의 하나답게 바티칸 미술관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아테네 학당), 카라바조 등 당대 최고의 화가들도 많다. 바티칸 미술관의 보물들을 제대로 설명할 길은 없다. 바티칸 미술관의 상세한 설명과 많은 작품들에 대한 소개는 아래 사이트를 참고하면 도움이 될 듯하다. 다만 개인적으로 이렇게 많은 세계적인 보물들을 한 곳에 모을 수 있었던 가톨릭이라는 중세를 지배한 문화에 대한 역사적인 해석은 서로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https://ko.wikipedia.org/wiki/%EB%B0%94%ED%8B%B0%EC%B9%B8_%EB%AF%B8%EC%88%A0%EA%B4%80


트레비 분수는 니콜라 실버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을 모티브로 조각한 아름다운 작품이다. 로마에 오면 반드시 거쳐가야 할 명소 중의 하나인 트레비 분수에 얽힌 재밌는 이야기가 있다. 동전을 한번 던지면 다음에 다시 로마를 방문하게 되고 두 번째 던지면 사랑에 빠지며 세 번째 던지면 이별한다고.

코로나 때문에 다시 못 가고 있으니, 어쩌면 잠시 이별의 순간이라도 동전 세 번을 던져서 그런지도 모르겠단 우스운 생각도 해본다. 분수에 던져진 동전은 상당히 큰 액수라 로마시에서는 해마다 걷어 불우이웃 돕기에 사용한다고 한다. 수많은 사람들은 다시 로마를 방문할 기대감과 즐거움을 가지고 저마다 자신들의 꿈이 담긴 동전을 던진다.



트레비 분수와 스페인 광장을 만난 후 오래전에 먹었던 유명한 젤라토 가게에서 망고 젤라토를 먹으며 추억을 새기고 우리는 바쁜 걸음으로 공항으로 향한다. KE932 수속을 마치고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가이드님과 아쉬운 작별을 한다.


2019.09.26

이틀이 기내에선 하루처럼 이어진다. 일주일간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새로운 즐거움을 많이 만난 시간들이었다. 볼로냐와 모데나에서 레시씨 덕에 마치 이탈리아인이라도 된 듯 다양하고 풍부한 경험과 새로운 일상을 누렸고, 폼페이에서의 하루는 주어진 일상에 최선을 다하고 만끽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평범한 가르침을 다시 한번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오늘 떠나가 로마의 하늘 언젠가는 골동이 될 우리의 삶이지만 지구 역사의 작은 한 부분함께 하는 존재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지키고 보존하고, 열심히 살아야 할 의무를 안겨준다. 어디서 만났던 어디서 왔던 인간이라는 같은 운명하에 서로 인정하고 존중해주며 공존해야 한다는 가르침이 메아리쳐온다.

밤새 쉬지도 않던 비행기는 어느새 고향땅의 높다란 건물 숲을 지나 이제서야 다리를 뻗을 준비를 하고 있다.




이탈리아 기행기를 마치며


오래전 어느 가이드분이 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여행자 중 한 분과 바에서 술 한잔을 하는데, 로마는 오래전에 자신이 부인과 신혼여행을 온 곳이라 했단다. 세월이 흘러 부인은 세상을 떠났고 자신 혼자 다시 로마를 왔는데, 사랑하는 부인은 곁에 없지만, 로마는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그래서 그는 오히려 부인과의 추억을 고스란히 되살릴 수 있었다는 얘기를 했다. 가이드께서 지어낸 얘기인지 직접 들은 얘기인지는 모르지만, 그게 로마고 이탈리아다.

 

나는 지극히 공감했다. 로마를 몇 번 방문했지만, 사람들 외엔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 모두가 그 자리에 있다. 하루가 다르게 허물고 변해가는 우리 주변을 보면 언젠가 우리의 정체성도 같이 허물어져 버리고 늘 새로운 것으로 대체되지는 않을까 싶은 염려도 든다. 로마가 이탈리아가 그리운 이유도 언제 가도 그 자리에 그것이 있을 것이기 때문은 아닐까.


우리나라든 남의 나라든 문화재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지만, 갈수록 찾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여건도 달라지니 보존을 위한 조치나 관리비용의 증가로 관람하기가 더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가능하면 자주 봐야 한다. 더불어 우리 세대까지 남아있는 것은 즐겨 보라는 의미도 있지만, 다가 올 세대에게 온전하게 물려주라는 책임감도 혼재되어 있으니,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라도 긋지 말아야겠다.


나의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는 동남아의 따뜻한 나라와, 살아있는 오랜 역사를 접할 수 있고 물가도 싼 편인 포르투갈이나 스페인 혹은 체코 등에서 몇 달씩이라도 살아보는 것이었다. 생각과 꿈이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며 그동안 살아온 삶다르게 살아보고 싶어서였다. 낯선 곳에서 아침을 맞으며 진부하고 이기적인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공기로 영혼을 채워보고 싶은 꿈이다. 코로나 시대가 돼버린 지금 생각하면 언제 그 꿈을 이루어 볼까 답답한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꿈이라도 꿀 수 있기에 희망이 된다. 우리는 "꿈은 이루어진다"를 실현한 배달의 민족이 아니던가... 이방인으로써의 꿈도 버리지 않고 살아야겠다. 볼로냐를 다녀오니 이탈리아 북부에서 잠시 살아보는 것도 좋겠다는 희망도 꿈꿔 보며  아름다운 이 땅에서 코로나가 속히 사라질 내일을 그려본다.                                     - 2022.02.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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