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길을 나서는 여행객이 딱했던지 지배인이 커피 한잔을 권한다. 공짜냐고 물으니 공짜란다. 즐겁게 한잔 마신 후 택시를 타고 역으로 간다. 기사는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시다. 이번 여행에선 할아버지 기사님을 많이 만난다. 에머리히는 잘 보이지 않고 반 호프만 크게 보인다. 반호프는 역의 독일어이다. "서울역" "부산역"처럼 지명과 역이 같이 있는데 여긴 "역"표시가 먼저 보인다. 사실 이게 맞는지도 모른다. 역에 오면 어디든 갈 수 있으니 지명보다 역할이 먼저다. 실리적인 독일인의 표현법이다. 예쁘게 생긴 2층 기차다. 에머리히가 시발역인 듯하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사람이 없다. 텅 빈 기차 2층으로 올라탄다. 이제 쾰른으로 간다. S는 이 기차가 맞는지 몇 사람에게 물어본다. 뭐 영어공부도 할 겸 용기를 내어 말하는 것도 괜찮다. 이틀 되니 콩글리쉬 하는 것도 두렵지 않은가 보다. 역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리히쉰 역으로 가는 기차를 갈아탔는데, 이역은 더 황량하다. 아침 8시 40분 정도에 도착했는데 택시가 안 다닌다. 역 앞에 가게에서 동전을 교환해 전화하고 택시를 불러 예약해 둔 호텔로 향했다. 인터넷상으로는 호텔이었는데, 막상 와보니 좀 확장된 민박집 기분이 났다. 자그만 미니 호텔이었다. 그래도 강 옆에 강 옆에 위치하고 공원과도 가까웠다. 2층 방으로 들어가니 작은 창가로 강이 보이고 교회의 종탑과 어우러진 예쁜 마을이 보여 아름다웠다. 세느강변 옆의 작은 아파트 느낌도 가져 보며 낯선 곳에서의 여정을 잠시 푼 후 쾰른 메세로 가기 위해 호텔을 나섰다.
새벽 역 / 호텔에서 마주 본 풍경
쾰른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에 위치한, 베를린, 함부르크, 뮌헨에 이어 세 번째로 큰 도시다. 옛 프로이센에서는 베를린 다음으로 제2의 도시였다. 기원전 38년 로마제국에 의해 세워졌으며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들 중 하나다. 라인강에 위치하고 있으며 유명한 쾰른 대성당은 로마 가톨릭 교회 쾰른 대주교의 소재지이다. 쾰른 대학교는 유럽의 가장 오래된 대학들 중 하나이다. 쾰른은 라인란트의 주요한 문화적 중심이며 활기에 넘치는 예술 현장을 갖고 있다. 30개 이상의 박물관과 수백여 개 화랑을 갖춘 문화도시기도 하다(위키백과).
쾰른 메세(Koeln messe)는 독일에 있는 세계적인 규모의 박람회장, 전시장으로쾰른시 메세 1. 50679에 위치해 있는 실내 전시면적이 284,000㎡의 초대형 전시장이다. 하노버 박람회장처럼 여러 개의 전시장 건물들이 모여있는 전시장 단지이다. 2003년 마지막 제9전시장을 건립함으로써 총 실내 전신 면적 284,000㎡짜리 초대형 전시장이 되었다(나무 위키). 인터넷의 발달로 세계 어느 곳의 정보와 문화, 산업의 홍보가 신속히 이루어지는 요즘이긴 해도 "백문이 불여일견"이니 직접 보고 접할 수 있는 박람회의 중요성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미국과 중국, 독일등은 25만㎡ 넘는 엄청난 규모의 박람회장, 컨벤션센터를 확보해 여러 산업분야의 박람회를 개최하고 있다. 식품분야는 물론 IT, 자동차, 모든 분야에서 세계 각국에서 온 업체들의 상품을 전시하여 필요한 정보를 교환하고 관련 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볼 수 있는 큰 행사를 개최한다. 특히 쾰른은 유서 깊은 유적과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대도시로전시회를 방문한 관련자들이 짬을 내어 관광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진 곳이라 호응도가 높다.
요즘 뜨고 있는 MICE산업(Meeting(미팅), Incentive travel (포상여행), Convention (컨벤션), Event(전시, 이벤트)은 대규모 전시회를 통해서 관광까지 이끌어 내는 신사업으로 각광받고 있는데,쾰른은 이미 이때에도 MICE 산업에도 진심이었던 듯하다.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MICE산업의 성장을 위해서도 대규모 전시장을 필수적이다. 우리나라도 킨텍스를 비롯해서 여러 박람회장이 있지만, 아직은 전시문화를 주도하는 성장동력이 더 필요한 실정이다.
이번 쾰른 메세에서 열리는 박람회는 세계적인 식품박람회 아누가(Anuga)다. 자료를 찾아보니 아누가는 2019년 100주년을 맞이한 세계에서 가장 큰 식품박람회라고 소개되어있다. 세계적으로 큰 식품박람회는 여러 개 있지만, 일본 마쿠하리 메세에서 매년 열리는 푸덱스(Foodex)와 미국의 IFT(International food technologist),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되는 시알(Sial)과 쾰른 메세에서 열리는 아누가(Anuga)등이다. 아누가와 시알은 격년으로 돌아가며 열리고 있다. 미국 IFT의 경우에는 한국 식품과학회 총회처럼 미국 및 여러 나라의 식품과학자들과 학생들이 논문 발표도 하며 콘퍼런스를 개최한다. 그리고 관련 업체들 식품회사, 재료 공급회사, 식품기계, 기술 장비, 분석 과학장비 등 식품과 관련된 모든 것들이 전시, 홍보되며 관련자들의 정보교류와 현장 미팅도 이루어진다. 가까운 일본 마쿠하리에서 매년 열리는 푸덱스(Foodex) 역시 세계적인 규모의 식품전시회다. 아시아 전역에서 식재료 업체가 많이 전시하고 구미는 물론 중남미 지역에서도 아시아 시장으로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로 활용되기도 한다. 푸덱스에서는 특히 일본 전역의 특산물을 소개하는 일본관이 있는데 북해도부터 최남단 대마도까지 지역의 특산물과 전통식품이 많이 출품되어 볼만하다.
먹는 것은 살아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일임에도 일상적인 소비의 한 행태로만 생각하기 쉬운데, 박람회를 참석하게 되면 식품 산업의 규모가 얼마나 크고 다양하며 또한 필연적으로 성장해야 하며, 성장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객관적인 안목을 얻게 되는 기회를 얻어 많은 도움이 된다. 일본 푸덱스 같은 박람회는 코로나가 끝나 자유로운 일상이 회복될 때, 관심 있는 분들은 도쿄 여행과 더불어 한 번씩 다녀오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단 생각도 해본다.
아누가(Anuga)와 시알(Sial)에서는 유럽 특성상 유제품과 육가공에 대한 제품과 관련 기계가 많다. 특히
이번 박람회에서도 다양한 유가공품과 축산가공품들이 많았다. 메세는 10여 개의 대규모 건물이 이어져 있는 대규모 전시장이다. 전시장도 오래되고 예술적으로 지었을 뿐 아니라, 실속 있게 만들어지고 동선을 따라 연결된 건물들로 이어져 있다. 전시장의 외관이나 입구, 홀 같은 곳은 별로 화려하지 않다. 그저 벽돌 건물이 여러 채 이어져 있는 독일인 다운 실속을 보여준다. 워낙 건물이 커서 박람회장을 나온 후 쾰른 다리에서 사진을 찍으니 건물의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중국은 역시 많은 제품을 출품하였으며 중남미 여러 나라에서도 포도주와 여러 식자재들을 전시했다. 무엇보다 낙농제품이 주류라 웬만한 업체들은 다 출품한 것처럼 보인다. 낙농제품은 우유와 산양유 염소유까지 가축의 모든 것을 이용해 생산하는 제품들이다. 특정적인 유제품도 많지만, 아무래도 다양한 치즈와 육가공품의 전시가 눈에 뜨인다. 대부분 축산가공품은 치즈와 버터, 소시지, 햄, 베이컨 정도로 생각하지만 치즈만 해도 얼마나 많은 종류가 있는지 모른다.
치즈 역사는 인류 역사와 더불어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대인들이 동물의 위 등 내장에 우유를 넣었을 때 위에 있던 효소 렌넷이 우유 중의 단백질(카제인)을 응고, 발효시켜 생긴 고형물이 치즈다. 기마민족인 몽고가 세계를 정복할 때, 소 위장에 우유를 넣고 달렸는데 흔들거리며 응고되어 치즈를 만들어 먹게 되었다는 얘기도 알려져 있다. 치즈의 역사와 더불어 세상에는 수많은 다양한 종류의 소가 있고, 그 아이들이 만들어 내는 우유도 다르며 렌넷이나 발효과정에서 생성되는 유용한 곰팡이들도 다르니 수백, 수천의 치즈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를 말하는 것이다. 치즈는 발명품일까? 발견품일까? 생활의 지혜로 탄생한 필수품인 것만은 틀림없다. 익히 알려진 제품이나 알려지지 않은 많은 제품들이 특이한 풍미로 누군가의 취향에 적합한 제품으로 선택받기 위해 이런 전시회에 출품되기도 한다. 아무튼 평생 볼 치즈를 다 본듯한 시간이었다.
에너지 음료도 다양하게 출품되어 있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몇 업체가 제품을 전시했다. 육가공 제품 및 축산가공품 외에도 음료와 냉동, 냉장제품 그리고 식품 관련 기계 및 리테일, 요식업 관련 상품도 눈에 띄었다. 샘플로 주는 세계 각국의 여러 식품들을 맛보고 공부하는 시간도 가져보며 박람회장을 다녔다.
어떤 전시업체 / 2019년 100주년을 맞이한 아누가 풍경 (Anuga 사진)
다양한 치즈 종류의 유제품들
발이 아프도록 박람회를 관람한 후에 기차를 타고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저녁식사 전에 마을 구경도 할 겸 전시회 짐을 풀고 난 후 호텔을 나왔다. 작은 마을은 박람회 기간이면 사람들로 붐빈다고 한다. 박람회 기간 동안 쾰른 시내에서 호텔 구하기가 쉽지 않아 지하철로 메세까지 갈 수 있는 외곽 지역에 방을 구하기 때문이다. 우리뿐만 아니라 여러 곳에서 온 사람들이 같은 목적으로 이 지역에 묶고 있었다. 마을은 작지만 아주 아름다웠다. 와보니 역까지 가는 길도 이십여분, 운동한다 치면 걸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
역으로 가는 길 동네 한 복판에 온갖 꽃과 나무가 우거진 아주 아름다운 공원이 있어 들어가 보았다. 그런데 안에서 보니 공원이 아니라 공동묘지였다. 우리나라에서는 공동묘지가 동네 안에 있을 수 없지만, 일본이나 유럽 등 여러 나라에서 묘지가 동네와 가까이 있는 곳이 많다.다양하게 조각된 비석으로 사라져 간 이름을 볼 수 있을 뿐묘지를 연상시키는 봉분도 없고 나무와 꽃들로 아름답게 조성되어 있다.마치 사는 것이나 죽는 것이나 결국은 같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려는 듯, 마을 안 공동묘지 공원은 오가며 찾는 이들로 외롭지 않아 보였다. 지나가는 이들에게 아름다운 자연 정경과 더불어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는 말로 "살아라"는 용기를 주는 것 같았다.
다리를 건너 마을 안쪽 시내 쪽으로 들어와 적당한 스파게티집을 찾았다. 가격도 비싸지 않아 우리는 각자 원하는 스파게티를 양껏 먹고 동네 구경을 한 후 호텔로 왔다. 내일은 박람회장을 들른 후 쾰른 시내 구경을 할 예정인데, 시간이 부족해 쾰른 대성당과 주변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마을 안에 있는 아름다운 공동묘지
2005.10.12
공기부터 다른 숲으로 우거진 작은 마을에서의 하룻밤은 피곤을 씻어내기에 충분했다. 간단히 아침을 챙긴 후
발걸음도 가볍게 역으로 걸어가 기차를 타고 도이츠 역에서 내려 박람회장으로 향했다. 더 봐야 할 곳들과 미쳐보지 못한 곳들을 관람하고 다녔다. 어제 하루 종일 발품을 팔며 돌아 오늘은 큰 무리 없이 필요한 곳만 다시 한번 자료수집을 했다.
오후 박람회장을 나와 쾰른의 상징인 쾰른 대성당을 간다. 쾰른에서 관광할 곳을 물색하다 쾰른의 상징이기도 한 쾰른 대성당이 마침 메세와 가까운 곳에 있어 정했다. 메세에서 나와 다리를 건너가면 쾰른 중앙역이다. 쾰른 중앙역에서 대성당이 멀지 않다. 외국 출장 때 나는 가급적 걸어 다니는 것을 선호한다. 일부러 시간 내어 구경하기도 힘든 상황에 조금 여유를 부리며 걸어 다니면, 현지인들의 사는 모습과 지역의 풍광을 있는 그대로 보고 느낄 수 있어 좋다. 호엔촐레른 대교는 원래 있던 쾰른 대성당 다리를 허물로 1907년에서 1911년에 지어진 호엔촐레른 왕가의 이름을 딴 다리다. 호엔촐레른 다리는 기차가 지나가는 옆으로 인도가 있어 사람도 지날 수 있다. 지금은 인도 옆에 사랑의 열쇠를 매달아 놓은 것이 여행객들의 사진에도 많이 나와있지만, 우리가 방문했던 2005년도에는 별다른 장식은 없었다. 난간에 매달린 철제 인간 조형물이 인상 깊어 추억의 사진으로 남겼다.
쾰른 대성당(Kölner Dom, 정식 명칭: Hohe Domkirche St. Peter)은 독일 쾰른에 있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고딕 양식 성당이다. 쾰른 대교구의 주교좌성당이라 쾰른 주교좌성당이라고도 불린다. 이 성당은 독일에서 가장 잘 알려진 건축물로, 성 바실리 대성당에 이어, 1996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유네스코에서는 쾰른 대성당을 일컬어 “인류의 창조적 재능을 보여주는 드문 작품”이라고 묘사하였다(위키백과).
대성당 앞에 사람들이 그리 많진 않았다. 얼마나 큰 건물인지 바닥에 엎드려 찍어도 건물 전체가 찍히기 힘들었다. 대성당 앞의 찻집에서 잠시 쉬며 파손된 부분을 보수하기 위한 공사 중인 대성당을 보면서 인류 역사상 무엇보다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종교에 대한 사람들의 열정이란 사실을 새삼 느낀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문명의 흔적은 대부분 종교와 관련된 것들이 아닌가. 지금 세상이나 지나간 세상에서나, 현생(現生)을 살고 있는 인간임에도 늘 자신의 근본과 미래에 대한 관심으로, 살고 있는 "현재(現在)"를 지배당하고 있는 것이 인간이기도 하다. 위엄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대성당이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는 오래된 경구에 "유럽인들은 이름보다도 흔적을, 건축물을 남긴다"라고 말하는 듯하다.
쾰른 대성당의 장대함은 무엇으로도 표현하기 힘들 것 같다. 하늘을 찔러 우주로 향하기라도 할 듯 뾰족한 고딕 양식의 외관도 웅장하지만 오랜 세월의 풍파를 견뎌내고 몸으로 보여주기라도 하듯 거무튀튀한 성당의 외관은 고뇌로 얼룩져 찾아왔을 인간의 마음을 안아주고 버틴 당당함까지 풍긴다. 성당 내부를 둘러본 후 꼭대기 전망대로 가기 위해 계단을 오른다. 좁고 가파르게 돌아 올라가는 계단길은, 당시 사람들의 고된 삶을 잠시라도 생각하게 만든다. 그래도 올라가는 틈틈이 창문 새로 보이는 쾰른의 정경은 아름답고 심오해 보였다.
쾰른 대성당 전경
계단으로 올라가며 보이는 호엔촐레른 철교
철교의 인도와 난간에 매달려 있는 철 조각상
기마상과 강에서 바라본 쾰른 메세 전경
2005.10.13
오늘 일정은 뒤셀도로프로 출발해 시내 구경한 후 늦은 오후 기차로 암스테르담으로 출발할 예정이다. 짐을 정리하다 보니 가져온 컵라면이 넉넉해, 호텔 주인인 나이즈 여사에게 줬더니 너무 좋아한다. 이틀이었지만 즐겁게 지냈던 작은 마을을 뒤로하고 역으로 향했다. 뒤셀도르프는 쾰른에서 멀지 않아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이런 때가 아니면 경험해 보지 못할 추억이라 생각하며 캐리어를 끌고 다니며, 시내 구경을 하기로 했다. 뒤셀도르프 상업은행 앞에 스타**가 있어서 잠시 쉬며 차를 한잔 마셨다. 여긴 개도 데리고 갈 수 있는데, 입구에 놓여있던 강아지를 위한 물그릇이 나의 마음을 꼭 찔렀다. 개도 동물들도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생명들은 똑같이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얼핏 보면 화려하지 않아 그저 우리나라의 중소도시같이 보이지만, 같은 건물 하나 없고 오래된 건물들과 다양한 건축물들 사이에서 다니는 사람들도 다양하다.
뒤셀도르프(Düsseldorf)는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의 주도이며, 쾰른 다음으로 주에서 큰 도시이다. 클레베처럼 라인강에 접해 있는 독일 최대 광역도시권인 라인-루트 지방(Metropolregion Rhein-Ruhr)의 중심 도시다. 국제 비즈니스와 금융도시이고 패션과 무역 박람회로도 유명하다. 중세부터 발달한 오랜 역사 도시기도 하며 공업도시기도 하지만, 도자기 박물관, 필름 박물관도 유명하고 디자인이 뛰어난 건축물도 많다.
독일에서도 알아주는 부자도시답게 시내를 다니다 보면 고풍스러운 건물도 많지만 획기적인 건축물도 많이 보인다. 재미있는 점은 쾰른과 같은 같은 주에 속해 있지만, 마치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처럼 문화와 여러 면에서 쾰른과 경쟁적인 위치에 있다. 특히 독일의 축구에서도 쾰른을 연고로 하는 FC 쾰른과 뒤셀도르프를 연고로 하고 있는 포르투나 뒤셀도르프는 라이벌 관계이다. 뒤셀도르프는 맥주에서도 쾰른과 라이벌 관계를 맺고 있다. 뒤셀 지역에서 주로 생산하는 맥주를 "알트 비어"라고 하는데, 쾰른을 대표하는 맥주인 "퀼쉬"와 생산방식과 재료, 심지어 맛까지 비슷비슷해서 사실상 같은 장르로 분류할 수 있음에도 두 도시끼리 "너네 맥주는 오줌 맛"이라며 다투어온 역사가 깊다(위키백과). 맛없는 맥주를 오줌 맛에 비유하는 것은 세계 공통인가 보다.
나는 어느 지역을 가던지 시간적 여유가 좀 된다면 걸으며 구경하는 것을 좋아한다. 걷다 보면 다양한 삶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고, 건물들도 좀 더 상세히 볼 수 있다. 뒤셀도르프도 라인강을 끼고 있는 아름다운 도시였다. 라인강은 유람선도 많지만 화물선도 많이 다닌다. 북유럽의, 독일의 젓줄이라는 말이 실감이 날 정도로 다양한 운송수단이 부지런히 왕래하는 강이다. 폭이 한강보다 훨씬 좁아 보이는데도 여러모로 활용하는 것을 보니 부럽기도 하다.
강 주변의 아름다운 정경을 즐기며 구시가지를 걷는 중, 고풍스러운 건물이 보여 가보니 백화점이었다. 그런데 이 백화점 역시 개와 함께 들어갈 수 있었다. 개를 좋아하는 나에게 뒤셀도로프는 오래 기억될 풍경을 보여주었다. 나름대로의 문화란 하루아침에 흉내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생명존중의 사상이 뒷받침되고 다른 것들을 인정해 줄 수 있는 여유가 몸에 배어 있고 남의 개성이 자연스레 공존되는 세상이라야 가능하다.
뒤셀도르프에서의 짧은 일정을 끝내고 우리는 오후 4시가 넘어 역으로 왔다. 요즘 우리 역이 그렇듯이 개찰구도 없다. 도시에 비해 소박한 역과 매표소도 단순하게 표를 파는 곳에 불과하다. 며칠 되지 않은 독일 여행길이지만, 그저 담담하고 소박하고 거창하지 않다는 표현이 가장 어울릴 정도로 소박했다. 건물들도 사람들도 그 안에서 움직이는 모든 시스템도, 차별이 없고 남이 나보다 낫다는 것도 아니며 함께 그냥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진 평등하고 평범한 인간들이 교류하며 살아가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들어온다.
즐거우면 그냥 즐거운대로 살면 된다. 왜 즐거운지 이유는 필요 없다. 항상 이유를 대고 원인과 결과를 찾아 개선하며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바른 것을 추구하면서 살도록 교육받아 온 나의 의식에 "흘러가는 대로..."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은 나도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것이다.
암스테르담으로 향하는 기차를 타고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보며 피곤한 육신을 잠시 쉬어본다. 스쳐 지나가는 목가적인 풍경에 버릴 것은 버리고... 이런 여유와 사연을 채우는 것이 바로 여행 아니던가. 레스토랑 칸으로 옮겨 차 한잔을 시켜놓고 이 년 전 유로스타를 처음 탔던 기억을 떠올려 본다. 끝도 없는 누런 밀밭을 달리던 기차에서 느꼈던 감동, 이년 동안 얼마나 달라졌던가. 빠른 세월 동안 뭐하고 살았나 싶다.후회하지 않는 시간을 보내자 하지만, 돌아보면 후회할 일이 많다. 그래도 "인생에 후회를 뺀다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며 웃을 여유도 생기니 이래서 여행이 좋은 것이다.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알고, 주어진 순간을 즐기며 자신들의 가족인 강아지들과 최고급 백화점은 물론 어디라도 함께하는 행복을 누리며 살 줄 아는 지구촌 이웃의 편견 없는 행보를 경험한 즐거운 며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