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잠을 청해 보지만, 시차 탓인지이런저런 생각으로 뒤척인다. 회사에서 S와 나는 썩 친근한 사이는 아니었다. S의 학교 선후배들이 많아 나름 선입견을 키웠는지...어쩌면 이번 출장을 통해 몰랐던 좋은 점들도 알게 되어 관계가 개선되었으면 하는 바램도 가져본다.
2022.6월, 글을 쓰며 생각해 보니 당시 꽤 힘들었던 것 같았다. 대부분 인간관계 때문이었다. 사실 직장생활은 일보다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관계에 능통한 사람들, 대충 무시하며 받아들이고 아니면 정말 이해를 잘하며 외부의 어떤 공격에도 이겨내는 강한 멘탈을 가진 사람들이 성공하기 쉽다고 한다. 관계의 차이야 있겠지만 어쨌든 관계에서 승리하는 것이 성공의 첫 번째라고 한다. 물론 승리의 척도 역시 개인마다 다르긴 하다. 수긍하고 적용하든지, 쿨하게 떠나든지 둘 중 하나다. 아니면 버티고 세월 흐르기만 기다리던지... 견디고 버티다 보니 속으로 삭히고 지내왔다. 어찌 나만 그러하겠는가 모두가 자신이 속한 조직이 특별히 더 힘든 것이다. 지금 땅과 더불어 살다 보니, 삭히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쌓아두면 발효되어 좋은 거름으로 된다. 물론 이물질이 섞이지 않은 자연스러운 것이어야 한다.
견뎌야만 했었다면 견딘 것도 잘한 것이다.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과 고립되어 혼자살 수 없기에 스트레스는 필연적이다. 다만 그 필연을 잘 받아들여 상처를 덜 받고, 오히려 약이 되게 하느냐 는 것의 차이일 뿐. 그 일을 잘하는 사람은 처세술이 좋을 수도 있고 잘 사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러나 돌아보면 "잘살고 못살고" 역시 한 끗 차이에 불과하다. 그러니 그냥 "그런 게 인생이다"를 터득하기 위한 시간이 좀 더 걸렸다는 것만 인정하면 된다. 스트레스받을 땐다신 안 받고 무시해버리겠다 맘먹지만, 시간이 지나도 달라지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해 먼저 관용을 베풀고 사랑해 줄 줄 알면 된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영원한 명제처럼 눈을 감기 전까지 사람과의 관계는 자연스럽게 스스로의 일부가 될 수밖에 없으니, 잘한다 못한다를 말하는 것조차 우스운 일일지도 모른다.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일기를 쓰라는 말이 있다. 훌륭한 작가가 될 큰 꿈은 가지지 않았어도 일기 쓰기를 그만둔 적은 없었다. 시간이 흐르며 한 번씩, 지난 일기를 보면 깨닫는 점들이 많다. 일기를 쓰라는 이유도 알겠다. 뒤돌아 보니 스스로가 발견하지 못했던 또 다른 자신을 보게 된다.인생은 정로로만 가는 길도 아니고, 백점으로 모범으로 살아야 하는 것만도 아니다. 그럼 무엇인가?. 자신이 즐기는 일을 하면서 자신이 행복하면 되는 것이지 않을까. 물론 연관된 많은 사항들에도 기본적으로 지켜 나가야 할 일들이 많겠지만...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고 사랑하며 키워가면서 주변을 돌아보고 가는 것이지 않을까.
낯선 곳에서의 아침을 맞기 위한 독일의 첫날밤 이런저런 생각은,그동안 찌들어 있던 마음 한 구석을 씻어 내기에 충분했다.
2005.10.10
상쾌한 아침이다. 북쪽에 가까워선지 해가 살짝 늦게 뜬다. 공기는 청량하고 새소리와 더불어 하루를 열어가는 자연 속의 호텔 분위기가 평화로운 여유를 준다. 객실도 흰색과 검은색으로 꾸며져 깔끔했는데, 식당도 여느 일급 호텔 못지않게 우아하고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다. 음식도 맛있고 다양했다.
종업원이 오더니 몇 호냐고 묻는다. 왜 그러냐 물으니 조식 값을 적어두려고 한다고 말한다. 아니? 숙박하면 아침 포함 아닌가? 동남아나 일본에 익숙해서였던지 조식 값을 따로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여긴 조식 비용이 따로 청구된다고 한다. 얼마냐고 물으니, 30유로라고 한다. 출장 중에 30유로짜리 아침 먹은 적은 없었는데... 그렇다고 음식 퍼놓고 나갈 수도 없고... 근래 들어 제일 비싼 아침을 먹게 된 것이다. "할 수 없지 뭐" 분위기 잡고 먹자. 기왕 비싼 것 먹으니 음식을 몇 번씩 가져와서 먹는다. 각종 치즈와 다양한 잡곡 빵, 얼음에 올려두지 않았어도 싱싱한 연어 다양한 음식들이 맛도 좋았다. 얼마나 먹었는지.. 배가 불러 일어나기도 힘들다. S의 말대로 비싸다고 반대급부로 배 채우는 건 미련한 일인 줄도 알면서.
부른 배와 함께 협력업체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프런트에서 쉬었다. 후에 영수증 처리했던 S가 아침 식대가 30유로가 아니라 13유로였다고 했다. 의사소통은 분명히 했는데... 잘못 들었나? 직원이 잘못 말했나 미련스럽게 먹은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1박 130유로에 조식이 포함되지 않았으니, 싼 편은 아니었다.
깔끔했던 호텔 식당
로비에서 협력업체 직원 폴**씨를 만난다. 우리가 방문할 협력업체는 호텔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밀기기를 회사답게 보안도 철저하고 라인별로 잘 조성되어 있었다. 독일에서는 분업이 활성화되고 정밀기기 조립도 전문화되어있다. 주요 부품을 제외하곤 각지에서 수입해서 조립한다. 이미 독일 기계산업의 우수성은 잘 알려져 있고, 튼튼하고 안전하게 만드는 것을 우선적으로 여겨 제품 생산에 못지않은 철저한 사후관리에 대한 보장에도 자부심이 큰 것 같았다. 알차고 실속 있는 고부가 제조 산업이 굴뚝산업보다 훨씬 높은 이익을 내는 것 같다. 독일인 하면 딱딱하고 굳어 보이는 표정이 먼저 떠오르지만, 여기선 친절하고 부드러운 독일인이 대부분인 것 같다. 오히려 잘 웃지 않는 동양인들에게 농담도 건네면서 분위기를 따뜻하게 만들어 준다. 우리는 오전 동안 미팅을 겸한 기술 분석에 대한 교육을 받고 필요한 미팅을 했다.
폴**씨는 아내와 맞벌이를 하며 클레베에서 아우토반을 통해 30여분 거리에 있는 도시에 산다고 했다. 퇴근이 4시 정도라 출퇴근에 큰 문제는 없고 네덜란드에서 출퇴근하는 직원도 있다고 했다. 도로가 잘 조성되어있고 유럽연합 회원국들인지라 매일 국경을 통과해도 이웃마을에 다니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한다. 우리 역시 스키폴 공항에서 클레베로 오며 경험을 했었다.
점심은 폴** 씨가 대접한다고 클레베 외곽에 있는 1800년대 지었다는 오래된 식당으로 안내했다. La Bergerie로 적었지만, 벌써 20년이 지나다 보니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아도 없다. 식당 앞에서 찍었던 기념사 진속의 활짝 웃는 폴**씨는 소박한 독일의 어느 오래된 집 앞에서 친구들과 찍은 사진 같다. 다시 만나기도 힘들겠지만, 처음 만났어도 공감했던 그 모습이 잠시 그립기도 하다. 뷔페라고 하지만 가격이 그리 비싸진 않아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는데 가족들과 친구들과 점심을 하러 나온 듯했다. 식당의 장식이나 식탁 등 나무기둥의 높은 천장까지 오래된 역사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자리를 잡고 음식을 가져오는데 고풍스러운 식당과 어울리기도 하는 것일까, 유독 나이 드신 분들이 많이 있었다. 식사를 하면서 궁금했던 얘기들을 물어봤다. 독일은 65세에 은퇴하면 연금을 직장 다닐 때 70% 정도를 받는다고 한다. (이때 독일은 은퇴연령이 65세였다. 우리나라보다 이미 연장된 정년이었다)
어르신들이 시간도 많고 경제적인 여유가 있으니, 점심은 거의 이렇게 좋은 식당에서 모여 대화하며 즐긴다고 한다. 자기네들은 부부가 열심히 일해도 세금을 많이 내는 편이라 한다. 월급의 40% 정도를 세금으로 내고, 은퇴 후에 연금으로 돌려받는 다고 하지만, 노인인구가 계속 증가해 은퇴자들에게 연금이 너무 많이 지출되어 독일 내에서도 젊은 세대들의 염려가 크다고 했다. 자신들이 연금 받을 때는 어떨지 걱정도 된다며 개혁의 목소리도 나온다고 한다.
이미 17년 전에 독일에선 연금복지에 관한 염려를 평범한 국민들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공적연금에 대한 우려가 크다. 평균수명은 점점 늘어나노인층은 급속히 증가하는 반면, 출생률은 세계에서 가장 낮다. 단순한 논리로 봐도, 받을 사람은 계속 늘어가는데줄 사람은 오히려 몇 배로 감소되니 고갈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도 연금제도의 개혁이 화두이긴 하지만 누구도 먼저 호랑이 목에 방울을 걸지 못하는 것 같다.
이십 년 전의 안정되었던 독일 연금체제 속에서도 폴** 씨처럼 젊은 친구들조차 염려하고 대책을 요구한 것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아직 심각함을 체감하지 못하는 건 아닌가 싶은 염려마저 든다. 2005년 이후 독일의 연금개혁에 대해 찾아보니, 2007년에 정년 67세 법안이 발의되어 2012년부터 시작하여 2029년까지 단계적으로 연장하는 방안, 물론 노동조합 등에서의 반발이 심하지만 2005년도 폴** 씨의 염려는 현실화되어 고령 노동자의 부활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미래를 염려하는 지구촌 젊은 친구로서 각자의 위치에서 자국을 위한 노력과 헌신으로 열심히 살아가자는 대화를 통해 유대감을 다지기도 하며 즐거운 식사를 마쳤다. 폴**씨는 식사 후 클레베 중앙로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걸어서 시내 구경을 하면서 위쪽에 있는 성까지 다녀오기로 했다. 인터넷에 소개된 클레베 시 홈페이지를 보니 지금은 상당히 큰 도시로 지속 가능한 경영을 통해 산업과 관광 역사 환경 등 전반적으로 잘 운영되고 있으며 특히 주민자율적으로 환경보호에 앞장서는 미래도시로써 기반을 다져가고 있었다.
폴**씨의 친절한 설명대로 시내 초입부터 걸어가기로 했다. 클레베( Kleve) 시내는 중앙로가 약간 오르막으로 된 길로 쭉 이어져 시내를 관통한다. 길 위쪽 끝에 자리한 아담한 성에 올라가면 시 전체 조망이 가능하다. 인터넷으로 조사해보니 지금은 훨씬 더 넓게 조성되고 시내가 커진 것 같다. 2005년 우리가 방문할 당시에는 걸어서 둘러봐도 무리되지 않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하루밖에 다니지 못한 클레베였지만, 중앙로를 걸으면서 아름다운 상점도 구경하고 야외 카페에서 페스츄리와 랍스 베리가 듬뿍 든 케이크, 그것도 설탕 시럽 코팅한, 진한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낭만을 즐기기도 해 본다. 커피는 색깔만큼 쓰지도 않았고 달달한 페스츄리 맛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옆에 있는 어르신들도 단 빵을 엄청 즐기신다. 단 것은 확실히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한다. "여행 중엔 즐겁게 먹고 건강은 가서 챙기자"는 어설픈 철학으로 먹고 즐기며 자유롭게 시내를 활보했다.
클레베는 산업도시가 아니고, 은퇴한 분들이 많이 사는 조용한 도시였다. 물론 지리적으로 네덜란드와 가까워 직장인들이 많이 거주하기도 하지만, 독일의 여느 중소도시와 같이 오래된 역사 속에 그들만의 전통과 문화를 간직하고 있으며, 소박하게 일상을 즐기는데 부족함이 없는 환경으로 조성된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거리 상점도 예쁘게 꾸며 놓았지만, 마을의 집들도 알록달록한 색깔과 장식과 꽃과 나무들로 소박하고 예쁘게 조성되어 있었다.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유독 냄새에 민감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거리에서 소똥 냄새가 좀 났다. 주변이 숲이고 젖소들을 방목해소똥 냄새가 잔잔하게 퍼져있다. 특히 언덕 쪽에 더 많이 났으며, 그래서인지 파리가 많다. 고급 빵집에도 파리가 날리는 것이다. 카페에 앉아 식사를 하는 사람들은 당연한 듯 손으로 쫓는다. 나도 페스츄리를 먹으면서 좋다고 오는 파리 한 마리를 향해 저리 가라고 손을 내저었다. "너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야." 그래도 뻔뻔한 독일 파리는 "여긴 내나라야" 하며 지지않고 날아왔다.
여러 상점도 구경하면서 우연히 책방 한 곳에 들렀는데, 책도 많지만 값비싼 문구류도 많이 판매되고 있었다. 그저 자그마한 시골 도시로 보였는데, 몇백 유로가 훌쩍 넘는 M사 필기류도 팔고 역시 어르신들이 구매도 하고 있는 것을 보니 은퇴자들 형편도 넉넉해서인지, 구매력도 무시할 수 없겠다 싶었다.
슈바넨부르크(Schwanenburg) 성은 도시 중앙로에서 언덕 쪽에 위치하고 있다.성을 박물관으로 개조했다는데, 월요일은 문을 열지 않아 박물관은 구경하지 못했다. 성에는 클레베의 상징이기도 한 백조의 탑이 있다. 꼭대기 탑에서 클레베 시를 바라보면 시전체를 조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라인강 평원 너머 지평선은 네텔 란드까지 이어지는 아름다운 파노라마 정경을 감상할 수 있다. 5층까지인 탑을 올라가면서 층마다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았는데 정말로 자그마하고 예쁜 시골 오래된 도시 정경이 펼쳐진 햇살에 덮여 너무 아름답다. 빨간 지붕들은 숲에 둘러싸인 인형의 집처럼 보인다. 지금은 지질 박물관으로 되었다고 하는데, 우리가 방문한 오늘 담당자분이 작업 중이셨다. 오래된 화석 유적과 성의 모형 및 여러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이후에 지질 박물관으로 완성시킨 듯했다. 코로나 이후 일상이 충분히 회복된다면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마음이다.
클레베 정경 (유튜브)
클레베 지방법원 입구 슈바넨부르크 성 (위키백과)
백조의 탑
백조의 탑에서 내려다 본 마을 정경
마을의 책방 / 백조의 탑 박물관 작업 중인 선생님과 한 컷
오후 내내 걸으며 시내를 돌아보는데, 상당히 큰 대형마켓도 여러 개 있었고, 벤츠와 BMW 매장도 있었다. 가격은 오히려 국내보다 약간 비싼 듯했다. 파리지앤느처럼은 아니더라도 열심히 살고 여유를 즐기는 아드리안 민족을 보면서 나라 경제가 뒷받침된다면 펼쳐질 은퇴 후의 삶이 잠깐 부럽기도 했다. 이곳은 네덜란드와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유색인종이 별로 없었다. 심지어 여행객 중에서도 우리나라 사람들 보지 못했고, 말레이시아에서 온 멋쟁이 여성을 한 분을 봤을 뿐이다. 폴**씨가 설명한 대로 요즘 유로화가 되어 국가나 인종, 문화 간의 구분이 없다 해도 아마 소도시라 외지인이 적은 듯 했다. 인터넷 자료를 찾아보니 지금은 사람들이 방문하는데 참고할 수 있도록 시에서 자료를 많이 올려 놓았다.
클레베도 여는 유럽처럼 반려견들을 데리고 다니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작은 강아지까지 모두가 목줄을 하고 다녔다. 혹시라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지 항상 신경 쓰는 모습을 본다. 유럽, 특히 독일에서 개를 키우려면 요구되는 철저한 조건들을 들은 적이 있다. 힘든 점들도 감수하며 가족처럼(아니 가족이다) 함께 지내겠다는 결의가 없이는 환경이나 비용 등 여러 면에서 개를 키우긴 힘들다. 우리나라처럼 자유롭게 반려견을 키울 수 있는 나라도 선진국에선 많지 않다. 물론 우리도 반려견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점차 강조해가긴 하지만, 글을 쓰는 지금도 코로나 팬데믹 이후 버려지는 유기견들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리니 더 엄격한 규율을 적용해야 문화 선진국으로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는 아쉬운 마음이 든다. 클레베 강아지들과 사진도 찍고 부지런히 다니며 이 사람들은 무엇을 주로 먹고, 어떤 생활을 하고 살아갈까를 보는 것으로 해소하며 독일 물가도 살펴보는 현장 경험을 했다.
저녁 무렵 다시 만난 친절한 폴** 씨는 내일의 여정을 위한 기차표를 끊어야 하는 우리를 위해 클레베 역으로 안내했다. 독일 기차표 보는 법과 역내부에 들어가 타는 법에 대한 설명도 친절히 해준다. 내일 아침 6시 45분 에인리히로 가는 기차표를 끊었다. 에인리히 역 주변에 예약해 둔 호텔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간단한 저녁식사 후 호텔로 와 프런트 직원에게 아침 6시 택시 예약을 부탁하고 미리 체크 아웃을 한 후 휴식을 취한다.
처음 방문한 독일이었지만 그동안 알고 있었던 이미지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우리를 클레베까지 태워다 주신 할아버지 기사님이 동전 모으는 것이 취미라고 하시길래 500원짜리 동전을 드렸는데, 굳이 유로화를 주셨다. 100원짜리 동전과 선물이라 해도 받지 않고 자신도 선물이라며 동전을 주셨다. 뭐든 노력 없이 이뤄지는 것은 없다는 철학 때문인지 모른다.
식당은 물론 상점이나 어느 곳에 가도 넘치는 노인들은 단순한 노인들이 아니고, 열심히 살아온 대가로 노후의 삶을 건강하게 즐기고 있는 것을 보여주며 단순하게 여유로운 생활만 하는 것이 아니고 나름대로 새로운 생활의 개척, 소비생활 등을 통해 이미 노년층의 경제 상황의 중요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나라의65세 이상 노인인구는 853만 7000명으로 전체의 16.5%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2021 통계청발표). 이미 우리나라는 고령화를 넘어 2025년이면 초고령화 사회(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이 7% 이상이면 고령화, 14% 이상 일 경우 고령화 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 사회라고 함)에 접어들어 세계에서 가장 빨리 늙어가는 나라 중의 하나다. 이런 시점에서 이십 년 전 클레베에서 봤던 노인들의 활동적인 삶의 모습은(물론 경제적인 면이 뒷받침되어야겠지만...) 긍정적으로 봐야 할 부분이 많다고 생각된다.
게다가 초고령화 사회 진입속도에 맞물려 우리나라 노년층의 빈곤율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고 하니, 가난한 어르신들의 힘든 삶은 오래가는 생명의 감사보다는 고통의 연장에 가까운건 아닌지 마음을 무겁게 한다. 여러 방법들로 개선을 해 나가겠지만, 세금을 너무 많이 낸다는 독일 친구의 말이 예사로 들리진 않았던 클레베의 저녁이었다.
65세 이상 고령층 현황 (통계청)
멀리 슈바넨부르그성이 보이는 라인강변에서 백조들과 함께 낚시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름다운 클레베의 정취가 잘 드러나 있는 유리그림 공예작품이다. 시내다니면서 우연히 눈에 띈 골동품점에서 기념으로 구입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