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0.09~10.17까지 출장을 겸한 여행으로 독일 클레베와 뒤셀도르프, 쾰른,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을 다니며 지금은 사라진 PDA폰으로 기록했던 기행기입니다. 오래전 펜슬로 눌러가며 기억을 담던 때를 추억하며 당시와 지금을 돌아보는 시공을 추월한 기행기를 씁니다.
2005.10.9
멀리 가는 날은 역시 새벽부터 깬다. 간밤 3시도 넘어 잠들어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5시 50분에 일어난다. 어릴 때 소풍 가는 날 설레며 밤잠 설쳤던 것처럼 아직도 설레는 맘이 있는 어린애인가. 로리가 처음엔 별 기척 없더니 분주히 움직이니까 "또 어딜 가시나?" 하고 ** 없는 것을 두리번거리며 확인하더니 거실로 나온다. 로리는 **를 제일 무서워한다.
7시에 집을 나선다. 로리가 여행가방 끌고 나가는 것을 보고 눈치챈 듯 안달한다. 아이에게 과자 하나 주고 꼬시라고 얘기하고 빠져나온다. 오늘 아침엔 로리의 큰 눈이 좀 맑아 보여 맘이 편했다. 7시 40분 공항버스를 탔다. 흑석동으로 돌아가는 버스 손님은 나를 포함해 셋뿐이다.
역시 나는 먼저 와서 기다리는 체질이다. 출장 파트너인 S는 30분 늦게 도착했다. 약속시간에 늦게 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사실 기다리는 것도 시간낭비다. 누군가의 1분은 생사가 달린 시간이기도 하고, 중요한 일의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시간이다. 그럼에도 항상 먼저 기다리는 편이다. 아니 항상 기다린다. 남을 기다리게 하느니 내가 조금 먼저 나가 기다리는 게 오히려 맘에 안정을 얻는다. 그래서일까... 받아들이는 것도 잘하고 기다리기도 잘하는 삶을 살고 있는 듯하다. 어떤 일이 펼쳐질지 모르는 앞길이다. 졸지에 어려움을 많이 겪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여행 시의 기다림은 즐거움이다.
S가 도착해 우리는 일찍 수속을 시작했다. 먼저 해놓고 면세점에 들러 조금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는 게 낫다. 어디선가 "끄응 이 이잉" 내 귀에 익숙한 소리가 들린다. 두리번거려 소리의 진원지를 찾는다. 역시 멍멍이 한 마리가 캐리어 안에 들어있었다. 세상에! 녀석은 엄마하고 네덜란드까지 간단다. 두고 온 로리 생각이 났다. 로리와 제주도라도 같이 가고 싶었는데... 로리는 퍼그라 살이 좀 쪘다. 살을 빼지 않으면 화물칸에 실어야 하니, 아이가 견디기 힘들 것이다. 돌아가면 열심히 산책시켜 살 뺀 후 비행기 한번 태워보리라는 꿈도 가져본다. 로리는 이 꿈을 이루지는 못하고 2011년 열다섯 살에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퍼그(pug) 치고는 꽤 오래 살았다는 주위의 위안도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반려인들은 알 것이다.
보고 싶은 로리
면세점에서 아이쇼핑을 즐긴 후 비행기를 탄다. 막 이륙 중이다. 독일은 정말 가고픈 나라 중의 하나였다. 이번 출장은 클레베에 있는 공장 방문과 퀼튼 메세에서 열리는 전시회를 이틀 참관하고 나머지 자유시간으로 여행하는 것이다. 일주일간의 여정이 보람 있고 즐거운 시간으로 이어지길 기도한다. 숙소나 이동 조건은 인터넷으로 사전 준비를 해 왔다. 안전벨트를 풀어도 된다는 사인이 나온다. 이제 정상궤도에 올라 비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승무원이 음료를 서비스한다. 튼튼하고 씩씩해 보이는 승무원들이 부지런히 다니면서 계속 먹을 것을 준다. KLM의 서비스도 나쁘지 않다. 국적기보다 친근감은 덜하지만 꾸미지 않은 소박함이 정겹다.
가져온 피터 드러커 박사의 자서전을 읽는다.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피터 드러커 박사는 미국의 경영학자. 현대 경영학을 창시한 학자로 평가받으며 경제적 제원을 잘 활용하고 관리하면 인간생활의 향상과 사회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런 신념을 바탕으로 한 경영관리의 방법을 체계화시켜 현대 경영학을 확립하였다(네이버 지식백과). 전대미문의 IMF사태를 겪으면서 직장인들은 이전과는 다른 의식을 갖게 되었다. 종신토록 보장해줄 줄 알았던 직장은 상황에 따라 종업원들의 평생고용을 보장해 줄 수 없는 시대로 들어선 것이다. 어떤 일이 펼쳐질지 모르는 인생이라는 망망대해를 어느 정도 지탱해 주었던 것이 종신고용의 직장이었다면 앞으로의 세상은 얼마가 걸릴지, 어느 곳 일지도 모르는 항해를 스스로 헤쳐나가야 하는 시대로 돌입하게 된 것이다. 이때만 해도 우리는 분명 이때가가장 힘든 시기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불어 닥친 금융위기, 2010년대 초, 남유럽 경제 파동에 이어 지속적인 경제 위기는 2019년에서 지금까지 부동산 사태와 코로나 팬데믹으로 대다수의 서민들이 설자리마저 위협받는 위기에 처하게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십 년마다 한 번씩 찾아온다는 경제위기는 구분도 없고 이미 앞으로의 세대는 이전보다 나은 시절을 경험하고 살기는 힘들지 모른다는 불안감마저 안겨준다. 어쩌면 자기 계발과 자기 경영의 바람을 불러일으켰던 이 시기의 자각은, 오히려 돌아보고 추스르고 나갈 수 있는 고마운 기회를 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편으론 이제까지는 조직에 속한 자신의 가치와 평가에 의한 인정이었다면 앞으로는 오롯이 자신의 가치와 능력에 따라 설 수 있는 좋은 부분도 있다고 생각되지만, 어떤 의미의 "함께"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앞으로 펼쳐질 일들이 낯설고 어려운 점도 많을 것이다. IMF사태가 지난 몇 년 동안 우리 직장인들의 자기 계발 필요성을 극대화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피터 드러커 박사의 여러 저서는 직장인들이 애독하는 필독서가 되었다. 피터 드러커 박사는 "지식노동자" "지식근로자"라는 표현을 처음으로 사용하고 방법을 제시했다. 각 개인들 스스로도 성장하기 위해선 경영자의 마인드로 자신의 인생을 책임지고 관리해 나가야 한다는 "자기 경영"의 중요성을 일깨워 왔다. 그의 명저 "프로페셔널의 조건 The essential Drucker on Individuals )"은 몇 번이고 읽어도 성찰하게 만드는 책이다. 요즈음은 여러모로 다양하게 쓰이는 "프로(Professional)"라는 개념의 의미를 실사회에 에 적용토록 만든 발판을 놓은 분이 아닌가 싶다. 프로는 진정한 프로가 되어야 한다고 한다. "지식을 갖춘 자는 이해받기 위해 노력할 책임이 있다"는 그의 말은 언제나 깊이 생각하게 한다. 드러커 박사의 경영철학에 깊이 공감하고 평생을 기울인 그의 열정에 경의를 표한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서 사랑과 존경을 받는 분이리라. 나 역시 변화하고자 노력하며 역동적이고 자율적으로 개척해 나가는 지식근로자라 생각하기에 조직에서는 물론 개인적으로도 모토로 삼고 노력하기도 한다.
음료수를 계속 준다. 커피도 콜롬비아 커피라 그런지 연하면서도 맛이 있다. 기내에서는 피부도 건조해지고 답답하다. 10시간 반을 넘는 비행시간이니 책을 읽어도 시간이 잘 안 가는 듯하다. KLM 기내식도 괜찮은 편이고 좌석도 약간 넓은 듯하다. 비빔밥만 차이 나지, 대한항공보다 못할 것이 없다. 씩씩한 여승무원들이 계속 움직인다. 여성적인 단아한 모습으로 힘들게 기내 일을 하는 국적기 항공사 승무원들을 보면 좀 더 편한 복장은 어떨까 싶은 생각이 잠시 든다. 물론 외모는 우선적으로 비치는 자신의 모습이기에 중요하기도 하다. 그래서 외모를 받쳐주는 물건도 중요할지 모른다. 공항 면세점에선 평소에 돈을 쓰지 않던 분들도 여행의 분위기에 맞춰 이번에는 "명품 하나쯤 장만~"의 분위기가 넘쳐난다. 출국하기 전 면세점의 모습도 그랬다.
그때나 지금이나 명품사랑은 계속된다. 샤* 백을 사려는 사람들로 도배된 뉴스를 본다. 다만 블룸버그통신에서 한국의 집값이 치솟으면서 20~30대가 결코 집을 살 수 없다는 상실감에 빠진 것도 명품에 집착하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는 기사는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이십 년 전보다 나아진 것이 없는 것 같은 현실에...
드디어 스키폴 공항이 보인다. 스키폴 공항은 암스테르담에서 남서쪽으로 11km 떨어진 하를레메르메이르에 있는 국제공항이다.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국제공항으로 KLM과 델타항공의 허브공항이며 승객이나 화물로도 세계 10위안에 드는 큰 공항이다.협력업체에서 보낸 기사분이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연세가 지긋하신 할아버지였다. 벤*택시인데 본 적이 없었던 커다란 승용차였다. 좀 오래된 듯한 클래식카로써 할아버지께서는 자부심을 가지고 운전하시는 것 같다. 자동차 전용도로인 아우토반을 달리는데 상당한 속도를 낸다. 운전하시면서도 이런저런 얘기를 펼쳐놓는다.
달리는 중에도 오른쪽을 가르치며 원래는 육지보다 낮은 해수면이었는데 간척사업을 통해 개간한 곳이라한다. 네덜란드는 세계에서 목축업이 가장 발달한 나라 중의 하나다. 소들을 아주 추운 겨울 빼고 일 년 사시사철 푸른들에서 방목하여 키우는 낙농국가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아우토반을 달리다 보니, 펼쳐진 푸른 초장이 끝이 안 보일 정도다. 곳곳에서 무리를 이루어 풀을 뜯고 있는 소들이 여유롭게 보인다. 왜 세계적으로 낙농이 유명한지를 알겠다. 자유가 뭔지 아는 젖소들이 만들어주는 우유는 오죽 좋을까. 벤츠인데도 뒷좌석에 앉아 그랬는지 속이 메슥거리고 울렁거려 혼났다. 원래 멀미끼가 있는 사람이라 주로 운전을 하는 편이다. 운전하면 신기하게도 멀미가 없다. 독일로 들어선 아우토반에선 흔들림도 없이 180km가 넘도록 달린다. 달리는 내내 산 하나가 보이지 않는다.
차안에서 보는 흐린 풍경
우리가 가는클레베(Kleve)는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에 위치한 도시로 면적은 97.79 km2, 높이는 12m, 인구는 51,047명(2016년 12월 31일 기준), 인구 밀도는 520명/km2이다. 행정 구역상으로는 뒤셀도르프 현에 속한다. 라인 강 연안과 접하며 네덜란드 국경과 가까운 지점에 위치한다. 1092년부터 1795년 프랑스에 합병되기 이전까지 존재했던 백 국이자 공국인 클레베 공국의 수도였던 곳이며 1242년에 도시 지위를 부여받았다(위키백과).
예약한 호텔은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제법 큰 호텔 Kleve 였다. 흰색과 검은색으로 꾸며진 호텔 내부는 아주 깨끗하고 널찍했다. 주변이 시골이라 그런지 숲이 우거진 정경 속의 호텔이 아름다웠다. 20년 전의 일이니, 지금의 호텔 모습은 아마 리모델링을 한 것이리라. 간단한 저녁을 하고 일행과 함께 동네 산책을 나왔다. 찻길 옆엔 자전거와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작게 포장된 길이 있고, 그 사이엔 풀길로 구분해 놓았다. 가는 길에 있는 집들은 대부분 숲에 가려져 있다. 클레베 시내에서 약간 떨어진 곳인 데다 가로등도 별로 없고 숲은 우거져 동네는 아주 어두웠다. 널직이 떨어져 있는 집들의 창문으로 비춰 나오는 노란 불빛에서야 사람 사는 동네로 보인다. 멀리까지 풍겨오는 노란 불빛에 저녁이 있는 삶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쓸쓸하게도 따뜻하게도 보였다.
어느 지인에게 들은 얘기가 생각났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국에 나가 살 때 가장 힘들어하는 것 중의 하나가 저녁 문화 차이라는 것, 유럽이나 호주 같은데도 대부분은 4~5시면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가족과 저녁을 보내기에 혼자 있는 사람이나 가족과 더불어 하는 삶에 익숙하지 않으면 힘들다는 것이다. 물론 얼마 전에 유행했던? 저녁이 있는 삶, "휘게"를 외치며 여유와 쉼을 할 수 있는 근무시간 등을 정책적으로도 얘기하곤 했지만, 우리나라는 저녁에 함께 하는 문화가 있는 나라기도 하다. 밤문화가 있어 퇴근 후 친구, 동료들과 어울림을 즐기며 때로 삶의 피로를 풀어가기도 한다. 물론 코로나 팬데믹 이후 이 분위기는 많이 달라졌다고 하고 소소한 즐거움으로 조용하게 지내는 저녁 문화도 많이 생기기도 했다. 그래도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저녁 문화가 조금씩 살아나 경기에도 회복을 준다고 하니, 각각의 문화가 있는 법이다.
20분 정도 지나 마을 중심가에 왔지만 가게는 정말 다 문 닫고, 호프집과 카페만 문이 열려있다. 상점은 이미 다섯 시 전에 문을 닫았다고 한다. 되돌아오는 길, 공기가 얼마나 청량하고 하늘의 별들은 총총한지, 드문드문 보이는 집에서 스며 나오는 불빛에서 행복한 가족의 모습을 본다. 밤에도 환한 불빛으로 온 도시를 밝히는 조명에 익숙한 내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모든 것이 갖춰진 올인원 아파트 생활에 익숙한 우리 생각엔 겨울이면 춥지 않을까 뚝 떨어져 생활하니 불편한 점은 없을까 는 염려도 든다.
아파트는 20세기 건축물이긴 하지만, 과학기술의 발달 덕으로 더 진화해가는 곳이기도 하다. 건축공학적으로의 안전성이 더 확보되어야 하고, 스마트 아파트로서의 성장을 유도하고 있다. 문득 이러한 과학기술적인 혜택이 어느 날 사라진다면 아파트는 어떤 건물로써 정착될 수 있을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해본다. 좁은 땅에서 살아가야 하는 운명을 개척하는 수단이긴 해도, 미래를 생각한다면 너무 아파트만 짓지 말고 땅을 밟고 사는 집도 지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후손들에게 미안하지 않도록 말이다. 언제부터 우리는 불편한 것을 용서하지 못하고 살게 되었는지... 여행을 할 때마다 느끼는 점은 선진국일수록 불편한 것도 감수하며 역사와 자연과 더불어 함께 만들어 가는 생활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란 생각이 든다. 내 손으로 만들고 때 묻고 길들여진 공간들에서 자신의 철학을 쌓아가는 모습이 쌓이지 않을까.
돌아오는 길에 찍은 호텔의 야경
동네를 한 바퀴(?) 돌고 호텔로 들어와 호텔 주변을 돌아본다. 바로 옆에 스포츠센터가 있고 우리나라 메가박스 같은 영화관과 커다란 카페테리아가 들어있는 복합쇼핑몰 같은 곳이다. 주민들의 오락과 휴식의 장소로 이용되는 듯했다. 아직 8시도 안 되어 우리도 테이블에 앉아서 지역의 유명한 음식이 있는지, 둘러보았다. 독일의 유명한 흑맥주가 생산되는 곳이라니 일행은 한잔 시켜본다. 바로 옆에선 마을 사람들이 부부끼리 나와 마주 보고 앉아 글라스에 맥주 한잔씩 단출히 두고는 이야기를 한다. 요란하지 않게 조곤조곤 얘기들을 나누고 있다. 단출하고 경직되어 보이는 모습이 부부 모임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모임 풍경과는 너무 다른 모습에 신기했다. 독일인 다운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