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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Apr 17. 2023

스마트폰으로 쓴 두바이 기행기 1


  2020.01.22 ~ 2020.01.25까지 아버지를 모시고 지인들과 함께 두바이를 다녀왔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직전의 여행이라 기억에 더 남는 것 같습니다. 갤럭시 노트5와 리코 카메라로 여행의 추억을 남겼습니다.




 2020.01.22

 간밤뒤척이다 일찍 일어났다. 아버지를 모시고 가는 여행이라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았던 탓인지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일행들과 함께 대절 버스를 타고 아침 6시에 인천공항으로 출발했다. 친절한 **님이 김밥을 준비해 와 아침으로 먹으며 버스 안에서 휴식했다. 8시 40분경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탑승수속을 마친 후 조금 쉬다 11시 44분 탑승한다. 12시 15분 출발예정이다. 9시간 40분의 예상비행시간이 짧은 편은 아니고 아버지를 모시고 가는 여행이라 약간 걱정되지만, 이전 스페인 여행도 잘 다녀오셨으니 괜찮으실 것이다.


 이번 여행을 출발하기까진 우여곡절이 많았다. 회사 지인들과 그 가족과 동반하는 여행이고 나 역시 가족들의 배려로 아버지를 모시고 가게 됨에 감사했는데, 중국에서 발생한 코로나로 인해 뒤숭숭했고 무엇보다 이란과 미국의 신경전으로 제2의 중동전까지 얘기 됐을 정도로 국제 정세가 불안해 여행을 못 갈 수 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께 두바이 관광을 시켜드리겠다 약속까지 했기에 여건이 잘 풀어지길 간절히 소망했다.

감사하게도 우리는 예정대로 여행을 하게 되었다. 이후 3월부터 급격해진 코로나대처 환경을 생각한다면 그때 아버지를 모시고 다녀온 두바이 여행은 아버지께 정말 잊지 못할 여행을 선물한 것이 되어 다행스러웠다.


 우리는 아랍에미레이트의 국영항공 에띠하드(Etihad Airways) 항공기를 이용했다. 거의 10시간의 긴 비행시간이 염려되었지만, 아버지 좌석은 지인들의 배려로 입구 넓은 곳으로 해 그나마 편하게 여행하실 수 있었다. 이코노미석이라도 넓은 곳은 150불 정도의 요금을 더 지불했다고 한다. 더 좋았던 점은 빈 좌석이 많아 세 자리를 이어 누워 가실 수 있도록 했다.


 나도 자리를 옮겨 두 자리를 차지하고 편한 여행을 한다. 짬을 이용해 여행 시 취미인 스케치를 하고 있는 중에 남자 승무원이 와서 계속 멋있다며 잘 그린다고 칭찬을 한다. 전문 화가가 아니라 취미로 그리고 있다 하니 자기 부인 사진 주면 그려줄 수 있는가 묻기에 그건 어렵겠다 했더니 몹시 아쉬워했다. 마테오라 사원 스케치에 사인을 해 선물했더니 너무 좋아한다. 여행 다니면서 짬짬이 스케치를 하지만, 보는 분들이 더러 좋다고 하면서도 이분처럼 정말 좋아서 칭찬한 분은 드문듯하다.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칭찬받으니 기분도 좋지 않겠는가?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것처럼 이 승무원은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그림 한 점을 선물 받았으니 손해 될 건 없었다. 앞으로 스케치(어반스케치)를 더 잘하게 된다면 내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선물도 해주고 싶다.


 그런데 어제 급히 버스에 타느라 핸드폰 충전기를 빠트린듯하다. 정말 빠트렸으면...  걱정이다. 우선 여행일지를 못쓴다. 남들보다 노안도 빨리 왔는데 요샌 눈이 더 안 좋아지는 것 같다. 왼쪽 눈에 백내장끼도 있다는데, 노화는 눈부터 시작된다고 하는 말이 맞다. 아무리 부인하고 가꾼다 해도 그건 껍데기다. 속이 싱싱해야 하는데... 그래도 나이보다 건강하다는 말에 위안을 받긴 하지만 나이 들어가는 것은 어쨌든 서글픈 일이다. 아버지 앞에서 할 얘긴 아니지만... 그래 그러자! 나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맛있게 익어가는 중이라고... 


 스케치를 마치고 잠깐 눈을 붙이고 나니 한국시간으론 오전 11시, 현지 시간으로 오전 6시, 몸이 찌뿌둥한 것 같은데, 아버지께선 여전히 호기심 충천이시다. 바깥을 보시고 사진도 찍고 아이패드 미니로 정리하시고 바쁘시다. 즐거운 여행을 하시는 것 같아 다행이다. 멀리서 아부다비 야경이 보인다. 화려한 불빛으로 반짝이는 황금으로 치장한 도시 아닌가 새벽이지만, 반짝이는 네온사인과 불빛덕에 화려한 저녁인 듯싶다. 긴 비행을 마치고 아부다비 공항에 도착한다.


 오전에 도착해서 하루일정을 일찍 시작한다.  우리를 맞이 한 가이드분은 파키스탄인으로 서울대학교에서 대학원까지 공부하고 귀국한 한국통 파키스탄인 P 씨였다. 한국말이 유창할 뿐 아니라, 한국생활을 10여 년간 한 분으로 한국문화에도 익숙하고 한국을 사랑하는 분이었다. 짧은 여행길이지만, 두바이와 아부다비에 대한 여러 설명으로 우리의 궁금증을 채워줄 분이다. 본인 소개를 하신 후 다니면서 그때그때 필요한 설명을 상세히 해주겠다고 했다.


 유럽 갈 때는 카타르공항이나 두바이공항을 경유해 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두바이는 여러 번 왔었고, 몇 해 전 스페인을 다녀올 때도 두바이에 들러 잠시 여행을 한 탓에 익숙하기도 하다. 그저 석유 때문에 부자나라가 된 두바이로만 스쳐 생각했을 뿐인데, 이번 여행에 좋은 가이드를 만나 두바이에 대해 공부하게 되어 기대가 된다.


 두바이는 페르시아만 남동쪽에 있는 아랍에미레이트의 최대 도시며 면적은 제주도의 3배 정도크기로 아부다비보다 적다. 아랍에미레이트(United Arab Emirates; UAE)는 7개의 토후국으로 구성되어 있고 두바이는 두바이토후국의 수도이다. 아랍에미레이트의 7개 토후국 중 두바이와 아부다비만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고 실질적으로 아랍에미레이트의 주권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랍에메레이트는 산유국이지만, 사실 두바이에는 기름이 거의 나오지 않고 아부다비에서 많이 나온다. 두바이는 원래 대추야자와 진주양식으로 생활했던 빈국이었지만, 부동산 개발 투자 산업으로 도시변모를 꾀하였고 허브공항으로 인지를 높이면서 최근에는 국제적인 금융, 투자개발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다.


https://ko.wikipedia.org/wiki/%EB%91%90%EB%B0%94%EC%9D%B4


 다소 생소한 토후국은 아랍에미리트 연방 정부와는 별도로, 독자적인 관할 구역과 역내 관할권을 보유하고 있어 준독립국에 가깝다. 연방 정부의 역할은 군사와 외교 분야 등 일부에 불과하며, 대부분의 권한은 토후국이 자치적으로 행사한다. 아랍에미리트는 대통령제만 각 토후국은 왕정을 유지하고 있다. 둘 사이에 서로 다른 체제는 존중되며 침해하지 않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다. 중앙 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은 아부다비의 지도자로 자동 선출되고, 부통령과 총리는 두바이 지도자로 지명된다. 이들의 지명도 일곱 토후국의 지도자로 구성된 최고회의에서 이뤄진다 (위키백과).


 시내로 가는 대절 버스 안에서 가이드 P 씨가 인사말을 알려준다. 앗쌀람 무 알라이쿰 (Assala mu Alaykum! 안녕하세요~) "신의 축복이 함께 하길"의 의미를 내포한다. 아랍권에서의 인사말은 기본적으로 신에 대한 기도라 할 수 있다. 흔히 알려진 인샬라 (In sha a allah, 신이 허락한다면 나는 할 것이다, 신의 뜻대로)는 모든 결과를 알라(신)의 뜻에 맡기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더불어 쓰이는 먀샬라 (Ma sha a allah) 신의 축복이 있기를, 알라의 축복을 기원한다는 말이다. 태어남도 죽음도 신의 뜻대로 일진대, 매 순간을 신께 바치고 신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것은 그들의 당연한 일상이다. 아랍권을 여행할 때는 알아둬야 할 말이라곤 하지만, 언제나 아랍권을 자유롭게 여행하게 될진 모르겠다. 그래도 어릴 적 꿈을 심어준 이집트를 속속들이 여행해야 할 날을 생각한다면 잘 알아둬야겠다.

 

 오늘이 일정 중 제일 힘든 날 일 것이라면서 먼저 두바이에서 최고 높은 "부르즈 할리파" 빌딩으로 향한다.

부르즈 알리파빌딩은 2010년에 우리나라의 삼성물산이 포함된 세 시공사가 건설을 시작했지만, 500m 이상의 높이부터는 삼성물산 건설부문에서 단독으로 지어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높이는 첨탑을 포함하면 829.8m(2,722ft), 정식 높이는 828m(2,717ft)다. 2011년 개봉한 영화 "미션임파서블(고스트 프로토콜)"에서 톰 크루즈가 특수 장갑을 끼고 고층건물의 유리벽을 타고 오른 장면이 인상적이었던 바로 그 건물이다.


 저녁에는 멋진 분수쇼로 두바이를 대표하는 명소로 사람들을 끌어모으기도 한다는데 야경은 내일 저녁에 관람키로 했다. 입장권을 끓고 전망대 124층과 125층 (452m)로 올라 사방으로 두바이 시내를 구경했다. 전망대에 올라서야 사막 한가운데 형성된 도시의 장대함을 한눈에 목격할 수 있었다. 전망대로 오르는 동안 이 고층건물을 세운 모든 과정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게시해 놓아 볼 수 있게 했는데,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애국심이 각별하신 아버지께서는 우리나라가 정말 대단하고 자랑스럽다고 좋아하셨다.


 전망대에서 보면 새로운 건물로 한창 공사 중인 지역과 낡은 건물의 옛 두바이 지역도 보인다. 두바이는 2022년 세계무역박람회를 위해 도시 단장에 한창이라고 한다. 안 그래도 새로 지은 높은 건물로 가득한 도시를 더 신선한 것으로 채우고 인정받으려 애쓰는 노력이 보인다. 아마도 미래먹거리와 연결된 구상일 것이다. 이미 무역과 경제중심지로 자리를 굳히고 있긴 하지만, 미래를 위해선  현재로도 부족하다고 여기나 보다.

문득 80~90년대 개발 한창이던 우리나라가 생각났다. 물론 지금도 여기저기서 개발이 진행되곤 있지만 지자제의 존립을 위한 개발이 많아, 국가적인 미래를 생각하며 현재를 희생하는 부분은 아쉬운 것 같다.

전망대의 인증숏장소는 사진을 남기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아버지께 찍어드리고 나도 두 팔 활짝 벌리고 한 장 찍었다. 미래를 향해 힘차게 날아가는 새가 되어... 


 전망대에서 내려와 두바이의 멋진 사진에 빠지지 않는 "버즈 알 아랍 주메이라" 호텔이 있는 주메이라 지역으로 향했다. 두바이를 대표하는 3대 지역 중의 하나인 주메이라 지역은 주로 해변가 부유촌을 말한다. 두바이 외곽의 가난한 주메이라지역은 1970년부터 개발되기 시작했고 세계무역센터가 들어서면서 1990년대 후반부터 급격한 개발이 이뤄지며 두바이의 대표적인 부유촌으로 개발되었다.  


 P 씨는 차 안에서도 재미있게 설명을 이어간다. 우리나라에서도 잘 알려진 만수르는 두바이 최고 갑부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아부다비인이다. 아랍에미레이트에서도 두바이보다 아부다비가 제일 부유한 토후국이라 한다. 두바이는 그동안 개발하면서 돈을 많이 써 현재 아부다비에서 빌려 쓰고 있는 형편이라고 한다. 두바이는 사막에 세워진 도시답게 생활환경도 조성된 것이라 물가가 아주 비싸다. 15평 정도의 아파트월세가 150만 원 정도이며 관리비 따로 내야 하고 특히 수도세가 아주 비싸다고 했다. 코로나 이후 지금 물가는 훨씬 더 비쌀 것이다. 세계의 명차들은 다 모인 듯 지나가는 차 구경만 해도 심심하지 않을 정도다. 두바이에서 자동차번호판은 숫자가 적을수록 부자가 타는 차라고 한다. 1번이 왕족이 타는 차다.


 주메이라 해변가에서 닻모양으로 유명한 세계에서 제일 좋은 호텔 중의 하나라는 부르즈 알 아랍호텔을 보며 사진도 찍고 바닷물도 만져보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해변가에는 리조트 같은 건물을 짓는지 공사가 한창이다. "두바이는 공사 중입니다"라는 표현이 현재 두바이를 상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여기저기서 공사가 한창이고 해변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팜주메이라와 그 끝의 아틀란티스 호텔로 가는 길은 트램을 이용하기로 했다. 멀리 섬의 끝에 아틀란티스호텔이 보이는 팜 주메이라 (야자수모양의 섬) 인공섬은 바다를 매립하여 야자수모양으로 만들고 각각의 잎모양의 지역에 주택을 지어 분양했다. 물론 집 앞에 개인 비치까지 소유할 수 있도록 했고 우리나라의 모 연예인도 구입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트램아래로 보이는 개인 별장들은 뜨거운 햇살로 바로 집 앞의 바닷물속의 모래까지 훤히 들여다 보였다. 집 앞마당이 아니라 집 앞바다수영장을 가지고 있는 집들이다. 야자수를 둘러 둥근 테두리 모양의 지역에는 리조트와 휴양시설, 식당 카페 등 여러 상업시설들이 있어 현지주민은 물론 관광객들의 방문이 끓이질 않는다고 한다. 돌아오는 길에 가이드 P 씨가 팜 주이라를 둘러싸고 있는 방파제역할을 하는 거대한 돌들을 가리키며 사막에서 이렇게 큰 돌을 보는 것이 신기하지 않으냐고 묻는다. 그는 돌들은 이웃나라 오만에서 모두 수입한 것이라 했다.


 모래뿐인 나라에서 안전한 지반을 조성하여 고개 들어 쳐다보기도 목 아플 정도의 고층건물들을 즐비하게 짓고, 숲과 바위로 모래가 아닌 땅을 밟고 사는 세상처럼 만들어 놓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자본력을 쏟아부었을까 생각하니 21세기의 힘은 이념도 기술도 아닌 황금, 자본력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씁쓸하게 든다.

자신들이 노력해 만든 것이 아닌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땅속에 있는 혹은 천혜의 자연조건, '부동 자산'으로 오늘날 '부富'구축해 나가는 여러 나라들, 그중 '검은 황금' 산유국들이 누리는 돈의 힘은 알려진 바다.

그에 비하면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황금'없이도 세계굴지의 경제 대국으로 우뚝 서가는 우리나라가 자랑스럽기도 했다.


 팜주메이라를 보고 민속 재래시장으로 향했다. 재래시장이라지만 현대식 건물로 특별히 구경할 것도 없어 이슬람 재래시장 안의 별다방에서 인공적으로 조성된 분위기에 잠시 젖어 보았다. 두바이의 개방성과 개성 때문 이긴 해도 이슬람문화가 가득한 곳에서도 별다방은 성행하고 있으니 자본력도 중요한 듯하다.


 호텔로 이동해 짐을 풀고 잠깐 휴식한 후 3시부터 사막투어를 한다고 했다. 고층건물로 가득했던 두바이에서 원래의 두바이로 사륜구동차를 타고 달려갔다. 빌딩숲에서 얼마를 달렸을까. 누런 사막이 나왔다. 두바이사람들은 스트레스해소하러 바다로 달려갈 수 도 있지만 끝없이 넓은 사막으로 달려가 도 되겠단 생각이 문득 들었다. 사륜구동차는 사막을 이리저리 오르락내리락 쉴 새 없이 스릴 넘치게 달렸다. 아버지께서도 힘들어하시지 않고 사진을 찍으며 즐기셨다. 사막의 고속도로도 신기했다. 한참 동안의 사막주행을 즐긴 후 일행을 한 곳으로 내려 주었다. 발이 푹푹 빠지는 사막체험을 시작했다. 물론 오랜 시간은 아니었지만, 언제 또 쉽게 사막체험을 나와보겠는가.

 

 우리 일행은 준비헤온 스카프를 두르고 모래언덕에서 뛰어다니며 구르기도 하고 사막을 몸으로 체험해 보았다. 여기 사막이야 관광객을 위한 안전망이 준비되어 있겠지만, 옛날 사막에서 살던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면 그들의 독실한 신앙관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주변이라곤 밤에는 별과 낮에는 누런 모래, 내려주시는 비가 없다면 생명을 이어가기도 곤비했을 삶이었을 것이다. 한편으론 이런 모래사막을 개척해 두바이라는 도시국가를 건설한 현대문명기술에도 경외감이 든다. 무엇보다 기름때 묻은 돈, 경제의 위력이 오늘날의 신앙처럼 굳건하게 잡아주고 있다는 아이러니...


 즐거웠던 사막체험을 끝내고 베두인관광마을로 와서 그들이 펼치는 쇼를 보면서 저녁을 먹는다. 한국사람의 입에는 맞지 않을 음식도 있을 것이라 해 미리 준비해 온 컵라면, 밑반찬 등을 놓고 사막의 불빛아래 함께 모여 식사를 하고 쇼를 즐겼다.


 온갖 풍파를 겪으신 힘든 인생을 보내셨음에도 신앙의 힘으로 늘 즐겁고 긍정적으로 사시는 아버지께는 배울 점도 많다. 구순이 다 된 연세에도 뭐든지 배우고 적응하시며 사시는 모습은 자녀들의 삶에 귀감이 되기도 한다.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 발꿈치에 미치기도 부족한 효심이지만 어린 시절 어렵고 엄하게 각인된 아버지 모습이 잠재적으로 남아있어서 인지 잔정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편이다. 그래도 홀로 남으신 아버지께 좋아하시는 여행 시켜드리면서 잠시라도 효도할 수 있음에 즐겁고 감사한 하루였다.



곳곳에 들어 선 고층건물들 같은 모양은 하나도 없다.

트램을 타고 내려다본 팜주메이라의 주택들

멀리 아틀란티스가 보이는 해변에서 사진 찍으시는 아버지

즐겁게 사막투어 하시는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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