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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Feb 15. 2023

스마트폰으로 쓴 교토 기행기 3

아라시아마 (대나무숲(치쿠린),  텐류지, 도게츠교), 여행후기


20221213

어제 나름 조심한다고 했지만 큰 차이는 없다. 소식하고 탄수화물은 줄인다고 했지만 플레인 요구르트를 많이 먹어서인지도 모른다. 요구르트에도 유당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도 식이에 신경을 쓰니 낮아질 것이라 믿고 여유 있는 여행을 즐기기로 한다.

간단한 조식 후에 호텔 주변을 걷는다. 어제 본 절 앞 해자 옆에 왜가리 비슷하게 생긴, 도시에서 보기 힘들 것 같은 커다란 새 어찌 보면 조선시대 비옷과도 비슷한 털옷을 걸쳐 입은 목이 긴 녀석이 앉아 출근길의 사람들에게 한마디 하면서 꼿꼿이 쳐다보고 있다.

“해브 굿데이”

“오늘도 낙담 말고 열심히 해~”

한 방울씩 내리는 비는 교토의 아침을 촉촉이 적시며 바쁜 아침을 열어가고 있다.

흐린 아침 색깔은 교토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밤을 겪었지만 낡은 거리는 깨끗하고 어디 한 군데 탁한 곳 없어 보이는 투명한 회색이다. 간밤에 공사하던 길은 표시판과 더불어 사람들이 지나다니기에 불편하지 않도록 잘 정리해 놓았다.

꽤 오래전 도쿄 출장 때 밤에 공사를 하는 사람들을 보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왜 굳이 밤에 하느냐"라고, 대답인즉슨 "밤에 하면 조금 힘들어도 많은 사람들이 공사 때문에 불편을 겪는 일은 적기 때문"이라는 답을 들었다. 물론 오래전 일이라 요즘은 많이 변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비슷한 이야기는 많다. 부모가 건널목에서 아이손을 잡고 신호등에 따라 움직이도록 교육하면서도 "만약 네가 신호를 위반해서 교통사고가 나게 된다면 운전하시는 분은 어떻게 되겠냐, 그 가족들은..." 자신도 다칠 수 있지만,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상대방이 입게 될 피해를 어릴 때부터 먼저 교육한다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나보다 먼저 남의 입장(상대방, 이웃, 나라 등)을 생각해야 한다(일본인의 관점에서)는 교육을 받고 자라기에 성장해서도 자연스럽게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일본인들이 대화할 때 "스미마생"이 먼저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인 것 같다. 뭘 잘못했다고 매사에 미안하겠는가 말이다.

나의 자유도 소중하지만, 내 자유의 일탈이 상대방에게 피해를 준다면 자유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짓는 것과 같다는 논리 아닐까. 요즈음 인터넷에 많이 올라오는 사건, 사고들의 배경에도 이기심과 욕심에서 시작된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자신을 견지하는 마음의 일부분만이라도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다면 훨씬 더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짧은 바람을 잠시 가져보는 아침이다.

 

조금 걷다 보니 오래된 구멍가게가 보인다. 낡은 진열 대속에 눈을 끄는 작은 굿즈가 보인다. “핸드메이드” 표시가 있는 술병 뚜껑 모음인데 압착한 양철 뚜껑에 강아지와 고양이 그림을 붙인 것도 있다. 맘에 딱 드는 선물 감이다. 강아지 병뚜껑에 강아지 캐리컬처를 붙이고 고리를 달아 300엔에 팔고 있었다. 여느 관광지에선 볼 수 없는 것들이다. 다섯 개를 샀다. 이른 아침에 가게 문도 열지 않은 것 같았는데 한쪽 구석에서 졸고 계시던 할머니는 마수를 하셔서 좋은지 기뻐하시며 핸드메이드 작품이라고 자랑스럽게 소개한다.  나도 내가 좋아하는 기념품을 사서 즐거웠다. 여행에서의 기념품은 나만의 추억을 느낄 수 있고 그 지역의 혼이 녹아 있는 것이 좋다. 비싼 것과는 상관없다.


할머니의 가게 모습과 공사현장

해자 주변에서 출근길의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는 커다란 새


오늘 우리가 보낼 일정은 교토 올 때마다 꼭 들린다는 사진 명소이기도 한 아라시야마를 가서 치쿠린(대나무숲)에서 산책하고 도게츠 교를 걸어보고 교토에서 뜨고 있다는 "응" 커피도 마시고, 주변을 돌아보는 것이다. 나는 무조건 오케이다. 치쿠린 숲은 사람들이 적은 아침이 좋다고 해 일찍 나섰다.

교토역에서 가메오카 가는 JR선을 시간 맞춰 탔다. 이른 아침인데도 열차는 만석이다. 교토의 회색빛 아침을 가르면서 기차는 기대에 찬 하루 창을 활짝 열고 달린다.


교토서쪽 사가노 지역의 아라시야마 공원에 위치한 치쿠린은 휴식과 편안함을 주는, 교토에 오면 꼭 들러봐야 한다는 자연명소이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게 자란 대나무들이 살짝 내린 비에 젖어 내뿜는 청량한 아침 공기는 간간히 스며드는 햇살사이로 수줍어하며 몸 안으로 스며들어 마음까지 씻어 주는 듯하다.

만물이 풍성하게 채워가는 계절에는 오히려 제 몸을 비워 다른 것을 포용하며, 만물이 색을 잃어가는 겨울에는 꼿꼿이 제 색을 지키, 세파에도 구부러 지지 않고 바르게 중용을 지켜가는 선비의 덕을 표상한 대나무의 진심이 사방에 널려 있다.

600미터, 조금 넘는 그리 길지 않은 산책로에 빽빽이 들어서 있는 대나무들은 살아있는 것만으로 채워져 있지 않다. 누렇게 말라버린 대나무들도 푸른 대나무와 함께 서 있다.

삶과 죽음은 원래 하나였다는 것을 말하기라도 하듯, 누 몸체들은 연초록의 싱싱함들과 섞여 조화롭기까지 하다. 키가 크고 작은, 몸통이 여리고 굵은, 산 대나무와 죽은 대나무, 막 올라오는 아이들까지 모두 하늘을 향해 서 있다. 중간중간에 심겨 있는 동백꽃의 붉은 색조차 푸른 대나무와 잘 어울린다.

자연이 만들어 내는 조화(調和)에는 어색함이 없다.

인간이 만들어 가는 조화(調和)는 돌출되지 않고 어울려야 하는 부담감에, 때론 개성(個性)조차 조화의 미명하에 묻혀버리기도 하지만, 자연(自然)이 만들어 내는 조화(調和)는 각 생명의 개성(個性)이 살아 어우러져 진정한 조화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만물이 반사하는 형형색색 생명체의 색은 물론, 인간의 눈과 귀로 본다면 불협화음으로 들릴지도 모르는 소리조차 어떤 심포니보다 아름다운 음악으로 오감을 살려준다.

자연은 대지 앞에 겸손해진 인간의 소박한 마음을 오케스트라의 부분으로 기꺼이 받아들여준다.

"삶이라는 투쟁" 속에서 상처받고 나약해진 인간에게 자연으로의 짧은 회귀는 재충전하는 힘과 격려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자연을 벗 삼아 살아야 하는 이유기도 하고, 인간의 교만함과 욕망으로 자연을 훼손시키지 말아야 하는 이유기도하다.  

치쿠린을 걷다 보면 사람의 손때나 아이디어가 빛나는 곳은 거의 없다. 아니 없었다. 그저 자라고 있는 대나무, 죽은 대나무, 올라가는 대나무와 거꾸러진 대나무도 함께 그곳에 있을 뿐이었다. 그저 숲을 길로 놓기 위해 죽은 대나무(어니 그곳에서 죽었는지도 모르겠다) 테두리를 해 놓은 것뿐이었다.


요즈음 각 지방에서도 명소를 만들어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하루가 다르게 새롭고 재미있는 조형물이 들어서고 특색 있는 인공자연물을 조성하기도 한다. 지방의 발전을 위한 노력을 다각도로 모색하고 있지만 먼 미래에도 지금의 조형물이 여전히 사랑받을지는 모르겠다. 명소를 만들 때도 세월이 흘러도 사랑받고 마음의 위안이 될 수 있는 자연과 함께 하는 면을 좀 더 생각하면 좋지 않을까 싶다. 유럽의 많은 오래된 유적 특히 성당 같은 건축물들은 다시 세우기도 힘들 정도의 훌륭한 물이기에 사람들은 찾아보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렇게 위대한 건축물이 오늘날까지도 장엄하게 있을 수 있는 데는, 신께 목숨도 아깝지 않게 바치고자 했던 당시 사람들의 마음 바닥 골조가 깔려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신비감마저 드는 숲 길은 저마다 포즈를 취하며 사진도 찍고 고개 들어 하늘을 찌르고 있는 대나무와 함께 하려는 사람들의 열망으로 가득 차 있다.


바로 옆에서 "헥헥"거리는 소리가 들려 보니 한눈에 보기에도 늙은 레트리버가 아저씨와 산책한다.

어디가 아픈지 무거운 몸을 이끌고 컥컥거리며 끌려오다시피 걷는다

“복 많이 받은 녀석^^~~”

사진을 찍어도 괜찮냐고 물어보니 괜찮다고 해 라이트와 함께 한 컷 했다.

라이트가 건강하게 오랫동안 아저씨와 산책하길 빌어본다.

멀지 않은 장래에 나도 샐리와 보리와 이곳을 산책해 볼 수 있는 기쁨을 얻을 수 있기를 바라며 햇살이 갈라지는 대나무숲을 나온다.


아라시야마 길가 상점, 연통이 특색 있다. 산책하고 있는 늙은 레트리버

아라시아마 대숲에서...

아라시야마 대나무 숲

점심 백반,  아라시야마의 어느 집 대문풍경


이라시아마 대나무숲을 나와 쪽 이어진 도로를 걸으면 도게츠교가 나온다. 유명관광지이기도 하고 사람들이 꽤 많음에도 복잡한 느낌은 별로 들지 않는다. 가게나 거리가 조촐하고 2층이상의 높은 건물은 없어 시야를 가리지 않아서기도 하겠으나 산을 끼고 강이 펼쳐진 넓은 자연을 최소한의 시설과 꾸밈을 얹었을 뿐 본연의 모습을 그대로 노출되게 한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산주변으론 물안개가 펼쳐져 있고 막 올라온 햇살은 다리를 가로질러 흘러내리며 온갖 빛으로 반사되는 푸르른 하늘색채와, 아직도 붉은 초록의 단풍들에 번져가며 한 폭의 수채화 같은 풍경을 연출해 준다.

눈만큼 실사적인 카메라가 또 있을까마는 아둔한 머리는 마음폭에 담긴 장면을 제대로 인화시켜주지 못해서 아쉬울 뿐이다.

길가의 집들, 작은 공간 하나하나에도 정성과 관심을 기울여 가꾼 모습이 보인다.

나 역시 소박한 마당을 가꾸는지라 도움을 얻고자 이곳저곳의 사진을 찍는다.

강가에는 인터넷에서 유명한 "응" 커피 가게가 보인다. 앉아 마시는 공간은 없고 테이크 아웃하도록 꾸며진 작은 공간이다. 여러 종류의 원두를 팔고 번호표를 받아 들고 기다리는 사람들 대부분이 여행객(특히 우리나라...)인 것 같다. 종업원들이 그야말로 팔에 땀이 날 정도로 부지런히 커피를 추출하고 있다. 물론 커피야 기계로 뽑아내지만... 아침임에도 사람들이 많다.

커피하나로 이렇게 판매가 된다니 인터넷세상에서의 유명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눈으로 실감하고 있다.

테이크 아웃커피를 한잔 들고 카페 앞의 돌의자에 앉아 강풍경을 바라보며 짧은 스케치를 해본다. 알려진 명소라 해도 눈앞에 보이는 정경은 찾는 이만 없다면 영락없는 오래된 시골 풍경이다. 사람손을 타서 만들어진 것 같은 공작물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흐르는 물의 범람을 막기 위해 수로를 만들고 강 주변으로 돌을 쌓아 올렸을 뿐이다. 아침햇살은 흐르는 물사이로 제 맘대로 반짝이며 빛의 파장을 온누리에 펼치고 적당한 높이의 산에는 색색의 단풍과 푸르른 상록수들까지 어우러져 한 폭의 대지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차 한 모금 머금고 망중한을 즐기기에 딱 어울리는 풍광이다. 출장길에는 동료들과, 여행길에도 뭐 그리 바쁘게 다녔는지 이런 고요를 즐길 새가 없었는데 이번 여행은 여유롭고 쉼을 얻으며 걷는 여행이라 너무 좋다.

주변에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차고 넘쳐지만 그조차도 이런 풍광 속에는 적절히 어울리며 꾸며주는 자연 속의 한 점에 불과하다.


여유 가지고 충전하는 여행이기에 점심을 어디서 먹을 것인가를 찾으며 가게를 잘 들러본다. 특식이나 별미를 찾는 것은 아니니, 몇 곳을 둘러보다 소박한 백반? 집을 선택한다. 일본의 백반집은 우리와 다르다. 우리네 백반집이야 소박하다 해도 기본적인 반찬과 생선구이나 조림, 그리고 찌개와 국과 더불어 김이 모락 나는 흰쌀밥이 정다운 곳이지만 여긴 카레나 짠지 몇 조각의 반찬과 생선 튀김과 식은 밥, 작은 국물이 있는 도시락 같은 종류다. 우리는 비프커틀릿이 있는 도시락과 두부정식을 시켰다.

말간 국물에 연두부가 몇 조각 담겨 있다. 흰밥 몇 숟갈과 연두부와 밑반찬, 양념이 세지 않아 담담하고 깔끔한 맛이 의외로 입맛에 맞다. 나의 위장도 일본 답게 소박하게 비워가는 연습을 하고 있다.


도게츠교가 있는 가쓰라 강 풍광

도게츠교에서 바라본 산 풍경


걷다가 커다란 절을 본 기억이 나 찾아가 보니 "텐류지" 정원으로 유명한 오래된 사찰, 천룡사였다. 점심 후 텐류지 내 정원(소겐치 못 정원)을 관람하기로 했다. 텐류지(천룡사)는 1339년 창건한 절이지만 1356년부터 8회에 걸친 대화재로 휩쓸려 현재의 당우 대부분은 메이지 시대에 재건된 것이다. 텐류지 내 무소 소케키가 만든 정원(소겐치 못 정원)은 일본에서 최초의 사적, 특별 명승지 1호로 지정되고 1994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한다(안내 팸플릿). 특히 단풍이 아름다워 가을 명소로 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입장료 500엔을 내고 들어선다. 뭐라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없다. 입구 가까운 곳에 커다란 젠정원이 있다. 나도 마당 한쪽 구석에 젠 정원을 꾸며보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었는데, 바로 앞에서 커다란 젠 정원을 보니 느낌이 색다르다. 스님일지 혹 정원사일지 몰라도 아침마다? 저녁마다? 모래를 다듬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니다. 마음 비우기를 하면서 모래를 긁었을 것이다.

잰 정원은 주로 돌과 흰모래 이끼등을 사용하여 꾸민 일본식 정원인데, 흰모래는 바다, 청석은 폭포, 바위는 산을 상징한다고 한다. 제한된 공간 속에 최소한의 자연을 활용하여 꾸미고 현대인들의 복잡한 정신건강에 조용한 힐링으로 여유를 주기도 해, 이전에 즐겨 보았던 "몬티돈의 정원이야기"에서 영국인들도 꾸며 보고 싶어 하는 정원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절 마루에 앉아 바라보는 연못정원도 고요하고 아름답다. 방문하는 사람들도 관광객보다는 일본인들이 훨씬 많다. 연세 지긋한 분들이 마루턱에 걸쳐 앉아 한참을 바라보며 담소를 나눈다. 일본전통복장을 한 사람들도 많다. 아마도 자국민들이 사랑하는 아름다운 장소인 것 같았다. 서울의 비원이나 경복궁등의 정원을 보는 느낌이랄까. 한참을 앉아 쉬다 연못뒤의 언덕 정원으로 올라갔다. 나무 하나하나에 이름표를 달아주었다. 나무마다 긴 대나무 위에 정갈하게 쓰인 나무명패 하나씩을 달고 있었다. 자개로 깍지도 않았고, 유리로 새기지도 않은 비와 바람도 마다 안는 죽을 때까지 함께 할 명패다.

문득 마당의 나무들에게 이름표도 달아주지 않은 미안함이 솟구친다. 돌아가면 꼭 이름표를 달아주리라.

걷다 보니 한쪽에서 소박하게 인사하는 나무를 본다. 우리 집에 있는 아이정도되는 좀작살나무다. 여기서 만나 더 반가웠다. 옆엔 박태기나무인 줄 알았는데 백태나무라고 이름 달고 있는 아이, 명자나무, 일본어 한글로 이름을 표시해 놓았다. 아마도 한국인 관광객이 많이 다녀가기 때문인듯하다.

교복이 아닌 자유복을 입은 학생들이 야외수업을 나왔는지 인솔자 선생님이 설명하고 계시는데도, 얘들은 얘들이라 장난치고 떠들기도 한다. 뛰어다니는 아이들은 숲 속의 나무들과 한 몸이 되기라도 한 듯 전혀 어색하지 않다. 사실 아이들이야말로 자라나는 나무 아닌가. 나무도 아이도 하나가 되는 숲에서 버드나무 가지아래 펼쳐진 저 멀리 교토 시내를 바라본다.

쉬엄쉬엄 산길을 오르며 정원을 관람한 후 오밀조밀 아름답게 이어진 마을을 지나 역으로 걸어와 지하철을 탄다.


소텐지 정원 언덕에서 내려다본 풍경. 멀리 교토시내가 보인다.

소켄지 정원 내 연못

소켄지 정원의 나무들과 나무명패


20221214

이른 아침에 일어나 인터넷을 보니 아르헨티나가 3:0으로 이겼다. 사우디아라비아에 패했던 며칠 전의 분위기와는 딴판으로 온 나라가 축제분위기다. 역시 끝날 때까진 끝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인생은 살만한 것이기도 하다. 낫또 두 개로 조식을 때운 후 일찍 체크아웃을 하고 호텔을 나섰다.

3박이 어느새 지나고 하루카를 타고 간사이 공항으로 가는 일만 남았다. 시간이 빠르다는 것은 여행 때면 더 실감하게 된다.

낯선 곳에서 아침을 열 때마다 인생길 역시 여행살이라는 것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된다.

다음 순간(계획)이 이미 짜여 있다 해도 인생길의 순간엔 언제나 예측 못한 일이 기다리고 있을 수 있다는 사실만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시간에 정복당하지 않고 통제(건방진 표현일지도 모르지만…)할 수 있으며 어려움 없이 당당하게 맞을 수 있을 것이다.

하루카에 그려진 만화 주인공들~~ 촌스럽다, 유치하다고 할지도 모르겠다만, 나는 "어른인 우리들도 유치해야 하는 게 맞다"는 생각도 든다. 언제나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아가들의 본성이 우리 모두의 가슴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지 않은가. 아이 마케팅은 실패하기 어렵고 어릴 적 만화는 어른들의 추억의 고향이기도 하다. 하루카는 고객들을  만화의 주인공들로  맞이한다.

재밌는 생각을 하며 열차를 기다리는데 잠시의 상념도 허용치 않는 급한 방송이 나온다.

하루카 타는 곳이 30번에서 7번으로 바뀌었다는 방송이다. 10여 분도 남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사람들은 뭐라 한마디 불평도 않고 일어나 바뀐 곳을 찾아 움직였다. 자주 발생하는 일이라 그랬는지, "뭐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해서인지는 몰라도 묵묵히 일어나 바뀐 곳을 찾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아니 10분도 안 남았는데 뭐지?”

불평은 나만 하나보다.

우리도 7번 정착지를 찾아 나섰다. 급한 성격의 나는 뛰지 말라는 아이 얘기도 유의치 않고 종종걸음으로 찾아간다. 역이 커서 헤맬 뻔도 했지만, 다행히 잘 찾아 7번 위치로 왔다.

“못 타면 다음 차를 타면 될 텐데…

일찍 나왔으니 아주 빠듯하진 않았을 터인데…”

교토에서 “느림과 여유”의 여행을 즐겼고 잠시라도 일상을 내려놓고 쉬었지만 여행 마지막 날까지 바뀌지 못한 급한 천성은 바뀌기 힘듦을 또 한 번 보여준다.

늦지 않게 탄 하루카였지만 오늘은 유난히도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거의 30분이나 늦게 간사이공항에 도착했다. 이런 일이 저주 있지는 않겠지만 일본에서 이리 연착이라니 "스미마생"을 연발하는 방송에도 뭐라는 사람은 없다.

간사이공항이 예전엔 크다 생각도 들었는데 인천공항보다 훨씬 작다. 몇 분 안 걸리는 셔틀을 타고 12번 게이트로 왔다. 코로나 여파인지 공항 내 면세점도 적고 그나마 문 연 곳도 별로 없다. 패밀리마트가 하나 있는데 거짓말 보태지 않고 대기줄이 100미터는 족히 넘어 보인다. 모든 것이 풍성한 인천공항에 비해 너무 조촐하다. 물먹는 곳도 없어 자판기 앞에 기다려 물을 뽑아왔다. 3박 4일의 여유로왔던 여행길이 오늘 아침엔 바쁘게 엉겨졌지만, 투덜대지 않고 매사(事)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일본인들 삶의 태도에서 교훈을 얻어간다. 삶이 어찌 스케줄대로만 이어질까 …


공항 안에서 캐럴이 울려 퍼지고 있다. 최소, "머라이어 캐리"의 캐럴도 아닌 "빙 크로스비" 스타일의 캐럴이다. 올드 캐럴은 커다란 트리에 소박한 등으로 밝게 장식되어 있던 교토역에서도 은은히 울려 퍼졌었다. 교토사람들은 팬데믹에서 막 벗어져 나온 연말연시 분위기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았다.

일본의 특성을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사람들은 정치나 어울려 무리 짓는 것에 관심은 덜한 것 같다.

그저 소박하고 아기자기하게 자신의 범주안에서 간섭하지도 간섭받지도 않는 조용한 생활을 즐긴다.

유행에 민감하기도 하지만 또 유행과 상관없이 여기가 21세기가 맞나 할 정도로 올드하기도 하다. 역 주변에서나 백화점에서도 빈티지한 연말풍경으로 가득 차 있었다.

보딩을 기다리는 지금은 캐럴 "거룩한 밤"이 은은히 울려 나왔다. 여기 와서야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낀다. 어쩌면 갈수록 녹녹지 않을 삶에서 작은 즐거움과 추억으로라도 위안을 삼고자 자신이 보고 즐길 수 있는 환경이나 분위기를 꾸며가는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나라는 오늘부터 영하 10도를 훌쩍 밑도는 강추위가 오고 어제 내린 눈으로 교통도 혼잡하다고 걱정이지만, 모처럼 연말연시를 느끼게 하는 빈티지한 분위기는 여유롭게 여행을 마무리하라고 충고라도 하듯 올드캐럴로 비행기로 들어가는 순간까지 위로해 준다.

 



교토 기행기를 마치며


일본 올 때마다 느끼게 되는 "너무 많이 가지고 있으며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사는 것은 아닌가" 생각은 이번에도 들었다. 물론 공간적인 측면에서야 유럽 여행 때도 하게 되는 생각이긴 하지만...

해방 후 미국문화에 익숙해진 상황 때문에 가진 것에 비해 큰 것을 선호하는 후천적인 유전 때문인지도 모른다.

땅떵이는 작은 나라에 살아도, 큰 차... 큰 평수의 아파트... 살면서 지니고 가야 할 필수품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나는 좁다고 느끼는 것들이, 그들의 삶에서 본다면 충분히 넓은 것임을 다시 한번 느낀다.


일본 열도는 우리나라보다 면적이 넓다. 이해하기 쉽게 우리가 살고 있는 남한보다 약 3.8배가 더 넓다. 생각보다 넓은 땅이다. 그럼에도 일본인들이 차지하고 사는 공간, 개인이든 공용이든 그들의 반경은 비교적 좁다고 느껴진다. 왜 그럴까. 섬나라이기도 하고, 산이 많고 지진이 많은 위험한 지형을 갖춘 탓도 있으리라 마는 내 것에 충실한 민족성 때문 아닐까 싶은 나의 개인적인 의견이다.


자기에게 속한 것,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애정과 소중함을 느끼면서 주어진 삶에 대한 충실도가 높다. 그래서인지 소시민들은 정치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 같다. 내각책임제라 그럴 수도 있겠으나 하루 사이에 총리가 바뀌어도 반응엔 시큰둥하다. 자신들의 삶을 꾸려가기에도 바쁘다는 듯... 그래서 일본은 나라는 부자일지 모르나 국민들의 삶은 가난한 편이고 힘들다고도 한다.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우리나라의 GNP는 거의 일본을 따라잡았지만, 마음의 여유는 점점 더 없어지는 것 같다. 예전에는 유행? 했던 "내 탓이요" 스티커도 묻혀버린 지 오래다. 팬데믹 후로"네 탓이요"가 더 늘어나는 것만 같다. 이번 여행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는 마음을 다시 한번 재정비해야겠다 결심해 본다.

굳이 자기 성찰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아도, 지금을 있게 한 감사함과, 있게 할 고마움을 잊지 않고 주변을 돌아보며 다져가야겠다 싶다.


이번에 경험한 일본 물가는 몇 해 전(3년 전) 보다 많이 올랐고, 코로나 팬데믹의 여파이기도 하겠지만, 침체된 경제상황을 일상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나이 드신 어른들이 일하는 모습이야 이전에도 많이 봤지만, 일을 위한 일이 아니라 생업을 위해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역력했다. 그럼에도 자신에게 주어진 소소한 일상을 가꾸면서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모습은 배워야 할 것이었다.


여행이란 나를 돌아보는 길이다.

"남의 눈"을 통해서가 아니고 "나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며, 나의 눈에 투영된 다른 이들의 삶에서 비치는 "나를 다시 보는 길"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현재를 충만하게 하기 위해 찾아가는 여행이지만, 오늘날의 나를 만든 과거를 돌아보고, 가야 할 미래에는 어떤 모습으로 서게 될 것인지도 한 번쯤은 반드시 생각하게 하기에, 떠나야 하는 것이 여행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을 떠올리며 교토 기행기를 마무리 한다.

"그러나 나로서는 잘 표현할 수 없지만, 아무리 멀리까지 갔더라도 아니 멀리 가면 갈수록 우리가 거기서 발견하는 것은 단지 우리 자신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나는 여행기를 이렇게 쓴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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