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평안히 잘 잤다. 회사 꿈을 잠시 꾼 듯한데 그것만 빼곤. 공복혈당을 재보니 세상에 138이다. 다시 찔러보니 조금 낮아진다. 혈당을 재기 위해 침을 찌르면서 한편으론 한심하단 생각이 든다. 의지박약인지, "이 정도면 뭐~~"하며 방심하고철저한 관리도 않으면서 혈당은 왜 체크하는지.
살아가는 동안 먹는 것과 관련된 것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사실 굉장히 크다. 예전엔 먹는 얘기 하면 뭔가 속물적인 인상도 들었지만, 요즘은 먹방(맛있고 즐거운)이 대세기도 하고 과정의 즐거움은 물론 먹는 순간의 즐거움도 공유하는 세상이다.
먹는 것을 많이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먹는 것에 엄중한 제한을 걸게 된다면(몸에 좋은 것만 찾는다면...) 너무 인간답지 않지 않는가? 하는 아둔한 생각에 "약간만, 적당히 ~~"로 생각해 온 면도 없지 않다.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다니자고 온 여행이지만 줄일 수밖에 없다. 일본에 오면 꼭 찾게 되는 팥이 듬뿍 든 찹쌀떡, 팥을 좋아하기에 하나라도 먹곤 했지만 이번엔 안 먹겠다 결심해 본다. 찹쌀떡종류대신 일본은 유제품도 좋기에 차라리 요구르트를 먹기로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시판되는 500g 정도의 용량 큰 요구르트,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은 플레인 호상요구르트를 몇 개 사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먹기로 했다.
호텔 조식은 소박하다. 나는 낫또, 적채와 방울토마토 연두부를 담았다. 일본 식단은 우리나라에 비하면 정말 간단?'한 것 같다. "특선수프"라고 쓰여 있는것은 표고버섯(아마도 유명한 지역의 표고버섯인가 보다)을 우려내어 미소를 살짝 풀어놓은, 거의 맹물 수프였다. 갈아놓은 마즙(생계란 내놓은 이유가 마즙에 비벼먹으란 뜻인가 보다)을 먹어보니 그것도 간이 배어있었다. 삶은 계란이라도 있었으면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일본 아닌가.
동남아호텔의 풍성한 아침 식사를 떠올리며 아메리카노 한잔과 더불어 식당에서 바라보는 창밖의 풍경이 낯설지 않다. 비슷한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으니 그저 이웃 도시로 살짝 건너온 듯하다. 뭔가 새로운 것을 부지런히 찾아다니던 때는 흘러간 것 같다. 3년을 꼬박 묶어 둔 팬데믹의 영향도 크다. 일상을 탈피해 낯선 곳에서 다른 이들의 삶을 느끼며함께 살아보고 새롭게 시작해 보고 싶은 심정이다. 여유가 된다면 한두 달씩, 혹은 한 계절씩 살고 싶었던 나라에서 살아보는 꿈을 구체화시켜 보자는 결심을 다져본다.
오늘 일정은 어떻게 펼쳐질까 아니, 펼쳐야 할까? 일상이란 계획해도 틈새로 흘러가기도 하고 새로운 얼굴을 들이밀기도 한다. 이 역시 여행의 묘미다. 그래서 매인 틀에서 벗어 난 낯선 곳에서의 일상도 필요한 것이다.
아이가 오늘은 교토의 대표적인 유명 관광지 후시미 이나리(여우절)와 청수사(교토의 대표적 명소라 할 수 있는)를 가자고 한다. 시간이 되면 은각사도 들르고 주변을 걸으면서 맛있는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자고 한다. 나는 무조건 "예스"다. 걷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 사는 동네 걷는 건더 좋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찍 나와 나라행 지하철을 타고 후시미 이나리 역에서 내렸다. 나지막한 산으로 언덕길을 올라가는데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출근을 위해 언덕길로 내려온다. 길가의 가게들은 살림을 겸한 듯 각양각색의 자그마한 건물(2층 이상도 별로 없다)로 이어져 있다.
큰 건물들이 별로 없으니, 공원이나 커다란 공터도 별로 없다. 다만 각기 다른 집에서 나름 좁은 공간에 각자의 취향대로 화단도 만들고 장식품도 진열해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후시미 이나리 신사는 교토의 남쪽에 위치해 있는 "이나리 신"을 모시는 신사로 일본 전역에 약 3만 군데나 있다는 크고 작은 이나리 신사들의 총본궁이다. 이나리 신은 풍요를 관장하는 신으로 번영, 경제, 부요를 관장하는 신으로 오래전부터 서민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여우는 "이나리신이 부리는 사자", "여우대사"라고나 할까. 걷는 내내 온 산을 뒤덮었다고 할 정도로 수없이 많은 다양한 모습의 여우상을 만나게 된 이유였다. 신과 자신을 연결시켜 주는 대사로 생각하고 소원을 빌었던 오래전 많은 사람들의 물질적인 신심의 산증인인 다양한 여우상은 흘러간 세월을 품고 제자리를 지킨다.
일본 신도(신토)는 만물에 의미를 두는 애니미즘을 바탕으로 토착신앙에서 유래했다. 신앙이라기보다 일본인들과 역사 속에서 함께 해 온 관습이요, 생활의 한 부분이라고 하는 편이 나을지 모르겠다.자연과 신을 하나로 보고 신과 인간을 잇는 도구와 방법이 제사이며, 그 제사를 지내는 곳이 신사이고 성역화되었다(위키백과).물론 불교, 기독교도 있지만 우리나라보다 한참 적은 숫자다. 일본 신토은 종교의 한 형태라기보다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접하는 생활의 한 부분이라 오늘날까지 대다수의 일본인들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귀여움으로 무장한 헬로키티, 도라에몽(귀 없는 고양이) 그리고 초밥집 문 앞에서 손 흔들며 방긋 웃는 고양이 마네키네코도 어떤 의미에선 고양이를 나름 신격화시킨 것이라고 할까. 좀 더 가깝고 다정한 신으로... 아무튼 보이는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신격화시키는 나름의 신앙이 우주여행을 꿈꾸는 이 시대까지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도록 하는 것을 보면 신앙의 자유는 확실히 보장되는 듯하다.
일본을 여행하면서 그들의 삶, 철학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기 위해선 일본 토테미즘에 대해 수박 겉핥기식이라도 아는 것이 필요하다 싶다.
생물과 무생물, 천지사방(天地四方)에 널려있는 신들에게 일상의 도움을 구하며 마음을 나누는 삶이라 인생에 대해서도 얽매여 있는 모습은 덜한듯하다.
물론 언제 천재지변이 일어날지 모르는 자연조건 속의 섬나라라는 험난한 환경적 요인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나중을 기약하기보단 지금에 주어진 소박한 현실을 부정하지 않고 이어나가는 편 아닐까.
나라는 부강하지만 국민 생활은 단출하고, 사는 것이 힘들어도 강하게 대항하지 않으며 그저 생활 속의 소소한 즐거움으로 무거운 삶의 여정을 한 겹 씩 풀어가며 이어지는 삶을 사는지도 모른다.
후시미 이나리신사에는 여우상도 붉은색의 토리이도 정말 많았다.
토리이는 일본 절 어디를 가든 입구에 세워져 있는 붉은 관문?이다. 세속과 구분시켜 "여기부터 신성한 곳입니다"라는 것을 알리기라도 하듯 당당하게 서있는데 사실 보기에는 개인차가 있을 듯하다.
다른 신사에 비해 토리이가 유난히 많은데 약 1만 개가 넘는다고 한다. 에도시대 이후부터 소원을 이루기 위해, 또는 소원을 이룬 경우 신에게 감사하는 뜻으로 일정 금액을 헌금하면 해당 금액에 맞는 토리이에 날짜와 이름을 새겨 신사에 설치하는 풍습이 생겼다고 하는데 이나리신에게 성공을 기원하고자 토리이를 봉헌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았던 듯하다(나무위키). 후시미나리 신사에는 입구부터 시작되는 토리이를 비롯해 산사로 올라가는 언덕길을 붉게 수놓은 토리이 길이 있을 정도다.
아침 산을 오르니 공기도 좋고 막잠에서 깨어난 새벽산의 정취는 맑고 깨끗하다. 산길은 토리이 길을 통하게 되어있고 붉은 토리이의 행렬은 햇살을 받아 강렬함을 더한다. 걸어가며 보는 토라이에는 날짜와 누군지도 모를 사람의 이름이 쓰여있다. 일본어를 모르는 것이 오히려 다행스럽다 여겨진다.
그저 자연의 일부로써 아름다운 산의 정취를 느껴보고 싶은 여행자는 낯선 이들의 "축재와 안녕의 흔적"까지는 알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거대한 토리이보다는 산 구석구석에 빈 곳 없이 들어서 있는 이끼 낀 작은 여우상들의 소박한 사연이 산사를 오래도록 아름답게 하지 않았나 싶다.
헌금에 따라 크기가 달라진다는 토리이와 큰 여우 작은 여우 늙은 여우 젊은 여우 돌여우 나무여우, 거기에 플라스틱 여우까지... 목도리 한 여우, 옷 입은 여우 역시 금전의 크기와 상관있으리라.
평생보지 못한 여우들을 오늘 다 본 듯하다. 하나같이 붉은 띠를 두르고 구슬과 문서를 물고 있었다.
여우는 지혜 있고 장수하는 동물로 여겨져 이나리신의 대사가 되었고 목에 붉은 띠는 신성하기에 두른 것이라 한다. 붉은색은 신의 색이라 질병과 악한 기운을 없애준다고 해서 목도리, 턱받이를 한 것이었다.
동물을 사랑하는 내게는, 붉은 데다 햇살로 더 붉게 강렬한 토리이보다는 귀여운여우가 많이 있었던 것이 더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절을 방문하는 많은 이들 역시 오래전에는 절실했을지도 모르지만, 귀엽고 다정한 동물사랑의 마음으로 산사를 즐기며 하나의 문화유산으로 여기고 다가가는 모습이 역력했다.
토리이로 이어진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정상에 이를 수 있지만 우리는 꼭대기까지 가지 않고 반대편으로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는 드문드문 집도 많고 가게도 있다. 집들의 모습으로 봐 오래전부터 살아오던 곳이다. 산속의 낡고 작은 집들을 고쳐가며 생활하는 모습이 외관으로도 역력히 보였다. 집 주위로 여우상은 역시 많았고 많은 사람들이 오랜 세월 동안 소원을 빈 흔적이 보였다.
작은 가게들 중 한 곳을 들르니 붉은 토리이를 배경으로 검은 고양이를 그린 엽서를 팔고 있었다. 엽서 외에 부채 등 여러 소품에도 검은 고양이와 후지이 미나리 도리이를 그려놓았다. 나도 길냥이를 돌봐주는 사람이라 엽서를 한 장 샀는데, 옆테이블 의자에 검은 고양이가 앉아서 고개를 돌린다.
주인인듯한 분이 옆에 서있던 여자분을 가리키며 "이분이 엽서그림을 그린 작가"시라 소개한다.
"오~ 이런 반가울 데가..."
여행할 때 만나는 작은 즐거움은 이런 것이다. 나는 엽서를 한 장 산 후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얘기하며 작가의 사인을 부탁했다. 300엔짜리 엽서 한 장에 작가님은 정성스럽게 써주시며 덕담까지 해 주신다.
그리고 앉아 있는 고양이를 가리키며
"저 아이가 모델이에요^^"
라고 하신다. 사진을 찍으려니 깜냥 모델은 수줍은지 계속 고개를 숙여 얼굴을 찍진 못했다.
후시미 이나리 언덕길 대나무토리이 (아이가 찍은 사진)
300엔을 주고 구입한 엽서와 모델이 된 수줍은 고양이
언덕을 내려와 지하철을 타고 기요미즈데라(청수사)로 간다. 공사가 끝나서인지 더 웅장해 보인다. 웅장한 것은 웅장 한대로 섬세한 것은 지나치게도 섬세하다.
이게 또 매력 아닐까 싶다. 교토가 고도(古都) 임을 보여주는 건물들이 어우러져 있는 길을 올라가 청수사로 왔다. 월요일 이른 아침임에도 사람들이 많다.
일본은 어딜 가든 어린 학생들이 많다. 물론 소풍이나 견학일 수도 있겠지만 오래전 우리나라에서도 입었던 그 교복차림의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뭉쳐 다닌다. 예전 기행기에도 썼지만 여기 아이들은 부모와 닮은 트럭을 하나 이상을 모두들 가지고 있다. 그러니 “엄마가 아빠가 뭘 알아 “라고 말하는 사춘기의 반발에 한 마디쯤은 할 수 있다 “ 엄마도 알아 너랑 같은 교복 입고 가방 메고 그 시절을 지내봤으니…”라고.
개인적으로는 부럽다. 전후 50년도 안 돼 세계의 이목을 끌 정도로 경제대국으로 우뚝 선 우리나라,
더 큰 성장통으로 겪는 작금의 여러 변화와 고통들이 우리의 정체성과 문화를 바르게 세워 오천 년 역사에 어울리는 문화대국으로 정착되기를 남의 나라 한편에서 여행자는 빌어 본다.
기요미즈데라(청수사)는 일본 나라시대(778년에 창건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물이 맑은 절"이라는 뜻의 교토 대표관광지다. 현재의 건물은 1633년 막부시대에 보수하여 모습을 갖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요미즈데라는 본당에서 산을 바라보는 나무 기둥으로 받쳐 세워진 테라스(무대)가 아주 유명한데 2017년부터 보수공사를 했고 이번 여행에선 완공되어 500엔씩 입장료를 받고 볼 수 있었다.
절이 산 중턱에 있어 절로 가기 위해선 언덕을 올라야 하는데, 자연스레 언덕길이 생기며 상가길도 형성된 것이다.
일본의 경주 같은, 교토에서도 가장 교토다운 모습이 가득한 거리가 여기 아닌가 싶다. 산넨자카는 청수사(기요미즈데라)에서 내려오는 길에 좁은 돌계단 같은 곳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좁은 돌계단 같은 곳에 이어진 길로 150미터 정도의 짧은 길이다. 그 길을 따라 내려오면 이어지는 길이 니넨자카다. 원래 기요미즈데라에 참배하러 가는 길이었는데 상점가로 형성된 것이다. 니넨자카는 산넨자카보다 좁고 길이도 짧다. 길이 길어도 걷고 싶은 길인데 길지도 않아 천천히 구경하면서 걷기에 좋다. 정말 제대로 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별다방도 보였다. 옛 건물을 그대로 보존한 거리답게 별다방 건물 역시 마치 에도시대로 돌아간 듯한 포장을 하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고풍스럽기도 했다.
이 거리는 항상 사람들로 북적거리는데, 겨울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사람들도 별로 없어 집집마다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바쁜 삶 속에서도 여유를 찾으며 살아가려는 흔적들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점심은 아이가 이전에 왔을 때 맛있게 먹었다는 폰토쵸에 있는 규카츠집을 찾아갔다. 이번 여행은 천천히 걷고 다니기로 한지라, 식당이 먼 거리에 있었어도 큰길을 따라 내려와 골목길을 찾아다니며 재밌게 걸었다.
교토를 가로지르는 카모강을 끼고 있는 폰토쵸거리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몇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듯한 풍광을 그대로 보여준다. 오래된 가옥의 일본 전통의 찻집이나 게이코하우스와 좁은 골목길사이사이 다듬어진 풍광들은 이곳이 교토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람 사는 모습이야 크게 다를 바 없겠지만, 팬데믹 이전보다 경기가 침체된 모습은 역력하다. 가게문을 닫은 곳이 정말 많고 사람들로 붐벼야 할 거리도 조용한 편이다. 어둡게 가라앉아있는 경제적인 고통이 환한 햇살 속의 거리에서도 따갑게 느껴질 정도다.
어디나 그렇듯이 골목 안의 모습이 실제 사는 모습이다. 이상하리만큼 일본? 의 골목은 세월의 흐름조차 잡아 고정시켜 버린 듯한 풍경을 안겨준다. 골목은 두 사람이 팔 벌리고 다니기에 힘든 폭이라도 답답하게 느껴 지진 않는다. 한참을 걸어 골목 속의 식당을 찾았다. 작은 식당이지만, 알려진 맛집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았다. 몇 해 전 도쿄출장에서 직원들과 비 오던 날, 규카츠 맛집 앞에서 근 한 시간을 기다리며 먹었던 생각이 났다. 식당도 몇 평 안된 지하에 있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한 인간의 노력이 멋스럽고 당연하기까지 한 역사는 사실 오래전부터였다.
점심 후 1940년에 교토에서 창업한 유명 전통커피 이노다 커피숍을 찾아갔다. 카리스마역에서 도보로 가까운 곳에 있는 본점은 독특한 모양의 목조 건물이었고 옆으로 자그만 카페가 붙어있었다. 점심 후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이 기다리고 있었다. 브런치를 할 수 있는 곳이긴 해도 카페에 대기자가 많은 점도 특이했다. 기다리는 사람들 중 나이 드신 분들이 많다. 테이블이나 장식품도 골동스럽고 무엇보다 나비넥타이를 맨 지긋한 웨이터분들이 인상 깊다. 주문을 받고 커피를 갖다 주는 분위기가 드라마에서 본 조선말 손탁호텔의 커피숍 같은 곳에 온듯한 느낌이 들었다. 몇십 년 전의 인테리어에 내부를 깨끗하게 보존해 이어오는 것 같고, 실내정원이나 장식 모두 어르신들의 향수는 물론 젊은 세대들의 앤틱사랑과도 어우러지는 교감을 주는 듯했다.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전통이 필요한 요즘에 연출되지 않은 이런 장소가 잠시 부럽기도 했다.
이노다커피의 모닝세트"교토의 아침"은 네티즌들에겐 이미 알려진 유명 메뉴하고 하는데, 11시까지만 판매한다고 해 먹진 못했다. "교토의 아침"임에도 메뉴는 서양식이라 묘하게 어울리는 이 정서의 본질은 무엇일까 궁금했다. 우리는 1960년대 영화에나 나옴직한 분위기의 올드 카페, 어르신들의 만남의 장에서, 카페라테와 아메리카노 그리고 샌드위치(오이와 계란으로 속을 넣은 간단한 샌드위치)와 함께 잠시의 여유를 누린 후 길을 나섰다.
교토역에 있는 이세탄백화점에서는 성탄절을 앞두고 많은 행사를 벌이고 있었다. 서구문화를 우리보다 일찍 받아들였고 특히 유럽문화를 좋아하는 일본이라 그런지,성탄절도더 즐기는 듯 보이고 백화점에서도 연말연시분위기가 흠뻑 풍겨 나왔다. 식품점에서는 각양각색의 케이크와 초콜릿이 일본단과자들과 함께 많이 판매되고 있었다. 북적거리는 지하 식품점을 둘러보고 시간여유가 있어 전층을 다니며 구경했다. 물건의 내용, 맛은 어떨지 모르지만 포장과 진열에는 큰 신경을 쓴 제품들이 많았고 모두 가격표를 붙여놓았는데, 대부분 우리보다 비싼 것 같았다.
6층엔가 이끼로 만든 작은 분재식물 (이끼볼?)을 다양하게 만들어 파는 곳이 있어 관심 있게 구경하던 중, 자그만 강아지 도자기가 눈에 띄어 물어보니 가격이 싸진 않았다. 흰머리가 지긋하신 할아버지 직원이 일본말로 한참 설명하셨다. 도예 작가가 만든 작품이라는 것 같았다. 작가이름이야 내 알바 아니고, 무감각하고 약간은 불만스러운 듯한 강아지 표정이 재밌어 조금 깎아 줄 수 있느냐고 물으니 안된다고 했다.
그냥 가다가"사 올걸.." 하는 생각이 들 것 같아 다시 올라와 구입했다(사실 그 순간은 그 순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