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11~ 2022.12.14까지 3박 4일 동안 코로나 발생한 이후 처음으로 아이와 함께 일본 교토를 다녀왔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달라진 바로 이웃나라의 모습을 며칠 동안 체감하며 오랜만에 낯선 곳에서 맞은 일상을 기록합니다.
20221211
비행기 시간은 오후 한 시지만 버스배차시간이 안 맞아 일찍 가서 공항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낫겠다 싶어 집을 나섰다. 이틀 전부터 약간 감기기운이 있는 듯해 판**를 먹고 잤더니 개운하다. 그래도 염려되어 두 개를 가방 속에 챙겨 넣었다. 간밤, 자다 중간중간 본 월드컵 4강전에서 모로코의 4강 진출! 축하해줘야 할 일일진 몰라도 이변은 많은 시간을 필요치 않는다. 하룻밤새 바꿔 놓을 수도 있는 것이 이변이다. 때로는 피나는 노력 위에 운(?)도 필요한 듯?. 결국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고, 최선을 다한 일의 결과"에는 토도 달지 않아야 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때론 그렇게 풀려나가는 인생길임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은 개운치 않을 때가 많다. 하지만 후회되고 억울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또 일어나 걸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 삶을 찾아가는 길 아닌가.
아무튼,
거의 3년 만에 나가는 해외여행! 감회가 새롭다. 휴가에 맞춰 그동안 답답했을 마음도 풀고 바람이라도 쐬고 오자고 교토여행을 마련했다. 일정을 다 준비해 놓았다니 다니며 휴식을 즐기면 된다.
오랜만에 나온 공항은 예전에 비해 차분해 보인다. 거의 코로나이전 수준으로 회복되었다고 하나 전체적으로 풍기는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다. 면세점에도 이 정도로 사람들이 적은 때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코로나팬데믹 후의 세상은 이전과는 다를 것이라는 말을 체감한다.
우리는 일찍 나와 라운지에서 쉬고 간단히 식사도 했다. 음식도 괜찮고 와이파이가 되니 좋다. 아이는 일본 입국에 필요한 서류를 인터넷으로 하고 나는 월드컵 8강전 하이라이트를 보았다. 한순간의 실수(운?)로 결정되는 "승자와 패자의 찰나"는 영원하지 않음에도, 환희에 때론 절망감에 쌓여 희락과 비탄에 빠지게 만든다.
때때로 이 순간이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음이 생을 파스텔톤으로 물들이기도 한다. 어쩌면 파스텔톤의 삶이 가끔씩 필요하기도 하다. 여행처럼...
그러나 기억하자,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그럼에도 내겐 경고등이 켜졌다. 몇 해 전부터 당뇨 경계선에 머물고 있는지라 관리에 신경을 쓰는데, 연말이라 요 며칠 이것저것 많이 먹은듯했다. 어제 평소엔 잘 먹지 않던 후라이드 치킨을 먹어서인지 125가 나왔다. 경계보다 더 조심해야 할 수치가 나온다.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아야 할 것 같다. 여행 앞두고 걱정된다. 특히 이번 여행엔 맛있는 것도 많이 먹기로 했는데… 암튼 조절도 해가며 관리하고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자, 먹은 것보다 더 움직이면 쌓이진 않겠지.
짧은 비행시간임에도 간단한 식사까지 주어진다.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 흑백 영화 한 편이 눈에 들어온다.
이름도 유명한 그레타 가르보의 "퀸 크리스티나", 크리스티나 여왕은 스웨덴 사람들이 아주 사랑하는 여왕(스웨덴에는 여왕이 많지 않지만 아마도 왕을 포함해서 아닐까 싶다.)으로 1626년 구스타프 2세의 딸로 태어났다. 여러 형제가 있었으나 유일하게 생존한 자녀로 일찍부터 왕위 계승자가 되었다. 왕은 그녀를 아들처럼 키우기 위해 왕자옷을 입히고 교육을 시켰다고 한다. 영화에서도 그레타가르보는 남장을 하고 거칠고 추운 스웨덴의 겨울을 거침없이 활보한다. 어린 나이에 그녀는 당당하게 "스웨덴을 지킨다는 신념과 종교"를 위해 헌신할 것을 맹세하고 그 신념을 위해 살아간다. 그녀는 계몽군주로써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고, 통치 10년이 지난 후 사촌에게 왕위를 양도한 후 스웨덴을 떠나고, 개신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서 생활하며 자유롭게 지적 영역을 넓혀가며 자신의 신념, 신앙을 위해 살았다. 그녀의 무덤이 스웨덴이 아닌 로마 베드로 대성당에 있는 이유다.
1636년 여왕 재위 시에 만들어진 드로트닝 거리(Drottninggatan: 여왕의 길)는 스톡홀름에서도 볼거리가 많고 카페 등 상업시설도 풍부해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오늘날까지 국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여왕을 기리는 길로 아직도 살아 있다. 영화를 끝까지 볼 정도로 충분한 비행시간은 아니었지만, 오래된 흑백필름 속의 역사연출을 보는 것은 작은 즐거움을 주었다. 게다가 기행기를 쓰면서 크리스티나 여왕에 대해서도 새롭게 알게 되었으니 이 또한 여행 덕분 아닌가.
굳이 "시대를 앞서간 걸출한 ~~"이라는 표현을 대지 않아도 선각자는 자신의 신념과 원칙에 충실한 삶을 살았기에 오늘날 칭송을 받지만 과연 그 시대에 가능한 일이었을까 싶다. 어쩌면 자신의 모든 것을 잃더라도 굴복하지 않겠다는 소신, 신념을 목숨처럼 지켜온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고, 더러는 그 신념 때문에 삶을 내려놓은 사람들도 많았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범한 많은 것들의 기초가 사실은 앞서간 선구자들의 희생으로 놓였다는 점을 잊고 살뿐이다. 역사歷史는 사라져 간 이들의 거름을 먹고 자라온, 번듯해 보이는 온갖 희생의 속살로 채워진 것 아닐까.
몇 장면에서 인상 깊었던 대화가 기억난다.
"평범한 삶에서는 적은 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당신이 충분히 자신 있게 말하는 한, 어떤 것도 믿을 것입니다"
"이유 없이 행복해진다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앞 옆좌석에 앉은 미국인과 교포인듯한 여자분이 기내에서 만난 사이 같은데 계속 떠든다. 너무 크게 얘기하고 있다. 여자분은 마스크도 안 쓰고 떠든다. 요새 아직도 저리 끓임 없이 떠드는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승무원이 주의를 준 것 같은데 소용없다. 이럴 땐 과묵한 코리안 맨이 낫다. 말 많은 건 개인특성인지 몰라도 좁은 기내에서 대화할 때는 필요한 말만 조용히 해야 하는 상식도 잊은 채 주변에서 모두 듣도록 떠드는 무식인지 배짱인지... 아니다 그렇게 시끄럽고 남에게 피해를 준다는 사실을 몰라서 그럴 것이다. 번듯해 보이는 외모에 가리어진 인성은 평소엔 잘 보이지 않는 법이다.
오후 3시 46분, 안개가 내려앉아 어둑어둑한 간사이 공항에 착륙한다. 우리는 비지트재팬에서 입국서류 작업을 해 QA코드를 받아두었기에 빨리 나올 수 있었다. 혹시 몰라 코로나 접종증명서도 프린팅 해서 가지고 왔다. 혹 일본 여행을 계획하시는 독자분들이 있다면 비지트재팬웹(Visit Japan Wep , VJW)을 통해 일본입국에 필요한 서류 작업을 한 후 QR코드만 받아 가시면 되니 활용하시면 좋겠다 싶다.
간사이국제공항은 길이 4km 폭 1km의 인공섬 위에 만들어진 공항이다. 새로운 공항을 건설하기 위한 여러 문제점이 부각된 상황에서 아예 인공섬을 만들어 공항을 들인 것이다. 1994년 개항이래 매년 조금씩 침하가 되고 있다는 새로운 문제점이 자라고 있는 공항이다. 계속 보완하고 보충시켜야 하니 살아있는 공항이라고 해야 할까...
간사이에서 교토로 가는 데는 열차 하루카를 타는 것이 좋은데, 차비가 싸진 않다. 환승할 필요는 없고 80분 정도면 교토역까지 간다. 기차표 1910엔과 자유석권이라고 990엔 두장을 끓어야 한다. 개찰구에서 표 두 장을 같이 넣어야 한다. 개찰구에서 표를 두 장 넣어야 열리는 모습도 그렇고 차를 탈 때 기차 안에서도 승무원이 반드시 표를 확인하는 일은 우리네 모습과는 다르다. 여행을 마치고 교토에서 간사이공항으로 오던 날 표를 한 장 넣어봤더니 개찰구가 열리지 않았다. 직원이 오기에 기념으로 표를 가져가고 싶어서 그랬다고 했더니 표 두 장을 받아서 안에 들어가 무슨 도장을 찍어서 주며 개찰구는 따로 열어준다. "승차기념사용표"라는 내용인 것 같다. 작은 일에도 철저한 일본임을 다시 한번 본다.
일본은 교통비가 비싸다. 우리같이 환승은 언감생심, 탈 때마다 표를 끊던지, 돈을 내야 한다. 간사이에서 교토까지 오는데도 2,900엔이니 인천공항 가는 지하철운임비와 비교하면 아주 비싼 편이다. 아니 우리나라가 너무 싸서 비교가 되는 것이다. 어디를 가봐도 교통비가 우리처럼 싼 곳은 드물다. 나도 교토역에서 3000엔 충전한 교통카드 이코카를 구입해서 며칠 동안 사용했다. 서울지하철의 적자가 반복되어 요금인상얘기가 연초부터 오가는 현실과 비교되어 잠시 우울한 기분이 든다.
공항에서 안내 보조하는 친구들도 어린 친구가 많았다. 나이 드신 어르신도 많다. 여러 해 전 도쿄 유명 백화점 반찬코너에서 열아홉 살 어린 여청년이 육십 대 할머니 점원들과 어울리며 당당하게 판매하는 것을 보고 적잖이 쇼크 받았던 기억이 난다. 하루카 기차 검침원도 청년으로 보인다. 노인대국 일본은 오래전부터 정년연장 및 노인일자리 확대로 노년층 취업을 권장하고 있다. 그에 맞춰 직업에서도 노소老少의 구분 없이 모두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평등하게 일차리를 찾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뭐든 선부터 긋고 분명한 구분을 둬야 하는 우리와는 다르다. 개인적으론 부러운 점이다.
3여 년 만에 오랜만에 오는 일본인데 별로 낯설지가 않다. 아무래도 바로 옆에 있는 나라고 외모도 비슷한 모습들이라 그렇겠지 싶다. 일본은 지진 때문인지 높은 건물이 별로 없다.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는 어릴 적 고향 부산의 느낌이 많이 난다. 언제 와봐도 차분하고 변하지 않는 모습이 남아 있어서 개인적으로 일본여행을 좋아하는 편이다.
아직 다섯 시도 안 됐는데 차창밖은 어두워지고 있다. 흐린 날씨는 속내를 알 수 없는 검은 바다를 품고 있다. 바다를 건너가며 해는 저물고 있다. 아무리 화려한 곳이라 해도 태양이 종적을 감추는 데엔 겸손할 수밖에 없다. 누구라 지는 해 앞에 당당하겠는가. 해는 뜰 때보다 질 때가 더 장엄한 법 아닌가. 본토인이든 이방인이든 새로 맞을 저녁 앞에 조금은 쉬어가게 마련이다. 조금 울적하고 외로움도 느끼며 추스르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 해 질 녘의 기차 여행, 백열등 빛이 섞인듯한 형광불빛의 나지막한 마을들을 지나가는 아직은 낯선 하루카의 어중간한 백열등 아래서 나그네는 작은 희열감을 느낀다.
어둠이 내려앉는데도 제 선을 지키는 회색 구름들, 차창밖의 건물들에서 스며 나오는 불빛들도 딱 고만고만하다. 시내에 들어가면 화려할지 모르겠지만, 환하지도 아주 어둡지도 않은 스멀스멀한 불빛들만 새어 나오는 건물들, 일본이다. 코로나로 나가지 못했던 여행 갈증을 풀어주기라도 본토로 들어가는 철로 위를 달려가는 하루코가 물고 오는 짭조름한 바다내음이 다정하기까지 하다. 한참을 달려가도 높은 건물이 모여있는 곳은 드물다. 마치 수십 년 전으로 회귀한 기분으로 교토를 향한다.
교토역은 교토의 분위기에 어울리게 고풍스러우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이 살아있었다. 역 광장으로 나오자 멀리 교토타워가 보인다. 나중에 알았지만, 교토가 분지라 그런지 교토 어디를 다니던 조금 높은 지역에서는 교토타워가 아주 잘 보였다. 우리가 묵을 호텔은 다이와 *** 호텔로 바로 역 근처에 있었고 4성급인데도 깨끗하고 넓은 편이었다.
체크인후 객실에서 잠시 쉬다 저녁 식사하려고 초밥집을 찾다가 올해의 회전초밥 대회에서 1등 했다는 광고판이 붙은 초밥집에 갔는데 기다리는 사람이 아주 많았다. 친절한 종업원이 한 시간 정도 기다려야 된다고 한다. 그래도 일본에 왔으니 "초밥 한 번은 먹자" 싶어 기다려 식사를 했다. 우리나라 회전초밥집과 별다르지 않게 여러 종류의 초밥에서 골라 먹으면 된다. 3년 전 도쿄에서도 유명하다는 초밥집에서 먹었을 때의 가격보다 더 비싼 것 같고, 전체적으로도 비쌌다. 몇 년 전보다 물가가 많이 올랐다. 엔화환율이 떨어져 조금 넉넉히 바꿔놓았지만, 물가가 오른 덕에 크게 싸게 먹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8,000엔 정도를 지불하고 나왔다. 코로나 팬데믹 여파가 깊게 물들어 왔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이곳의 물가도 너무 많이 올랐음을 며칠 동안 체험하는 여행이 된다.
비싼 저녁을 먹고 시내 밤거리를 걷는데 소소한 술집이 많다. 비교적 단아하고 깨끗하다. 요도바시 건물이 보여 구경하는데 전기자전거가 16000엔~24000엔 다양하다. 일본에선 아직도 자전거를 일상생활에서 많이 활용한다. 아이 태우고 다닐 수 있는 자전거도 많았다. 3층, 캠핑용품 파는 매장이 커서 둘러보는데, 요사이 우리나라도 차박등으로 캠핑족이 늘어나고 있지만, 일본은 오래전부터 캠핑에 진심?이라서 온갖 종류의 용품도 많았다. 재미 삼아 가격비교를 해보았는데 각국의 제품차이가 있을 것 같아 우리 것도 일본 것도 아닌 미국 제품, 스**컵을 보니 우리나라보다 10% 이상 비싸게 판매되고 있었다.
엔저라고 하지만 물가가 비싸니 결국은 우리보다 훨씬 비싼 꼴이다.
"돈만 있으면 세상에서 제일, 살기 좋은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던 오래전 스쳐간 여행친구의 말이 생각난다. 안전하고 자유로우며 목소리를 내는데 어려움도 없는 좋은 나라, 우리나라 아닌가...
소화도 시킬 겸 온갖 종류의 캠핑용품을 구경하고 우리는 물과 요구르트를 사서 호텔로 왔다.
피곤함도 채 느끼기 전, 도착한 가까운 이웃나라지만 몇 년 만의 해외여행은 평안한 쉼의 충전도 함께 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