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에는 다양한 구근류를 심었고, 공원 쪽에 감나무를 한그루 더 심을까 하는 계획을 했었다. 읍내 일 보러 나간 참에 마침 산림조합에서 나무를 샀다는 이웃의 말이 떠 올라 잠시 들렀다. 감나무가 있냐고 물어보니 "감나무는 있는데 작년 것이고 대봉과 단감이 섞여 있어 잘 구분하기 힘들어요"라고 친절하게 설명하신다.
"괜찮아요 두 그루만 주세요 ~ "
"좋은 것으로 골라 보세요 ~ "
"땅도 파기 힘든데 그냥 앞에 걸 할까요 ~ "
"아녜요 파기 쉬워요 ^^ "
막 취업했을 어린 여직원이 삽을 든 채 씩씩하게 답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목대가 조금 굵어 보이는 녀석으로 두 개 골라, 한 삽 떠서 파내니 작은 것까지 딸려 나온다. 직원분은 골라놓은 감나무를 전정가위로 잘라 확인까지 해 주신다.
"얘는 죽었네요 다른 것으로 고르세요 ~ "
다시 하나를 골랐다. 직원분은 곁으로 나온 작은 나무는 그냥 하나 드린다고 했다.
산림조합이라 다른데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분양하는 데다 한그루 더 넣어주시니 기분이 좋았다.
"감사합니다. 잘 키워 볼게요 ^^ "
수국 때문에 우울했던 마음이 선물 받다시피 한 감나무 묘목으로 위안을 받고 온다.
오후에 친구가 올라왔다. 감나무 묘목을 보더니 "심을 때도 없는데 어디 심으려 샀느냐 ~ "는 표정이다. 두 그루를 공원에 심기 위해 적당한 장소를 물색한다. 돌이 워낙 많은 곳이라 파기 힘들까 봐 미리 걱정했는데 신기하리만큼 잡은 장소마다 다른 때에 비해 잘 파졌다. 판 자리에 분갈이 흙도 섞고 물을 적당히 준 후에 감나무를 심고 흙을 덮었다. 잘 밟아 준후 다시 물을 부어주고 지줏대를 하나씩 박아 줬다.
그중 실한 아이 한 그루를'어디 심을 데 없나?' 마당 구석구석을 살펴보는데 친구가 벚나무를 가리킨다. 친구는 몇 해 전에 벚나무 열 그루를 담장 주위와 집안에 심었는데 집 마당에 심은 벚나무가 엄청나게 커져 두 그루 모두 뽑지도 못하고 베어 버렸다. 우리 집에도 벚나무가 세 그루 있었는데 작년에 두 그루를 공원 쪽으로 옮겨 심었고 식구들이 한 그루는 두는 게 어떠냐고 해 하나만 남겨두었는데 그것을 파 내라는 것이었다.
벚나무는 넓은 마당이 아니면 너무 커져 힘들다는 것이다. 친구의 말에 동감했다.
'그래 ~ 물어볼 것도 없지. 그냥 파내어 버리자...'
막 잎을 피우기 위한 초록 몸뚱이를 파 내는 것은 미안했지만, 공원에도 심을 곳이 마땅치 않아 그냥 뿌리를 잘라, 버리기로 했다. 예상대로 벚나무의 뿌리는 굵고 길고 깊이 있었지만 잘라가며 파냈다.
'벚나무야 미안하다' 마르면 불멍 할 때 쓰기 위해 가지를 쳐내고 마른나무 모아둔 곳으로 옮겼다.
구덩이에 분갈이 흙도 넣고 자리 잡아 잘 심어 줬다. 흙을 다진 후 지줏대까지 닦아주고 마무리한다.
팽개치진 벚나무를 보니 씁쓸하다. '어쩌면 너희 세상도 사람 사는 세상과 똑같다. 오는 것이 있으면 가는 것들도 있고... 때론 이유도 없이 억울하기도 한 법, 너는 재가 되어 좋은 거름이 될 것이다'
초보 전원생활자라 계획 없이 심기만 내 탓도 크다. 무조건 심기만 한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었건만...
전원생활 시작한 분들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마당에 잔디 심는 일이라고 한다. 얼마나 바랬던 일이겠는가...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래서 집을 마련하자마자 잔디부터 심는다. 우리 역시 그랬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잔디는 파 내어지는 일이 다반사다. 뿌리가 깊고 쉬 번지고 다른 식물에 영향도 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잔디도 정성을 다해 가꿔야 한다. 자라면 깎아 줘야 하고 풀을 뽑아줘야 하며 비료도 줘야 한다. 우리 마당 잔디에겐 그런 정성을 기울이지 못했다. 그저 마당을 꾸미기 위해서 군데군데 파 내지고 봄이면 한 번씩 태워 몸단장시킬 뿐이었다. 그나마도 강아지들 때문에 고민을 안겨주는 잔디기도 하다. 물론 잘 가꿔진 잔디 마당을 가진 넓은 전원주택도 많지만 거기엔 집주인의 몸 바친 헌신이 있었든지 아니면 넉넉한 경제상황으로 걱정 없이 가꿔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러 해 지내다 보니 마당에, 정착한 듯 보이는 초목들도 이리저리 옮겨지며 변화를 겪게 된다. 동(動)적인 어떤 행위도 없을 것 같은 정(靜)적인 흙 마당이지만 사실은 온갖 움직임으로 바쁜 매일을 보낸다.
심으려면 뽑아내고 뽑아내면 다시 심게 된다. 딱히 어떤 목적으로 하는 일도 아니다. 무엇이라도 받아들일 마음으로 두 팔을 벌리고 있는 대지가 있기 때문이다. 정체된 듯한 땅속에서도 보이지 않는 순환과 흐름이 이어지기에 생명을 키울 수 있는 대지가 된 것이리라. 받아들임의 숙명으로 꽃샘추위에 일 년의 아름다움을 모두 빼앗겨 버린 수국이나 생각도 못한 감나무에게 목숨까지 내어준 벚나무나 아무 말도 없다. 그저 바라보는 인간의 눈과 마음에 미안함도 고마움도 교차될 뿐이다.
마당 곳곳에서 어제는 보지 못했던, 방금 전에도 없었던 일이 벌어지고 있다. 언제 나왔는지 벌써 이만큼 컸는지도 모를, 스며들어왔던 봄기운에 반응한 생명들이 자축하며 올라오고 있다. 온갖 새로운 생명으로 북적이는 봄마당은 담담(淡淡)함으로 겸손하게 받아들일 때만, 동행할 수 있음을 몸으로 보여주는 자연(自然)의 작은 광장(廣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