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예찬

by opera

원래 걷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 등산을 즐겼지만 매주 다니긴 벅차 걷는 것으로 바꾸고 자주 걸었다. 요즘은 아쉽긴 하지만 자연 속을 걷기보단 러닝머신에서 걷는다. 러닝머신에선 바쁜 일정에서도 규칙적인 운동을 할 수 있는 매력도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날씨 변화에 상관없이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어 작년 일 년 실내 운동을 열심히 했다. 비록 변모하는 자연의 풍광과 향기를 피부로 교감하지는 못하지만 거실창으로 바라보는 정원의 풍경과 어울려도 나쁘진 않다. 플렉스의 여린 연둣빛 생명들이 하루가 다르게 올라오고 산딸나무잎도 꽃보다 더 꽃처럼 펼쳐지니 눈도 황홀하다.


걷기 열풍이 어느 정도 사그라들긴 했지만, 오히려 제자리를 잡아 꾸준히 지켜나가는 동호인들도 많이 늘었다. 많은 사람들이 걷기를 사랑하는 이유가 우선은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일 것이다. 나 역시 매일 걸으며 걷지 않았을 때 보다 컨디션도 좋아진 것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걷는 것을 그냥 좋아하는 걷기 예찬론자에게 물어본다면 딱히 이유가 없을 것 같다(내 생각일지 모른다). 진정 걷기 예찬론자들은 걷는 것 자체를 좋아하기 때문 아닐까 싶다.

더러 먼 길 걷기를 좋아한다면 "나는 걷는다"의 저자 르나르 올리비에의 회고처럼 낯선 곳을 걸으며 낯선 이들과의 교감을 통해 스스로도 몰랐던 삶에 대한 열정과 감사를 돌출시킬 수도 있다.

가까운 곳에서 걷는 것을 즐기는 사람도, 늘 접하고 살았지만 잘 몰랐던 자연 속의 다양한 생명들을 제대로 보고 느끼며 배워가는 공존, 공감의 유대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걸을 때마다 섬세하게 반응하는 말초신경, 세포 하나하나가 새롭게 살아나 송글 송글 땀방울로 표출되는 신비로운 몸의 조화를 경험할 수도 있다. 한 번씩 들이키고 내쉬는 큰 숨은 평소엔 못 느꼈던 진정한 자신과의 조우, 지난한 일상에서도 살아있음에 대한 감사를 느끼게 해 준다.

아름다운 숲과 나무와 하늘을 즐기며 사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고 어떤 제제도 없이 자유로운 생각을 하며 스스로를 온전히 자연과 하나로 매칭시켜 주는 걷기는,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걷는 것이 왜 좋을까?

혼자 걷기에 좋은 이유는 무엇일까? 외부의 힘을 빌지도 않고 스스로를 내던지는 경험을 할 수 있는 첩경이기 때문이 아닐까?

숲길을 걷다 보면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외양은 벗어던져지고 자연 속의 일부로 귀화되어 스스럼없는 자신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빈 몸으로 와서 빈 몸으로 간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걸쳐졌던 모든 것들이 자연스럽게 날아가 버린 것같이 말이다. 동시에 살아오면서 나를 세워주었던 모든 것들…

심지어 나를 나답게 세워 주었던 것들도 결국은 벗어버려야 할 허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허물을 벗지 못한다면 결국 나비가 될 수 없는 것처럼...


걷는다는 것은 어쩌면 미리 그 길을 연습하는 것과 같다. 인간도 자연과의 관계 속에 있음을 깨우쳐주고 현재와 함께 걸어가고 있음을 알려준다.

주변에 펼쳐진 뼈만 앙상하게 남은 마른 육신들, 벌거벗은 가지들로 채워진 대지도 온갖 종류의 꽃과 마르지 않는 향기로 가득한 봄을 이끌고 나온다. 흙으로는 모자라 기뻐하는 하늘과 늘 푸른 낭만으로 가득 찬 여름이 있었다. 하얗게 얼어붙은 강물을 보며, 내쉬는 숨결조차 얼굴에 매달려 같이 가겠노라 절규하는 겨울 아침, 몸뚱이하나로 버티고 있는 잠든 생명들 사이로 걷노라면 언제 여기가 울창한 숲 길이었던가 의심들 정도로 발가벗겨진 대지의 속살과 마주친다. 언젠가는 마주하게 될 거짓 없는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매 순간과의 조우는 점점이 박혀 마침내 스스로로 동화된다. 혼자 걷는 것은 그래서 좋은 것이다.


함께 걷는 것은 어떨까?

함께 걷는 이들만큼 나눠지는 짐으로 무게는 1/N만큼 가벼워지고 마음은 그만큼 더 즐거움으로 채워지니 하늘을 날고 있는 열기구에 탄 것과 같을까... 나누어진 짐들로 뜨겁게 연소되어 푸른 창공 어디로라도 날아가고 즐거운 대화는 하늘에 울려 퍼지는 합창소리 같다. 몸짓으로 소리로 향기로 화답하는 여린 나뭇잎사이로...


버려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걷게 되고 걷기 때문에 사는 것이고 살기 때문에 걷는 것이다.

한걸음 한걸음 오늘 아침 문이 열렸듯이 살아가는 것도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는 걷기 과정에 불과하다.

걸음의 끝이 어딘지는 모른다.

각자가 가는 자신만의 종착역을 향해...

물론 죽음이라는 거대한 종착역은 도착할 수 있겠지만 그곳으로 가는 시간과 거리, 가는 동안 펼쳐질 모든 과정은 모두에게 다르게 다가오니 함구하는 것이 맞다.

혼자 걸을 수 있기에,

함께 걸을 수 있기에 행복한 순간이 바로 지금이다.


나는 오늘도 러닝머신 위를 힘차게 걷고 있다.

산티아고를 향해 구슬땀을 흘리면서 피레네 산맥을 넘고, 포도향 은은한 스페인의 한적한 시골길을 걷는 나룰 꿈꾸며, 얇은 종아리가 단단해져 몇 날 며칠을 걸어도 견딜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해지길 바라면서...

열심히 걷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구름 위에서 날갯짓하며 부르는 희망과 더불어 날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뒷동산을 이고 앞 산을 향해 노 없이도 저어 가는 강물길, 산하에 한 점으로 남기에도 부족한 육신이지만 연둣빛 물감을 막 쏟아부은 신록 속에, 반짝이는 윤슬로 동무해 주는 고마운 벗들이 있기에 나는 오늘도 걷는다.


~ 걸어가야 할 다양한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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