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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May 16. 2024

아픈 고양이 단상斷想, 그래도 생명의 정원

삼색이가 잘 견뎌내길 바랄 뿐입니다!

지난주 비가 많이 오던 날 뭐가 그리도 궁금한지 비를 맞고 여기저기 다니길래 "삼색아 감기 들겠다 ~" 붙잡아 매어둘 수도 없는 자유로운 아이인지라 걱정만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사나흘 전부터 눈물 콧물에... 삼색이는 감기가 심하게 걸리고 말았습니다. 

몇 주 전에는 솜이가 감기에 결막염까지 와 밥 먹을 때 강제로 눈약을 넣어주곤 했는데 이번엔 삼색이가 탈이나 버렸습니다. 더 염려되는 것은 솜이는 크릉 거리면서도 먹으려 애썼고 덕분에 잘 나았지만, 삼색이는 도무지 먹질 않습니다.

동물병원에서 약을 지어와 통조림에 비벼줘도 먹지 않아, 주사기로 주입하다 처음으로 삼색이 발톱에 상처도 입었네요. 북어도 삶아줘 보고 닭가슴살에 비벼줘도 관심도 없습니다. 코가 막혀 숨쉬기가 답답하니 먹는 것에도 관심이 없나 봅니다.

오늘은 길냥이를 거두는 이웃 지인의 도움을 받아 콧물 눈물에 엉망이 돼버린 얼굴을 강제로 닦은 후 병원으로 데려갔습니다. 수의사 선생님은 열도 조금 있다며 영양제를 포함 주사를 세대나 놓고, 밥을 먹지 않는다고 하니 금방 나을 것 같지 않다며 내일도 봐야겠다며 주사효과는 하루라고 합니다.

병원에 다녀온 후 조금 먹으려나 싶어 고기를 입에 대줘도 고개 돌려버립니다. 식탐이 무척 강한 아이인데, 얼마나 아프면 고개까지 돌려버리나 싶어 안쓰럽지만, 마음 쓰고 있는 사람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제 천성대로 할 뿐입니다. 햇살 잘 드는 제 집에 들여놓고 싶은 마음도 몰라주고 서늘한 데크아래로 도망갑니다.

생전처음 해 보는 무서운 경험으로 캐리어안 담요에 오줌까지 쌀 정도로 놀란 심정이니, 혹 집에 들어오지 않으면 어쩌라는 염려도 듭니다. 삼색이가 아픈 걸 알기라도 하듯, 솜이는 아기들도 잘 돌보고 있습니다. 감기에 걸렸어도 먹은 솜이와 아예 먹지 않는 삼색이... 둘의 성정차이입니다. 안 먹겠다는 고양이를 강제로 먹일 방법도 없고 스스로 기운을 회복하고 먹기를 바랄 수밖에 없음이 답답합니다.

삼색이는 고양이입니다.

어쩌면 가르침을 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고양이는 고양이의 입장이 있다는 것을... 

사람이 해 줄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는 듯합니다. 불쌍한 길냥이를 거두는 것도 어쩌면 사람 마음 편하자고 하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붙잡아서 강제로 먹일 수도 없고, 개들처럼 목줄을 해 매어둘 수 도 없습니다. 고양이는 고양이의 천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삼색이가 밥도 약도 잘 먹고 빨리 건강을 되찾아 이전처럼 이곳저곳 날아다니며 기개를 펼치고 아가들도 건강하게 잘 돌봤으면 좋겠습니다.  

정원 가꾸며 사는 일은 한계를 배워가는 일입니다. 정성을 다하지만, 한계를 인정하는 일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마음을 비우게 되고 두텁게 다져졌던 아집도 조금씩 내려놓게 됩니다. 길냥이들은 돌봄을 받은 이상으로 깨달음도 안겨줍니다.


올해는 꽃을 피울까요?

향나무 옆에 심은 붉은 작약은 작년에도 꽃몽오리로, 결국 피어보지 못한 채 떠났더랬습니다. 자리가 좋지 않은 탓인가 염려도 했지만, 이른 봄에 새파란 촉이 반갑게 올라오며 자랐습니다. 연이어 탐스럼 꽃송이들도 맺혔습니다. 그런데 꽃송이들은 점점 더 튼실하게 붉어가지만 벌어질 생각이 없는 듯했습니다. 다른 곳에 있던 작약들은 벌써 꽃이 피고 지기를 반복한 지 두어 주입니다.  

올해는 제대로 필까?

궁금해 매일 쳐다보니 부끄러운 마음에 오히려 잎을 꼭꼭 다지는 것은 아닐까 싶어 "그만 볼게~~"마음을 접습니다.

그런데 오늘 꽃잎 하나가 벌어졌습니다. 겹작약의 많은 꽃잎은 언제 다 피려는지 모르지만, 꽃잎하나 틔우는데도 온몸의 신경을 기울이고 뿌리발끝까지 곤두세우는 작약을 생각하니, 올해도 피지 못하더라도 아쉬워하지 않겠습니다. 저토록 애를 작약은 활짝 피지 못한다 몫을 충분히 했습니다. 

올해 피지 못하면 내년에는 필 것입니다.

오히려 기다림과 익어감의 가르침을 줍니다.

각양각색으로 정원을 화려하게 밝혀주던 튤립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고, 초록의 생생했던 잎들은 힘없이 누렇게 뜨기 시작합니다. 땅속에서 자라고 있을 알뿌리들의 광합성작용을 위해 미관상 보기 싫어도 잎을 자르지 않습니다. 피면 지고 자라면 사그라지고, 비우면 채워지고 내려놓으면 또 다른 힘으로 채워지는 것이 흙을 밟으며 사는 생활입니다.  


마당 정원 속의 모든 생명들은 그 자체로 신비입니다. 

사방에 흐트러지기 시작한 마가렛 꽃 한 송이도 금방 찍어내듯 피는 것이 없습니다. 오월은 고개 들어 쳐다보는 곳마다 신록잎이요, 바람에 흔들리는 꽃입니다. 지천으로 널려있는 생명들이지만, 작약꽃잎 하나 벌어지는 데도 이렇게 긴 시간 요구되는 것처럼 흙에서 함께 살아가는 생명들의 성장은 경이로움 그 자체입니다.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 미처 느끼지 못한 살아있는 순간의 감동을 마당의 여러 생명들을 통해 오늘도 선물로 얻습니다. 



 


엄마 아픈 것을 알기라도 하듯 얌전한 아기냥이와 솜이

어제보다 꽃잎이 조금 벌어진 붉은 작약꽃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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