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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May 10. 2024

삼색이네와 냥멍해 보실래요?

 삼색이가 아기냥이들을 데리고 온 지 3주가 되었다. 얼마 되지 않은 기간임에도 삼색이 가족에게 여러 일이 생겨 한참 된 것 같다. 4월 26일 아침 티코(제일 먼저 데리고 온 까만 아기냥이)를, 저녁에 네 마리 모두 데려와 삼색이와 솜이 다 모여 분주했는데, 바로 다음 날 티코가 설사하더니 안 좋아졌다. 지금 생각하니 티코를 먼저 데려온 것이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게다가 삼색이 밥을 뺏어 먹어 탈이 난 건지 설사를 하고, 늘어져있길래 약을 먹였는데 다음날 외출 후 늦게 와보니 삼색이는 티코만 두고 새끼들을 데리고 나가 버렸다.

놀라서 티코를 만져보니 벌써 몸이 식어가고 있었다. 시골이라 밤에는 기온이 찬데, 따뜻한 우유를 주사기에 넣어 먹여도 제대로 넘기지도 못한다. 왜 아가들을 도로 데리고 나갔는지 모르겠지만, 티코의 상태가 좋지 않아 두고 간 것 같았다. 삼색이가 새끼들을 지키기 위한 모성애가 지극한 줄 알았는데, 이건 아니다 싶었다.

한참을 만져주고 수건으로 싸고 따뜻하게 해 주었지만 이미 식어가고 있는 몸을 녹이기는 힘든 것 같았다. 티코는 이틀을 못 넘기고 떠나고 말았다. 새끼들은 설사를 하면 탈수가 되기 쉽다는데,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잘 돌봐주지 않아 그랬나 싶은 자책감도 들고 마음이 좋지 않았다. 제 명이 그것밖에 되지 않은 것을 누굴 탓하랴... 위로하며 뒷산 나무숲아래 묻어주었다.


 티코와 모두 함께 있던 날(왼쪽 까만 아가가 티코)


티코가 떠난 다음날 삼색이가 아가들을 데리고 다시 왔다. 야옹거리면서 무언가 찾는 듯한 모습이 짠해 보였지만, 괘씸하기도 했다. "더 있다 들어오지 왜 일찍 와서 안 좋은 일을 겪게 했는지..."

하지만 뭔가 도움을 청하러 온 것인데, 제대로 소통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니 삼색이 잘못도 아니고, 동물의 세계에선 약한 새끼들은 살아남기 힘들기에 강한 새끼들 위주로 키운다는 말이 맞는 것임을 본다. 사실 고양이는 처절한 맹수 세계의 호랑이가 속한 고양잇과 동물의 길들여지지 않는 본성이 살아있는 주인공 아닌가...

식구들이 모인 주말, 모두들 너무 귀엽고 예쁘다며 삼색이 아가를 만지며 예뻐해 줬는데 월요일 아침엔 다시 나가 버렸다. 혹시라도 새끼들이 다칠까 염려한 건지, 티코를 잃었기에 더 예민해져서 인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날엔 나갔다 오기를 반복해 지금까지 몇 번을 들락거렸다.


이번주엔 일요일 저녁에 나가더니 어제 아침에 데리고 왔다.

처음 나간 날엔 걱정도 많이 했는데, 마음 내려놓으라는 훈련의 효과인지, 어디서라도 건강히 잘 지내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지가 필요하면 다시 찾을 것이야 ~" 염려도 적당히 하고 안쓰러운 감정도 많이 줄였다.

역시 사흘 만에 삼색이는 아가들을 데려다 놓았고 다시 만나니 반가웠다.

그런데, 아기냥이들이 올 때마다 눈 상태가 좋지 않다. 삼색이의 안전가옥이 어딘지는 모르지만, 사람들이 없고 숨기 좋은 곳이니 상당히 열악한 곳일 것이다. 그런 곳에 아기들을 두니 눈에 염증이 생길 수밖에... 처음 온 날도 눈이 좋지 않아 보여 안약을 넣어줘 나아졌는데 나갔다 오면 또 눈이 좋지 않다. 오늘 아침에도 네 녀석 모두 붙잡아서 눈약을 넣어 주었다. 삼색이에게는 이런 행동도 위협적으로 느껴졌을까? 하지만 그런 내색은 전혀 없었고 냥이들에게 안약을 넣어 줄 때도 한 번도 '하악"거리지 않았다. 믿음은 확실해 보였는데...

아기냥이들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다. 아가들은 노랑이, 까맣고 흰 아이, 꼬리 짧은 흰 냥이, 그리고 꼬리 긴 흰냥이다. 노랑이에겐 자몽이, 깜장이에겐 앵두, 꼬리 짧은 아가는 호프, 꼬리 긴 아가는 별이, 의미를 담아지어 준 이름대로 건강하게 잘 크면 좋겠다.


불멍도 풀멍도 비멍도 모두 좋지만, 봄볕에  발랄한 냥멍이 이리 즐거운 줄은 몰랐다.

데크에 앉아 냥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 여유 없이 사는 인생에 위로라도 던지듯 초록잎숲 사이 불쑥불쑥 피어나는 하얀 냥꽃들은  평안을 재정의한다.

배부른 삼색이는 드러누워있고 자몽이는 깔리고 별이와 앵두는 서로 엎어져, 호프는 그 사이를 헤집고 엄마젖을 빨면서 잠이 든다. 아기들 때문에 힘든 삼색이는 고개를 들어 쳐다보고 있는 눈빛 신호를 보낸다. 

"이리 와서 좀 만져줘요 ~ 주물러 주세요"

쪼그리고 앉아 얼굴을 쓰다듬으며 목덜미를 긁어주면 삼색이는 눈을 지그시 감고 "골골 송 자장가"를 부른다.

지금에만 들을 수 있는 자장가에 별이와 호프는 배냇짓까지 해가며 아옹거린다.


아가냥이들은 아직은 데크 주변을 떠나지 않는다. 솜이와 삼색이는 드러누워 있다가도 멀리 가면 목을 물어 데리고 온다. 솜이가 동생들을 너무 잘 돌본다. 고양이 육아는 엄마만 하는 것이 아니다. 길냥이도 이렇듯 온 가족이 서로 돌보는 모습을 보니 오히려 이기적인 인간들이 배워야 할 점이 많다는 것도 느낀다.

하루종일 육아에 지친 삼색이가 마실 나가면 솜이는 집에서 아가냥이들을 돌보고 있다. 솜이와 삼색이는 그동안 곁으로 들었던 고양이 성격이 아닌 듯하다. 육아는 물론 밥 먹을 때 아가냥이들이 달려들어도 하악거리지 않고 오히려 밥그릇을 양보한다. 눈앞의 모든 것이 궁금하다는 듯, 먹고 자는 시간 외엔 여기저기 헤집고 다닌다. 별이는 남아있는 돌담의 분홍철쭉꽃을 손으로 낚아 채 먹어보고, 호프는 동백나무 화분에서 뒹굴며 논다.

이제는 새끼들 자랄 때까지 정착하려는지... 삼색이네 식구들은 평안하게 오수를 즐기고 있다.

골골골 자장가는 엄마가 몸으로 마음으로 불러주는 사랑의 자장가, 가제보까지 이어진 클레멘티스의 하얀 꽃잎은 하나둘 떨어져도 움직이는 냥꽃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햇살아래 낮잠 자고 있는 삼색이와 솜이, 아가들

엄마와 즐거운 한 때  / 화분에서 놀기 좋아하는 호프

삼색이와 앵두, 호프, 자몽이, 별이 (오른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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