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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Jul 23. 2024

후각 예찬

집 비운 후각과 미각에게...

매사가 그렇듯이

너를 잃어버리기 전엔

당연한 것으로만 생각했다.


파아란 하늘, 화려한 햇살 사이 빛나는 하얀 구름의 조화 속에

고요한 미풍으로 퍼져나가는 바람 현악 연주만이

하늘을 책임지고,

장마에도 꾸준히 올라오는 장미꽃

진분홍빛 베롱꽃들의 향연 속에

막 풍성해지기 시작하는 수국 가족의 성장이

더운 여름철에도 견디게 하는 힘인 줄로만 알았다.

널리 펼쳐가는 아름다운 광경으로 눈은 더 밝아지고

미세한 자연의 사각거리는 소리로 귀는 여느 때보다 부지런해졌다.


그런데

머릿속엔 고요한 정적만이 흐르고

다니엘 디포의 로빈손 크루소처럼

어둠 속 무인도를 탈출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

머리로 가슴으로 기억되는 향기의 편린을 찾아 헤매고 있다.

보이는 모든 자연이 각기 제 할 일로 바쁘건만

이렇게도 조용하다니...

이렇게도 깜깜하다니...

향기를 맡지 못하고 맛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불편과 이해를 넘어

이다지도 고독하게 단절시키는 것인 줄은 몰랐다.


정원에 들어서면 아직 빗방울을 머금고 있는 풀들의 향기,

꽃잎이 다 떨어져 버렸지만, 사그라지며 내뿜고 있는 백합 향기,

장마에 꿉꿉해진 축축한 흙과 나무들이 햇살을 갈급하는 냄새,

아침저녁으로 밥 달라고 야옹거리는 길냥이들의 배고픈 냄새,


정원은 보이는 것, 들리는 것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눈을 감아도 귀를 막아도 느껴지는,

온갖 향기와 냄새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보이는 것보다 들리는 것보다

사실은 그들이 더 이야기하고 있었다는 것을...

독한 감기를 앓아 후각과 미각이 휴식하러 들어간 지금에서야 깨닫게 된다.


눈을 뜨고 감는 순간까지 가장 가까이서 함께 하던 너희야말로

진정한 벗이었지만,

보이고 들리는 것에만 혹해버려,

진실한 벗을 경홀히 여긴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고 있다.

후각이여 미각이여!

평생의 진정한 벗이여!

이제는 고마움을 아끼지 않고 소중히 함께 하리니

금방이라도 다시 찾아오길...



p.s. 여름 감기가 이다지 독한 줄 몰랐습니다. 감기 후유증으로 후각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것 같네요.

평소 후각이 발달해 전혀 고마운 줄도 몰랐었는데, 겪어보니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됩니다.

구독자님들도 여름감기 특별히 조심하시고 건강 잘 챙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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