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전 지인들과 함께 월악산 자락에 엤는 악어봉(559m)에 다녀왔다. 점심 후 함께 차를 마시며 담소하던 중 한 친구가 방송 보도를 봤다며 악어봉 경치가 아주 좋다며 "조만간에 가보자~"고 했는데 다른 친구가 "말이 나온 김에 지금은 어때?" 모두가 "그래 지금 가자~" 마음이 동하고 통해 오후 3시도 넘었지만 갑자기 찾게 된 것이다. 악어봉은 빼어난 절경으로 사진동호인들에게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명소지만 이 일대는 야생생물보호구역으로 묶여 있어 공식적으로는 입산이 금지된 지역이었다. 하지만 경관이 아름답고 사진 찍는 곳으로도 유명해 많은 사람들이 몰래 찾게 되어 위험하기도 했고 제재를 받기도 했다. 충주시에서는 지속적으로 환경부에 건의해 2020년 야생생물보호구역 일부가 해제되었고 이후 탐방로도 재정비하여 험한 곳에는 테크난간을 설치하고 정상에는 전망대를 만들어 올해 9월 11일 재개장하게 된 것이다.
삼십 분 정도면 충분히 올라갔다 내려올 수 있다고 해 별다른 준비도 하지 않고 동네 산책하던 운동화로 차에 탔다. 월악산 끝자락 악어봉까지 가는 길은 충주 가까이에 있어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40여분을 달려 악어봉 입구 카페에 도착했다. 카페이름도 재밌게 게으른 악어 카페주차장은 아주 넓었다. 시에서 조성해 준 것인지 개인이 만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카페를 이용하지 않아도 차는 이곳에 주차하고 등반하면 된다. 악어모양(?)의 높은 육교를 건너면 악어봉으로 올라가는 데크계단이 시작된다. 무서웠던 더위 끝나고 며칠 전부터 늦은 오후엔 선선해지는 날씨에 얇은 셔츠에 동네 산책하듯 운동화 신고 온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시작하는 데크계단부터 상당히 가팔라 탐방로가 평탄하지는 않을 것 같았는데 예상대로 길은 험한 편이었다.
탐방로 초입에 죽은 나무로 만든 지팡이가 많이 있었다. 혹시나 등산 스틱을 가지고 오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배려였던 것이다. 우리는 하나씩 집어 들고 나도 내려올 때를 대회에서 하나씩 집어 들었다. 산길은 생각보다 가팔랐지만 별 무리는 없었는데 문제는 점점 땀에 젖는 것이었다. 땀을 막을 여벌의 얇은 겉옷을 준비해야 하지 않았나 생각되고 무엇보다 감기에 걸릴 까 염려되었다. 올여름 감기 때문에 후각과 미각이 고생한 끔찍했던 생각이 떠올라 속히 올라가서 보고 내려와야겠다 맘먹었다. 조금 올라가다 일행들에게 양해를 구한 후 먼저 부지런히 올라갔다. 가파른 산길에 정말로 도움이 된 것은 몸을 뿌리째 내어준 나무들과 돌들이었다. 데크가 없는 곳도 높은 언덕길이었는데 미끄러질 수 도 있는 길에 나무뿌리들이 박혀 있어 밟고 올라가며 때론 돌들이 안정되게 받침이 되어 주기도 했다. 여느 산길에도 오래된 나무뿌리들은 고마운 역할을 해주지만, 오랜만에 오르는 가파른 산길에 몸을 내어주는 나무뿌리들은 정말 고맙고 힘이 되었다.
악어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충주호는 가히 절경이었다. 악어섬이 악어섬인 이유는 여기에 와 봐야만 알 일이었다. 내륙의 자락들이 충주호에 잠긴 모습이 악어처럼 보였다. 이곳의 악어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순하디 순한 악어들이었다. 눈알을 번득이며 호시탐탐 공격대상을 노리는 마이애미 갈대숲의 악어가 아니었다. 수고했노라며 여기까지 격려의 박수를 날려 보내며 환영하는, 초록의 싱그러움을 담뿍 머금고 있는 귀여운 악어들이었다. 등허리는 이미 젖어버렸지만 여러 초록 악어들의 반가운 환영에 올라오길 정말 잘했다 싶었다. 문화관광해설사가 모인 사람들에게 설명도 하고 있었는데 모두에게 각각의 이름이 있다고 했다. 내가 봐도 아빠 악어와 엄마 악어는 보였다.
정상에서 예상했던 대로 바람이 차고 선뜩하여 재채기가 나왔다. 사진을 몇 장 찍은 후 서둘러 내려왔다. 올라오는 일행들에게 조금만 더 가면 된다 했더니, 한 친구가 좀 전에 포기하려 했는데 내려오시던 한분이 사탕을 줘 먹고 의외로 힘이나 여기까지 왔다고 한다. 산에 오르면 산의 헌신과 배려를 배우게 된다. 서로를 몰라도 도와주고 도움을 자연스레 받게 된다.
쌀쌀해지기 전에 빨리 올라가 보라 하고 서둘러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도 그저 고마운 것은 나무뿌리들과 돌이다. 물론 초입에서 들고 왔던 나무 막대기로도 딛고 왔다. 다 내려온 후 고마웠던 지팡이를 다시 세워둔다. 누군가에게 또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추운 몸을 녹이려 카페테리아로 들어가 구경을 했다. 딱히 주문하지 않아도 자유롭게 볼 수 있는데 오래전 난에 심취해 한참 키우기도 했던, 요즘은 보기 힘든 야생 춘란 분을 팔고 있어 인상적이었다. 풍경이 좋아 그런지 야외에서 라면을 끓여 먹을 수 있도록 판매도 하고 있었다. 연휴 내 피곤했던 몸을 오랜만에 멋진 나들이로 호사시켰다는 생각을 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사진을 올려본다. 시간 되시는 분들은 꼭 가보셨으면 좋겠다. 일부러 가봐도 아깝지 않을 것 같고, 혹여 충주 부근에 들를 일이 있다면 찾아가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500 미터가 조금 안 되는 높이이긴 하지만 제법 가파르기 때문에 등산 스틱과 등산화를 착용하고 겉옷도 준비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땀 흘리며 힘들게 올라갔지만 초록눈의 귀여운 악어가족들이 "어서 오세요" 온몸으로 반갑게 맞아 주는 힐링으로 새 힘을 얻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