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잎이 풍성한 나무에, 벌레도 많다

적당히 함께 살기

by opera




오늘 아침은 비가 완전히 그친 것 같다. 저 멀리 산봉우리엔 아직 운무가 널브러져 있지만 아름답고 깨끗한 아침이다. 비는 물이라 생명의 피도 주지만, 온갖 이물질로 오염되었던 자연을 깨끗이 씻어 푸르렀던 하늘의 원래 얼굴을 찾아준다. 햇살은 살아나고 있지만 날씨는 선선하다 못해 약간 춥다.


그래도 봄이다. 그것도 여름에 밀려가는 봄이다. 쫓겨가는 봄이 얼마나 아쉬웠으면, 가을까지 끌어들였을까 할 정도로 일기가 불순하다. 꽃들도 다 떨어진 마당에 벌레들이나 어젯밤 비에다 떨어졌으면 좋으련만, 벌레들한테는 목숨을 건 일이니 악착같이 붙어 있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공작단풍 주위에 벌레가 보인다. 어제 오후에 잠시 비가 그쳤을 때도 나무젓가락으로 많이 잡았는데, 어린 송충이 같기도 하고 무슨 벌레 인지 모르겠다.


잎 뒷 쪽에 바짝 붙어서 윗부분에선 보이지 않았다. 벌레들에게 그 정도 지능이 있지는 않았을 테고 태어났으니, 햇살이 뜨거운 앞보단 서식하기 좋은 뒷면이 본능적으로 택해졌는지 모르겠다. 누가 보더라도 앞을 보지, 고개를 밑으로 돌려 가며 잎을 거꾸로 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로지 나무를 잘 키워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진 자"이기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까지 찾는 것이다. 카멜레온처럼 벌레들도 태어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여간 애를 쓰는 것이 아니다.


자연도 사람도, 옆에서 관심과 애정을 얼마나 기울이냐에 따라 때깔이 확실히 차이 난다. 상주하면서 관리를 하니, 잎도 풍성하고 꽃도 잘 피는 것 같다. 서글프지만, "관리의 힘"이다. 오죽하면 요즘 아이들도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 또 성공적인 취업을 위해서 관리해야 한다 관리받아야 한다 는 말이 나오겠는가... 자연의 생명들도, 거기에 기생하며 살아가는 해충들도 나름대로 "거주의 진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다. 마당은 삼사월과는 완연히 다른 느낌이다. 어쩔 수 없는, 누구라도 뒤바꿀 수 없는 자연의 순리대로 가는 길이니 내가 뭐랄 수는 없다. 다만 더 나쁘게 변조되지 않도록 애를 써야 할 것이 아닐까.


이상하게 벌레도 좋아하는 나무, 보기 좋은 나무에 많이 꼬인다. 올해는 유독 단풍나무 종류가 잎이 풍성하고 반들거리며 풍성하게 물들어 있다. 이웃들도 탐스럽게 잘 키웠다고 한다. 정작 난 한일도 없고, 물만 잘 준 것뿐인데... 그렇다면 그동안 배고팠구나... 그런데 이녀셕들의 잎에 벌레가 많이 꼬인다. 이파리가 너무 풍성해서 조그만 자신은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만.


인간이라고 다를 바 없다. 능력 있고, "무언가"(재물적인 면을 말하는 건 아니다)가 풍성한 사람 주변엔 항상 말이 많다. 풍성한 인간 가지와 잎을 많이 달고 있으니, 보이지 않는 고통에 덮혀질 수 있다. 본인이 부족해서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가진 것이 많다 보니, 다각도에서 털다 보면 안 털어지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갖춰진 인격이 장점이 될 수 있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그 속에 단점도 생길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혹 누가 내 말을 하든지, 욕을 하고 흉을 본다면 풍성한 단풍나무를 생각하면 될 일이다. 좋은 것만 보이려고 애쓸 필요도 없고, 나쁜 것이라고 제거하려고 너무 열 낼 필요도 없는 듯하다. 뽑아내면 또 생겨나는 잡초처럼, 벌레도 여름 내내 생기다 말다 할 것 같다.


"내가 가진 잎이 너무 많기에 벌레들이 숨어서 나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벌레가 좀 끼어 있어도 나는 죽지 않는다. 물만 잘 주고 관리를 적절히 하면, 어떤 벌레들과 더불어 올여름을 날 것이고 가을이 되어 잎이 떨어지면 벌레들은 어차피 한 세대를 긋고 죽는다. 나는 내년 봄에도 더 풍성하고 아름다운 잎을 피울 것이다. 그러니 바람에 들리는 얘기나 괴롭히는 사소한 문제들로 인해서 너무 염려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단풍나무가 말하는 것 같다.


이제는 약을 뿌릴 수밖에 없다. 약 한번 뿌린다고 해서 벌레들이 결코 다 없어지지 않겠지만, 한번 정도는 뿌려줘야겠다. 계속 뿌릴 수는 없다. 약을 뿌리는 농가에서는 매년 약의 농도와 조합을 다르게 한다고 한다. 환경변화로 인해 못 보던 벌레들과, 약에 대해 내성도 생기기 때문이다. 어차피 어느 정도는 같이 살아야 한다. 겨울이 추우면 이듬해는 해충이 준다고 한 말도 기후변화로 옛말이 되고 말았다. 작년 겨울이 보통 추웠는가. 마당을 원하는 대로만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마는 결코 그렇수 없다는 걸 배워 가고 있는 중이다. 꽃이 지면, 아니 지기도 전에 풀이 먼저 올라온다. 풀에는 신기하게 벌레도 없다. 나는 풀을 다 뽑지 않는다. 뽑으면 뽑는 대로 나는 풀을 감당키도 힘들지만, 그냥 그것도 내버려 둔다. 어차피 말끔하게 디자인된 정원이 아니니까 "조연의 풀"이 있어야 "주연의 꽃"들도 빛난다.


원하는 것만으로 채워질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채우기 위해서 오늘날까지 이어져온 인류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오히려 때로는 원하지 않는 것이 더 많이 채워질 때도 있다. 원하지 않는 것으로 채워져도, 즐길 수 있다면 "행복의 지름길"을 발견한 것이다. 매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소화시키느냐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이제 마당의 목단잎은 다 떨어졌고, 씨앗을 품은 꽃대만 "희망"을 품은 채로 뜨거운 여름을 이겨낼 것이다. 나의 여름 일기가 시작될 5월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살구가 딱두개달렸다.그것도 벌레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