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구 무상임대주택
제비가 올해는 처마 밑 벽 측면 쪽으로 집을 지었다.
작년엔 거실 유리창 옆쪽 처마 밑에 집을 지었었다. "제비 집 짓는 것 처음 보니?" 할 정도로 민망하게 매일 보면서, 어떻게 맨 벽돌 위에 저리 튼튼하게 집을 지을 수 있을까 싶었다. 두녀셕이 번갈아 흙 버무린 것을 물어 날라 짓더니, 어느 날엔가 한 녀석은 집안에서 나오질 않았었다. "아! 알을 낳고 품고 있었던 것"이다. 한 달 정도를 지났나, 조그만 새끼 제비 머리가 보였다. 조금씩 자라 세 마리가 오글거리며 재잘거렸다. 얼마나 신기했던지... 그렇게 다섯 식구가 우리 귀를 시끄럽게 해 주며 오손도손 뜨거운 여름을 잘 지냈었다.
마당의 명자나무는 제비 똥을 매일 거름 삼아 받아먹고 있었다. 새똥은 독해, 식물이 죽는다고 이웃들이 얘기하는데도 명자나무를 빼내어 옮길 데도 없어, 그대로 제비 똥 거름을 받아먹고 한 해를 나게 했다. 놀랍게도 올봄 명자나무는 너무나 크게 잘 자라서 전정을 많이 했다. 암튼 명자나무는 냄새나게 고생을 했지만, 제비가족은 잘 살았다. 8월의 어느 날 조그만 매미나방 집이 제비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게 보여, 당장 물화살을 쏘았다. 이때 아마 제비집 쪽으로 물이 조금 튄 것 같았다. 별생각 없이 매미나방 집을 제거했는데, 다음날 아침 제비집을 보니, 휑하니 비어 있었다. 아뿔싸 이녀셕들이 제 집을 공격하는 줄 알고 아기들을 데리고 야반도주를 한 것이었다. 너무 서운하고 괘씸하기도 하고, 재잘거리는 모습이 보고 싶었다.
물론 그 후로도 가끔씩 제집에 들르고 집 앞 전깃줄에 앉아 보기도 했지만, 마음은 아쉬웠다. 내가 흥부는 아니지만, 요즘처럼 "집 난리 시대"인 때, 월세도 전세도 반전세도 아닌 무상으로 집을 줬는데, 박 씨는 하나 못 물어다 줄 망정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야반도주를 하다니... 세월이 세월인지라 제비들도 어떤 낌새만 보고도, 유추될 결과를 짐작하는 삶의 지혜를 얻었나 생각하니 씁쓸했다. 하기사 이 척박한 인간 세계와 더불어 살려니 그만한 처세 없이 어떻게 살아남겠니. "그래도 너 나 잘못 봤어 강남까지 잘 갔다가 내년엔 꼭 다시와".
몇 주 전부터 제비들이 집 주변을 들락거렸다. 작년에 살던 집터(작년 가을 큰 비에 제비집이 떨어져 나갔다) 주변도 얼씬 거리더니, 눈에 띄는 곳에 제비집을 짓는 것 같진 않았다. 그런데 3주 전엔가, 약간 측면으로 다시 집을 짓기 시작하고 놀랍게도 일주일도 안돼서 다 지은 것 같았다. 자연은 사람이 알 수 없는 많은 기술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 기술을 일부분 흉내 내면서 "첨단 기술"이라고 떠드는 것뿐이다. 나는 제비집 하나도 저렇게 맨 벽돌 바닥에 매달려지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오늘 보니 암컷은 집안에 들어앉아 있고, 수컷은 집 앞 전깃줄 위에 앉아 있었다. "아 벌써 알을 낳고 품고 있구나".
제비 사는 집 하나도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인간, 눈에 빤히 보이는 제비의 일상도 제대로 이해 못하는 것이 "사람살이"다. 마당에 앉아 제비집을 보면 한 마리는 계속 무언가를 물어 나르고, 한 마리는 집안에 틀어 박혀 있다. 물어다 주는 먹이를 먹으며, 부화될 때까지 알을 품고, 부화 후에도 새끼들을 키우는 것이다. 가족끼리 그 작은 둥지 안에 다 들어간다는 것도 신기하다. 제비의 일상은 먹이를 구하고, 먹여주고, 키워내는 것이다.
올해 제비집을 보니, 작년 집보단 사람 눈치 덜 받고 훨씬 더 안전해 보이긴 한다. 자연 속의 모든 동식물이 그렇겠지만 제비의 모성애도 대단하다. 이제 새끼들이 부화하여 조금이라도 자라면 아직 붉은, 털도 제대로 나지 않은 머리를 툭하고 내밀 것이다. "어 떨어진다 떨어진다" 할 정도로 머리를 쑥 내밀고 나오면 어느새 아비는 날아와 옆에서 밀어 넣고 보호한다.
사람의 모성애는 그보다 더 위대하겠지만, 가끔씩 아기들을 확대하고 심지어 버리기까지 하는 기사를 접하게 되면 마음이 아주 아프다. 오죽하면 그렇게 했을까는 생각도 들지만 자연 속에 있는 생명체들은 순리와 도리를 거스리는 않는다.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 막 조금 나는, 어린것들을 데리고 야반도주를 감행한 것이다. "끝까지 함께 가야 한다"는 진리만 배워도 자연 속의 인간답게 살 수가 있다. 아니 인간답게 사는 게 아니라 원래 가진 생명체로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다.
처마 밑의 제비가 알을 잘 부화시키고, 올여름 가족들과 잘 지냈으면 좋겠다. 올해는 몇 마리가 부화할까 생각하니 살짝 설레기까지 한다. 강남 갈 때까지 올여름도 가족들과 재밌게 살면 좋겠다. 내년에도 올 거지? 저 집은 영구 무상임대니까... 이제부터 저 녀석들하고 지내야 할 여름은 덥고 길 것이지만, 제비와 함께 하는 5월은 또 다른 기쁨을 준다. 따닥따닥 달린 앵두가 조금씩 물들어가는 5월 어느 날 아침이다.
확실히 작년보단 눈에 덜 띄는 곳에 집을 지었다.
조금씩 물들어 가는 앵두. 벌레도 열심히 잎을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