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렛꽃이 아니라 데이지 꽃인 것 같기도 하다.
누가 마가렛을 들꽃이라 했던가. 자세히 살펴보면 정교하기 그지없고 너무나 예쁘다. 이렇게 예쁘고 아름다운 꽃인데 들꽃, 때때로 마당에서 뽑히는 잡초 취급을 받는 것은 너무 흔하기 때문이다. 사람으로 치면 훌륭한 사람이다. 어디서나 잘 자생하고 꽃 피워내는 제 일 잘 잘하고, 다른 초목들에게 스트레스는 줄 망정 스트레스 안 받고도 잘 자라는 얼마나 훌륭한 꽃인가.
밟아도 밟혀도 일어나고 아무 데나 심어도, 아니 몇 해 전에 몇 뿌리 얻어다 심은 것 외엔 심지 않았지만, 해걸이도 없이 온 마당에서 봄이면 살아난다. 얼마나 잘 자라고 번식율도 강한지 "올해만 지나면 뽑아버려리라" 하면서도 하얀 꽃이 예뻐서 다 뽑아내지는 못하는 꽃이다. 그래서 나름 머리를 쓴 것이 큰 분으로 옮겨 심은 것이다. 하고 보니 색다르기도 하고 깔끔하다. 일부러 구해서 화분에 심은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이렇게 큰 분에는 얘들이나, 가을의 메리골드가 잘 어울린다 자찬하면서.
자목련을 보기 위해 3월을 애태웠고, 지난번에 구입한 황목단은 꽃송이가 제법 살이 올랐지만, 아직도 꽃을 피우진 않았다. 일 년을 앓던 작약은 지난주에서야 꽃을 피웠다. 잘 필까 잘 자랄까, 오며 가며 관심과 애정의 눈길을 받던 아이들은 제 때가 되어서야 조금씩 기지개를 켠다. 올해는 어떨까? 별로 관심 주지 않던 아이들이 마가렛이었지만, 여지없이 예쁜 꽃들을 피워낸다.
자연은 희소가치가 있고 귀한 것, 드문 것이 사랑을 받고 예쁨도 받는다. 이상하게 사람과는 반대다. 사람은 남들과 다르면 거리부터 두고 본다. 왜 그럴까. 사람 살아가는 세상이 그만큼 힘들기 때문일까. 요즘 같은 시대, 사회의 한 귀퉁이에서 자리를 잡아간다 는 것이 너무 어렵기 때문일까. 평생을 자리 잡고 인정받기 위해서 헤매다 산 사람도 너무나 많다. 왜 그럴까 아무리 생각해도 아둔한 내 머리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마가렛은 자기주장 없이 맡길 뿐이다. 어떠면 자신이 마가렛이란 사실도 때론 잊고 있는지 모른다. 사실 자목련이나 황목단이나 자신을 봐주길 바라진 않았다. 내가 애태웠을 뿐이다. 조금 처진 장소에 있든지, 내 필요에 의해 이곳저곳 옮겨져도 , 뽑아내도 다른 말이 없다. 자연의 한 부분이란 걸 잘 아는듯싶다. 사람은 자신을 주장하며 자라고, 자신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 부분이나 마음이 마다하지 않는 부분에 대한 격렬한 반대를 하고 또 항전을 하고 자기를 세우기 위해 나아간다. 더하고, 덜한 차이일 뿐이다.
그게 인생이고 인간의 매력이고 숙명이다. 어쩌면 그래서 사람은 동식물을 지배할 수도 있는 것이다. 다만 때때로 자연에게 배워야 할 것은 순응하는 것이다. 어떠한 격식과 외형에 상관없이 제 본분을 하는 자연을 보면, 주장보다는 순응이 필요한 많은 순간도 떠오른다. 조금 여유를 가지고, 한걸음 물러서서, 어차피 우리 인생도 꽃이 피고 지는 것과 같은데, 부족한듯해도 예쁘게 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 마당에 핀 꽃은 쌍떡잎은 아니니, 마가렛이 맞나 보다. 마가렛이든 데이지든, 내 눈에 예쁘니 무슨 상관이랴.
마가렛 : 쑥갓과 비슷하나 줄기가 목질이라 나무 쑥갓이라 부른다
과명 : 국화과
학명 : Chrysanthemum frutescens
데이지 : 쌍떡잎식물 국화목 국화과의 여러 해 살이 풀이다.
과명 : 국화과(Asteraceae)
학명 : Daisy, Bellis perenn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