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관은 무겁지만 봄을 품은 왕관은 견딜 수 있다
목단의 꽃잎은 벌써 떨어졌고, 꽃이 진 자리마다 왕관을 하나씩, "이고" 있다. "쓰고 있다"는 말보다, "이고 있다"는 표현이 떠 오르는 것은 왜일까. 화려했던 꽃들은 많은 벌들을 불러들여 꽃술에 씨앗을 잉태시켰다. 네 알부터 다섯 알씩 간혹 여섯 알씩 품은 꽃대는, 5월을 보내고 이제 제법 틀이 잡힌 왕관 모양을 보여주고 있다. 목단은 제 잎보다 큰 왕관을 뜨거운 햇볕 아래, 바람과 비와 아침저녁 기온차와, 날아다니는 벌들 속에서 기어오르는 벌레들 속에서, 뜨거운 여름을 견딜 것이다. 오로지 씨앗을 익히는 일에만 몰두할 것이다. 목단의 뜨거운 여름은 시작되었다.
우리네 삶도 다를 바 없다. 태어나면서 머리에 얹혀진 왕관은 그때그때 모양을 달리하며 살아왔다. 학교를 졸업하고, 모든 것을 다 이룬 듯했던 그 시절, 왕관은 또 다른 "취업"이라는 왕관으로 바꿔지기를 원한다. 취업이라는 왕관은 "결혼과 생활"이라는 왕관으로 또 바뀌어진다. "삶"이라는 왕관은 때때론 "가장의 왕관"으로 평생 이어져 간다. "삶의 종결"이라는 왕관이 쓰일 그 날까지 우리에겐 늘 새로운 왕관이 주어질 것이다.
왕관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하지만 "함께 자라온 왕관"이라면 나의 머리에 꼭 맞을 것이다. 애당초 흔들리는 바람에 날려가지 않을 왕관은 없다. 몸 전체를 흔들어 대는 격한 바람에도 견딜 수 있는 왕관은 목단꽃처럼 제 몸에서 자라난 것이어야만 한다. 얹힌 왕관을 안고 가기엔 인생이 너무 거칠고 험하다. 내속에서 자라난, 작아도 소박하고 "진실한 일상의 왕관"이 진정 나와 함께 갈 수 있는 동반자인 것이다.
누구나가 저마다의 왕관을 가지고 있다. 쓰고 있는 사람도 있고, 품고 있는, 이고, 지고 있는 사람도 있다 지금 쓰고 있지 않는 "누군가"라면 오늘 한 번쯤은 꺼내어 자랑스럽게 쓰길 바래어 본다. 목단의 여린 왕관에 내년 봄이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처럼, "오늘이라는 하루뿐인 희망을 자랑스럽게 반짝이며, 만끽(滿喫)하라"고 싶다.
제비의 왕관무게도 사람과 다를 바 없다. 대문 앞에 앉아 제집을 지키는 "가장 제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