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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Jul 04. 2021

스마트폰으로 쓴 독일 기행기 2

뤼네부르크, 탕게르문데, 베를린1


2014.05.27

가랑비가 내리는 독일 날씨, 함부르크에 도착하니 택시기사가 기다리고 있다. 9년 전 스키폴 공항을 통해 클레베와 쾰른을 방문했을 때와는 또 다른 분위기다. 오늘 날씨와 분위기가 진짜 독일 같다. 함부르크 공항에 도착해 기다리는 기사를 만나 정말 큰 B* 차를 타고 한국에선 낼 수 없는 속도로 빠르게 뤼네부르크로 간다.  아우토반은 속도감이 엄청난데도 침착하고 여유 있어 보인다. 주행선과 다른 차선을 잘 지키고 달린다. 우리나라에선 흔한 독일의 B*, B**같은 커다란 승용차들은 별로 안 보이고, 소형 밴 같은 작은 차가 많다.


뤼네부르크에 있는 거래처 공장을 먼저 견학한다. 오래된 공장이지만 깔끔하고 잘 정리되어 있다. 독일인들의 기술적인 우수성은 잘 알고 있었지만 은퇴한 인력도 활용하고 있었다. 비상근직이긴 하지만 80세 된 기술자 00께서 같이 다니며 설명해 주신다. 공장에서 필요할 때마다 기술자문 일을 해주신다는데 그 연세에도 왕성하게 활동하시고 에너지가 넘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또한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그를 나이 드신 어르신으로만 여기지 않고, 동료로 함께 대하고 있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실제로 느껴본다.


현지 관계자들과 관련 미팅을 한 후 직원식당에서 함께 점심을 먹는다. 주로 야채 위주의 식단이며 독일 식단답게 감자요리가 빠지지 않았고, 두부버거도 인상적이었다. 우리를 가이드하는 분은 총무인 미스터 D 씨로 오래된 아름다운 마을 탕게르문데 에서 25세 된 아들과 부인과 14세 된 요키와 함께 산다고 한다. 탕게르문데(Tangermünde)는 우리가 방문한 회사의 본사가 있는 곳으로 오후에 그곳으로 출발할 예정이다.


함부르크 남쪽에 있는 뤼네부르크(Luneburg)는 엘베강의 지류인 일메나우 강 연안에 위치한 오래되고 아름다운 도시다. 중세시대 한자동맹 도시로 발전했고 18세기 하노버에 합병되었다. 시청, 성당 등 오래된 건물이 잘 보존되고 있으며 1940년대에 세워진 대학이 있다. 점심 후  잠시 짬을 내어 뤼네부르크 시내를 돌아보기로 한다. 큰 도시가 아니어서 교회를 위주로 몇 곳을 둘러보았는데, 건물이 아름답고 마을을 굽이굽이 강지류가 통과하 색다른 맛이 있었다. 오래된 것을 좋아하고 역사도 생활의 일부처럼 여기는 사람들과 자연이, 시간과 더불어 공존하는 모습이다. 나중에 여유가 생길 때 배낭 메고 천천히 다시 오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잠시 둘러본다.


탕게르문데로 출발하기 전 뤼네부르크에 있는 유기농 매장과 슈퍼, 약국을 들렀다. 우리나라처럼 대형매장아닌 중간 정도의 슈퍼마켓이고 종류나 식품도 많지는 않고 손님도 적은듯했다. 먹는 것도 문화의 일부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물건을 많이 재어놓지도 않았다. 의외로 유기농 매장이 많았고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판매하는  자연친화적인 시장문화를 볼 수 있었다.


뤼네부르크의 정경 ,  역사를 보여주는 작은 팻말


뤼네부르크에서 탕게르문데로 가다가 시골 길가에 세워진 작은 팻말을 보고  미스터 D 씨가 내려서 설명을 해 주었다. 우리가 가고 있는 이 길은 구 동독에 속해있던 지역이라 분단 전의 동독임을 보여주는 팻말인 듯했다.


탕게르문데는 북독일의 유서 깊은 알트마르크 지역에 있으며 엘베강 유역에 있어 오래전부터 홍수가 범람해 온 지역이기도 했다. 마을 주변으로 홍수방제를 위한 성벽을 쌓아놓고 수해 관리를 한 흔적이 있었다. 오래된 건물의 역사가 보여주듯 14세기 한자동맹의 주요 도시로 번영을 누린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곳으로 중세에는 엘베강을 통과하는 배들의 통행료를 받는 곳이기도 했다. 한자동맹 시절 지어진 시청은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이 혼합된 아름다운 건물이며 성 스테판 교회를 포함한  수많은 벽돌 고딕 양식의 건물이 지어졌으며 오늘날까지 거의 완전히 보존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1600년 초 대화재로 많이 전소된 후 다시 재건하였는데, 다양한 골조 건물로 특이하게 건축한 아름다운 건물들을 아직도 볼 수 있다.


탕게르문데 유적

엘베 게이트 (위키디피아),   엘베 게이트에서 수위를 측정했던 곳을 보고 있다.


우리가 묵었던 탕게르문데 성

건너편에서 바라본 탕게르문데 성 (출처:위키디피아)


우리는 묵은 호텔은  SCHLOSS  TANGERMUNDE 였는데, 1699년부터 있던 고성을 호텔로 한 곳이었다.  탕게르문데에서 하룻밤을 지내야 하기 때문에 호텔을 잡아 달라고 미리 부탁했었다. 하룻밤이었지만, 아름답게 지어진 고성에서 쉴 수 있어 중세로 돌아간듯한 감동을 얻었다. 건물과 주변이 아주 아름다웠고, 바로 호텔 공원 아래쪽에 독일을 관통하는 엘베강이 흐르고 다소 좁아 보이는 강줄기에서도 유람선을 볼 수 있었다. 


탕게르문데 성은 구시가지 중심이었기 때문에 스테판성당과 성벽이 있고 알베 게이트를 볼 수 있었다. 엘베 게이트는 엘베강의 범람을 막기 위해 성벽을 구축한 것인데, 예전에 엘베강이 범람하여 탕게르문데를 휩쓴 적도 있었고, 물 수위를 확인하는 담장을 지금도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이 지역을 보존하기 위한 모금으로 기부한 사람들의 이름을 돌에 새겨 만든 담장 벽도 인상적이었다. 


2014.5.28

고성에서의 하루는 금세 지나가고, 이른 아침에 호텔 주변을 산책하면서 새로운 하루를 연다. 마치 중세 어느 시절에 들어와 있는 듯 집마다 특색 있는 문양으로 장식된 마을이나 오래된 나무들이나 예쁜 거리까지 어울리지 않는 것이 없다. 우아한 앤틱으로 잘 장식된 호텔 식당에서 격조 있는 아침을 즐긴다. 오늘은 우리가 일정을 마치고 베를린으로 떠나는 날이라 관계자분들과 같이 아침을 했다. 이곳 사장님은 주중에선 독일에서 근무하시고 주말이면 집이 있는 스위스로 가신다고 한다. 국경 없는 유럽에 사는 지구인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유서 깊은 호텔에서 좋은 대접을 받고 기억에 오래 남을 하룻밤을 보냈음에도 호텔비는 그리 비싸지 않았다. 다음날 계산서에 조식 포함 89.2 유로 영수증을 받았다. 코로나가 끝나면 다시 가봐야 할 탕게르문데는 언제나 마음에 있다.


탕게르문데 역에서 베를린으로 가는 기차를 탄다. 베를린 관광을 위해서 미스터 D 씨가 봉사해 주시기로 한다. 하루 동안 베를린 구경을 한 후, 유레일 밤기차로 뮌헨으로 갈 예정이다. 뮌헨에 따로 숙박하는 것보다, 야간기차에서 침대칸을 이용해 자면서 가기로 했는데, 잘한 계획이었다.


베를린 반호프에 도착해 예약해 놓았던 리무진을 타고 움직인다. D씨가 가이드를 하고 다녀서 설명 들으면서 잘 구경할 수 있었다. 브란덴부르크문 주변에 있는 오래된 Aldon Kempinski 호텔에서 점심을 먹는다. 호텔 건물도 멋있었지만, 내부 장식이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멋진 건물이었다. 점심 후에 먼저 베를린 국회의사당으로 향했다. 비가 내리고 있어, 차로 움직이지 않았다면 아주 고생할 뻔했다. 베를린 국회의사당 돔은 유리천장으로 꼭대기까지 돌면서 올라가게 설계되어 외부로 전경을 보게 되어있다. 비가 오지만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었다. 입구에서 검사를 철저히 하고 순서를 기다려 입장했다. 유리 돔으로 비가 내리쳐서 색다른 베를린의 풍경을 볼 수 있었다.


분단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베를린은 전쟁 후 60% 이상이 파괴되어 새로 재건하다시피 했는데, 유적은 거의 그대로 복원하려고 애를 써 도로의 돌 하나까지도 제자리를 찾아 맞춰 박았다고 한다.  아스팔트 반죽 쏟아붓는 것과, 조그만 돌덩이 하나도 망치로 맞춰 인도를 만드는 것은 생각도 방법도 다른 것이다. 선진국일수록 전체의 행복과 이익이 우선이고, 지켜야 할 것이 많기 때문에 개인이 불편한 경우도 의외로 많다. 자유가 남발돼 보이지만, 각자 맡은 일에 충실하고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사는, 절도 있는 모습을 많이 본다. 절망 위에 다시 세워진 삶의 흔적을 시내 곳곳에서 보면서 동서 베를린 분단의 벽에서 사진을 찍는다.


베를린 국회의사당 돔 오르는 계단

동서 베를린 분단의 벽의 벽화들


베를린에서 뮌헨으로 가는 기차는 저녁 10시 15분에 출발해 아침 8시13분에 도착한다. 기대를 가지고 야간열차를 탔는데, 생각보다 좁았다. 침대 한 칸에 옆으로 미니 옷장과 세면대와 접히는 자그만 테이블이 있었다. 창가를 내다보며 짧은 향수에 젖는다. 야간 침대열차라고 조용하지 않다. 중국인들은 세계 어디서나 요란하다. 조금 떨어진 곳에 여러 명이 있는 것 같은데, 주변 사람들의 수면을 방해하는 것은 아랑곳하지도 않는 듯 떠든다. 여행 온 즐거움을 얘기하는 건지,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시끄럽다.


물휴지로 작은 세면대에서 간단히 씻은 후 잠자리에 누었다. 피곤해서 그런지 시끄러움과 상관없이 잠이 들었다. 얼마를 잤을까 벌떡 깨어보니 6시 45분이다. 놀라서 일어나, 얼마나 깊이 잤으면 알람 소리가 몇 개 울려도 듣지 못했을까... 순간적으로 아차 싶어 다시 핸드폰을 보니, 아뿔싸 듀얼 타임. 내가 본건 현재 한국시간이었고 여기는 밤 11시 55분이었다. 한 시간 동안 아주 기분 좋게 잔 것이었다.


다시 누우니 여러 생각이 든다. 결국 6시 45분이나 23시 55분이나 같은 것 아닌가 말이다. 내가 있는 곳이기에 맞는다고 할 수만은 없다. 같은 시간도 다르게 "시차"라는 편리한 말을 쓰긴 하지만, 뭐가 맞고 그르다고 할 수 있겠는가. 동시다발적인 인생의 흐름을 받아들이고 담담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 삶 아닌가. 어스름 하늘 동편에 새벽이 스며든다. 너무 예쁘고 아름답다. 넓고 넓고 또 넓게 펼쳐지고, 펼쳐져서 "답답함"이라는 것 자체가 없을 것 같다.


이제 사흘째인데, 왔다 갔다 하려니 여러 날이 된 것 같다. 철학자의 나라 독일에서도 살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 철학적으로 살지는 말것이다. 그냥 탕게르문데의 삶처럼 살자! 사람들은 변하지 않는다. 모두가 제 멋에 사는 거다. 그러니 그리 살면서 어울리면 된다. 지나치게 고민하지도 말고 너무 힘들어하지도 말 것이다. 이제 30분 후면 뮌헨 도착이다. 독일 표준 발음으로 뮌헨이 아니라 뮨첸이다. 뮌헨에 너무 오고 싶었다. 아마도 오래전에 읽은 전혜린의 책에서 기억나는 뮌헨의 추억 때문이 아니었을까. 뮌헨의 가스등을 보고 싶었다.


베를린 반호프와 2인용 슬리퍼 객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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