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버드네 Sep 12. 2019

딸의 부탁

  "오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죄송해요. 함께 못 가겠어요."

 외할머니상을 당해서 약속을 지킬 수 없다는 후배가 얼마 전 들려준 이야기가 문뜩 떠올라 울컥한 마음에 눈물이 핑 돌았다. '결국, 명절 전에 돌아가셨구나!' 후배의 외할머니는 요양원에서 오랜 시간 지내다가 몇 달 전부터 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지셨다고 한다. 의례적으로 한 달에 한번 번갈아 방문하던 자식들은 어머니의 위급한 상황에 주말마다 요양원을 가야 했고 며칠 전부터는 얼마 남지 않을 것만 같은 어머니의 임종에 모두들 분주하고 혼란스러웠다고 한다.  

  어머니와 이별에 대한 혼란스러움도 있었겠지만 추석 명절이 다가와서 일터에서 해야 할 제각각의 분주한 일들이 쌓여가는 부담과 명절에 어머니의 상을 치르는 버거움이 자식들 사이에서 한숨에서 원망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형제들의 하소연에 후배의 어머니는 요양원을 찾아갈 때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외할머니께 부탁을 했다고 한다.

  "엄마, 추석만 지나고 돌아가시면 안 될까!"

외할머니의 죽음보다 자식들의 현실적인 생활 문제와 명절이나 제사 전에 조문을 하지 않는 지역 풍습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명절 전에 집안에 초상이 나서 부고를 알리는 것이 민폐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외할머니를 둘러싸고 외가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 후배는 하소연처럼 직장 동료들에게 전했다고 한다. 특히, 자신의 어머니가 매일 병실을 찾아가서 외할머니께 부탁하는 말을 함께 전했을 때 한 동료가 뼈아픈 말을 했다고 한다.

"자식들은 평생 부모한테 부탁만 하는 것 같아."

부모는 자식한테 '전생이 빚진 자'처럼 평생 갚기만 하면서 사셨는데, 어떻게 돌아가시는 것조차 자식들 편의를 위해서 죽음 날짜를 부탁할 수가 있냐며 한숨을 쉬었다고 한다. 그렇게 자신의 죽음조차도 자식들의 동의가 필요한 외할머니는  '딸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하고 명절을 이틀 앞둔 오늘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냥 편하게 운명하셨을지 딸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곱씹으며 돌아가셨을지는 누구도 알지 못할 일이다. 그렇지만 누구라도 딸의 간곡한 '부탁'을 들어주지 못한 마음은 가슴 한편에 남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죽음 앞에서도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이기적인 딸의 부탁마저도 들어주지  못해 안타까워하셨을지도 모를 일이다.

  후배도 이제 어머니가 되고 외할머니가 되어갈 것이다. 외할머니께 부탁을 했던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고 다시 이러저러한 일로 자신의 어머니께 부탁을 하는 딸로 살아갈 것이다. 어머니를 가슴 아프게 하였던 많은 부탁들이 있었고 앞으로 할지 모르지만 더 늦기 전에 들어줄 수 있는 부탁을 요청해 보면 어떨까 싶다.

"엄마의 좋은 말벗이 되고 싶어요."

  지나온 시간만큼 차곡차곡 쌓아둔 어머니의 이야기를 요청하고 듣고 싶다는 딸의 부탁은 그래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생에 다시 빚진 자로 만나지 않기 위해 더 이상 누구라도 후배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눈물 나지 않게 말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덤덤하게 딸의 이야기를 들으며 임종할 수 있기를 나 또한 딸에게 부탁하고 싶어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