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했던 시간
몇 번을 망설이다 전화를 하였다.
'기다리고 있겠노라'고 전해오는 반가운 음성은 설레임을 갖게 하였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길에 내가 타고 가야할 버스는 정말로 오래도록 나를 기다리게 한다는 지루함이 버스보다 먼저 도착했다.
함께 자리를 하고 어떻게 살았는냐는 인사에 '그냥요'라는 짧은 답변을 하였다. 나는 당신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라는 몇 번의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 그는 요즘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였다.
차를 마시기에는 날씨가 덥다는 말 끝에 시원한 음료를 주겠다고 하였다. 어떤 것을 좋아하냐고 물었다. '아무거나'라는 나의 대답에 싱거워 하며 냉장고에서 이런저런 음료를 고르더니 알로에 음료를 건네 주었다.
두 달 전에 만날 때와는 다르게 부쩍 야윈 얼굴에서 윤기가 났다. 예전에 수척하고 꺼칠한 모습에 복잡한 세상사를 얼굴에서 지워내기 위해 애쓰는 듯만 같았는데 그렇게 그는 잘 살고 있는 듯하였다.
그가 이야기를 잘 하였던 것일까 내가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일까 1시간 30분은 그렇게 훌쩍 가버렸다. 요즘 읽었던 책이야기와 책에서 느낀 깨달음에 관한 이야기 사람들은 그렇게 자신을 변화시키고 성장하고 있었다.
'삶은 풀어야할 문제가 아니라 경험해야 할 신비입니다'라는 책을 권유받고 사기로 하였다. 여지 껏 복잡한 문제들이 전부 싸워야할 적병처럼 느끼고 살아온 내게 조금은 색다른 메시지를 줄 것 것이라 기대하면서 말이다.
지금 내게 이야기를 해 주는 사람은 어떻게 나를 변화시키고 있는 것일까? 나와 함께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성자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탁닛한, 달라이 라마, 그리고 얼마전에 입적한 숭산에 관해서도 ... 문득 이야기를 듣다보니 우리는 모두가 성자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자신 속에 들어있는 신성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저 가슴 답답해 하며 인성에 힘겨워 할 수도 있겠다.
그리움이나 기다림은 그 대상과 일체감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그리움의 상대가 나와의 일체감을 느끼게 된다면 그때는 이미 나 또한 자연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환상은 환상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