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만난 사람
세상에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 아이들과 상담하는 일이었다.
복도에서 반성문을 쓰고 있는 아이를 데려와 상담을 하였다. 학생부장 선생님께 물어 보았더니 '복장불량'과 '빈번한 지각'으로 요주의 학생이라고 하였다.
어른에 대한 불신과 경계를 가진 학생들에게 친밀하게 다가서기 위해 내 자신에게 최면을 걸어 친근한 표정과 다정한 말로 무장해제를 기원했다. '그냥'이라는 대답을 버릇처럼 하는 학생들 앞에서 꼭 대답할 수 있는 질문거리를 찾다가 시작된 것이 아이의 이름에 관한 칭찬과 배경 이야기였다.
'새누리'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의 이름을 누가 지어 주었는지 물었더니 순간 아이는 눈가에 눈물이 맺히는 것이었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순간 당황하며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고모부님께서 지어주셨다고 했다.
'그래'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 가려는데 아이는 얼마 전에 돌아 가셨다고 하였다. 의도치 않게 아이가 꽁꽁 싸매고 있던 슬픔을 터트리고 만 꼴이었다. 어떻게 돌아가셨는 지 물었더니 갑작스럽게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고 하였다.
처음 상담실을 들어설 때 경계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고모부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계속 아이는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이야기를 한참 듣다보니 얼마 전에 여러 사람을 통해서 들었던 그 분의 이름을 다시 듣게 되었다. 아 그 선생님이 너의 고모부시구나!
지역에서 다양한 문화활동으로 많은 사람들 가슴 속에 꿈을 키워주시고 자신은 그리운 별로 자리 잡으신 분이셨다. 또한 그 분의 장례식에 수많은 하객들과 넘쳐나는 조화는 꽃길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던 바였다. 또한 그 선생님은 지역공동체를 위해 이런저런 봉사와 인연을 맺은 곳이 많아서 일반적으로 장례차가 한 곳에 머물다 가는 것에 비해 그 분의 장의차는 5-6곳을 갔고 장소마다 사람들의 안타까움과 슬픔으로 눈물바다가 되었다고 했다.
내 앞에서 고모부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아이의 가슴 속에도 고모부에 대한 그리움은 다른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깨어난다는 생각을 하였다. 아, 그렇구나. 슬픔의 방식을 어떻게 해야할 지 몰라서 이렇게 반항으로 표현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충분히 위로가 필요한 시간을 함께 나누지 못한 탓에 슬픔을 이렇게 밖에 표현하지 못한 아이가 안쓰러웠다.
돌아가신 고모부는 아이가 태어났을 때 100개에 가까운 이름을 부모님께 들고 와서 그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며 내밀었다고 하였다. 한 아이의 이름을 짓기 위해서 그만큼 지극한 정성을 쏟았을 분을 생각하니 그분이 다른 일에는 얼마나 어떻게 열정을 쏟았을 지가 짐작이 되었다.
세상을 위해 분주하고 열정적으로 살았던 사람의 삶을 돌이켜 보면서 나의 일상과 시간이 부끄러워졌다.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그토록 살고자 했던 오늘 하루를 내가 대신 살고 있음에 부끄럽지 않도록 해야 할텐데, 생각처럼 싶지가 않다.
'새누리'에게 희망을 기대하고 싶었다. '내가 만난 100명의 학생 중에 너라서 좋았고 나의 시간과 진심을 살펴서 우리의 만남을 헛되지 않게 해 준다면 나는 기쁘겠다.' 라는 말로 새누리에게 짐을 지우고 상담을 끝냈다.
이름을 짓는다는 일이 어쩌면 그리운 마음을 떠올리게 하는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