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만난 햇살과 바람
예상보다 일이 빨리 끝나서 집으로 오는 길에 버스를 타지 않고 동천을 따라서 걷기로 하였다.
아직은 일과를 마치지 않는 태양은 산꼭대기에서 세상을 관찰하고 쏘아보고 있는 듯했다. 따가운 햇살이 피부에 와 닿을 때마다 땀이 맺히는 것 같은 더위가 몰려왔다. 눈부신 빛을 향해 굳이 그냥 걷고 있는 나까지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찬찬히 걷다보니 하늘이 벌써 내 뜻을 수락하기라도 한 것처럼 시원한 바람이 빰과 머리칼을 스칠때마다 기분이 상쾌해지기도 하였다. 마음이란 변덕스러워서. 인생이란 것도 이렇게 걷다보면 해결되는 것이 있을 듯도 싶다.
태양만큼은 아니지만 걷고 있는 동천에는 아름다운 벽화가 시선을 끌기도 하였고 맑게 출렁이는 물살이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였다. 미친 척하고 한번 뛰어들 용기까지 내지는 못 했지만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요소들은 얼마든지 있을 거라는 예감은 들었다.
그늘마다 고스톱 판을 벌리고 화투를 치는 나이드신 할머니들과 할아버지를 보면서 내가 나이들면 내 고향 바닷가에 가서 조개도 잡고 고기도 잡고 어부가 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꿈은 희망과 짝을 이룰 때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그냥 꿈만 꾸기로 했다.
내 옆을 스치고 지나가는 사람이 입을 꽉 다문 채 모자를 눌러쓰고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건강이거나 다이어트 이거나 자신만의 각오 또는 일종의 결심이 속도에서 느껴졌다. 그래봤자 동천 걷기라는 생각에 나의 걷기 속도에 변화를 주기 싫었다.
언제가 밤 산책에서 물위에 뜬 부레옥잠이 달빛으로 볼 때는 아름다운 군락처럼 느껴졌는데 낮에 보는 부레옥잠 무리들은 데모군처럼 답답해졌다. 자세히 보아야 보아야 예쁘다는 말이 예외가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예쁜 것들은 진짜 예쁜 것인가 아니면 멀리 보아야 예쁜 것이 그나마 예쁜 것인가 사실 그것이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동천 주변에 높이가 들쭉날쭉하게 자란 잡풀을 보면서 언제 한번 저걸 깨긋하게 정리하면 어떨까하는 그림을 그려보았다. 내 머리속에 들쭉날쭉하게 자라는 생각의 줄기들도 아마 잡풀처럼 정돈되지 못하고 혼란스럽게 자라서 더 답답하게 다가왔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덧 태양도 산 너머로 퇴근을 하고 따라서 시원한 바람이 뺨을 스치는 걷기 좋은 시간에 머물게 되자 탁 트여지는 가슴에 대한 고마움을 어떻게 보답해야 할 지 고민하게 됐다. 그까이것 글로 좋았다고 쓰면 되겠다. 싶었다.
변덕스런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로 다시 돌아올 수 있게 하는 동천이 아주 가까이 내 주변에 있다는 사실이 생각할수록 감사했다. 한 쪽 눈을 살짝 감으면 물 위를 걷는 착각에 빠질 수 있는 징검다리를 건너고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방향을 뒤따르다 보니 15분이면 도착할 집을 1시간여 남짓 들여서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