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만난 비
비오는 날은
변덕스럽게 허전해 지고
햇살을 가린 흐릿함은 머리 속에 차 올라
물 먹은 스폰지마냥 몸까지 무거워진다.
어린날 추억 속에서
한옥 기왓장 사이로 쏟아지는 물줄기가
장막이 되어 세상과 경계를 세워주는
굵고 시원한 그런 여름비라면 또 모를까!
비오는 날은 알 수 없는 무언가에 이끌려
그립고 허전할 뿐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비가 와서 허전할 때
나는 팥죽을 먹기 시작했다.
더운 김을 호호 불며
한수저 넘기는 걸죽한 국물과 쫄깃한 면발은
입 안에서 소용돌이 치며
이런저런 이유로 돌아앉은 삶의 열정을 마주하게 하였다.
면발이 풀어지지 않게
국물이 아직 출렁일 때 후다닥 팥죽을 해치우면
땀방울이 송글 맺히고 뜨거운 체온으로 살아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게 하였다.
내가 팥죽을 먹었던 그날의 비는 팥죽비였다.
그래서 햇살을 가린 그 비를
나는 참아낼 수 있고 기다리게 되었다.
함께 맛있게 팥죽을 먹을 친구를 떠올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