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아직 배우고 있는 중이야

내 아이의 감정 이해하기 3.

by 옥민혜

더 이상 어린이집에 다니지 않겠다고 선언한 아이는 문제의 친구인 OO가 없는 곳으로 가고 싶다고 했다. OO에 대한 감정의 골이 생각보다 훨씬 깊었다.


아이의 생각지도 못 했던 행동에 당황하며 그 날 하루를 반쯤 정신이 나간 채로 보내고, 답을 찾기 위해 밤 새 잠을 이루지 못했던 건 이것이 이제 아이가 앞으로 살면서 겪게 될 수많은 문제들 중에 그저 하나에 불과할 뿐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이것은 사회와 조직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가며 복잡하고 험난한 세상을 살아내야 하는 내 아이가 인생에서 처음 맞이한 문제라는 것이 내게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다.


처음에 아이의 행동에 당황하고 감정의 동요도 심했던 나는 실제로 어린이집을 옮길 생각까지 했었다. 그래서 주변 어린이집 몇 군데를 알아보기도 하고, 아직 새 학기라서 결원이 있는 근처 유치원들도 찾아보았다. 남편에게 어린이집을 옮기는 게 어떻겠느냐고 물어보았다. 남편은 '그렇게 하는 것은 문제에서 도망치는 것이지 절대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옮기게 되면 그곳에서 비슷한 문제를 또 겪을 수밖에 없다고. 그 말에는 나도 동감했다. 답답한 마음에 이 곳 저곳을 알아보기는 했지만 그렇게 옮겨가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이미 나도 알고 있었다.


아이 앞에 장애물이 있을 때마다 부모가 달려가서 그 장애물을 직접 치워주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지는 말자는 것이 내 나름의 원칙이었다. 아이 스스로 그 장애물을 넘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응원해주고, 기도해 주는 것 까지가 내 몫이며, 그것을 잘해 냈을 때 아낌없이 칭찬하고 격려해 주자는 것이 그동안 내가 고수해 온, 이를테면 내 교육철학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머리로만 생각해 왔던 것이 막상 그 문제를 맞닥뜨리게 되자 회로가 고장 나 버린 기계처럼 버벅거리기 시작했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는데 답을 모르겠는 것이다.


정해져 있는 답을 두고 나는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아이의 감정이 걸려있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내가 고수해 온 교육철학이 무엇이건 간에 아이가 마음이 아프다는데, 그 친구가 그렇게 끔찍하게 싫다는데 그곳에 계속 가야 한다고 등을 떠미는 짓을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가기 싫다는 아이를 떠밀어 보내고 내가 과연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을까. 생각은 저만치 나아갔다가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오기를 수 없이 반복했다. 결국은 계속 제자리였다.



다음 날 아침 아이들이 모두 일어나고 여느 때 같았으면 등원 준비로 분주했을 시간에 나는 계속 아이의 눈치만 살폈다.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까. 가슴이 콩콩 뛰었다. 그런데 그때 아이가 먼저 내게 말을 했다.


"엄마, 오늘 어린이집에 가면 무슨 활동 해요?"


어제는 두 번 다시 그곳에는 다니지 않겠다고 그렇게 으름장을 놓더니 이게 웬 말인가. 나 역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글쎄~ 오늘은 어떤 즐거운 놀이를 할까? 서희네 반에 재밌는 놀잇감이 그렇게 많다며? 엄마도 한 번 가보고 싶다. 너무 궁금해."


"그래? 그럼 내가 설명해 줄게. 엄마는 어른이라서 들어올 수가 없어. 엄마가 5살 되면 그때 와."

어린이집에 대한 아이의 감정이 많이 누그러진 것 같은 분위기에 나는 신이 나서 더 말을 이어 갔다.


"아참! 그리고 다음 주부터 특별활동도 시작된데. 이제 형님반이 되어서 오후 시간에 특별활동도 하게 된 거야. 매주 월요일에는 체육 활동이 있데!" 호들갑을 떨어보았다.

"뭐 하는 건데?"

"공차기도 하고, 공 던지기, 줄넘기, 달리기, 훌라후프 그런 것 들을 하는 거야. 와 너무 재밌겠다!"


아이들이 박수를 치며 폴짝폴짝 뛰었다. 둘이서 무어라 무어라 이야기하며 깔깔대기도 했다. 그래, 기회는 이 때다. 기분이 좋아진 아이를 앞에 두고 나는 조심스럽게 OO의 이름을 꺼냈다.


"그리고 서희야, 있잖아. 엄마도 몰랐던 건데, 사실 OO가 마음이 조금 아픈 아이래. 서현이 서희도 저번에 감기에 걸렸을 때 많이 아파서 병원 가서 약 먹고 그랬잖아. 그런데 OO는 마음이 많이 아프다는 거야."


그렇게 이야기하고 아이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생각보다 진지하게 내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리고 OO는 집에서 엄마 아빠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픈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서 사실은 서희한테 좀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었던 것일 수도 있어. 그렇게 맨날 장난감을 뺏아가고, 양보도 안 해 주고, 소리 지르고, 화내고 했던 게 서희가 싫어서 그랬던 게 아니라 마음이 너무 아파서 그랬던 거였어. 서희 마음에는 항상 하나님이 계셔서 서희가 힘들고 마음이 아플 때 언제나 위로를 해 주시지만, OO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안 계셔서 아무도 위로해 주지 않았던 거야."


그렇게 이야기를 차근히 이어나가자 내내 진지하게 내 말을 듣고 있던 아이가 대답했다.


"그래? 난 그런 건 몰랐네..."


그 반응은 정말 생각지도 못 한 것이었다. 이만하면 되었다 싶어서 더 긴 말은 하지 않았다. 오늘은 수요일, 그렇게나 좋아하는 미술학원에 가는 날이기도 해서 하원하고 미술학원에 가자는 말에 더욱 신이 나서 아이는 집을 나섰다. 걱정도 되고 긴장도 되고, 그런 마음으로 아이들을 등원시켰다. 어린이집 현관에서 담임 선생님께 아이들을 인솔해 주고, 아침에 아이들과 나누었던 얘기들을 잠시 해 주었다. 선생님도 일과 시작 전에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눠보겠다고 했다.


다행히 하원 때도 아이들의 기분은 걱정했던 것보다 나쁘지 않았다. 좋아하는 미술학원에 신이 나서 갔고, 학원 수업을 마치고는 씽씽이를 타고 온 동네를 휘젓고 다녔다. 벚꽃이 눈처럼 내리는 나무 아래에서 나비도 보고, 새도 보았다. 상처 받았던 아이의 마음에 그렇게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 들어갔다.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기 전 거실에서 놀이 몇 가지를 하고 있는데 작은 아이가 갑자기 스케치북을 달라고 했다. 스케치북을 건네받은 아이는 생일 선물로 받은 크레용을 꺼내서 무언가 한참 집중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이들 잘 준비를 하느라 나름 혼자서 분주했던 나는 어느 정도 용무를 마치고 아이에게 다가갔다가 그때서야 아이가 완성한 그림을 보았다. 이제껏 아이가 주로 그렸던 종류의 그림도 전혀 아니었고 색깔이나 모양도 평범해 보이지가 않아서 나는 조금 놀랐다. 애써 침착한 척하며 아이에게 '이게 무슨 그림이냐'라고 물었다. 그러자 아이가 대답했다.


이건 OO의 아픈 마음을 그린 거야. 엄마, 이거 사진 찍어서 카톡으로 OO한테 좀 보내줘.
친구의 아픈 마음을 그린 그림


어린이집 선생님 말씀에 따르면 아침 등원 전에 내가 아이에게 해 준 이야기를 제대로 기억하고는 선생님께 그 내용을 설명을 해 주더라고 했다. 어린이집에서도 다른 날과 달리 그렇게 OO를 유심히 바라 보더란다. 엄마 말씀처럼 아직 조금 부족하고 도움이 필요한 친구들에게 우리가 함께 도움을 주어서 다 같이 멋진 형님반 친구들이 되어보자고 얘기해 주자 야심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고 했다.


아이의 그림과 그 말에 나는 너무나 감동을 받아서 하마터면 또다시 아이를 안고 울 뻔했지만 이 번에는 꾹 참았다. 평정심을 유지하며 그림을 참 잘 그렸다고 칭찬해 주었다. 그러자 아이가 그림을 마무리하면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OO야, 그렇게 마음이 많이 아팠니? 그럼 내가 미안해. 앞으로는 아프지 마.

이웃과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대로 아이를 키우려고 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몰라 그저 막막하다는 감정을 글로 적었었다. 그런데 정작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그렇게나 밉고 싫다던 친구를 이미 용서하고 그 친구의 마음까지 헤아리려고 노력하는 아이가 나는 너무나 대견스러웠다. 장애물을 치워주기보다는 아이 스스로 그것을 넘어설 수 있기를 응원하면서도, 정작 그 방법까지는 몰라서 내내 전전긍긍했던 내게 아이는 보란 듯이 그것을 멋지게 극복해 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너무나 장하고 기특한 내 딸. 이렇게 한 뼘 더 너는 성장하는구나. 부족한 엄마는 이렇게 너에게 또 배운다. 산다는 것은 그렇게 언제 어디서나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일이란다. 엄마도, 엄마의 엄마도 평생을 실패하고 넘어지면서, 그리고 지금도 그 속에서 여전히 삶을 배워나가고 있는 중이다. 더 좋은 사람, 더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부족한 엄마를 너희도 힘껏 응원해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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