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처음으로 친구의 험담을 했다

내 아이의 감정 이해하기 1.

by 옥민혜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레19:18)




아이들이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새로운 반에 올라가 새 학기를 시작한지 이제 한 달이 지났다. 3년째 다니고 있는 어린이집이라 선생님들도, 친구들도 모두 익숙해서 새 학기에 적응하는데 큰 어려움이 있지는 않았다. 더구나 어디서나 '둘이 함께라는 것'은 아이들 서로에게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다른 아이들은 기관을 다니면서 한 번쯤은 가고 싶지 않다고 떼를 써서 엄마를 힘들게 하는 시기가 있다는데 다행히 우리 아이들은 여태껏 단 한 번도 그런 적은 없었다. 아마 지겹도록 싸워대면서도 알게 모르게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 세계를 어른인 내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 작은 사회에서도 어느 정도의 텃새와 권력 다툼이 있는 것 같다고 느낀 건 집에 와서 아이들이 한 마디씩 꺼내는 말들 때문이었다.


이제 못 하는 말이 없을 정도이고, 심지어 어른의 말투와 버릇을 똑같이 흉내 내어 말하는 것도 가능해졌으니 아이들과 소통하는 데에는 거의 문제가 없다. 다만, 자신이 보고 느낀 것, 일의 인과관계, 사건의 경위 같은 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에는 아직 한계가 있다. 이렇다 보니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을 집에 와서 이야기할 때 어떤 것은 이해가 가고, 어떤 것은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 경우가 반반 정도가 된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 것은 말의 앞 뒤 맥락을 생각해 보고, 내가 대충 짐작하여 정리한 후 '이런 얘기니?' 하고 다시 물어봐 준다. 그게 맞다면 그렇다고 하고, 아니면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가끔가다 자신이 제대로 설명하기 어려운 얘기라면 더 이상 말하기를 거부하기도 한다.




친구들과의 관계는, 적어도 내가 아는 한에 있어서는 지금까지 대체로 원만한 편이었다. 친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얘기하면서 누구와 무엇을 하고 놀았는지, 누가 무엇을 잘못해서 선생님께 혼이 났는지, 오늘 누구와 어떤 다툼이 있었고, 어떻게 해결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하곤 했다. 어린이집에서 질서와 양보를 배우고, 규칙과 관계 맺기를 배워나가면서 조금씩 자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새로운 반에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이들이 유독 한 친구의 이름을 자주 얘기하기 시작했다.


두 아이 모두 동일하게 그 친구의 얘기를 매일같이 하곤 하는데, 큰 아이의 경우는 그 친구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들을 설명하는 편이고, 작은 아이는 그 친구에 대한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이야기했다.


"엄마, OO는 맨날 눈을 이렇게 하고 봐."라고 말하며 눈을 흘기는 시늉을 하는 것은 큰 아이다.

"오늘은 OO가 기분이 좋아 보이더라."라고 하기도 한다.


"엄마, 오늘 OO가 내 놀잇감을 말도 안 하고 뺏아 갔어."

"OO는 장난감을 안 빌려주고 혼자만 갖고 놀아."

"OO 싫어, 나빠."라고 말하는 것은 작은 아이다.


나는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면 매일같이 친구 OO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이제껏 아이들이 단 한 번도 친구에 대해 나쁜 감정을 말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더욱 마음이 쓰였다. 어찌 됐건 그 친구와 작은 아이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은 대충 짐작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OO는 올해 새로 들어온 새 친구의 이름이었다.


어느 날 작은 아이가 OO와 다툰 얘기를 했다.


"어머, 그랬어? 엄마가 가서 혼내줄까?"

"응!"

"OO는 왜 양보를 안 하고 혼자만 놀려고 하지? 그러면 안 되는데. 사이좋게 같이 놀아야지. OO 나쁘네. 앞으로 걔랑 놀지마."


나는 아이에게 그렇게 말했다. 생전 친구 험담을 한 적 없는 아이가 얼마나 속이 상했으면 집에 와서 저런 얘기를 할까 싶어서 나도 마음이 꼬여버린 것이다. 그리고 담임 선생님께 나중에 시간을 내어 따로 한 번 여쭤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등원 길에 OO와 마주치게 되었다. 그리고 함께 있던 그 친구의 엄마를 보았다. 아는 사람이었다.




우리가 사는 집 1층에 가정 어린이집이 하나 있었다. 규모가 작은 어린이집인데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가다 보면 그곳에 다니는 아이들의 등 하원 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어느 날은 엘리베이터에서 아주 작고 예쁜 여자 아이 하나를 보았는데 엄마가 외국인이었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필리핀이나, 베트남계의 동남아시아 사람 같았다. 늘 엄마와 아빠가 함께 아이 등 하원을 시켰고, 항상 아빠가 앞에 가고 엄마는 그 뒤를 조용히 따라갔다. 동생으로 보이는 갓난아기를 아기띠에 안고서 매일 1층 어린이집을 오가는 모습을 나는 자주 보았다. 아이들이 유독 예뻐서 동네 사람들이 지나가면 아는 척을 많이 했다.


보통 아이를 데리고 다니다가 주변에서 예쁘다고 인사치레로 아는 척을 하면 대개는 고맙다고 화답하거나, 슬쩍 미소를 지어 보이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다. 그런데 그 아이 엄마는 사람들이 그렇게 아는 척을 하면 노골적으로 불쾌한 티를 냈다. 그 점이 인상적이어서 더욱 그 엄마를 잘 기억하고 있었다. 한 번도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고, 늘 무언가에 잔뜩 화가 나있어 보였다. 어떤 날은 엘리베이터에서 아기띠에 안겨 잠이 든 둘째가 정말 인형처럼 예뻐서 미소 지으며 바라보았는데 불쾌하다는 듯이 홱 돌아서 버려서 무안했던 경험도 있다. OO는 그때 그 엄마가 어린이집에 데리고 다니던 아이였다. 1층의 어린이집이 작년 초에 없어지면서 아마 그동안 가정보육을 했거나 다른 어린이집에 다니다가 이번 새학기에 지금의 어린이집으로 오게 된 모양이었다.


아이의 엄마가 누구인지 알게 되자 나는 OO가 조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 아이의 엄마가 보통의 엄마와는 다르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다르다'는 것은 인종과 외모의 다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엄마에게는 무언가 상당히 '불편한 것'이 느껴졌었다. 엄마는 아이의 하늘이다. 아이는 엄마에게서 모든 것을 배운다. 감정도, 말도, 생각도. 그리고 엄마에게 위로받고, 엄마에게 사랑받으며, 엄마에게 상처를 받기도 한다. 나는 왠지 OO가 엄마에게 엄마로부터 받아야 할 어떤 것들을 제대로 받지 못 한 채 자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그런 주제 넘은 생각이 들었다.


며칠 후 담임 선생님과 잠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생겨서 생각난 김에 나는 OO에 대해 물어보았다. 선생님은 내가 묻자마자 마침 그에 대해 자신도 할 말이 많았다는 듯이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OO와 우리 아이들의 놀이 취향이 비슷해서 갖고 놀고 싶어 하는 놀잇감이 자주 겹치는 편이고 그런 과정에서 작은 아이와 몇 번의 다툼이 있었다고 한다. 그럴 때 우리 아이들의 경우는 선생님이 규칙과 질서에 대해 설명을 하면 알아듣고 수긍을 하지만 OO는 아직 그것이 잘 되지 않는 아이라고 했다. 다툼이 있어서 선생님이 훈계를 하면 구석에 가서 숨어버리거나 소리를 지르며 밖으로 뛰쳐나가 버린다는 것이다. 감정기복도 심해서 기분이 좋은 것 같다가도 갑자기 울어버리거나 화를 내기도 해서 도무지 통제와 소통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 날 집으로 돌아와서 나는 많은 생각들을 했다. 아이 말만 듣고 그 친구는 나쁘니까 같이 놀지 말라고 함부로 말해버렸던 나의 태도에 대해서, 늘 무언가에 잔뜩 화가 나 있던 그 아이의 엄마와 항상 눈을 흘기면서 친구를 바라본다는 OO, 이웃들과 소통하기를 노골적으로 거부했던 아이 엄마와, 친구들과 전혀 소통하지 못한다는 OO, 그리고 OO를 불편해 하는 우리 아이. 아이들에게 엄마로서 나는 OO에 대해 어떻게 설명을 해 주어야 하는 걸까.


바깥 놀이를 나갈 때 둘 씩 짝을 지어 자신이 원하는 친구 손을 잡고 가는데 아무도 OO 손을 잡고 싶어 하지 않아 매 번 우리 큰 아이가 그 손을 잡고 나가는 모양이었다. 무언가 뭉클했다. 아무도 같이 놀고 싶어 하지 않는 친구의 손을 잡아준 큰 아이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리고 OO를 싫어하는 작은 아이가 느끼는 감정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늘 우리 아이들이 자신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를 기도하고, 그렇게 살기를 가르쳤던 나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게 될 우리 아이들에게 과연 '이웃 사랑하기를 내 몸과 같이 하라'는 것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막막하다. 그러나 똑같은 친구를 두고도 두 아이가 느끼는 감정과 대하는 태도가 전혀 다른 것을 보며 아이의 행동과 감정까지 내가 개입해서 대신 해 줄 수 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결국 아이들의 몫인 것이다.


아직 아이들이 이해하지도 못 할 여러 말을 하는 것보다 내가 그렇게 살아내면 되는 것 아닐까. 홧김에 아이에게 그 친구와 놀지 말라는 어른스럽지 못한 말을 한 것이 후회스럽다. 다른 건 몰라도 아이들에게 그렇게 말한 것은 정정을 해 주어야겠다. 그리고 아이들이 이렇게 자라주었으면 좋을 모습으로 내가 그렇게 살아가도록 애써야 겠다.


아이들이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있다. 나부터 빨리 더 어른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