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마음이 아파

내 아이의 감정 이해하기 2.

by 옥민혜
엄마, 나 마음이 아파.


아이가 그렇게 말을 하며 작은 손으로 자신의 가슴 한가운데를 문질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마치 깨어진 유리 조각을 씹어 삼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목구멍으로 넘어간 유리조각이 폐부를 찌르고 심장 여기저기를 찢어놓는 것만 같았다. 이제 겨우 네 돌이 된 내 작은 아이가 마음이 아프다고 한다. 마음이 아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기나 할까. 그것이 정확히 어떤 감정인지도 잘 모르는 채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짓는 아이를 바라보며 나는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음이 아프다는 감정을 느낀 건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그 이전에도 그런 감정을 느끼기야 했겠지만 '아, 이게 바로 어른들이 말하는 마음이 아프다는 거구나.'라는 것을 스스로 깨달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내가 막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을 때, 외할아버지가 간암 말기 판정을 받고 이미 손 쓸 수 없는 상황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병원에서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은 없으니 댁에 가셔서 드시고 싶은 것 마음껏 드시게 하고 자식들 옆에 계시면서 편안히 쉬시게 하라는 것이 의사가 해 준 유일한 처방이었다. 고작 60대 중반이셨던 할아버지. 지금의 우리 아빠보다도 훨씬 젊으신 나이에 외할아버지는 그렇게 갑작스러운 시한부 선고를 받고 병원 치료 한 번 받지 못하신 채 외삼촌 댁에 머물게 되셨다. 판정을 받은 것이 이미 말기였으니 그때부터 복수가 차고, 황달이 오고, 감당할 수 없는 통증으로 매일을 고통 속에 지내셔야 했다. 명색이 큰 아들 집이라고 그곳에 계시기는 했지만 아들이야 아침이 되면 출근했다가 늦은 밤이 되어서야 돌아오고, 할아버지의 수발은 고스란히 며느리인 외숙모 몫이었다. 중고등학생 손주가 둘이나 있는 집에서 할아버지는 몸보다 마음이 더 불편하셨다. 이미 그 당시에 대소변까지 다 받아내야 했던 상태인지라 아무리 환자라지만 며느리에게 그런 일을 맡기는 것이 불편하셨던 것이 당연하다.


슬하에 6남매를 두셨지만 할아버지는 그래도 우리 엄마가 가장 믿음이 가고 편하셨던 모양이다. 어느 날 엄마에게 전화를 하셔서는 '나를 좀 데리고 가 달라'라고 부탁을 하셨다. 그 전화를 받은 엄마는 한 달음에 달려가 할아버지를 우리 집으로 모시고 왔다. 외삼촌은 할아버지가 딸 집으로 가는 것을 끝까지 못마땅해하셨지만 엄마가 완강했다. 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얼마나 계셨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많이 편찮으셨고, 아무것도 드실 수가 없었으며, 통증이 너무나 심해서 엄마를 끌어안고 고통스럽게 하루하루를 보내셨던 것만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러나 그 기간이 그렇게 오래가지는 않았던 것 같다. 우리 집으로 할아버지가 오시는 것을 계속 내켜하지 않으셨던 외삼촌이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할아버지를 다시 모시러 오셨다. '큰아들이 있는데 이렇게 딸 집에 와 계시면 사람들이 안 좋게 봅니다.' '집안 어른들이 다 병문안을 오신다는데 여기 계속 계시면 제 입장이 좀 그렇습니다.' 할아버지를 모시고 가는 외삼촌의 입장은 그런 것이었다. 할아버지의 눈빛을 기억한다. 며느리보다는 딸이 더 편하셨을 할아버지. 우리 집에 계시는 동안 적어도 마음만큼은 편히 계셨던 할아버지가 당신의 고통보다는 아들 입장을 더 생각해서 슬픈 눈으로 마지못해 일어나셨다. 외삼촌의 이야기를 들으며 엄마와 할아버지가 서로를 말없이 바라보던 그 눈빛도 기억한다. '우리는 이게 마지막이겠구나.'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그 모든 것이 가시처럼 박혀 내 가슴이 내내 따끔거렸다. 할아버지가 외삼촌의 차에 올라타시고 엄마와 나는 할아버지를 배웅했다. 미련 없이 떠나는 차 뒷 좌석에서 고개를 돌려 우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시던 할아버지, '아버지, 아버지'를 부르면서 차를 따라가며 울던 엄마. 그때 나는 느꼈다. '아, 가슴이 저민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가슴이 저린다는 것이 이런 느낌이구나.'


집으로 돌아와 엄마는 아버지를 부르며 한참을 목놓아 울었다. 우는 엄마 옆에서 나도 가슴이 아파서, 가슴이 저려서 따라 울었다. 그것이 내가 처음으로 경험한 '가슴 아픔'이었다.




아이들의 교우 관계만큼은 원만하다고 자부했던 나였다. 여태껏 단 한 번도 친구와의 다툼이 있거나 불화가 있었던 적 없고, 오히려 주도적으로 친구들을 리드하고, 때로는 양보하고 도와가며 누구보다 어린이집 생활을 즐거워했던 아이들이었다. 아침마다 씽씽이를 타고 신나게 어린이집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보며 항상 흐뭇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인생에서의 첫 사회생활을 누구보다 잘 해내고 있는 아이들이 기특하고 자랑스러웠다. 그런데 새로운 반으로 올라간 지 한 달이 조금 지나서 작은 아이가 그동안 표현하지 않고 쌓아만 두었던 감정을 내 앞에서 폭발시킨 것이다. 어린이집에 가고 싶지 않다고. 모두가 나를 싫어하고 나를 괴롭힌다고. OO가 없었으면 좋겠다고(작은 아이와 자주 트러블을 일으켰던 다문화 가정의 아이). 여느 날과 다름없이 등원 준비를 하는데 갑자기 어린이집에 가지 않겠다며 아이가 늘어놓은 말들이었다. 서럽게 서럽게 울면서 아이는 그렇게 말했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마주한, 생각지도 못 했던 등원 거부의 첫날이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기 싫은 이유가 너무나도 구체적이고 명료해서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나서도 너무나 즐거운 모습으로 어린이집으로 향하던 그 매일의 아침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내내 흐뭇하고 자랑스러웠던 나의 그 매일이 아이에게는 얼마나 고통이었을까를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아이는 더 이상의 대화를 거부했다. 자신이 할 말만 하고서는 더 이상 어린이집 얘기는 꺼내지도 못 하게 했다. 그리고 아이의 마지막 말이 내 가슴에 말뚝을 박았다.


'나는 키가 작아서 친구들을 이길 수 없어.'


또래보다 많이 작은 것이 아이의 큰 콤플렉스였다. 아이가 작다는 것은 나의 콤플렉스이기도 했다. 뱃속에서부터 작았고, 낳아서도 작았고, 5년이 되는 동안 내내 또래보다 한참은 작았던 아이. 가슴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여름날 오후 쏟아지는 햇 살 속에서 길을 걷다가 우산도 없이 갑자기 소나기를 맞은 것 같은, 느닷없이 쏟아지는 비를 우산도 없이 온몸으로 맞고 서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 어디로 피할 데도 없고, 도움을 청할 데도 없이 고스란히 그 비를 다 맞고 서 있어야만 하는 그런 느낌.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는 아이를 안고서 아이보다 더 크게 울었다.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다. 아이의 감정에 휘말려서 이성을 잃고 그 감정에 동요되어서는 안 되었다. 나는 그때 엄마로서 중심을 잡고 아이를 보듬어 주어야 했다. 그러나 엄마가 처음인 나는, 전혀 예상하지도 못 했던, 아니 오히려 자만하기까지 했던 교우관계의 문제로 아이가 아파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도저히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얼마나 아팠던 거니.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던 거니. 아이의 마음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 한 채 희희낙락하며 지냈던 나의 지난 한 달이 경멸스러워졌다.


그 날 나는 웬 종일 허둥댔다. 아이는 대화를 거부했고, 나는 어린이집에 전화를 걸어 선생님께 상담을 요청했다. 주변 지인들에게도 조언을 구했다. 어린이집을 옮겨야 하나도 고민했다. 그런데 이 모든 상황에서 큰 아이만큼은 놀라우리만치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다. 큰 아이는 새로운 반에 친구들이 갑자기 많아져서(정원이 7명에서 15명으로 늘어난 상황) 짝꿍 친구 찾기가 어려운 것이 좀 싫기는 하지만, OO가 좀 나쁘기는 하지만, 그런 데로 다닐 만하다고 했다. 크게 불만은 없다고 했다. 아, 같은 배에서 한 날 한 시에 나온 아이들이 어쩌면 이렇게 다를 수 있단 말인가. 어쩔 수 없이 작은 아이의 감정은 나를 닮았고, 큰 아이의 감정은 제 아빠를 닮았다는 것을 이렇게 또 확인을 한다.


오후에 따로 시간을 내어 담임선생님을 찾아가 긴 상담을 했다. 그동안 아이에 대해 내가 몰랐던 것들, 어린이집 생활, 아주 작은 것에도, 누군가에게는(큰 아이를 포함해서) 그냥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일 까지 모두 상처로 받아들이는 작은 아이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쨌거나 OO와의 관계는 짚고 넘어가야 할 큰 문제임은 분명했다. 집에 돌아와서 아이와 다시 대화를 나눠보려고 시도했지만 아이는 그날 밤까지도 계속 어린이집 얘기만큼은 절대 하고 싶어 하지 않아 했다. 야근 때문에 귀가가 늦어진 남편 대신 혼자 아이들을 씻기고 재우고 나서 어두운 방 안에 혼자 않아 생각들을 정리했다. 남편이 돌아오고 나서 한참을 또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제 5살이 된 아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회생활에서 인간관계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부모로서, 엄마로서, 나는 아이에게 무엇을 해 주어야 하는 걸까. 까만 밤을 하얗게 지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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