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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민혜 Apr 18. 2021

내 아이의일춘기

요즘 내 딸들은 그야말로 극심한 '일춘기'를 겪고 있다.


요즘 아이들은 발육상태가 좋아서 초등학생 때부터 사춘기를 겪는다고 한다. '중2 병'이라는 신조어는 국어사전에 등재되어야 할 만큼 일상적인 용어가 되었다. 그렇다면 '사춘기'라서 '중2 병'을 겪는 것이 아니라 초등학생 때 사춘기는 사춘기대로 겪고 그다음 중학생이 되어서 '중2 병'을 다시 겪는다는 얘기다. 자식을 키우는 것은 그야말로 산 넘어 산인 모양이다. 


내가 중학교 2학년 때는 무엇을 했고, 어떤 생각을 했었던가. 좋아하는 가수의 음반을 사 모으고, 좋아하는 연예인의 사진을 스크랩하면서 나름 낭만적으로 그 시절을 보냈던 것 같은데 지금의 중학생 들은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하길래 기성세대들과의 심각한 갈등을 겪으며 '중2 병'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나게 된 것일까. 내가 알지 못하고, 이해할 수 없는 세상 속에서 늦깎이 엄마게 된 나는 그러한 세상만큼이나 너무나 빠르게 자라고 있는 내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가끔 혼란스럽다.  


올해 다섯 살이 된 내 아이들이 겪고 있는 문제를 보면 여러 측면에서 사춘기와 흡사하다. 우선, 사춘기의 기본 특징은 감정 기복이 심하다는 것이다. 갑자기 화를 내거나, 사소한 일에 눈물을 뚝뚝 흘린다. 엄마인 나는 언제 어느 포인트에서 아이의 감정이 폭발할지 알 수 없어 아이에게 말을 걸기가 무섭다. 요즘 내 딸들이 그렇다.


잘 놀다가 갑자기 "너무해!"라고 소리 지르며 방으로 뛰쳐 들어간다. 따라가 보면 서러운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다. 왜 그러냐고 이유를 물으면 상식적으로 잘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의 사소한 일이지만 당사자에게는 너무나 심각한 문제인 모양이다. 그런 일이 두 아이 번갈아서 하루에 수십 번쯤 반복된다. 이쯤 되면 나도 뭘 어떻게 맞춰줘야 할지 혼란스러워진다. 아이가 하나였으면, 여럿이라도 나이차가 좀 있었다면 어떻게 방어가 될 텐데 감정이 급변하는 포인트가 각자 다르고, 시간차를 두고 서로 방으로 뛰쳐 들어가며 울어대니 정말 어찌해야 할지를 모를 때가 많다. 


얼마 전 어린이집 친구 문제로 한 동안 내 속을 까맣게 태웠던 작은 아이 역시 '일춘기'를 겪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었다고 본다. 이 역시 사춘기가 되면 교우관계에서 크고 작은 문제를 겪는 것과 비슷한 부분이다. 어쨌든 그 일은 그렇게 일단락되었는데, 늘 평정심을 유지하며 높은 자존감과 이성적으로 사리분별을 하는 큰 아이는 좀 수월하게 넘어갈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꽁냥꽁냥 둘이서 세상 사이좋은 자매처럼 잘 놀다가도 금세 큰 소리가 나고 울음소리가 들리고, 딱히 누구의 잘못이랄 것도 없는 싸움이 시작된다. 간신히 둘 사이를 떼어 놓으면 서로가 서로를 탓하며 자신은 억울하다는 하소연과 함께 서럽게 울어댄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반복되는 이 과정이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렸고, 둘 중 누구의 편도 들어줄 수 없기에 '싸우면 무조건 둘 다 잘못한 것'이라고 따끔하게 혼을 내준다. 그러던 과정에서 오늘 아침 작은 아이가 또 방으로 뛰쳐 들어가며 울기 시작했고, 나는 잠시 아이의 감정이 추스러지기를 기다린 후 방으로 따라 들어가 아이를 달래주었다. 달래주면 또 금세 언제 그랬냐는 듯 해맑게 웃는다. 그러니까 아이인 것이다. 그렇게 작은 아이를 달래주고, 크게 한 숨을 내쉬고 방에서 나왔는데 이번에는 큰 아이가 보이지 않는다. 남편에게 아이가 어딨냐고 물으니 내가 방금 작은 아이와 함께 있던 그 방에 우리가 나오자마자 막 들어갔다는 것이다. 아, 또 거긴 언제 들어갔어...!


간신히 작은 아이를 달래고 나온 그 방에 나는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또 들어갔다. 큰 아이가 커튼을 치고 그 속에 들어가 웅크리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작은 아이가 거기서 그러고 있었는데... 이름을 부르자 아이가 그 속에서 벌게진 얼굴로 걸어 나왔다. 입술이 씰룩거리고 양 쪽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내가 양 팔을 벌리며 끌어안자 아이는 내 품에서 본격적으로 오열하기 시작한다.


"왜 그래? 왜 울어?"


아이가 훌쩍거리면서 대답한다.


"엄마가 예쁜 옷 입고 아빠랑 결혼했을 때, 그때가 좋았어."


이게 무슨 말인가.


"그게 무슨 소리야?"

"엄마가 예쁜 드레스 입고 아빠랑 결혼했을 때, 그때가 너무 좋았어."

"그때가 좋아서 운다고?"

"응. 그때 엄마 품 안에 있을 때가 좋았어."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속도위반으로 결혼식 때 아이들이 뱃속에 있었는 줄 알겠다. 


"엄마 아빠 결혼할 때 서현이 엄마 뱃속에 없었어."


아이는 내 품에 얼굴을 묻고 계속 흐느낀다.


"엄마 품 속에 있을 때가 좋았어. 그때는 엄마랑 항상 함께 있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엄마랑 항상 함께 있을 수가 없잖아. 밤에 잘 때도 엄마랑 같이 못 자고, 엄마가 꿈에서 만나자고 했지만 꿈에 엄마가 안 나와."

"서현이 엄마 뱃속에 있을 때 행복했어?"

"응. 항상 엄마랑 같이 있었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아이는 더욱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우는 아이를 꼭 안고서 나는 눈물을 참았다. 


아이의 그 얘기를 듣자 아이들을 낳기 전날 밤, 임신 내내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야릇한 기분에 남편 앞에서 울었던 기억이 났다. 아이들을 낳고 나면 이 아이들이 더 이상 내 것이 아니겠구나, 더 이상 내 품 안의 자식이 아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갑자기 너무 서운해서 울었던 그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나의 기분을 뱃속에서 아이도 함께 느꼈었던 건 아닐까. 혹시 지금 그 감정을 기억하는 것일까.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그때의 나와 똑같은 감정으로 울고 있는 아이를 안고 있자니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서현이 엄마 뱃속에서 나왔을 때 서운했어?"

"응."


어쩌면 그날 밤, 아이들은 뱃속에서 내일이면 엄마와 서로 타인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그렇게 내 안에서 서운해하고 있었기에 나 역시 같은 감정으로 슬펐던 것이 아닐까. 갑작스러운 아이의 눈물과 그 눈물의 의미가 내 심장을 뜨겁게 했다.


눈물을 닦아주고, 머리를 쓸어주고, 얼굴에 뽀뽀를 해 주면서 아이를 달랬다. 이렇게 엄마가 항상 함께 있는데 왜 슬프냐고, 서현이가 죽을 때까지 엄마는 항상 서현이 옆에 있을 거라고 그렇게 말해 주었다. 그 말을 듣고 드디어 웃음을 되찾은 아이의 맑은 얼굴을 바라보며, 그러나 그 마지막 약속은 아마 지킬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저며왔다. 엄마가 평생 네 곁에 있어줄 수는 없을 거라는 사실, 아이는 웃음을 찾았지만 나는 오히려 더 슬퍼졌다. 



너의 보드라운 살결도, 머리카락도, 완두콩 같은 손톱, 발톱 하나까지 모두 내 안에서 만들어졌는데, 콩닥콩 독 뛰어대던 그 심장도, 나를 바라보는 그 예쁜 눈도, 네 속에 흐르는 뜨거운 피 까지도 모두 내 안에서 다 만들어졌는데, 네가 세상 밖으로 나오는 순간, 우리는 서로에게 타인이 되어버린 거야. 네가 느끼는 감정을 더 이상 엄마는 똑같이 느낄 수도 없게 되고, 네가 하는 생각, 네가 바라보는 세상, 네가 듣는 소리 까지도 더 이상 엄마는 똑같이 알 수가 없게 된 거야. 그래, 그런 생각이 문득 들면 엄마도 하염없이 슬퍼지더라. 잘 지내다가도 문득 그런 생각에 미치면 갑자기 슬퍼지더라. 너도 그랬던 거니. 


아이들이 모두 잠들고, 하루 종일 웃고 떠들고 우는 소리들로 시끌벅적했던 집이 고요하고 적막해지자 오늘 아침 아이와 나누었던 그 일이 생각나 가슴 한편이 아려온다. 잠을 자고 있는 이 순간, 아이는 나를 그리워하고 있을까. 한 순간도 엄마와 떨어지고 싶지 않다던 아이, 꿈에서 엄마를 만날 수 없는 것이 슬프다는 아이, 내 옆에서 곤히 자고 있는 내 아이가, 나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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