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고등학교 2학년에 기회를 도모하며

by 오광락

2학년이 되면서 갑자기 초조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인서울을 해야만 한다는 압박감이 밀려왔다. 선생님들의 반복적인 훈계 때문이었을까 최면에 걸린 듯 무조건 인서울이라는 공식에 빠졌다. 성공해서 아버지의 기대에 부합하고 멋지게 살고 싶었다. 나의 상황을 톱아보며 공부로는 안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는 이미 나와 있었다. 그림밖에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럼에도 만화가는 무언가 폼이 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히 TV에서 영화 올드보이를 보고 아연실색하게 됐다. 정말이지 창의적이고 믿을 수 없는 표현력과 흡입력을 느끼면서 결심했다. 만화와 애니의 관심은 영화로 더 기울었다. 그때부터 갖가지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시나리오, 연기, 조명, 미술, 음악, 연출로 빛나는 종합예술의 총합이었다. 나는 영화감독을 해야만 한다. 미술을 해서 인서울을 하고 영화를 배우자는 원대한 계획을 짰다. 미술을 통해 영화를 하면 더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했다. 구도를 보는 눈과 감각이 살아서 더 뛰어난 연출을 뽐낼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박찬욱 감독은 나에게 지금까지도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의 작품은 세밀하고 정교하며 세련됐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위트까지 담고 있어서 보는 게 항상 즐겁다. 그의 작품은 물론이고 저서인 박찬욱의 몽타주와 오마주를 몇 번씩이나 다시 보기도 했다. 몇 년 전에 리틀 드러머 걸의 시사회를 갈 기회를 얻어 그를 직접 보기도 했다. 화장실에 가는 그를 따라가서 소변을 보는 와중에 드라마를 잘 봤다는 경우 없는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나의 롤모델인 그의 언급을 따로 하고 싶었다. 비록 더 이상 나는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못 하고 있다. 그래도 언제든 다시 영화를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파킨슨병을 앓고 있어서 점점 몸이 마비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걸 못 견뎌하셨는지 어느 날 자살을 선택하셨다. 야자시간 아버지는 교실 문을 확 열고 들어와 충혈된 눈으로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했다. 아버지와 나는 급히 장례식장으로 향했고 차 안에서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적막은 경건한 애도와 같았다고 느꼈다. 장례식 마지막 날 할머니의 시신을 보게 됐다. 목에는 흐릿하기도 선명하기도 한 붉은 자국이 남아있었다. 내 저변에 깔린 우울함이 새게 몰려왔다. 우리 가족은 왜 이렇게 고통받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감정이 복받치는 걸 간신히 누르며 할머니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할머니는 간간이 집에 와서 우리를 챙겨주고는 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친구와 방에서 밤새 게임을 해댔고 할머니는 중간중간 깨서 우리에게 잔소리를 했었다. 그게 할머니에 대해 가장 선명하게 남아있는 기억이다. 역시 사람은 안 좋은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오르기 마련인가 보다. 할머니는 우리를 누구보다 소중하게 생각했다. 할머니의 맹목적 사랑을 받아들이기에는 아마 그때의 나는 철이 없었다.


몇 달 뒤 아버지는 새엄마가 될 사람을 소개해 주었다. 그녀는 꽤 미인이었고 선해 보였다. 무엇보다 그녀가 딱히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버지와 좀 닮아 보이는 구석이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우리는 함께 밥을 먹으며 편하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고3이 되었으며 그녀가 가족이 되었고 학사생활을 끝내고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다시 미술을 하고 있었다. 모든 것은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듯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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