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난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전학 간 후 학교 생활

by 오광락

전학 온 학교 생활은 그저 무난하게 흘렀다. 조금씩 친구를 사귀고 매일 급식을 챙겨 먹고는 농구를 했고 공부는 그저 뒷전이었다. 수업 시간에는 거의 잠을 청했다. 학교 선생님들은 일단은 오로지 대학을 잘 가야 한다는 얘기밖에 안 했다. 한국에서 어른의 세상은 단조롭고 매정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성적에 맞춰 줄 세우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한국 사회가 달갑지 않았다. 매일 하는 야간 자율 학습은 야간 강제 학습일 뿐이었다.


아이들 사이에서 메이커 제품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너도 나도 나이키, 노스 페이스, 스투시등을 입고 와 자랑을 했다. 부럽다는 얘기들이 대다수였고 따라 사는 아이들이 많았다. 어울리기 위해 필요한 또 다른 교복과 같았다. 나도 아버지에게 졸라서 나이키 매장에서 옷을 샀다. 사람은 군중심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걸 느꼈다. 인간은 어쩌면 개성과 취향을 자유롭게 누리지 못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따라 사는 내가 있다는 게 부끄러웠다. 반면에 친구들에게 자랑할 생각에 신나는 느낌이었다. 원하는 아이들이나 사주는 부모님이나 유행을 따르는데 벅차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렸을 적부터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하는 걸 굉장히 어려워했다. 발표를 하면 너무나 긴장돼서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손과 목소리가 떨리기만 했다. 나에게 발표를 시킨 선생님이 그런 나를 보고 애처로운 표정을 짓기도 했다. 대체 나는 왜 이렇게 주눅 들어 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최대한 부끄러움을 숨기기 위해 나서지 않으려고 했다. 개개인의 감수성이 조금 더 존중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 앞에서 떨려하는 건 마찬가지다. 고칠 수 없는 고질병중 하나로 남아있다.


한 번은 아버지 친구와 함께 밥을 먹은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시종일관 거짓말을 하며 자신을 포장했다. 이번에 집을 사려고 알아보고 있다거나 내가 공부를 아주 잘한다거나 하는 말도 안 되는 얘기들이었다. 나는 아버지에게 약간의 모멸감을 느꼈다. 아버지의 거짓말에 내가 더 부끄러웠다. 어른은 사실 별 볼 일 없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른이 되는 게 싫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상황들이 마음에 안 들어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내가 있었다. 그러면서 세상에 대한 불만이 가득 쌓여 갔다. 나도 하찮은 인간일 뿐이라는 걸 그때는 인정할 수 없었다. 인정하기 싫었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 실점을 하지 않으려는 골키퍼와 같이 나의 결점들을 막아보려고 노력했다.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는 고정관념에 휩싸였다. 그러면서 더욱 다른 이들의 흠만 보였다. 마음속으로 다른 사람들의 흉을 보면서 나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썼다. 또한 세상의 한계점을 인지하고 싶지 않았다. 오직 사회는 계속해서 진보해야만 한다고 믿었다. 굉장히 일반적인 성장기의 얘기일 수 있지만 나는 집착의 정도가 거셌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나 저쩌나 학교 생활은 나름대로 편하게 지냈다. 어느덧 키가 크고 수염이 많이 나면서 계속해서 성장을 하고 있었다. 꽤 큰 키에 험상궂은 얼굴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이제는 애들이 쉽게 건들지 않았다. 무난한 공부, 무난한 농구, 무난한 야동을 즐기며 시간은 흘러갔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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