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통은 오기 마련이지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by 오광락

힘든 마음은 차차 풀리는 듯하면서 시간은 잘만 갔다. 그렇게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게 되었다. 고등학생이 되었으니 새 출발을 하고 싶었다. 내 남은 학창 시절을 만끽하고 싶어졌다. 반장 선거에서 내가 직접 후보로 나갔다.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모르겠는데 그래야만 했다고 생각했다. 아쉬운 표차이로 반장이 되지 못했다. 인생은 적당히 하는 만큼 적당한 수준으로 돌아오는 것 같았다.


가까스로 반장이 된 아이는 나를 견제했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싫어했다. 또다시 괴롭힘을 당하기 시작했다. 소심한 내가 마음에 안 들었나 보다 또 생각했다. 적당한 괴롭힘을 애써 삼키며 우울함은 더 강해졌다. 집에서 밤을 새우는 날이 많아졌다. 게임과 만화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대부분 잠은 학교에서 잤다. 어둠의 자식이 되어 갔다. 어느 날 나는 괴롭힘을 참지 못하고 한 아이를 집중적으로 구타했다. 그 아이는 당황하며 나에게 계속 맞기만 했다. 속이 시원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눈물이 나려고 했다. 그러면서 울적한 마음은 약간의 환희로 바뀌었다. 처음으로 살고 싶다는 기분이 강하게 들었다. 어떻게든 잘 살아가고 싶었다. 나를 괴롭히는 것들을 완전히 부숴버리고 자유롭고자 했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 해 여름방학을 끝으로 전학을 가게 됐다.


전근을 하게 된 아버지를 따라 춘천으로 이사를 갔다. 나는 그때 한창 이외수의 소설에 빠져 있었다. 소설에는 춘천의 모습이 많이 담겨 있었다. 안개 낀 수변도시라니 얼마나 낭만적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춘천으로 가게 된 게 운명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뿌연 안갯속에 파묻혀 고적하게 떠도는 나의 모습을 상상했다. 아버지가 집을 구하기 전까지 나는 군인 자녀가 지내는 학사로 들어갔다. 들어갔을 때는 MP3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거기서 라디오를 많이 들었다.


특히 신해철의 고스트네이션을 챙겨 들었다. 그의 박식함에서 오는 통찰력은 세상에 대한 불만을 해소시켜 주었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는 새벽 시간과 아주 잘 어울렸다. 잔잔하고 묵직한 그의 목소리를 통해 사연과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진짜 어른 중의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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