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꺾인 자리에는

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하면서

by 오광락

만화학원에서 그림을 곧잘 그렸다. 어릴 적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나 또한 그림을 그리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언제나 공책과 교과서에는 낙서가 가득했다. 그림은 나의 무한한 상상력을 표현하기에 아주 적합한 방법이었다.


학원에서는 대학생들이 와서 그림을 가르쳐 주었다. 그들은 원생들을 제대로 봐주지는 않았던 것 같다. 자신의 그림을 그리는데 더 혈안이 돼 있어 보였다. 자신만의 영감 속에 빠져 있는 것 같았다. 그런 그들이 너무 부러워 보였다. 나도 저렇게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자연스럽게 예고를 진학할 목적으로 입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스케치는 잘하는데 채색이 잘 안 됐다. 그림은 항상 물이 흥건했다. 성적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림을 그리고 있으니 공부에 흥미를 못 느끼는 건 당연했다. 그림에 집중하는 시간도 모자란데 성적은 왜 중요한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학원에 가서 그림을 그리는 것 말고는 딱히 입시 준비에 시간을 쏟지는 않았다. 집에서는 거의 게임을 하거나 만화와 애니를 보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 중요한 일이 앞에 놓여있음에도 아주 강하게 몰두할 수 없었다. 좋으면 하고 싫으면 안 하는 날들이 더 많았다.


고등학교 입시가 끝난 시점이라 정규수업을 받으나 마나 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학교에서는 거의 잠만 잤다. 교장선생님에게 찾아가 수업대신 학원에 갈 시간을 달라고 시위를 했다. 이럴 시간에 학원에 가면 조금이라도 그림에 집중하는 시간을 벌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내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예고는 떨어졌다. 첫 번째 쓰디쓴 실패의 맛을 보았다. 시간이 부족했던 것인지 안일했던 것인지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인지 어쨌거나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좌절의 아픔만 깊이 박혔던 것 같다.


공허한 마음이 나를 계속해서 표류하게 만들었다. 나에게 열심히란 단어는 도달할 수 없는 지점이었다. 이 정도면 됐다는 나태함만이 함께 했다. 입시의 폐해는 잔혹했고 패배감만 안겨줬다. 단순히 나의 잘못이라는 이유만이 존재했다. 조금 더 나아질 수 있는 방식과 대안을 고민할 수 없게 했다. 오로지 떨어졌다는 결과만이 존재하는 가혹함밖에 없었다. 중학생이 감당하기에는 벅찬 상황이었다.


점점 더 굼뜨고 무기력한 사람이 되어 가기만 했다. 힘이 나지 않았고 힘을 내서 뭐 하냐는 생각이 들었다. 우울한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시간은 갔고 끝이 좋지 못한 중학교 생활은 졸업을 맞이하게 됐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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