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과 아이사이의 나

중학생 시절의 나

by 오광락

아버지는 우리를 부족함 없이 키우길 원했다. 엄마 없는 자식이라고 못 자랐다는 손가락질을 당하는 걸 원치 않았다. 그리고 우리도 엄마가 없는 가족이라는 꼬리표에서 자유롭길 바랐다. 어려운 경제상황에서도 물질적으로든 정신적로든 우리에게 아낌없이 채워주려고 했다. 아버지와 나는 자주 둘이서 외식을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어떤 분야든 떠오르는 대로 말할 수 있었다. 평소 사람들 앞에서 우물쭈물 거리는 나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대체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얘기들이었다. 머릿속 생각으로만 멈추지 않는 자유롭게 바다를 유영하듯 생각이 실현되는 느낌을 받았다. 이대로라면 내 인생은 재밌게 흘러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언제나 아버지의 손에는 소주를 나의 손에는 콜라를 들며 짠을 했다.


만화 학원을 다니며 원하는 그림을 배우고 있음에도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우울함이 가득했다. 나는 밝은 아이는 못 되었다. 무언가 명랑한 사람은 별로 매력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독한 인간이 풍기는 멋이라는데 취해 있었던 것 같다. 어른을 흉내 내려는 아이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나의 사춘기는 어른을 동경했다. 그러나 지금 와서 보면 그때의 내가 많이 아쉽게 느껴진다.


더 즐기고 더 솔직하고 더 활달했다면 어땠을까 싶다. 나이에 맞게 살아가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많이 느끼고 있다. 그때만 가지고 있는 즐거움과 고민에 흠뻑 빠져도 모자란데 나는 자꾸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어머니는 종종 나타나 우리를 챙겨주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가 반갑기도 섭섭하기도 했다. 집으로 완전히 돌아올 것도 아니면서 가끔씩 오는 게 마뜩지 않았다. 그냥 우리를 떠났던 그녀가 미웠다. 그리고 미안하다는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는 것도 있다는 걸 배웠다.


사춘기는 만화와 애니 덕분인지 크게 요동치지 않고 지나가는 듯했다. 일본에 관심이 많아지니 일본 음악도 자주 듣게 됐다. 그중에서도 시이나 링고를 좋아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뭔가 불쾌할 수 있는 느낌이었지만 묘하게 끌리는 매력이 있었다. 염세주의적인 경향을 띈 그녀의 음악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역시 어른인 척하는 나를 자꾸 마주해야만 했다. 고독을 씹는 사람은 다른 곳에 눈길을 주지 않는다는 듯 언제나 이어폰을 끼고 살았다. 시이나 링고의 갈라진 목소리가 내 귀를 채울 뿐이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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