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성징이 시잘될 무렵
나는 대체로 넋이 나가 있었다. 이혼 가정이라는 사실이 계속해서 우울함의 파장을 만들어 냈다. 지나다니는 가족들을 보면 마냥 부럽고 나 자신이 안쓰러워졌다. 우리 가족이 어디를 놀러 가도 기분이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결핍은 끊임없이 깊어져만 가고 나는 햄릿이 되어 있었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이군요. 엄마. 초등학교 6학년 때 공부를 꽤 열심히 했다. 성적도 오르고 반에서 부회장이 되기도 했다. 학업에 집중하면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처음으로 허무함이라는 걸 느꼈다. 인생은 열심히 해도 안 되는 게 있구나라는 걸 알아 버렸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여자친구에게도 차이고 말았다. 왜 인지 이유를 묻고 싶지 않았다. 단순히 내 잘못일 수 있다는 걸 인정하기 싫었던 것 같다. 어머니도 여자친구도 떠난 복잡 미묘한 감정으로 외롭고 서글픈 마음을 끌어안고 있어야 했다.
중학생이 되기 전 교복을 사고 입어봤다. 아버지와 나는 약간 들떠있었다. 교복을 입은 내 모습이 달라 보여서일까. 초등학생 때 성적이 나쁘지 않아서일까. 첫사랑의 아쉬운 감정으로부터 멀어지고 있기 때문일까. 아무튼 새로운 시작은 언제나 설레는 법이었다. 중학교 생활은 태평히 흘러가는 것 같았다. 평화도 잠시 학우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소심한 나의 모습이 마음에 안 든 것인지 그들은 모여서 나를 가지고 놀듯 했다. 어느덧 학교에 가는 게 싫었다. 왜 나에게는 불행한 일들만 일어나는지 억울하기만 했다. 어느 날 담임은 모두 눈을 감기고 혹시 우리 반에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이 있으면 손을 들어보라고 했다.
당황스러웠다. 담임은 어떻게 알았을까도 중요했지만 무엇보다 손을 들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그래도 나는 들었고 그 이후 해방을 맞이했다. 아이들의 괴롭힘은 멈췄다. 특히 우리 반 일진은 나를 감싸기 시작했다. 일진과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그렇게 나를 함부로 건들면 안 된다는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아주 편하게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그래도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어머니를 떠올리고 있었다. 돌아올 것이라고 계속 믿고 있었다. 결핍은 더 쌔게 내 안에서 퍼져가기만 했다.
그 무렵부터 사춘기가 오기 시작했다. 공연히 멍을 때리는 날이 많아지고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것도 안 하고 싶었다. 그러면서 집요하게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빠져 살았다. 끊임없이 읽고 또 읽고 보고 또 봤다. 원피스에서 루피의 패기에 경의를 느꼈고, 20세기 소년에서 켄지의 의연함에 감탄했으며, 에반게리온에서 신지의 망설임을 답답해했다. 장르불문 온갖 만화를 섭렵했다. 주인공들과 때로는 모험을 떠나기도 시련을 견디기도 연애를 하기도 했다. 인생을 배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타쿠가 되어 일본어를 공부하기도 일본 문화의 관련된 책도 많이 읽었다.
자연스럽게 내 장래희망은 만화가가 되어 있었다. 만화 학원을 다니고 싶다고 아버지에게 선언했다. 의외로 아버지는 태연하게 학원에 보내주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