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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라라 Feb 25. 2021

코로나 시국의 조리원 생활

출산 후 3주일

2020년 12월 30일, 조리원 감염 사례가 보도되었다. 조리원을 취소하는 예비 엄마들이 급증했고, 조리원 내 남편 출입을 단속하는 행정명령이 떨어졌다. 1월 중순, 코로나 감염자 수는 조금씩 줄고 있었지만, 설날이 코앞이라 단계가 내려가기는 요원한 상황이었다.


1. 모든 수업이 취소되었다.


코로나 때문에 외부 강사가 들어올 수 없어 수업 대부분이 취소된다는 건 알고 예약을 하긴 했다. 다만, 조리원 내부 인력으로 진행하던 수업까지 취소되고 공용시설도 이용 못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될 줄은 몰랐다. 조리원 감염 사례와 5인 이상 집합 금지의 화려한 콜라보 덕분이었다.


보통 조리원에서 만든다던 초점책, 흑백모빌, 아기 손발 조형물 같은 것은 구경도 못했고, 격일로 진행된다던 요가 수업도 들을 수 없었다. 조리원에서 찍어준다던 아기 본아트도 당연히 취소되었다. 여기에 더해, 조리원 자체적으로 진행되던 아기 돌보기 수업과 목욕 수업마저 취소되어 버렸다.


수업을 들었어도 모르는 거 투성이었겠지만, 그것마저 없으니 매 모자동실 시간마다 더 당황스러웠다. 선생님들한테 물어보면 되지 않겠느냐 생각하겠지만, 당장 눈앞에서 애가 울면 우선 안고 달래기에 급급했고, 애가 진정되어 신생아실에 다시 보낼 때면 뭐가 궁금했었는지, 뭘 이야기하려 했는지 까먹기 일쑤였다. 기저귀 횟수랑 수유량만 기억해도 다행이었다.


코로나로 대면 자체를 조심하는 분위기가 되니 흔히들 말하는 조리원 동기 만들기도 요원해졌다. 수업도 없고 수유 콜도 각자 방에서 받고, 식사도 아예 따로 하니 말할 기회가 없기도 했다. 드라마 <산후조리원>처럼 설이 엄마로 불리며 하하 호호할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저 516호 산모님이었다. 그래서 조리원에서 지내는 2주 동안 참 외롭고, 정 붙이기가 힘들었다.


2. 남편 출퇴근이 금지되었다.


외로움이 절정을 찍었던 건 첫 주말, 남편 퇴소를 앞둔 시점이었다. 일요일 오후에 남편이 집에 가기로 했었는데 금요일부터 우울해지더니 토요일이 되자 틈만 나면 눈물이 나왔다. 밥 먹는 남편 보며 울먹, 자는 남편 보며 훌쩍이다, 안 나갔으면 좋겠다고 투정 부리듯 말하자마자 왈칵 터졌다. 결국 남편이 조리원을 나가는 순간에도 눈물이 앞을 가려 제대로 된 포옹 한번 못했다.


남편도 나가고 모자동실도 끝나니 이제는 눈물을 멈출 구실도 없었다. 이 우울이 모두 산후 호르몬의 농간이란 생각을 하면서도 통제가 안 됐다. 외출도 금지된 조리원에 갇힌 내 신세가 처량했고, 이런 상태로 남은 10여 일을 어떻게 보내나 싶었다. 울기만 하는 아가랑 어찌 앞으로 살아갈지 아득해졌고, 출산으로 망가진 몸이 새삼스레 억울해졌다. 우울은 몸과 마음을 좀먹어 급기야는 출산을, 임신을 후회하게 만들었다.


몇 시간을 내리 우는 나를 보며 동생은 조기퇴소를 권했다. 진짜 상태가 악화되면 1주일 만에 나올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는데, 다행히도 우울감이 천천히 호전되었다. 다음 주말, 코로나 검사를 또 받은 남편이 재입소를 할 때쯤에는 산후조리원을 떠나기가 아쉬울 정도로 나아졌었.


3. 외출이 금지되었다.


출산 후, 몸의 빠른 회복을 위해서는 산책 등 걷기를 많이 하라고들 한다. 사실 집으로 돌아가면 계속 아기를 봐야 하니 조리원에서 지내는 동안이라도 많이 걸었으면 좋았을 텐데, 코로나 시국의 조리원에서는 외출도 여의치 않았다.


그래서일까, 마사지도 자주 받고, 요가도 매일 하고, 밥도 적게 먹었지만, 임신 중에 찐 18킬로 중에 빠진 건 겨우 8킬로였다. 몸도 몸이지만 마음도 문제였다. 2주간 제대로 햇빛도 못 보고 바람도 못 쐬니 기분전환을 하기가 어려웠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만 마시면 소원이 없겠는데, 언감생심이었다.



외롭고 심심하고 답답했던 2주는 생각보다 금방 지나갔다. 조금 우울하긴 했지만, 그래도 덕분에 몸은 정말 눈에 띄게 나아졌다. 비록 몸무게는 많이 안 빠졌지만, 배도 처음에 비하면 많이 들어갔고, 부기도 거의 빠졌다. 몸이 나아지니 아기가 예쁜 것도 눈에 들어오고, 우울감도 많이 해소됐다. 2주간 쓴 몇백만 원의 돈이 허튼 짓은 아니었구나 싶어 다행이었다.


부디 다른 산모님들은 코로나 없는 조리원에서 지내길, 그래서 이 글이 해프닝처럼 읽히길,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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