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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라라 Aug 18. 2022

둘째를 임신했다

연년생 엄마가 되었다.

첫 아이 14개월쯤 둘째 임신 사실을 알았다. 원래도 둘은 가지려고 했고, 터울 없이 낳고 싶었고, 2살 터울이면 더 좋겠지만 연년생이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정말, 22개월 차이의 연년생을 임신했다.


임신테스트기에서 두줄이 나오기 전부터 임신인 거 같다는 느낌이 강했다. 첫째는 아무 증상이 없어 전혀 예상 못한 임신이었다면, 둘째는 이 모든 증상의 원인이 임신이 아니라면 병원에 가봐야겠다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다행히도 임신이 맞았고, 나는 그렇게 다시 임산부 생활을 시작했다.


입덧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이 비슷한 듯 달랐다. 신 음식, 국물이 당기고 14주까지 멀미에 시달렸던 첫째와 달리, 둘째는 7~8주에 입맛을 잃고 좀 어지럽다가 금방 끝났다.  첫째 때는 팥빵을 참 많이 먹으러 다녔었는데, 둘째는 정말 먹고 싶은 음식이 하나도 없다. 늘 배가 고팠던 첫째와 달리 둘째는 임신 전이랑 먹는 양도 별 차이가 없다. 그렇지만 역시 가장 다른 건 마음가짐이다. 한층 모든 것에 초연해졌다.


첫째 때는 불어나는 살과 늘어나는 튼살, 처지는 가슴, 형편없는 체력, 불현듯 밀려오는 무기력함이 모두 버거웠다. 이 모든 게 영원할까 두려웠고, 배 속에 아기가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이것들을 감당해야 한다는 게 납득이 안 됐다. 약자 취급을 받으면 억울했고, 그렇다고 배려받지 못하면 분했다. 나도 내가 당최 무엇을 원하는 건지 모르겠을 정도로 모든 게 혼란스러웠고, 그 사이에서 종종 우울했다.


둘째 때는 그 모든 게 참 별게 아니게 되었다. 예전과 달리 망가지는 몸을 봐도 그렇게 우울하지 않다. 완벽한 회복은 아니어도 어쨌건 어느 정도는 회복이 될 거기도 하고, 새로운 생명을 위해 이 정도의 희생이 불가피하단 것도 나름 납득이 됐다. 체력이 안 좋아진 것도 이러다 말겠지 싶고, 내가 일시적 약자인 것도 인정하기로 했다. 첫째가 알려준 '아기의 사랑스러움'이 이 모든 걸 압도한 셈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배운, '신생아의 무시무시함'을 기억하며, 아기가 태어나기 전 임산부 생활을 보다 알차게 보내기로 했다. 첫째로, 몇 년 간 미뤄둔 공부를 시작했다. 오늘이 가장 여유로운 하루라는 사실이 이렇게 큰 동력이 될 줄이야. 물론 회사에 육아에 치이다 보니 효율은 형편없지만, 그래도 이 와중에 펜을 들었다는 사실이 대견스러워 제법 즐겁게 공부하고 있다.


공부 말고 또 하는 것이 하나 있다면, 부지런한 주말 나들이다. 이제 곧잘 걸어 다니고, 막 말이 트여 조잘거리는 아이와 함께 다니는 세상 구경은 어찌나 근사한지.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에도, 구름 사이로 빼꼼 고개를 내민 달빛에도, 아침나절에 들리는 새소리도 신기해하는 따님을 보며 나도 이 세상을 다시 바라본다. 역시, 이만한 태교가 없다.


둘째야, 엄마한테 와줘서 고마워. 엄마도 아빠도 누나도 모두 기다리고 있어. 날이 추워지면 우리 곧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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