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발을 내디뎠을 때의 짜릿함이란
내 항공권은 인천에서 밴쿠버를 경유해 멕시코시티에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사람이 많이 없을 줄 알았는데 기내는 만석이었다. 내 자리는 가운데 세 자리 중 딱 한가운데다. 이렇게 장거리 비행을 쪼그려 가야 하다니. 일찍 와서 체크인을 할 걸 그랬다. 서울에서 밴쿠버까지는 10시간. 생각보다 보고 싶은 영화가 많아서 첫 영화로 애니메이션 Luca를 선택했다. 기내식 2번 그리고 간식 1번을 사육당하듯 먹고 나니 어느새 밴쿠버에 도착했다. 밴쿠버에서 5시간을 경유하고 또다시 5시간의 비행을 거치면 멕시코시티에 도착한다! 그리고 멕시코와 한국은 딱 15시간의 시차가 난다.
멕시코의 무비자 체류기간은 최대 180일이다. 하지만 입국심사관 마음대로 무비자 기간을 준다고 해서 잔뜩 긴장하며 입국심사관 앞에 도착했다.
"Tengo boleto de ida y vuelta!"
"no"
너 항공권 바꿔야 해. 그냥 원칙이 그래, 2달이 최고야. 두 달 이상 체류가 안된다는 입국심사관 말에 힘없이 돌아섰다. 그렇게 내 여권에 무비자 기간은 65일이 찍혔다. 90일 뒤에 돌아가는 티켓이 있단 말이다! 다른 심사관 줄에 설걸 그랬나 아쉬운 마음에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계속 서성거리다가 뭐 어쩔 수 없지, 하고 나왔다.
출구에서 한 번 더 짐 검사를 했다. 나를 보고 따라온 짐 검사관은 내 짐에서 삐- 소리가 나지도 않았는데 가방을 열어보라고 했다. 내 지갑이 어디 있는지 찾던 검사관... 내 동전 지갑을 손에 들고 있다. 돈이 어디 있냐고 계속 묻던 그.
"No tengo dinero. solo trajeta."
"Oh habla espanol?"
현금을 안 가져왔다고 했더니 그제야 스페인어 할 줄 아냐고 물었다.
"un poco."
조금 할 줄 안다고 이야기하니 돈 안 가져온 거 잘했다며 나가서 저기서 환전하라고 했다. 돈 가져왔었으면 뺏었을까? 지갑을 찾아서 나에게 괜히 의심을 산 그를 뒤로하고 공항 택시를 타고 숙소로 갔다. 택시가 빙빙 돌아서 이상한 데로 날 데려가지 않을까 싶어 핸드폰 gps를 잡아 간신히 izquierda(왼쪽), derecha(오른쪽) 단어만 얘기하면서 겨우 첫 숙소에 도착했다. 택시 아저씨는 길을 잘 몰랐을 뿐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게 도착한 숙소에서 "hola! buenas noches!" 소리가 들리는 데 너무 기뻤다. 드디어 왔구나 멕시코에!
"Hola! buenas noches! hice una reservacion!"
5층이라고 이야기하는 아저씨를 두고 동전지갑에서 5페소를 찾던 나. cinco pisos(5층)을 cinco pesos(5페소)로 잘 못 알아들었다. 보증금인가 생각하며 빨리 올라가고 싶어서 생각 없이 지갑을 뒤적이고 있었다. 아저씨는 nonono! 위를 손짓하며 cinco pisos를 다시 외쳤고 아, 그제야 5층이라는 소리구나 깨달았다.
"Muchas gracias!"
환하게 웃으며 외치는 나를 보면 방긋 웃어주는 멕시코 사람들. 그래, 언어는 부딪히는 거지.
그렇게 시차가 15시간이나 나는 낯선 곳에 도착했다.